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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향토문화자료관>구비전승민담


북부지역
포곡면- 신원리
 

  1) 마을개관-----------------------------------------295
  2) 제보자 
  3) 설화
  (1) 이문규 (69,남) 느티나무 전설--------------------296
(2) 이재근 (63,남) 청주 이씨 일화---------------------297
  ① 21대조 능희시의 일화-----------------------------298
  ② 조상들의 수난------------------------------------302
  ③ 조상 산소 찾은 유래------------------------------303
 
(3) 이재근 (63,남) 괴로 무덤을 잡은 김양--------------305
(4) 이재근 (63,남) 피가 나온 홍수래의 무덤------------310
(5) 이재근 (63,남) 제사장을 받게 된 하인--------------312
(6) 이재근 (63,남) 지관의 말 안듣고 실명한 사람-------316
(7) 이재근 (63,남) 힘센 장사 스님을 물리친 아이-------318
 
  4) 민요
  (1) 이재근 (63,남) 장부타령-------------------------322
(2) 이재근 (63,남) 초한가-----------------------------323

8. 신원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신원리는 포곡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로 북쪽은 모현면 매산리와 접혀 있다. 이 신원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벗말(상, 하우촌), 양달말, 선장, 논골 등을 합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곳은 여관에 해당하는 원을 세우기 위하여 터를 닦았던 곳이라 하여 새원터라 불려오다가 마을이 생기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양달말은 남쪽이 탁 트여 햇볕이 잘 드는 동리라 붙여진 이름이고, 벌말은 들판의 가운데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선장은 선장사나 선장사가 있는 곳이라서 유래된 명칭인 것 같아. 조사자들은 11시경에 용인시 포곡면 둔전리 근처에 내려 이 마을까지 오는데 2시간이 걸리는 교통이 불편한 곳이다. 이 마을은 현재 양돈을 많이 하고 있어서, 돼지 사육장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파리가 많이 있었다. 농가들은 전원주택으로 보일만큼 깨끗하고 부농이라는 인상이 풍겼다. 신원리는 용인 이씨가 가장 살고 있으며, 전의 이씨는 신원2리에 많이 거주하고, 전주 이씨는 신원 4리에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곳은 노인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양반들이 거주하였던 곳이라 말하고 있으나,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보였다.

2) 제보자

 (1) 이문규(69, 남)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제보자는 신원리는 도착하였을 때 슈퍼마켙 앞에서 쉬고 있었다. 제보자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조사자들이 이야기를 부탁하자 아는 것이 없다고 사양하는 듯 하다가 구술하여 주었다. 얼굴은 햇빛에 탄 구릿빛 피부에, 약간 흙이 묻은 더러워진 옷을 입고 계셨다. 외모는 약간은 찌푸린 듯한 인상으로, 이야기 도중에 자꾸 주위를 둘러보시었다. 이야기를 할 때는 ‘이런 거 녹음하면 잡혀 가는 거 아니냐?’며 불안해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구술하는 중간에 ‘근데’라고 소리 높여 이야기를 하곤 하였으며, 마디마디 반복해서 말하곤 하셨다.

제공자료 : 설화 1.

 (2) 이재근(63, 남)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조사자들은 신원1리에서 조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잘 하신다는 신원2리의 이화영씨를 찾아 가던 중 집에서 쉬고 있는 제보자를 발견하고 들어가 이야기를 청하였다. 제보자는 마침 심심하던 차 였던지 흔쾌히 응락하면서, 할머니가 없어 조사자들에게 점심 대접을 하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 하였다. 그리고는 조사자들에게 음료수와 맥주를 주기도 하였다. 제보자는 이곳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어오다가, 오래전에 용인 자연농원(에버랜드) 수목관리인으로 있었다. 현재 관절염으로 휴직 중이었으며, 학교 교육은 일정시대에 산습소 4년과 한문 서당을 1년 다닌 것이 전부라고 하였다. 무척 활발하고 말하기를 좋아하였으며, 비교적 깨끗한 복장에 컬컬한 말씨로 구술하여 듣기에 편하였다. 구술하는 도중에 때때로 ‘인저’라는 말을 넣어서 말씀하시고, 약간 허공을 보면서 생각해 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와 노래가 매우 많이 있다고 하였지만, 실제로 구술하여 준 것은 전설적인 이야기만 있었다.

제공자료 : 설화 2~7, 민요 1~2.

3) 설화

󰊱 느티나무 전설

이문규(69, 남) / 신원리T 1앞
[신원1리 수퍼마켙 앞]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조사자들이 차를 얻어 타고 내린 곳은 신원1리였다. 마을 가게 앞에 제보자가 앉아 쉬고 있어 찾아온 목적을 말하고 이야기를 청하였다. 아는 것이 없다고 사양하여,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에 대해 묻자 구술해 준 것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제보자는 어릴 때부터 동네 어른들한테 들어온 것이라 한다.

 저기 저 느티나무가 한 500년 묵은 나무여.(얘기를 중단하여 조사자가 구술해 줄 것을 부탁함.) 근데 내 느티나무에 대해서 전설에 대해서 잠깐 얘기 할게, 이 느티나무가 500년 묵었거던. 근데 우리 선조가 저저 자양공 할아버지라고 계시거던. 옛날에 저 이 , 저 이순신 장군하고 전투두 허시고.
 그 냥반이 저걸 나무하고 그 바위 둘이 있지? 그걸 갖다가 이렇게. 장수분이거던 그 분이. 나한테 13대 할아버진데, 그 냥반이 갖다가 여기다가 이렇게 심으시고, 바웃돌은 겨드랑이에다 끼어다가 갖다가 여기다가 이렇게 하셨데. 전설에 그렇게 내려오던데, 여기.
 에- 이봐! 여기서 애기 좀 허구 가.(옆의 할아버지를 보고 잡으셨지만 바쁘시다며 그냥 가셨다.) 이일 장군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셨다는 전설이 있거던. [조사자: 이일 장군이요?] 응. 이일 장군. 나한테 13대거던, 그 냥반이. 우리 웃때 조상이신데.

󰊲 청주 이씨 일화

이재근(63, 남) / 신원리T 1앞
[신원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조사자들은 신원1리에서 이야기를 잘 한다는 신원2리의 이화영씨를 찾아 가다가 집에 쉬고 있는 제보자를 만났다. 제보자는 심심하던지 조사자를 반갑게 맞아 주면서 제보자의 집안 내력에 대해 구술하였다. 이 집안의 내력은 친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신 것으로, 설화적인 내용이 있어 수록하겠다.

