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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지역
포곡면- 마성리
 

  1) 마을개관------------------------------------185
  2) 제보자 
  3) 설화
  (1) 이영학 (69,남) 마성리와 할미성-------------187
  ① 마을 유래-----------------------------------187
  ② 할미성의 유래-------------------------------188
 
(2) 이영학 (69,남) 물이 없는 할미성--------------190
(3) 이영학 (69,남) 성씨의 관한 한자--------------190
(4) 이영학 (69,남) 치마바위----------------------192
(5) 이재봉 (69,여) 도깨비에 홀린 사람------------193
(6) 이영학 (69,남) 도깨비로 변한 도리깨 장치-----195
(7) 이은복 (56,남) 할미성의 유래-----------------195
(8) 이은복 (56,남) 배가 다녔던 배모루 고개-------196
(9) 정화순 (70,여) 고려장이 없어진 유래----------197
(10)박대석 (79,남) 호랑이를 처치한 여인----------198 

5. 마성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마성리는 포곡면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로 용인 에버랜드를 들어갈 수 있는 영동 고속도로에 인터체인지가 건설되어 있다. 이곳은 용인시에서 영문리를 지나 차로 5분 정도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성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마가리와 성저리를 합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석성산의 보개산성과 할미산성이 있는 마을이다. 마가리는 할미가 성을 쌓았다는 할미성 밑에 있어 마가실이라고 하고, 성저는 성산 석성 밑에 있는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성밑이라고 한다.
 조사자들은 오후가 되어 마성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말 오후라 그런지 원래 그런 것인지 초여름의 뜨거운 태양빛만 내려쪼일 뿐, 마을은 너무도 조용하였다. 얼마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는데, 농번기라서 모두 일을 나갔기 때문이다. 마성1리의 가구수는 대략 50여 가구였고, 청년층은 없었고 거의가 노년층이었다. 이 마을은 야트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형 농촌이었다. 경기도 쌀은 나랏님도 진상하였다는 설이 있듯이 이 마을의 산업은 논농사가 주이다. 마을을 잇는 버스도 2~3시간에 한 대씩 들어올 정도로 도시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현대화가 이루어져 개량형 가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2) 제보자
 (1) 이영학(69, 남)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조사자들은 마성1리에 도착하여 한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부탁하자 모른다고 하였다. 빨간 기와집의 할머니가 이야기를 잘 한다고 소개하여 찾아갔으나 안 계셨다. 만난 사람에게 이야기를 잘 해주는 분을 묻자 제보자 댁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제보자의 집을 들어가 보니 할머니와 함께 계셨다. 찾아온 목적을 말하고 이야기를 부탁하자 구술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이곳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고, 자식들은 출가하여 밖으로 나가 살고 있다고 한다. 제보자의 부인 이재봉(69)도 이야기 한 편을 구술하여 주었는데, 기흥읍 신갈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온 다음에 겪은 시집살이 한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제공자료: 설화 1~4, 6.

 (2) 이은복(56, 남)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조사자들은 이영학 할아버지 댁을 나와서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만난 분이다. 조사자들은 찾아온 목적을 말하자 이곳의 전설인 할미성에 대한 이야기를 구술하여 주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으로 이야기가 생각날 듯 한데 생각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제공자료: 설화 7~8.

 (3) 박대석(79, 남)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마성2리 정화순 댁에서 나와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제보자의 댁을 찾아가게 되었다. 집에는 제보자와 할머니 두 분이 계셨는데, 찾아온 목적을 말하고 이야기를 부탁하자, 곧바로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처음에 조사자가 녹음하는 것을 보고 거절하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는 해 주는 점으로 보아 어떤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제보자는 용인시 원산면 박곡리에서 사시다가 6~7년전에 이곳으로 이사왔는데, 이 동네에서 이야기를 잘 해 주시는 분으로 통하였다.

제공자료: 설화 10.

3) 설화

󰊱 마성리와 할미성

이영학(69, 남) / 마성리T 1앞
[마성1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한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부탁하자 모른다고 하였다. 빨간 기와집의 할머니를 소개하여 주었으나 안 계셨다. 그래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제보자의 집을 들어가 보니 할머니와 함께 계셨다. 찾아온 목적을 말하고 이야기를 부탁하자 구술하여 주었다.