 󰊉 21대조 능희씨의 일화

 [조사자: 언제 오셨는데요, 이 동리에?] 이 동네? 아이구 오래디. 이 동 이 동네 헐게 같으면 청주 이가인데.
 고려 왕건 태조가 어 인저, 저기 수그러들고, 이조 이성계가 아- 인저 등국이라는 거는 임금 자리에 오른다는 말여. 등국을 할 때 이성계허고 사돈간 되시는 분이 내게 21대조 할아버지여. 그래 인자 저기 능자 히자 되시는 능히씬데, 그 능히씨는 이조 초기 이성계가 임금에 올르면서 영희정을 하셨어.
 1년간 영희(영의)정을 허시다, 그 영희정의 아듣님이 내게 20대조 할아버지신데, 이성계의 부마가 되셨어. 그래 인저 자격이 하도 잘 생기고, 인저 그 이성계가 인저 태조, 인저 태조대왕 이성계, 이 저기 다섯째 아들 방원이 태종대왕 그 냥반허고 인저 처남 남매간이고 하니깐, 이성계를 도우면서 인저 부마 되시고, 또 다섯째 처남을 인저 대신해서 방원이가 저기 세 번째 임금이거든. 이 이 태조. 태 정종대왕이 즉위 3년을 허구서는, 인저 동생 다섯째 동생이 방원인데, 그 냥반이 인저 저기 임금으로 기실 적에도 이 냥반이 인자 부마로다 계셨어.
 아 이거 이런 애기 해도 되는 거여? [조사자: 예 괜찮아요. 이런 얘기를 좋아요.] 그래서 우리는 애초에 백제 사람이었어, 저기. 저- 삼국시대에는. 그래서 우리는 저기 충청도 홍성, 충남 홍성에서 자리잡고 있다가, 그 인저 허- 인저 6대조 되는 분이 진천 미역소로다가 인저 오셨어. 미역소로다가 오셔 가지고 인저 거기다 인저 우리가 청주 이(李)가라고 인저 본을 얻어가지고서는, 고려.
 고려 말에 저기 왕건 태조가 인저 스구러들면서 이성계가 인저 어- 최영장군이 고려말에 제일 으뜸가는 대장이셨지? 그래 이저 이성계는 부대장이셨다구. 그래 우리나라가 아- 저기 고려 땅에 저기, 고려 땅이로다가 엄청 많이 중국 땅에 많이 영립이 되 있는데, 그거를 최영장군이 저어 되 찾을라구, 우리나라를 되 찾으라구 들어가다가 이성계가 한 초막에 이르렀는데.
 그런데 7월판인데, 그 어떻게 비바람이 장마가 치는데, 최영장군이 그 저기 두만강을 못 건너 가고서는 기냥 그냥 잠시 진을 치고 있는데. 허! 그냥 비가 막 퍼붓고, 기냥 하늘이 못 들어가게 허니까, 이성계가 큰 부장이루다가 그 냥반이 인저 그 주모, 그 식당 아줌마한테 그 냥반이 도움을 받은 거여.
 거 쉬염이 이성게 용 쉬염인데 이렇게,(양반다리를 하고 앉으셔서 손을 코 앞에서부터 땅바닥까지 내리시며 수염 모양을 그림.) 앉으며는 이성게가 쉬염이 땅에 이렇게(땅을 짚으시며) 척 달, 달 달 정도 였었데, 그런데 거 사람도 그렇잖어.
 저 저기 뭐 대장할 꺼 같으면, 부하들이 확- 휘어싸고 그냥 뭐 그냥 다 수발을 들어주고 이래는 거 아녀-. 벌, 참 벌이나 뭐 이런 것도 마찬가지구. 그 장수벌이 안 보이도록 둘러싸고 그래는게, 그 엣날부터 특례 아녀.
 그런데 그 이성계 그 주무시고 게신 주막에, 그 주모가 이 무척 용한 아줌마였던가 봐. 그래서 이 요기 요렇게 쉬염이 요기 이렇게 싸고 있는데, 요기 쉬염이 용쉬염이라고 두 가닥이 이렇게 축- 내려오는 건데, 놓으며? 이렇게 또르르 말려서(조사자 웃음) 일루다 들어가는 거여 그럼 안 보이는 거지. 그래군 이 손에 임금 왕자가 이렇게 있는데, 이성계가 항시 이 손바닥을 남한테 안 보였다는 거여.
 그랬는데 아 그 주모가 자는데, 가만히 보니까 손을 이렇게(주먹을 쥐어보이셨다) 쥐고 자거든? 그래 이렇게 펴 주모가 보니까,(손바닥을 펴서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쓰시며) 임금 왕자가 분명히 있는데, 한국에서의 왕을 해 먹을 인물인데 중국을 쳐들어 가면은 죽을 사람이랴. 그래서 거 쉬염을 하나,
 “장군님! 장군님!”
하고. 노리개로다가 ㅣ렇게 인저 접대를 허고 그러다가 그 하나를 쑥 뽑았대요. 아 그랬더니 칼을, 칼을 뽑더니,
 “쥑인다.”
구. 아 그래서,
 “왜 그래, 그러시면 안 된다고. 지끔 쳐들어 가시며는, 중국에 가시면 승리도 못하시고 돌아가실테니까 되쳐서 공명왕을, 고려 공명왕을 쳐가지구 이 임금을 임금을 허시라.”
고. 그래가지고 그냥 최영장군은 그냥 그 그 강께서, 그냥 중국 쳐들어 갈라고 할 적에, 그 냥반은 개성, 개성 도읍지로다가 그 고려 말 때 그 도읍지 서울이었었는데 글루 되쳐나온 거여. 그래 공명왕을 항복을 받고서는.
 그때 그 신하가, 그때 정포은 정몽주 그 냥반이 영의정 이었었데요. 여의정이 임금 담(다음)이거든. 그랬었는데 영의정도 포섭을 해서 자기네 부하를 삼을라고 인제 이성계가 허고 하니까는, 이 그 정포은이 절대로 말을 안 들은거지. 그래서 지끔 그 냥반은 몇 백 년이 지나서도 그 청백하고 임금, 한 임금을 섬겼다구 해가지구, 우리 대학생이라든지 고등학생이라든지 천수 그리 인자 소풍들을 가서 인제 그냥 묵념들을 허고 그래. 그래는 그 훌륭한 분이었었구. 그 저기 뭐여 최영장군두 뭐 노장이니까는 뭐 혼자 힘을 쓰나. 군사는 이성계가 많이 해서 벌서 서울을 점령을 해구. 이래 이래가지구.
 그때에 이성계허구 제일 친했던 분이 이능희씨라고 우리 21대조 할아버지라구. 그 냥반이 이성게하구 참 친절허신, 막역간이래는 것은 친절한 친구를 갖다 얘기하는 거라구.
 그런데 그 으음 능희씨 할아버지가 인저 조선조 인저 이조 초기, 조선조 초기에 정승을 한 1년을 하셨어. 그러다가 인저 그 냥반 아드님이 내게 20대조 할아버지가 장사를 문화 유씨네 가서 장가를 들으셨는데, 자격이 하두 잘 나고, 우리는 오부재(오 부자) 분이구, 태조대왕을 이성계는 팔부재, 구부재 분이었어. 그랬는데 우리가 자격이 하두 잘났으니가, 오부재분이 그 정승이 21대조 할아버지는 정승을 주구. 우리 20대조 할아버지는 문하 유씨네 가서 장가를 들어 첫촉(첫째) 부인이 있어도, 이성계가 우리 21대조 할아버지 그 능희 그 할아버지를 불러가지구,
 “여보게! 여보게! 아 우리딸 그 우리 큰 딸 자네 네 며느리 갖다 삼어.”
 그래니까,
 “아, 이미 우린 아- 저- 장가들어 가지구 소생이 있구 그랬는데, 어떻게 아- 자네 딸을 갖다가 메누릴 삼냐?”
구. 그래니깐, 임금이었으니깐 마음대로다가 그냥 의(어)명이라는게, 의명이라는게 임금이 말씀하시는 게 의명이라구. 그래서 임금이 구혼허닌까는 아- 그 어쩔 수 읎지. 이래가지고서는 우리 20대조 할아버지가 임금 따님을 데리다 장가를 들으신 거여.
 그러는디, 문하 유씨 할머니는 그 뭐 공주 할머니가 작은 마나님이로다 들어오시는데 거기 더 버티고 있어 봐야 큰 대우 못 받을테니까, 공주 할머니 들어오신 시집 오시는 날 자기가 손수 걸어서 나가셨대는 거여. 그래 나가셔 가지고서는 에이 기냥 물에가 빠져 돌아가셨는지, 나가신 기록만 있고 족보에 돌아가셨는 데는 사유도 읎이, 기냥 어디가 돌아가셨을 테지. 양반의 부인이 뭐 행차 뭐 다른 데루다 지금은 몬양 시집을 가셨겠어? 그래가지구서는 그 공주 할머니가 들어오셔서 그 냥반은 소생을 못 나셨어. 공주 할머니는.
  그래 우리가 문하 유씨 소생인데, 에- 지금 내가 20대가 내려오도록 그래구서는 20대가 내려오도록 산소가 여기 계신 거여. 공주 할머니허구, 부마 내게 20대조 할아버지허구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신원리 상선장 그 자리가 산소자리가 자자오향이여. 자자오향에다 모시고, 어- 이조 육백년이 들렸는데.
 이 냥반의 아우님은 군수공이라 진천파로다가 떨어져 계시고. 이 냥반은 경숙공파로다 우리가 이전 경숙공파구. 그리고 한 분은 자격이 잘 못나셨는지 배실을 못하셨더라구. 그리구 막내분이 막내분이 청평 부원군이라구, 그 태조 이성계의 셋, 다섯째 아드님 방원의 사위가 또 된거여, 방원의 사위가. 그래 청평 부원군이라고 아주 문언이 아주 두꺼웁고 총명허셔가꾸 그 옛날에 성균관 유림에서 아주 학자로다가 계시고 그랬는데. 그 냥반이 청평 부원군이라고 저 양주군 진권면 용정리에 산소가 계셔.

 󰊊 조상들의 수난

 그래 그래구서는 에- 그 때에 방원이, 이성계 방원이를 도와가지구서는 그 이 엣날로 말허자면은 군사혁명 때, 지금 박대통령 군사혁명때 김종필씨 모냥 그런 역할을 우리 할아버지드이 허신 분이기 때민에, 그 각 유림에서 유림이래는 건, 성균관이래는 건 지금 어- 고등고시 패스한 그런 분들이었어. 그 유림에서 성균관 진사 자격을 딴 사람들은 지금 고등고시 패스나 행정고시 패스한 사람들이여. 그런데 인저 사람이 많으니까, 그렁께 등수만 뽑아 놓고서는 정부에서 불러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성균관 진사 그 인저 그런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라구.
 그랬었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군사혁명이루다가 쿠데타에 협조해서 이성계 방원이를 도운 사람들이니께는 우리 부재를 쥑이라구. 능희씨 할아버지하구, 이혜 쑥 애자며 쑥 애자 사랑 애자 위에 초도헌 자가 쑥 애자라구. 산소가 이 위에 지금 용인군 지방문화재루다가 그-, 27호 저기 문화재를 받아가지고 지금 비문이 서 있어, 저 우에. 신두(신도)비문하구. 그럴 적에, 에
 “능희하고 이애하구는 쥑어야 한다.”
구. 정부에서 그 성균관 그 진사 뽑아논 그 유림들이 하나, 둘인가? 뭐 전국에 그냥 조선 팔도의 유림들이 다 그냥 ‘거기 부재를 쥑어야 한다’구 그래니깐, 태조 이성계가 임금이 될 적에 우리 할아버지가 오부재 분허구 저기 구부재 분허구 손을 깨물어서 피로다가 혈서를 썼어.
 “우리가 잘 되면은 너희 너희 구부재를 안 안 쥑인다. 우리 구부재가 잘 되면은 늬희 오부제를 안 죽인 안 죽인다. 죽는 것만큼은 서로 간에 도와주자.”
 그랬는데. 이성계네는 임금을 허구, 우리는 정승을 허구. 으흠 뭐여! 저 부마는 됐지만은 나중에 아 지금 전두환씨나 노태우씨 그런 쪽이 난거여, 우리가. 그런데,
 “정히 그렇다면 나라에, 저기 백성들이 정히 그렇게 원하다면은 구(귀)향을 보내겄다.”
구. 그래가지구 능희 할아버지가 충청북도 진천 문백면, 진천군 문백면 사향리로다가 저 무지한 산골이여. 글루다가 구향을 보내고, 구향을 보내구. 이 이애 할아버지는 경기도, 경기도 포천 고량포로다가, 포천군 고량포로다가 구향을 보낸거여.
 그랬는대 인전 연세가 많구 그러니까는, 진천으로다가 구향보낸 능희 할아버지가 산에서 그냥 그 뭐 신하는 하나 쫓아갔겠지 뭐. 식사 대접하는 그런 뭐 수양(수행)원은 쫓아갔겠지만 ‘거기서 돌아갔다’고 인저 서울로다가, 서울 대궐로다가 기별이 오니까는 나라에서 했던 어째 됐든지, 공신은 공신이니까 나라에서 그냥 장례를 지내준 거여. 그래 구향갔다가 방면도 안 되고 기냥 돌아간거라구. 그래 그렇지만은 이조 이성계를 위해서 많은 역할을 했으니까. 방원이가 사장 으른(어른) 폭이지. 그러니까 장례를 모셔 드렸구.

 󰊋 조상 산소 찾은 유래

 이 냥반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아들을 고량포에서 일루다가 집으루다가 방면을 한거라구. 그래 그래가지구 우리가 이 산소를 7대를, 우리가 자손이 잘 안되가지구 7대를 이 산소를 못 찾았어.
 못 찾았었는데, 어떻게 찾게 되느냐구. 옛날에 우리 집안에서 이진사라는 분이, 그 용허시고 그랬는데, 한 이조 한 오백 년, 백 년 됐어, 산소 찾은 지가. 산소. 그냥 낭구가, 산속에 이렇게 굵은 낭구가 치고(자라고), 산소를 잃어버렸는데. 청주 한서방네들이 그 산을 봐준다구 묘지기로다가 있다가, 우리가 하두 안 오고 그러니까, 자기네 산이라구 다 그냥 거기다 산소를 쓰고, 그냥 모두 산을 묵이고 그랬더라구.
 그랬는데 이진사라, 이진사라는 분이 강화에서 살으시다가 이루다가 인저 매사냥을 오신 거. 그 인저 그 꿩 잡고 그러는 매. 그거를 인저 하나 가지고 이렇게, 선비니까는 이렇게 이루다 산소가 계시고 못 찾는다니까 이루 들어오셨다가 여기서 글방 선생님으로다가 몇몇 해를 계시고 그랬는데, 저 뭐여,
 “부, 부원군 산소 있는데 낭구를 가자고. 낭구를 가자.”
고. 그래가지고. 그래서,
 “부원군 산소가 어디 있니?”
 그러니까는 그 산소, 산소를 찾을까 봐.
 “아 그런 일이 읎다고. 그러니 부원군이 어디가 있느냐?”
고. 이렇게 허고 그래서, 이 냥반이 여기서 글방 선생으로다가, 그 집터가 지금도 있어. 그 살으신 집터가. [조사자: 이진사 그 분이 집터에 사신 거예요?] 그렇지. 한 백 년 전인데, 그 집터가 있어.
 그랬는데 산소를 어떻게 매를 가지고서는, 이렇게 인저 산소 찾을라고 이렇게 왔다갔다, 인자 산이루 매를 가지고 대니시는데, 매가 냅다 꿩을 쫓아서 매가 내리 꽂혔는데, 쫓아가 봐 보니까 꿩을 잡었어. 그래 인저 꿩을 이렇게 뺏었지. 인저 그건 뺏는 거여.
 그랬는데 이렇게 보니까 산소가 묵었는데, 비석이 우리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거여. 낭구는 이런게(한 아름을 표시하며) 들어섰어도. 그래서 산소를 찾게 되었는데, 그때 법이 읎고, 무법 무법 천지니까, 그 청주 한씨네에서 숫자도 많고, 그 여기서 인저 살았으니까 권력도 있고 그래가지고, 그 산소를 찾기를 무척 애를 쓰고, 애를 쓰다가도 못 찾고.
 인저 우리 인자 집안들이 잘 많지도 않은 집안인데,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가 99년이 8(98)년이 되었어, 지끔. 98년이 됐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무척 힘이 쎈 장사셨어. 그래 우리가 이 상태에서 20대조 내려오면서 그 파가 인저 거기서 작은 아들 파로다가 우리가 황해도 연안, 연안, 연백이루다가 우리가 가서 할아버지 한 분이 연안 군수를 허시고서는 베슬을 못 했어요. 상놈이여, 아주 우리가 옛날로 옛날루 말하자면.
 그랬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장사시니깐, 거기선 논밭을 죄 팔아가지구, 산소를 찾을려구 허신 거, 싸움하는 데는 일등이니까. 그래 이게 타도 타관에 선생님 한 분은 여기 계시지만은, 우리 할아버지가 와서,
 “여기서 이것만큼은 우리 산이다. 우리 산이다. 이 산소 이 산소가 사패지기 이성계가 이만큼을 띠어준 거니까 이거는 우리 해다.”
 그래 이 아래 내려가면은 큰 느티나무가 있어. 그 돌맹이가 엄청 큰 돌맹이가 있다구. 그때 거기다가 글씨를 새겨서,
 “이게 아무게네 사패라.”
고 했으면 그 표적이 뚜렷이 나타나는데, 느티나무 하나 심어 놓고 돌맹이 하나 세워 놓고, ‘이 안으루는 다 이예 사패다.’ 이렇게 태조대왕 부재분이, 태종 저기 이방원이 허고 저 준거여. 그랬는데 우리가 그렇게 자꾸 및 대를 그냥 산소를 잊어뻐리고 그러니깐, 다른 다른 성들이 와선 죄 점령을 허고 이렇게 살아가지고, 산만 26정 차지 허고 있었어. 산만. 그랬다가 그 우리 할아버지가 그 산만 찾은 거여, 26정을 찾은 거여. 그냥 주먹으로다 막 뚜드려 가며 그냥 빼어가지고 그렇게 보유허고 있다가.(그 이후의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생략함)