 󰊉 마을 유래

 내가 얘기 한 마디 허겄어. 여가 원래 삼전이여 삼전, 삼전부락, [조사자: 삼전부락요?] 응. 근데 인제 여기가 마성1리인데, 마성리가 이게 3개 부락이라서 저기는 마가실, 여기는 삼전, 여기는 성리. 여기는 삼전, 삼전.
 인제 저 인제 저 행정상 말하자면 인저 이 단위로서나 분활이 되어있지. 3개 리로다가. 마성리(다른 옛날이야기를 제보자에게 요구) 여기가 용인군이 용인시가 됐다고요. 그래 여가 인제 용인시 포곡면 마성리. 동(洞)이 아직 안 됐어요, 여기가. 그리고 인자 그 전에 옛날에 노인네들, 난 이자 전전해서 들은 얘기지.
 여 삼전이 요기 인자 2리가, 요기 그리고 인자 여기가 1리여, 마성1리. 2리가 마가실, 마가실. 그리고 3리가 인자 성밑, 아니 성저, 그러니까 성저 성밑자 밑 저자 성저여. 그래 여가 여기 성이, 산이 이게 성산이거든요. 석성산이지 원래. 이 인제 지도상으로는 석성산으로 나온다고. 그 때 인자 우리네가 부를 적에는 인제 약하게 불럭 성산, 성산 그러지. 성밑이 성저여, 인자 한문자로 쓰자면, 그러니까 성저 부락2리, 3리, 여가 1리.

 󰊊 할미성의 유래

 그래 뭐 유래 얘기, 뭐 옛날 유래 얘기라는 건 저 여기 삼전리는 밭서이, 가운데 집이 세채가 있다고 해서 여기를 삼전이라고 그랬고.
 마가실은 저기 저 마가실 뒤에 그 인제 할미산이라고 있어요. 그 할머니가 말하자면 그 성을 쌓았다고 해서 그 할미성여. 그 성이 시방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 흔적이. 그 성밑에서 그 성이 쌓은 그게 시방 그 흔적이 있고. 무너져 나간거지.
 그래 인자 마가실은 인자 마귀 할머니가 인자 쌓았다고 해서 그건 인제 그게, 인제 그 성이 마귀 할머니, 마귀 할머니가 쌓았다는 거야. 그래서 인제 마가실을 그래서 마가실이 되었다고 얘기가 그거고.
 성밑선 여기 성밑에 산다니까 성밑이 된거고.(주인 할머니가 먹을 것을 주심.) [조사자: 거기 얽힌 무슨 얘기같은 거 없어요?] 얽힌 얘기 나는 몰라요. 거 뭐 옛날에 노인네들한테 들은 얘기 죄다(전부) 까먹고 난 또 모르지 뭐. [조사자: 쪼금이라도 생각나시는 거 없으세요?]
 근데 인자 뭐, 마귀 할머니가 살았다고 하는데, 뭐 마귀 할머니가 옛날에 딸하고 아들하고 나 뒀는데, 다 장수라고 장수. 장수라는게 뭐냐면 옛날에 말이지. 왜 장수 이러잖아. 뭐 전장터 나가서 싸움하고 그런 걸 장군. 옛날엔 장군을 갖다가 장수라고 그랬지. 그게 인저 왜냐하면, 에 아들, 딸들이 시기허는 거여.
 “니가 잘 났니?”
 “내가 잘 났니.”
 그래 인제 딸을 죽이기 위해, 딸을 죽일라구 인저 꾀를 쓴거지. 그 할머니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서로 시기하니까. 서로 인저 아무 때고 저희들끼리 싸우고, 인저 어느 놈이 하나 죽어야 한 놈이 살꺼거든. 그래가지고선 말이지 뭐 아들은 말이지 나막신을 신겨서 뭐,
 “어딜 갔다 오라.”
고 그러고. 딸보고는 말이지, 딸하고 둘이 쌓았다는 거지, 이 할미성. 그래 저 아드이 갔다 올 동안에 이 성을 다 쌓다는 거야. 왜냐? 아들이 늦게 가서 아들이 죽었잖아. 아들이 죽였다는 말이 있어.
 그래 이 마가실이 인데 그 마귀 할머니가 쌓다고 해서 이게. 야 저기 저 성 이름은 몰르고 그게 인제 언제 쌓았는지도 여 유래도 몰라요. 언제적 성인지. 옛날에 쌓았다던데, 그 아는 사람이 없어요. 옛날 노인네들도 어느 시절에 쌓았는지 어느 시기에 쌓았는지 그걸 몰른다고.
 [조사자: 그리고 처녀성인가 무슨 그런 얘기가.] 여긴 처녀성이 여긴 없어요. 천녀성은 저기 있지 뭐여. 이동면, 이동면에 거기 처녀성 있다고 그러데. 여기 얘기 달라요.
 여기 여 석성산이라는 건 성산 그것도, 이제 어느 시절 싼 건지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읎고. 근데 우리네가 가 보면 그 성터가 말이지 시방 현재께 남아 있다고 그 주위에.(물이 없는 할미성 부분임)
 할미성, 할미성, 할미성 그러는 것이 마귀 할머니가 쌓았다고 해서 그래서 그게 할미성이라 그러는 거여. 그 그래 인저 돌을 보면은, 후기에 쌓은 여기 수원성 같은 것는 말이지. 인제 참 이조, 이 중엽에 쌓은 거기 때문에 그 돌을 다 정을 때려서 말이지 반듯반듯하게 이쁘게 쌓았지만, 이거는 이 돌을 주워다논 걸 보면은 그냥 이런 막돌이예요, 막돌.
 근데 쌓은 거 보면은 그냥 그야말로 개미도 제대로 못 올라가게 쌓았어. 그래 인저 뭐 마귀 할머니가 쌓았다니깐 인제 우리네야 달르지 뭐. 우리가 생각할 적에는 신이라 그럴까, 그런 조화로다 쌓은거지 뭐.
 여기도 그래 여기도 동문이라고 있었는데, 이 돌을 다듬어서 인제 이 돌을 이렇게 문같이 해 놓 놨었는데, 요즈음 말인지 그 뭐 젊은 사람들이 말이지 힘자랑인지 뭔지 한다고 해서 죄다 굴려 그 내버리고 흔적이 없어져 버렸어. 저쪽으로 이렇게 돌아가 보면 그것도 문을 쌓았는데 그 쌓은 정면 보면 기가 막히게 쌓놨지. 옛날 사람이 그러고 보면 재주가 좋아요.