󰊳 꾀로 무덤을 잡은 김양

이재근(63, 남) / 신원리T 1앞
[신원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친 제보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지’하며 지체하였다. 그래 조사자가 이곳의 전설이나 아무 이야기도 좋다고 하자 구술하기 시작하였다. 이 이야기를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과 친할아버지께 들은 것이라 한다.

 [조사자: 얘기 하세요. 무슨 유래요?] 김양이래는 유래가 김양이, 용인 이 지금은 용인이라고 그래지? [조사자: 어 지금 여기 얘기 하는 거예요? 어.] 어.
 지끔은 용인군이지만 그전에는 김양 김양군이었었어. 김양장. 그 인저 군이 구성군이 있었는데, 김 김양에는 용인군이 요 저- 용인군이루다가 승격이 된 지가 어 몇 십 년 안 되는 거여. 한 어 한 70년, 용인군이루다가 된 지가, 저기 구성군이루다가 되 있다가.
 그래가지군 김양이래는 유래가 사람의 이름이여, 김양이. 그 김양이래는 분이 옛날에 무척 어려웠었는데, 성이 김씨여. 거 이름은 양이고.
 그랬는데 자기 아버지가 돌아갔는데, 그 상주가 아들이 3형제였었어. 그랬는데 산소자리를 지관, 지관을 모셔다가 봐서 산소를 모셔야 할 텐데, 지관은 만날 수가 있어야지. 가세가 어려우니까.
 그래가지구서는 그 셋째 아들이, 셋째 아들이 아주 장사였었어, 힘이. 그랬는데 흠, 그 아버지가 돌아가 가지구 지관을 못 으더서 인저 못 못 모셔가지고, 장례를 못 지내고서는 초봉(초분)이래는게 있지. 초봉. 풀을 벼다가 마당 옆이다가 이렇게 인저 돋움을 놓구서는 아버지를 거기다 인저 내다 모시구, 거기다가 인저 초봉이라고 풀루다가 비 안 맞게시리 인저 이렇게 저 지봉을 해구. 인저 거기다가 자리를 피고 멍석을 피고 거적을 피고 인자, 에 초하루 보름이루다가 삭망을 지내고 땅에다가 갖다 모실 때까진 거기서 그렇게 한거여. 옛날에는 다덜.
 그랬는데 그 막내 아들이, 힘이 센 장사니까는 서울 가서 그 때 도선이래는 지관을 어떻게 그냥 강제로래도 그냥 모시구 올라구, 미, 미, 무 무명이라고 그 한 끝을, 무명 한 필을 허리에다가 둘르구서는 서울을 간거여. 대궐 대궐 안을 들어 간거여. 그랬는데 그때 나라에서 무슨 임금님 산소 자리를 잡을라구 인저 지관이 왔다갔다 허구. 거긴 거 나라에서만 쓰는 지관이여. 거 도선이래는 분은.
 그래가지군 흠, 그 그분을 만날라구는 이 힘센 막내아들이 서울 대궐문에 가서 밥만 으더 먹으며는 거기 가서 기웃거리는데, 얼굴을 알어? 뭐 그냥 참 몰르니까는 몇 달 몇 칠을 거기 가서 있는데.
 그 몸이 약했데, 그 냥반이 도선이래는 분이. 신체가 약한 분이 나오는데 그 냥반이 지관 겉거던, 그러니까 냅다 그냥 팔때기를 잡아다려서 그냥 업구서는 그냥, 그냥 팔을 붙잡고 한 손이루다 무명끈을 끌러 가지구서는 그냥, 그 지관을 그냥 업은 걸 그냥 애기 업듯이 그냥 휘휘 감아가지고 그냥 밤새도록 온거야, 그냥. 그랬는대 여기 하야꼴(지면) 모탱이라고 그 김양 근처에 하야꼴 모탱이 거기다가,
 “이 자식! 그냥 그냥 아주 그냥 쥑여버려야 하는건데, 그냥 그냥 살려 둔다.”
고. 그냥 그 낭구에다가 그냥 그 무명을 그냥 클(끌)러가지고서는 그냥 칭칭 감어 놓구서는, 자기네 형이 자는 방이로다가 와서 불른거여.
 “형님! 형님!”
 “너! 왜 그러니?”
 그러니까,
 “지끔 도선이를 지끔 업어다가 거 아무데 그 낭구(나무)에다 붙을어 매 놨는데, 그 논에 가는 척허고서는, 봄철인데 아이 기침을 ‘카칵’ 허면서 그리 지나가면 ‘사람 좀 살려 달라’고 그랠 거라고. 도선이가 그래며는 거 ㄷ려다가 저 흰죽을 좀 쒀서 대접을 하고, 아주 불을 뜨뜻이 때구 잘 좀 후희 대접을 하라구. 그럼 정신차려서 갈 적에 그 인저 인사조로다가, 형님이 건을 쓰고 인저 계시니까 사연 사연을 물으머는, 그때 가서 인저 ‘그 산소 자리, 지관을 못 만나서 산소를 못 쓰고 초봉을 모셔노 났다’고 그래라.”
구. 고 아 근데 헝이, 찬 헝이 그 논을 가는 척 허구서는 그리 가니깐,
 “아 여보슈! 여보슈! 사람 좀 살리라.”
고 그래거든. 아 그래서,
 “아, 그 이게 웬 일이여, 이게. 아휴 어떤 망할 놈이 이 아주 사람 못 할 짓을 했군.”
 자기 동상이 한 일인데.(일동 웃음) 짜구 인제 그런거여. 아 그래 인제 풀러가지구 업구 들어와서, 하 그 분을 뜨뜻이 때구 그냥 수죽(手足)을 주물러 주구. 이래구 아 후히 대접을 해서 그 이튿날 아 인저 이 사람이 정신을 차려서,
 “간다.”
구 하니까.
 “아휴! 그러시냐?”
구. 거 건을 싀고 댕기니까는,
 “아 누구 상을 당하셨는데, 아 그렇게 건을 씌고 댕기슈?”
 그 그래니까, 그 큰 형 허는 말이,
 “아, 저 부친 상을 당했는데, 그 아부지를 갖다 부친이라고 그러지? 어 부친상을 당했는데,(파리를 계속 잡으면서) 아 장례를 못 모시고 있다고. 지관을 못 마나서 못 모시고 있다.”
고. 그래니까,
 “아 그러냐구. 거 내가 한 자리 잡어주고 갈테니, 그 저, 저 연장을 가지고 거 따라 오라.”
고. 한 없이 한참 가더니,(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음) [조사자: 한차 가더니요.] 그래 가더니,
 “여기다가 한 자리를 잡아 줄테니까 쓰라.”
고. 해서 그 인저 동네 사람들이 인저 친절한 사람, 이웃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장레 준비를 허는데, 거기다가 인저 하관을 하고 산소를 다 썼는데 그 막내 아들이 그때서 곡을 허고 올러온 거여.
 “거 아들이 몇이냐?”
고. 지관이 물어볼 적에,
 “둘빽에 없다.”
고 그랬는데. 아 모이를 다 썼는데, 아들이 막 울면서 오라오거던. 그래,
 “저 사람은 누구냐?”
 그래니깐,
 “막내라.”
 그랴. 그런데 보니깐 자기를 업구 뛰어온 사람이여. 그래서 하두 분해서, 하두 분해서 그 눔만 안 되게, 막내만 안 되게 할라구,
 “산소를 요렇게 줌(좀) 좌향을 틀어서 해야 한다.”
고. 인저 떼 입힐라고 하는데, 요렇게 틀으라‘고 그래니깐, 이 사람이 오더니만 팔때기를 걷어붙이고 허는 말이, 허이 아, 부 분금이라고 그러는거여. 그거를 요렇게 틀라고 허는 거를.
 “아, 틀긴 멀(뭘) 틀어! 에게 못혀.”
 아, 그냥 막 그냥 아 목일 부리거든. 그러더니마는,
 “선생님! 잘못 했다.”
고. 그냥 그 앞에서 그냥, 그냥 아주 굴복을 허는 거여.
 “우리 가세가 이렇게 어렵고 권세도 읎고. 그래서 선 선생님 같은 분을 한 번 모셔 모셔다가 산소자리 한 번 얻을라고 으더서 쓸려고 했다가 이렇게 그냥 무뢰한 죄를 범했으니 그저 쥑여주셔도 좋다.”
고 허니까는. 그때 가서 어떻해여.
 “아 과연 그렇게 돼 됐느냐?”
고. 그랬는데 그 산소를 씔 적에 그게 파(잘못)여.
 “부자가 되게 해 주랴? 저기 알선급제가 되게 해 주랴?”
그러니까,
 “부자가 되게 해 달라.”
고 그랜거여. 알선급제가 나며는 부자는 제절로 되는 거 아니여, 그냥. 그런데 그때 그냥 밥이 그리우니까 부자부터 되게 해 달라고 이랬단 말야. 그래 부자는 그냥 아주 머 그냥 손도 많이 늘고 부자는 되는데, 아 이눔의 출세를 해야지.
 그랬는데 그 용인의 김씨들이, 김양이 그 돌아간 분이 김양이여. 김양. 그래서 김양장에  간다고 그랬는데. 김씨 그 자손들은 김양장에 간데지 않고, 그냥 장에 간다고 그랬지. 김양이가 자기 할아버지니까. 그랬는데 그 집안들이 숫자가 엄청 많이 퍼져나가고는 출세들은 못했어도, 그렇게 숫자들이 많고 그랬는데, 해방되고선 대한청년단 그 씨름터, 씨름터 맨든다고 그 산소자리가 파였다고 그랴. 그래 해방되고. 그 그런 유래도 있고. 그 유래는 인저 끝난거야.

󰊴 피가 나온 홍수래의 무더

이재근(63, 남) / 신원리T 1앞
[신원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뒤에 실은 민요를 마친 후에, 조사자들이 테이프의 양을 채워야 한다고 걱정을 하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제보자는 이 이야기를 <시핀의 장터 전설>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삽시도의 장사인 홍수래 전설과 관련되어 있어 조사자가 제목을 바꾸어 붙인 것이다. 제보자는 젊었을 때 동네의 어른들한테 듣고, 직접 현장에 가 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조, 이조 중엽 얘긴데,(물건을 빌리려 온 아주머니와 대화 생략) 그렇게 됐어. 이조 중엽, 중엽 얘긴데. 에- 홍수래라고 여기 저 용인군 모현면 일산이래는데 묘가 거기 계시다구.
 그랬는데 그 묘지기가, 묘지기가 어- 한 분 거기 산소 밑창에서 사는데. 정승이여. 거 모의가, 홍수래 묘의라구, 정승이 돌아가서 모의를 썼는데 산소자리가 기가 맥히게 좋은 자리여. 이렇게 손, 손 형국이 됐어. 이렇게 손, 왼손 형국이 됐는데, 여기다 썼는데 그렇게 묘이 자리가 좋은데. 남양 혼신데 홍수래라고 정승이 돌아가서 거기다 쓰구 그 아들이 또 정승이여.
 그랬는데 그때 어떤 대왕인지 이조 때 대왕인데, 그 대왕이 똑똑치 않으니까, 그 이가 임금을 몰아내구서는 용상에 가 앉은거여. 그 용상에 가 앉으면, 보통 에- 대가 세지 않으면은 놀래 죽는데는 거여.
 그런데 그 용상에 가서 앉아서 임금노릇을 할려구. 그러는데 잠시 앉았다가 그냥 그 나라에서 버거지가 나가지곤 그 저 뭐여, 수레를 태워서 그냥 그 저 뭐여 수레를 태워서 그냥 한강 백사장으로다가 사향(형)을 시킬라구 나가는데, 그 산소 지키는 묘지기 꿈에 그냥 아유 그 모의에서 요런 소리가 나는 거여.
 “아유! 이걸 어떡 하나? 아유! 이걸 어떡 하나? 아유! 이걸 어떡 하나?”
 모의에서 그런 근심스런 소리를 허는 거여. 그래니까는 묘지기가 내빼, 그냥 그 뚝섬 서울 사는데, 인제 그 대감댁이. 그냥 밤이루다가 뛴거여. 그냥 뚸 들어가니까 그 대감 내외가 그 수레에 탄 거여. 그 소가 끄는 수레에 타구서는 역적이루다 몰려서 이렇게 나목대기 집을 진 거기다가 가두구서는 그 역졸둘이 인제 소를 몰고 나갈 판인데. 아, 가서 그냥,
 “대감!”
 허니까는 그것 뭐 귀에나 들리나. 그래 대감의 부인도 그 수레에다 태워가지구서는 백사장이루다가 갈려구 그러는데. 그냥 뭐 말도 못 허구서는 돌아섰지 뭐.
 그래 그 백사장에 가서 쥑이고 났는데, 그 모의 자리가 그렇게 좋아 가지구서는 그 역적이 난거여. 임금이 나다시피 한거지 뭐여. 그냥 그 모의자리가 좋아가지군.
 그랬는데 그 동네가 그 동네가 한 심십호 사는게, 그 재숫굿을 해도 거기 가서, 그 산소 앞에 가서 고사를 허구서는 굿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며는 그냥 벌을 받어. 그래서 옛날에 그냥 그 귀신들 믿고 그럴 적에는, 그냥 저녁에 가만히 이렇게 드러누어 있으면은 그 거기 묻힌 대감이 말 타구 댕기는 소리가, 말 발굽소리가,
 “덜그락! 덜그럭! 덜그럭!”
 난데는 거여. 그냥 비가 올라고 날이 굿고 그러면은, 그냥 그렇게 말 발굽소리가 나구 말소리가 나구 그러니까.
 그 모의 자리가 하두 좋아가지군 역적이 나구 그러니까, 나라에서 산소 뒤 여기를 짤랐어. 기냥 파 냈는데 거기서 피가 그냥 펑펑 쏟아졌대는 거여, 그냥. 피가 그냥.
 그래 그 아래 지끔 광주군이 됐는데, 시핀이 장이 섰어. 시핀의 장터라구 거기 인제 그 할아버지들 뭐 아저씨들이 오일장을 섰는데, 그 거길 짤르니까 피가 냅다 그 기냥 펑펑 쏟아져서 내리 흘러서 그냥, 그 장꾼들이 그냥 다 도망을 갔대는 거여. 그냥 피가 흘러거 그냥 냇물 모양 내려오니깐 장꾼이 다 도망을 가구. 그래 그 피가 흘러서 장, 장이 깨졌다구 시핀이 장터라구 그래.
 그 지금을 그 장터가 광주, 광주읍에 가서 장터가 됐는데. 거기 조끔 더 내려가서 그렇게 그 전설이 그렇게 내려오는 전설이 있어.