󰊲 물이 없는 할미성

이영학(69, 남) / 마성리T 1앞
[마성1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게속하여 주었다. 옆에 계신 할머니와 함께 들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앞의 할미성 이야기의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것을 독립시킨 것이다.

 난 옛날에 노인네들이 얘기하는데, 양짝으로다가 성을 쌓긴 쌓는데 전장을 못했다는 거여. 왜냐하면 전장하기 위해서 성은 생기는 거거든요.
 근데 그 물이 읎어가지고 패했다는 거여, 거기서. 물이 읎어가지고. 물이 있어야 되거든, 성안에 말이지. 거기서 생활을 핼라면 첫째는 물이거던. 물이 읎어가지고 여기서 성 쌓아가지고선 실패를 했다는 거여.
 [조사자: 그게 어느 시대입니까?] 근데 어느 시대인지 그걸 아는 사람이 읎시오. 응 그걸 몰러. 그건 물론 고구려 적일테지. 뭐 여기가 옛날에 고구려 땅이였었으니까, 여기가. 여기가 용인이 고구려 땅이였었으니까, 고구려 때일꺼예요 아마.

󰊳 성씨의 관한 한자

이영학(69, 남) / 마성리T 1앞
[마성1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효자 이야기를 묻자, ‘그것은 없다’고 하였다. 제보자는 옛날에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나쁜 것만 남는다며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자를 가지고 성씨를 비난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그 옛날에 글자 가지고, 한문자 가지고서는 말이지, 인자 그 성자 가지고, 여기 저 성자 가지고 왜, 인저 성들 가지고 욕들 하는게 있다고. 왜 송나라 송자 있잖아. 송서방 여기 누구 있어? 송씨 있어? [조사자: 제가 송씨거든요.] 송씨가 말이지. 그런 건 한문자 풀이 가지고 말이지 서로 농들 하고 그러지, 그런 거 얘기지 뭐.
 [조사자: 송자가 어떻게 되는 건데요?] 송자? 송서방네가 그 중에, 중의 손이라고 말이지. 옛날에 인자 송서방네 보고 인저 농담삼아 욕들하고 그렇게 했지. [조사자: 어떻게 욕했는데요.] 거 내 그런 거 얘기하면 뭘 해. [조사자: 얘기 해주세요. 그게 중요해요.]
 그러고 저 이 뽕나무 상자가 있어. 그런게 인자 뭐여. 남구(나무)에서 뭐 나팔부는 자가 인자 무슨 자냐 그러면, 그 뽕나무 상자 어떻게 쓰는지 알어? [조사자: 나무 목자에다,] 아니 또 우자 세 개에다, [조사자: 아, 또 우자.] 또 우자.(한자를 쓰기 위해 잠시 중단) 이게 뽕나무, 뽕나무 상자가 이렇게 쓰고 이렇게 쓰잖아. 그게 나팔부는, 아니 나무에서 나팔부는 자가 무슨 자냐 하면 말이지, 옛날에는 한문 배우면서 이런 재담 가지고서 옛날에 한문을 배웠다는 거야.
 (조사자 성씨에 대해 다시 묻자 해주심) 또 뭐이가 있더라. 그게 서로 성씨 가지고. 그전에 오약 이자 이씨 아니여. 내가 이씬데. 그게 나무 밑에 뭐 아들 자자 아니여. 그게 거 왜냐하면 말이여 저 그거 욕을 할려면 말이여, 그 어떻게 열여덟 놈의 아들이라고 말이지. 그게 왜냐하면 말이지 왜 쌍말로다선 못된 말소리 하잖아. 십팔이 뭐여? 그렇게 욕하고. 그 왜냐하면 이 성가지고 욕들 많이하고, 그 농이지 농.
 그게 인자 나라 정자 있잖아. [조사자: 나라 정자요?] 응 나라 정자. 왜 나라 정자 정서방들이 많잖아. 이게 나라 정자를 갖다가서는(쓰면서) 이게 원래 나라 정자거든, 이게. 이게 이렇게 쓰면, 이렇게 쓰면 정서방들이 싫어한다는 거여. 그래서 시방들 쓰지. 이렇게 이렇게 써야만 정서방들이 화를 안 낸다는 거여. [조사자: 왜, 화를 안 내요?] 그래 이 정서방네들 보고 뭐라고 그래? 당나귀라 그러지, 당나귀. 당나귀 서방이라고. 그런 이게 은근히 당나귀 같지. 요 이게 뿔, 요게 꼬리에, 머리에 수염난 거 같잖아. 요걸 가지도 몸뚱이를 만드는 거지 이거. 이거. 이걸 갖다 잘 묘사해서 잘 그리면 당나귀 같아 보인다고. 그래 이걸 이렇게 원래 정자는 이 자여. 그 이렇게 쓰면 정서방들이 싫어한다는 거여. 거 이렇게 써야 좋아한다고. 그런 그게 있어.
 옛날에 한문 공부하는 사람들이 인자 거기서 나온 거여 이게. 그래서 이제 정서방 보고 당나귀, 당나귀, 당나귀 하면 으레 정서방이거든. 그 글자가 이렇게 생겨서 당나귀라는 거여. 뭐 사람이 당나귀처럼 생겨서 당나귀가 아니여. 이 정서방은 당나귀라고 헌잖어.

󰊴 치마바위

이영학(69, 남) / 마성리T 1앞
[마성1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조사자들이 조사를 나온 목적을 다시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때 옆에 있는 할머니께서 치마바위에 대해 할아버지에게 묻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준 것이다.