󰊵 제사상을 받게 된 하인

이재근(63, 남) / 신원리T 1앞
[신원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앞 이야기를 마치면서 생각이 났는지 스스로 계속 구술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제목을 <광산김씨 이야기>라고 하였는데, 하인들도 제사상을 받게 된 유래담의 내용이 중요하여 제목을 바꾸어 붙였다. 이야기도 앞의 이야기처럼 젊어서 동네 어른들이나 친할아버지한테 듣기도 하고, 셋째 매형이 그 집안 출신이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고 광산 정씨라구 그래. 그랬는데 저나도 광주 광주를 갖다가 광산이라고 지끔은 광주시라고 그래지.
 그 광주 정씨들이 배실을 허러 전라도 광주에서 여기로 오셨다가 배실을 가서 저기 알선급제를 해가지구 고향이루 안 내려가구선 여기 광주군 옥포면 추자리라는 데서 이 냥반이 안착을 해, 주저앉아서 거기서 살으신 거여.
 그랬는데 그 냥반이 에 이조 때 정승을 허셨어. 그 정승을 허셔가지구 거기가 묻혀셨는데, 돌아가셔서 가지구. 그래 그 묘지기가 산소 밑창에 살게 되 있어, 옛날에는. 지끔은 안 그렇지마는.
 나라에서 묘지기를 하나, 산소 잘 지키래는 묘지기를 한 사람을 살게 논밭을 해 주고, 또 추수를 해가지구 그 냥반의 제사를 채리고, 가을이면. 이래러는 묘지기 하인을 인저 거기다 한 사람 살게 해 놨단 말여.
 근데, 한 날은 이 사람이 제삿날인데, 깜박 정신을 잃고서는 제삿날 그 대감집은 천호동에 살았었는데, 천호동 그 거기다 살었었는데 그 제삿날을 잊어버리구서는 이 사람이, 제삿날 안 간 거여. 그 묘지기 하인이.
 그랬는데, 아, 얼핏 생각을 허니, 자다가 생각을 허니까 그날이 자기네 상전이라고 그래. 옛날에 높은 사람을, 자기가 모시고 있는 사람을 상전이라고 그러는 거여. 아, 어, 상전 제삿날인데 안 간 거여.
 아 그래, 근저 그냥, 그 전에 그 하인들은 괄샐 많이 받었어. 그래가꾸서는 그냥 볼기를 맞고 호령을 만나고 그랬었는데. 아 인저 그냥 죽을 판이 났으니까, 이 사람이 일어나서 그냥 상전집 천호동을 그냥 가는 거여, 그냥 그.
 아, 그런데 거길 가니깐, 거반 다 인저 그 대감님네 집이를, 인저 상전 집을 인저 거반 다 가니깐, 저 그냥 새벽녘인데 그냥 횃불을 해서 그냥 사륜거 가마가 나오는 거여 그냥. 이렇게 보니깐 자기 대감 혼신이 타고선 제사를 잡숩구 혼신이 나오는 거여. 아 그래니깐 그냥 땅에 엎드려서 굴복을 헌거지. 그냥 가마 앞에서 그냥 굴복을 허고 있으니까,
 “애애! 너 어째 그렇게 늦었니?”
 “예, 늦었습니다. 죽여 주십소서.”
 인저 허니깐,
 “예, 그게 아니고, 너 잘 만났다. 저기 가서 젊은 대감보고 저, 예 이걸 좀 전해라.”
 근데 밤을 한 톨을 이 도포자락에서, 그 대감이 제살 잡수시고 산수(산소)로다 도로 오는 거여. 그런데 밤을 한 톨 이렇게 도포자락에서 끄내서 그 하인을 주는 거여.
 “이걸 갖다가 정표로다가, 증표로다가 너의 젊은 대감을 드려야. 그 밤 고닝 데서 한 톨을 빼온 거니까 그 정표, 증표가 될꺼다. 이러니까 이걸 가지고 가서 나를 만났다구 그래라. 그런데 날 내가 죽어서 너희 대감마님이,”
 마님은 여자를 갖다 말허는 거여. 대감의 부인을 갖다 대감마님이래는 거는. 대감 나으리는 인저 남자 대감을 갖다 말허는 거구. 그런데 나, 나 죽어서 옥찌환이라구, 옥찌환이라구 그 보물이여. 사실은 그 부잣집에서는 가지구 있는 그 옥찌환인데,
 “이것을 가슴에다가, 염할 쩍에 가슴에다가 넣 줬던건데, 이걸 갖다가 대감마님을 보여줘야 네가 나를 만냈다는 것을 알지, 니가 거짓말한다고 헐테니까 이거하구 밤하구 가지고 가서 대감마님한테 내놔라.”
 이러거든. 그래 이 사람이 그냥 그걸 가지고 새벽녘에 그 대감집이를 가니깐, 그 엣날에는 제사를 차려가지구 아침에 밝음에 철상을 했지. 제사 다 지냈다구 헐어서 웬겨 놓는게 철상이라구 허는 건데. 상을 웬긴다고 철수헌다고 허는 건데, 철상을 안허곤 그때까지 두었대는 것여. 그래서,
 “대감님! 대감님! 지가 정신이 바해서어 노대감 기고날을 잊어버리고 새벽녘해서 알고서 이렇게 부랴사랴 뛰어, 뛰어오는 중에 아무데서 노대감님을 만났습니다.”
 “예, 이 사람아! 만나긴 돌아가신 분을 자네가 어떻게 만나나.”
 “아닙니다요. 저 증표가 있습니다.”
 “그 증표가 뭔가?”
 “그 밤을, 도포에서 밤을 한 톨을 주셔서 가지구 왔는데, 밤을 이 한 톨 가운데서 빼신 데가 있다구 그러시더라.”
구. 그래 보니깐 밤 한 톨 뺀 데가 있거든.
 “아, 이게 틀림없이 우리 아버님을 만나긴 만나셨구나!”
 그렇게 생각을 허는데,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저기, 노대감마님께서 젊은 대감마님께서 저, 노대감님 돌아가셔서 염습을 헐 쩍에 가슴에다가 옥찌환을 넣어 드렸다는 것을 이렇게 그” (Tape 2앞에 계속)
 그래 만났다구 허니깐, 그때는 자기 아버지 그 돌아가서 염습할 쩍에 가슴에다가 옥찌환을 넣어드렸던 걸 내놔. 밤 한 톨 늬의 쏙 뺀거, 그 자리에 한 톨이 비 비인 거, 그거 마저,
 “아휴! 그거 우리 아버지를 증말 참 혼신을 만났었네 그랴!”
 “예, 그랬습니다. 근데 당부가 하나 계셨습니다.”
 “그 당부가 뭐라고 그래시던?”
 그래니까,
 “그 대감을, ‘제삿상을 차려서 당신 혼자는 그렇게 많이 맛만 제시던 잡숩구 가시는데, 당신을 미구 가는 하인들은 그냥 상을 안해 놔가지구는 빠빠치 굶어서 나를 미구 가니, 너희 대감을 가서 뵙구 다음서부터는 하인들 먹을 상두 제삿날이면 차려 놔 달라구 가서 여쭤라,’ 그래서 그런 부탁을 듣구 제가 왔습니다. 그러니 다음 기고 때는 하인들 상두 옆에다 차려놔야 그 사람들도 굶지를 않고 먹고 간다구 해서 지가 이렇게 문안을 드리는 겁니다.” 허니깐,
 “아! 과연 우리 아브지가 오셨다 가시는 혼신이 나를 일깨워 줄라구 이 사람한테 몸을 빌려가지구 아마 이렇게 허셨나보다.”
 하구. 그 이듬서부터는 하인두 잡술 거를, 상을 따루 봐서 그래서 제사상 옆이다가 차려놓고 제사를 올린 데는 지끔 전설이 있는데, 여기서 한, 한 5키로, 5키로 가면 거 산소가 계시다구. 그 [조사자: 음-.]
 그래 광주 정씨네서는 대감 산소라고 이렇게 일키려 내려왔고, 또 광주 정시에 현인 감을 현자 저 실을 재자 되는 분이 내 셋째 매형님이 되셔. 그래 내 사돈이 되는디 그런 전설이 있어.

󰊶 지관의 말 안 듣고 실명한 사람

이재근(63, 남) / 신원리T 1앞
[신원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서 좀 쉬고 싶다고 말하는 제보자에게 조사자들이 이야기를 해 줄 것을 간청하자 구술한 것이다. 제보자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것도 지관에 관한 이야기라’면서 구술하여 주었는데, 젊어서 동네 어른들한테 들었다고 한다.