 [청중: 거 시방 치마 바위, 치마로 갖다 돌 쌓아서 만든 애기 그런거나 해 줘요.] [조사자: 그런 얘기 해 주세요?] 치마바위. 치마바위라고 저, 그래 인저 성저(성밑에) 거기 가면 절이 그전에 암자가 거기 있었 있었시요.
 그런 거기 이자 치마바위가, 치마바위가 있는데, 먼데서 보면 치마 두른 것 같이 바위가 거기 있었시오. 엄청 크지. 바위가 말이지 뭐 이 집채 보덤 더 크지. 그래 인자 치마 두른 것 같이 보인다 해서 치마바위라는 게 있어. 근데 거기 가 보구서 얘기들 해야지 그게 뭐.
 근데 여기 뭐 산신당에서 뭐 산신두 있구. 여 여기가 명산이예요. 이게 이 산이 이래도 이거 쪼만해두 산이 명산이라. 그 저 시방 이 저 재터골이라구 해가지고서는 저 군부대가, 통신대가 앉았어.
 거기가 그 재텃골이 옛날이 가물면은 가서 천제 지내구 그런 데가 있어요. 그 저 시방 부대가 앉았다구, 옛날에 소 잡아놓고, 여긴 소, 소 잡아서 대갈이 갖다 놓구선 제사 지냈다구.
 치마바우는 그게 너머서 보면 말이지 그냥 치마 두른 것처럼 보인다해서 치마바위지. 왜냐하면 이 바우돌이 크더란게 잽채만한 게 그러니까, 이 저 두 개가 얹혀 있다구. 여기 하나 있구 이 위에 또 하나 있구. 그 인저 드 둘레가, 이 여 둘레가 말이지 꼭 치마끈 두른 것같이 보이구. 그 밑에가 치마 두른 것 같이 보인다구. 그래서 치마바위여. 바위가 그렇게 생겼으니깐 치마바위지.
 [조사자: 그러니까 뭐 치마로 해서 쌒은게 아니구요?] 아냐. 치마 두른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인자 치마바위라구 하는 거야. [조사자: 근데 거기에 얽힌 얘기 같은 것은 없습니까? 언제 쌓았는지.] 그 그건 못들었어. 그 그건 읎어. 싼게 아냐. 그건 저절루 그런게 천연적으로다가 생긴거지.
 [청중: 치마, 치마 앞에다가 담아다가 쌓은 거라매.] 아니 그건 할미성. [청중: 할미성이.] 할미성이 글쎄 말이지, 그게 마귀 할머니가 말이지 치마폭, 치마폭에 말이지 저 돌을 주워다 쌓다고 해서 그게 치마바위여. 아 저 저 할미성, 응 할미성.

󰊵 도깨비에 홀린 사람

이재봉(69, 여) / 마성리T 1앞
[마성1리 제보자 댁]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옆에 있던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부탁하자 한참 생각을 하시다가 말을 시작하였다. 이 할머니는 용인군 기흥읍 신갈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와서 시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던 도중에 이 이야기를 구술하게 되었다.

 [조사자: 뭐에 홀리셨는데요? 도깨비에 홀리셨다면서요?] 그래, 그래 가지구 인저 딸 딸을 불러 오래요. 딸이 두 명인데, 인저 손녀딸까지 인자 셋이지. 인저 한 분은 큰 양반은 송골 사시구, 이 저 둘째 양반은 저기 이천 사시거던. 가 불러 오래문 가서 불러와야 베기지, 안 불러오고는 못 베겨요. 그러먼 인저 그 냥반 불러다가 인저 또 불러오면은, 그 냥반 저 왔다가 가면은 또,
 “작은 딸 불러 오라.”
 작은 딸 인저 불러 오면, ‘큰 딸을 불러와라’ 맨날 이렇게 ‘손녀 딸 불러 와라’ 이러다가, 한 번은 저기 저 산골 마을, 우리 집안네 인자 제사 지내러 가는데, 거긴 가서 거실 뭐여 저 저, 거기 가서 떡을 얻어 오래요, 노인네가.(웃음)
 그래 거기서 지앙 지내러 가다가, 가는데 인저 걸어서 갔어, 거기를. 해 넘어가기 전에 갔는데, 아 개울을 이렇게 개울 개울을 건너가야 되거던. 개울을 건너가야 되는데, 이냥 개울이 아니구 환하게 그냥 큰 신장로가 되더라구. 그래 인저 그 길로만 따라갔잖어, 길. 길로만 가지더라구.
 그래 밤새도록 그 개울벌을 헤미고 돌아다니다가 다 밝은데 에, 인저 그때는 저기여 차가 귀했어. 새벽녘에 인저 이 저 차 불이 비치더라구. 그리구 차 불에 비치는 걸 보구서는 그 가만히 서서 향을 하니깐, 그 차 오는 걸 보구 생각하니까는 괜히 내가 그 개울, 개울에서 지냈지, 엉뚱한데 가서.
 그래 그 인저 차 불에 비치는 걸 보구서는 찾아 찾아 나서가지구, 자데는 못 가구 딴집, 딴집에 가설랑은 내가 아는 집이 자구서는, 잠깐 그 그집에 가서 들어앉았다가시리 갔다가 왔어, 글쎄. 그렇게 우리 할아버님이 이상해요. 이상한 양반이야.

󰊶 도깨비로 변한 도리깨 장치

이영학(69, 남) / 마성리T 1앞
[마성1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앞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마치자, 같은 도깨비 이야기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구술해 주었다.

 옛날에는 여기 숲이 많았었지. 인제 거기를 오는데, 구척 장승같은 놈이 그냥 붙들고 안 놓는 거야. 시비를 걸더라구. 구척 장승같은 놈이.
 그 인저 밤새도록 그냥 그거한테 말이지 홀려서 말이지, 그냥 아카시아 나무 숲속을 말이지 헤맨거여. 거기서 날 샌거여. 그래 이 나중에 보니깐 도리깨 장치가 말이지, 이렇게 돌아, 속을 썩이드래, 도리깨 장치가.

󰊷 할미성의 유래

이은복(56, 남) / 마성리T 1앞
[마성1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이영학 할아버지 댁을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만난 분이다. 조사자들은 찾아온 목적을 말하자 이곳의 전설인 할미성에 대한 이야기를 구술하여 주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으로 이야기가 생각날 듯한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서 구술하여 주었다.

 저기 뭐 할미성에 그 대한 유래 유래라고 할까, 그 뭐 저기 확실한 건 알 수 읎고.
 어 저게 신라 말엽인지 인제 고려 말엽인지 내 그런 건 확실한 건 잘 몰라요. 그때 성을 쌓았다는 것인데, 가면은 지금 성이, 하튼 우리네가 생각하기 어려운 돌로, 지금 성 흔적이 많이 남아 있죠. 쬐금 헐어지고 그랬는데, 하옇턴 이거보담도 더, 이거 이 대문 기둥보다도 큰걸 갖다가 이렇게 착착 쌓단 말이야.
 그걸 누가 쌓았느냐고 하면은 옛날에 뭐 몽고, 몽고족일테지. 이 몽고족이 침입 당시에, 에 침입 당시에 인저 그걸 난리를 갖다가 방패하기 위해서 그걸 위해 쌓았는데, 할머니들이 치마폭으로 쌓았다는 얘기야, 응. 그래서 뭐 그거 할미성이라고 그러는데.
 거 뭐 할미성, 아무리 말이 그렇지, 암만 옛날에 할머니들이 힘이 세고 장사들이라도 그거 할머니들 쌓았다는 것은 그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얘기야. 그런데 거 유래 전설로는 할미성이라고 내려와요, 응.
 성 그 둘레 넓이가 상당히 넓어요. 저어 여기서 저 자연농원 톨게이트, 어 톨게이트 있는데 바로 뒤에는, 뒤에가 거기 할미성이라고. 성이 우리, 내가 현, 실제로 그쪽으로 나무도 다니고 그랬으니까. 그래서 그것 밲이로 아는 게 읎지.

󰊸 배가 다녔던 배모루 고개

이은복(56, 남) / 마성리T 1앞
[마성1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앞의 할미성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여러 가지를 유도하였다. 조사자가 효가 효부 이야기를 물었지만 없다고 하였다. 그래 다시 홍수 이야기를 묻자, 이곳의 지명 중에 배가 다녔다는 고개에 대해 구술하여 주었다.

 여기로요 들어오는 데 보면은 자연농원쪽으로 가는 길이 있고, 이쪽 위로 해서 졸루(저기로) 자연농원으로 들어가는 데가 지름길이 있는데, 저 고개 있는데 배모루 고개예요. [조사자: 예, 거기에 얽힌 얘기 좀 해 주세요?]
 배모루 고개가 왜 배모루 고개로 돼었냐면은, [조사자: 배-?] 배모루. [조사자: 배모루요.] 응 배모루여. 지금 배모루 고개라고 그러구. 예날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에, 말도 배모루고.
 그게 왜 배모루 고개냐고 하면은, 임술년인가 임술년 장마 전인가, 옛날에는 글루 배를 타고 다녔다는 얘기여. 그래가지고 이쪽으로 다 물바다였겠지, 임술년 장마. 임술년 장마 전 얘기일 꺼야. 임술년 장마야 그거 몇 년 됐어요. 한 잘 해야 한 70~80년전 그밲에 안 되었단 말이야. 임술년이.
 그러니까는 그 전 얘기일 거야. 여기가 물바다가, 임술년 장마에 그렇게 물바다가 될 리는 읎다고. 응. 그런데 배가 응 글로 다녔다니까는 뗏목같은 게 다녔을 거라구. 응 글로 해가지고 이렇게, 고게 배모루로해. 물줄기가 말이야 이게 돌게끔 되어 있어요. 이렇게(시늉을 내면서) 배가 이렇게 돌게끔 되어 있더라고.
 그런데 거기가 무척 깊어요. 깊어가지고 사람도 여름에 수영들을 해다가 보면, 목욕이지, 사람 여러 명 빠져 죽었어요. [조사자: 예, 거기에 귀신같은 게 있나요?] 귀신이 뭐 있다는 얘기지. 귀신이 있다는 얘긴데 지금 귀신이 어디 있어요.