 [조사자: 또 해주세요?] 아 좀 숴야지.(조사자 웃음) 참, 많지. 많은데 인저 그만 할래요. [조사자: 아- 해 주세요.] 자꾸 해요? [조사자1: 녜, 살려 주세요.] [조사자2: 다른 얘기더라도 그냥 재미있는거 해 주세요. 처녀귀신......] [조사자1: 아니 귀신 얘기도 괜찮고, 아무 얘기라도 다 좋아요, 우리들은.] 그래지. 또 또 허지 그럼. 이번 이번에도 산소 얘기여.
 어 남씨가 의령 남씨가 있어. 의령군, 의령군이 지끔 나는 청주 이가라고, 충청도 청주로, 저 능성군이라고 능성구씨고. 또 연안이라고 황해도 연안이 있어. 그래고 지끔 저기 매울 신자 쓰신 데는 분은 그 군이 어딘 지를 내 지끔 확실히 모르고 있거던? 그런데 의령 남씨가 계신데, 요기 그 산소가 올해 파였어. 올해. 좀 아쉬운 점이 있지.
 그 산소를 쓸 적에 상주가, 상제가 아들이 3형젠데 그 지관을 디려서 산소 자리를 잡을, 잡을 적에 그 산소 자리가 자라혈이여. 여기서 3키로 밲에 안 돼. 자라혈인데 그 지관이 하는 소리가,
 “여기를 파며는 아들 형제 보고, 삼 형제 보고 파며는. 석 자만 파며는 돌맹이가 나올테이까 이렇게 ‘득득’ 돌맹이가 나와 긁을 테이니까 거기에다 산소를 쓰라고. 산소를 쓰되,”
 하관이라는 것은 시체를 땅에 모실 적에가 하관시라고 허는 거여.
 “그런데 하관시는 무쇠 두멍을 쓰고 가는 사람이 있거든, 그때 하관하라.”
 그랬단 말여. 그랬는데 아이, 참 땅을 파니깐 돌멩이가 ‘드륵드륵’허는 소리가 나. 그런데 큰 아들서부터 둘째아들꺼정은 그대로다가,
 “지관 말씀대로다가 쓰자.”
 그랬는대. 아 막내, 막내 상제가,
 “아 그게 될 말이냐고. 아버지를 동멜리에다 올려놓느냐고. 안 된다.”
고. 그게 우겨 가지곤 위로 형제가 지고서는, 그 돌맹이를 이렇게 뜨(떠)들으니까, 금붕어가 빨간 물에서 금붕어가 노는 거여. 그 밑창이 연못이여.
 “하 이걸 어떻게 허면 좋으냐?”
고. 근데 금붕어 한 마리가 탁 튀어 올라와가지고는 펄펄 뛰다가, 그래 괴기가 펄펄 뛰잖여? 그랬는데 눈 하나가 이렇게 빠졌어, 금붕어가.
 그랬는데 도로 거기다가 넣고서는 돌멩이로 닫고 하관식을 헐라고 그러는데, 하관시가 무쇠 두멍을 끼고 가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랬는데 다 저녁 때가 됐는데, 어떤 사람이 질팽이에다가 소당을 하나 덮어가지고 가는 아줌마가 있었단 말이여.
 “아! 때는 이땐가부다.”
하고. 그때 하관을 모셨어. 아창 안장을 해 드린거지. 그랬는데 그 산소를 씨고서는, 그 지관 지관 선생님이 허는 말이,
 “여기에다 쓰면 급제도 날 꺼고, 또 어 재산도 많이 늘을 꺼고 허니깐, 재산이 는다고 해가지고 여기에다가 석물이래는 거는, 돌로데가 물건을 맨들어서 세우지 말라는 것여. 석물을 해서 세우지 말아라. 자라혈이니까 자라가 대가리를 이렇게 번쩍 들고(제보자가 머리 드는 흉내를 내며.) 물에서 나왔을 적에 그런 형국인데, 거기다가 돌멩이를 해서 뭐 상돌 이렇게 촛대석을 해 세우며는 모가지를 눌르머는 그 자손들이 출세를 못 헌다.”
 그랬는데 아 기냥 부자가 되고 재산이 늘으니까, 거기다가 상돌허구 이렇게 바쳐서 거기다 제사지내는 그 상돌을 해 놓고, 촛대석을 해 세었어. 우리도 많이 보는 거지 뭐.
 그랜 뒤로는 출세가 읎다는 거여. 그래군 대대로다가 그 눈이 하나씩 멀어, 그 자손이. 그 금붕어가 눈이 하나 결사 지나가고, 그 지끔까지도 그렇게 눈이 하나가 애꾸가 난다는 거여. 그 집안에서 대대로다가.
 그랬는데 이번에 애 용인서 4차선이 광주로다가 해서 성남으로다가 뚤리면서, 그 산소가 패였다고 아깝게. 그런 자리가 그래 그런 전설도 또 내가 큰 확실히 뭐 요새 요그서 3키로 밖에 안돼. 빙경서 모탱이라고, 으 그런 전설이 하나 또 있어.