󰊹 고려장이 없어진 유래

정화순(70, 여) / 마성리T 1앞
[마성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조사자들은 마성1리에서 조사를 마치고, 마성2리로 찾아갔다. 마성2리를 찾아가 노인이 있는 집을 무작정하고 들어가서 제보자를 만났다. 제보자에게 이야기를 부탁하자 이씨에 대한 것, 전쟁에 대한 것 등이 많이 있는데 다 잊어버렸다고 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준 것이다.

 수족을 못 쓰고 그러면 그냥, 그냥 갖다가, 저기 구댕이를 파고 갖다가 그냥 산 사람을, 산 할머니를 갖다가 집어 넣고, 그냥 먹을 거 많이 해다 거기다 놓고 이러구서는 그냥 집어 넣고 나온대요. 그럼 그런 일이 있었어. 응. 그런 일이 있어서, 거 할머니가 그거 다 잡수면 돌아간다구.
 그러구 또 한 할머니는, 인제 딴 사람인데. 인저 고려장을 허러 지 아버지가 즤 어머니를 지게에다 지고 가니깐, 지고 갔는데 요만한 애가 절렁절렁 쫓아 가더래.
 그래서 고려장을 허고서내 지게를 거기다 내버리고 왔다느면. 저기 즤 아버지가 내버리고 오니깐 그 애가,
 “왜, 아버지! 그 지게를 안 가지고 가세요?”
 그랬댜. 그래서,
 “그 지게 가지고 뭐 하니?”
 그러니깐.
 “이 다음에 아버지도 늙으면 갖다 고려장 해야지유?”
 그러더랴. 그래서 이 고려장이 없어졌다네.(웃음)

[10] 호랑이를 처치한 여인

박대석(79, 남) / 마성리T 1앞
[마성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송혜진, 최은희, 강희중 조사 (1996. 6. 1)

 앞 제보자의 집에서 나와 마을 돌아다니다가 제보자의 댁을 찾아가게 되었다. 집에는 제보자와 할머니 두 분이 계셨는데, 이야기르 부탁하자 곧바로 구술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처음에 조사자가 녹음하는 것을 보고 거정하다 해 주신 것이다. 용인시 원산면 박곡리에서 사시다가 6~7년전에 이곳으로 이사온 제보자는, 이 동네에서 이야기를 잘 해 주시는 분으로 통하였다. 이 이야기는 10살 정도레 박곡리에서 어른들한테 들었다고 한다.

 저기 강원도 저 큰 산골에들 가면 말여, 전에 강원도 산골에 들어갔는데, 거 강원도는 십리 이십 리 가서 집 한 채 씩 있었대 전엔. 그래가지구 인저 해는 거웃거웃 넘어가는데 말여, 그냥 암만 인가를 살펴봐두 없더래. 그냥 오밤중은 됐나봐 아마. 그런데 불이 반짝반짝 하더래. 그래 들어가 보니깐, 젊은 여자 혼자 통곡을 허고 있더래. 그래,
 “왜 그러냐?”
고 하니깐 말여. 그게 인저 들어가니깐, 우선 배가 고프니까 밥을 한 상 줘서, 해서 줘서 인자 먹고 앉았는데 하는 말이 말여,
 “왜? 혼자 사느냐?”
고 하니깐 말여.
 “세 식구 살었는데, 우리 아버님하고 내 남편하고 세 식구가 살었는데, (아버님)돌아갔다.”
 말여. 그 아랫목에 보니깐 시체가 있더래.(할머니 웃음) 그게 인저,
 “신랑 어디 갔느냐?”
고 그러니깐.
 “몇 십 리 장, 상포 훈(흥)장 하러 갔다.”
 그러더래. 근데 여자 하는 수가,
 “오다가 무슨 변을 당한 것 같다.”
구 그러더래.
 “그 인저 신랑을 찾으러 가야 할텐데, 여서 송장을 지킬라우. 일루 어디루 가서 우리 신랑을 데리구 올라우.”
 그러더래. 그래 시체 지키는 것두 무서워서,
 “같이 가자.”
구 그랬대.
 “그래 얼랑 하나, 횃불 하나 준비하라.”
구 해서. 준비해서,
 “이걸 들구 가자.”
구 그러더래. 이 어디쯤 한참 가니까, 호랭이가 자기 신랑을 뜯어 먹구 있는데,
 “저거 우리 신랑인데, 저거 어떻게 하느냐?”
구. 그 인저 횃불을 데구 이렇게 이렇게 이냥 들이대니까, 호랭이가 좀 물러나더래.
 “그래 이 송장을 안을라오. 횃불을 들고 쫓아올라오.”(청중웃음)
 그것두 나가 봐야,
 “아, 나 송장을 들어도, 송장을 짊어지고 가겠다.”
구 그러더래. 그래 인저 그 그 나그네가 인저 송장을 짊어지고, 그 인저 부인네를 횃불로다가 호랭이를 쫓고 이렇게 집에 막 왔는데, 인저 그 두 신처를 인저 방에다 놨잖어? [청중: 그 인저 통곡할 노릇이제.]
 근데 호랭이가 그걸 인저 놓쳐서 분해서 말여, 호랭이 꽁지를 그 문구멍에다 넣어가지구 헤지며 들어오더래. [조사자: 호랑이가요?] 응. 그 인저 그 여자가 이래 있어서, 화로에다가 인저 숯불을 그냥 이글이글 해놓은 그 쇳꼬챙이를 저기 해가지구 말여, 달궈가지구, 빨갛게 달궈가지구. 그래 인저 호랭이 꽁지, 꽁지가 들어가지구 휘휘 저으니깐 말여,
 “저 호랭이 꽁지를 쥐구선 문을 냅다 두 다리루 버팅기구선 잡어데리구 있으라.”
구 그러더래. 그래가지구 인저 쇳꼬챙이를 빨갛게 달궈가지구 그냥 똥구녕인지 뭔지 인자 팍 찌르는데. 그냥,
 “엉!”
 하구. 인저 저쪽 나가 도망치면서 그냥 그 배깥에 또 암놈이 하나 있었대. 두 놈이 와 가지구. 그래 두 놈을 물어 죽여가지구 그냥 두 놈이 다 죽었더랴데, 아침에 나와 보니깐. [조사자: 그럼 이게 원수를 갚았다는 얘기예요?] 갚었지. 그래가지구 인저,
 “호랭이 껍질을 베끼라.”
구 그러더래. 거 둘을 베껴니깐, 지금 그때 돈이루 팔아도 큰 돈이지 뭐. [조사자: 호랭이 가죽요?] 응.
 “그래 여기서 나하구 살라우 안 살라우?”
 그러는데,
 “나, 못 살겠다.”
구.(웃음) 그러더래. [조사자: 나그네가요?] 응. 그런데 인저 저 마당에다냥 장작을 후, 잔뜩 쌓아놓구선, ‘안 산다’구 그러니깐 말이여 장작을 한 수북히 싸놓구서는 불을 질러가지구선 그냥, 치마루다가 얼굴을 개리곤 그게 불속으로 그 여자가 죽었대.
 [조사자: 그거 왜 죽은 거예요? 그럼요, 같이 안 산다고 했으니까요?] [청중: 하녀 혼자 살 수 없으니깐.] [조사자: 혼자 살 수 없으니까요?] 응. 그런 얘긴 내 들었어. [청중: 좋은 얘기 들었네.]
 그래 인저 그 남자는 그 호랑이 가죽을 가지고 가서 부자로서 잘 살았대. [조사자: 그것 왜 남자가 갖고 가요? 부인이 가져야지.] 응? [조사자: 가죽을 부인이 가져야 되는 거 아니요?] [조사자2: 여자는 죽었잖아.] [조사자: 여자는 죽었나.] 그 여자는 은인이라구 말여,
 “난 죽지만, 당신은 이것 가지구가선 잘 살라.”
구 그런거지 뭐. 그렇잖아? 나는 죽었을망정 보은을 한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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