󰊷 힘센 장사 스님을 물리친 아이

이재근(63, 남) / 신원리T 1앞
[신원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새로운 이야기가 생각이 났는지, ‘또 하나 해도 되느냐’고 하며 구술하여 준 것이다. 조사자들은 제보자가 이야기를 구술하느라고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신원리 조사를 마치기로 하였다. 이것도 지관에 관련된 이야기로 젊어서 동네 어른들한테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나뻐? 뭐여, 또 해야 돼? [조사자: 네. (웃음)] 아이 이것 할아버지를 아주 징역을 시키네. [조사자: 그러고.]
 그래구 이씨 조선이 될라고 헐 적에 고려, 고려, 고려 때의 정승여. 그 냥반도 의령 남씬데, 남정승이라고 여기 파담리라고 있어. 아가씨들 건너오던 그 밑창 동네여.
 그런데 그 동네서 남정승이 살았는데, 그 살으셨는데 그때 이씨 조선이 인제 될라고 헐 적엔데, 그 남정승이 여기서 큰 부자로 잘 살고 모두 허니까, 그 남정승이 세도는 그렇게 좋은데, 고 큰 고개가 하나 있어.
 그런데 그 남정승에 손자가 장가를 가는데, 그 장서리 고개라는 델 중들이, 스님들이 그냥 그 좋은 데서 기냥 기도를 하구, 모두 그러다가 먹을 게 없구 그러니까, 기운은 시구 그러니까는, 행인이 지나가며는 기냥 가마구 뭐구, 기냥 행인에게 ‘돈 내 노라’고 허구, 기냥 때려 주구. 모두 이렇게 해서 그 길이 큰길인데, 당체 주민들이 살 수가 읎는 거여.
 허지만 남정승이래두 법은 모르고 주먹은 가깝다구. 법은 나중이구 주먹으로 먼저 때리먼 법은 나중이라구. 그래서 법은 모르고 주먹은 가깝다 이래는 말인데. 아 왜 그 이튿날 손자 가마를 태워서 장가를 드리려 보내야 헐텐데, 그 하인들허구. 근데 그 중들이 벌써 거그에 와서,
 “누구네 큰일이 났다.”
하니까는. 먹을 재리(자리) 났다고, 거기 와서 또 행악을 헐려는 허는 거여. 그런데 저녁 때 열두 살 먹은 아이가 하나 와서,
 “대감댁에서 꼴이나 벼(베)다 주고, 소나 거두, 거두고 일 해면 어떡 허겠느냐?”
구 그래거든. 그러니까,
 “아, 정히 그랬다며는 우리 집에서 소나 쇠죽이나 쑤워 주고 밥이나 먹고 그래라.”
 그래거든.
 “예, 고맙습니다.”
 허구 있는데, 그 남정승이 내일 그 혼행 차려서 갈 그 근심 걱정을 허는 거여. ‘아, 이걸 어떡해 허면 좋단 말여.’ 혼잣말로.
 “아, 이걸 어떡해 허면, 이 이게 이놈들을 이걸 말릴 수가 있나?”
 그래니까. 그 열두 살 먹은 아이가,
 “아, 대감님! 뭘 그래십니까?”
 “너나, 알 것 없구!”
 (제보자가 건네준 맥주를 만지작거리자)그 맥주들 안 마셔? 목 말른데.(조사자 웃음) 마시지.
 “아, 그런데, 아 뭘, 뭘 아, 대감님 뭘 그러십니까?”
 그러시거든. 그래거든. 그러니까,
 “아, 너나 알 것 읎구.”
 “아, 저 좀 아르켜 주세요. 아, 저 좀 아르켜 주세요. 지가 알면 안될게 뭐 있겠습니까?”
 “너는 알 것 읎다.”
 “아이, 좀 아르켜 달라.”구.
 “아, 그래 낼(내일), 낼 저 도련님 신환, 신혼, 저 신행을 차려 가시, 가시는데, 아무대 그 장서리 고개라는데 그 중놈들이 그냥 길을 막고 행악을 해서, 그거를 어떻게 말릴 수가 읎구나. 그래서 내가 혼자 이렇게 근심 걱정을 하는 거라.”
고 하니까.
 “아이, 그걸 뭘 그러십니까. 지가 그 버릇을 가르킬테니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그 열두 살 먹은 애가 그 무지한 장수들을 어떻게 스님들을 막어. 그러니까,
 “아유, 원, 뭘 별소리가 많다.”
고 허니까.
 “아닙니다.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지가 가서 해결을 짓고 오겠습니다.”
 아, 자꾸 그래거든.
 “아, 그럼 그래. 니 그 분부를 내릴테니, 니가 가서 해결을 허구 오너라.”
 “네!”
 그래고서는 떠나거든, 그 얼마 안 돼. 거기서 한 4키로, 한 10리 밖에 안 되는데. 그 절에를 간거여. 그 절에 가니까 그 스님들이 바둑덜, 장기덜 이렇게 두곤, 책덜을 보고 이래는데, 아 과연 그냥 뭐 깍지통 같은 사람들인데, 눈이 그냥 장수들이니까 그냥 눈꼬리가 치켜져 올라가고 모두들 그랬는데.
 “아! 저의 남대감께서 내일 일을 생각허시고 채 내려오라는 분부가 계셨는데, 아 분부들덜 들으서야 허시지 않겠느냐.”
고 허니까. 아 그 중들이 돌아다 보지도 않는 거야, 그냥. 말 같지도 않으니까. 아 그래 이 사람이 징징 울면서,
 “저의 대감님 분부가 계신데, 스님들 내려덜 가시죠. 가시죠.”
 그래곤, 울어도 돌아다 보지도 않는 거여. 아, 그러니껜 자꾸 울면서 그 뜻댓돌을 그냥 크 무지한 걸 그냥, 굴려다가 그냥 그 뜻댓돌을 쌓는데, 그래곤 절을 비는데, 아 그 뜻댓돌을 이렇게 꾹꾹 눌르면서,
 “저의 대감님 분부가 계셔서 꼭들 내려가셔야 헐 텐데요.”
라고. 이렇게 돌멩이를 꾹꾹 눌르는데,(제보자 방바닥을 향해 손가락으로 누르는 시늉을 하며.) 그 스님들이 보기에는 이 돌멩이가 우리네 흙 이렇게 꾹꾹 눌러서 손 들어가 듯 돌맹이가 쑥쑥 들어가 보이는 거여. 그래니까 제일 오야(우두머리) 스님이,
 “얘들아! 내려 가자.”
 그래, 제(제일) 오야, 제 으시되는 사람이, 자기가 돌멩이를 눌러보니깐 하나도 안 들어가거든. 그런데 걔가 눌르는거넌 기냥 쑥쑥 들어가 보이는 거여. 아 그래니까,
 “얘들아! 어이 내려 가자. 대감님 분부가 계신다던데 내려 가자.”
고. 오야가 그 한 마디 하니까.
 “예! 예!”
허고 제의허시거던. 그래서 열두 살 먹은 애가 거 스님덜을 죄 데리고 내려온 거여. 내려와서 대감, 대감님에 바깥마당에 가서가서 채 엎드려는 거여. 그냥,
 “죽여 주십소사.”
 하구 기냥. 아 그래니까 그 대감이,
 “천해 발찍한 놈들 같으니, 어서 중놈들이 아이 그 행인을 그렇게 괴롭히구, 이놈들 그냥 살아남을 줄 아느냐고? 단칼에 전부 그냥 베 죽일 놈들이라.”
구. 호령을 하고서는,
 “다시는 늬 목숨을 살려줄테니, 거기서 제 흩어져 떠나야지, 거기 또 있다가는 아주 느덜 아주 다 죽을 줄로 알으라.”
고 하니깐.
 “그저 목숨만 살려 달라.”
고. 그냥 산산히 빌고서는 제들 올라가서 그 절을 떠나는데, 암산이 바우가 한 100평 되는 바위래요. 그 바위를, 그 바위에서 물이 나는데 그 바위를 이렇게 뚫구서는 거기서 그 물이 쏟는 거를 보고 그렇게 기운들이 신건데, 이 사람덜이 자기네 밥 그릇, 그 유기 그릇, 놋쇠, 그 놋쇠 그릇을 다 그 우물에다 갖다 쏟아붓구서는 큰 돌멩이를 굴러다간 그걸 그냥 털커덕 덮었대요. 그래손 중들은 제 떠났는데.
 그 후에 벌써 600년이 흘른거니까 위치가 어딘 지도 몰라. 그 절이 있던 데는 지금도 얘기들이 있어. 그랜데 그 날 좋은 날은 거기서 그 가만히 들으머는 바윗돌 밑창에서 그 그릏이 이렇게 떠서(제보자 손을 위로 들며) 돌아댕기다가 부딪치는 소리가 ‘달그락 달그락’ 허는 소리가 났대는 그런 전설이 있어.
 그 관청이라구 하는데 관청. 절터라구 하는데 절터가 무지무지하다구 그랴. 지끔도 그 절터가 있다구 그랴. 그런 전설이 하나 있어.

4) 민요

󰊱 장부 타령

이재근(63, 남) / 신원리T 1앞
[신원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제보자는 앞에서 김양이 전설(김량장터 전설)을 마치고 이야기판에서 물러나려고 하였다. 그래 조사자가 노래도 좋다고 말하자, 제보자는 상두가와 지경닫기 노래 등의 노래들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 조사자가 그런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하자, 그런 노래를 불러도 될 것인가를 의심하면서 불러 주었다. 노래는 엣날에 동네 어른들이 한두 번 부르면 총기가 좋아 다 알아 배웠다고 한다.

 그것 외람되게 그걸 해서 될까? 그냥 저기 노랫가락 하지.

 얼씨구나 - 절씨구려  태평성대가 여기도다
 천하일색 양귀비는  인물이 고와도 죽었구려
 천하무적 속성(석순?)이는  돈이 많어두 죽었는데
 육국을 달래던 서진이는  염라대왕은 못 달랬구려
 통일천하 진시왕이  아방궁을 높이 짓고
 장생불사를 허랴허구  만리장성을 둘러쌓구
 동남동녁 오백길을  삼신산으로 보냈는데
 소식조차 둔절허구려  인생가 왔다가 가는구려
 한치 앞을 못 보는 인생들 한 번 죽음을 못 면하구
 이 모냥 이 꼴로 놀다 갑니다.

󰊲 초한가

이재근(63, 남) / 신원리T 1앞
[신원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구정모, 신여훈, 이미영 조사 (1996. 6. 1)

 앞의 노래를 마치고 다른 노래를 부탁하자 불러 준 것이다. 앞의 노래보다 더 자신있게 불러 주었는데, 제보자는 노래를 마치고 ‘노래 시늉만 냈다’고 말하였다. 제보자는 이 노래도 옛날에 어른들한테 들었던 것을 기억력이 좋아서 암기하고 있다가 배운 것이라 한다.

 허허 청춘 벗님네야   초한성부 들어보소
 선민지심이 으뜸이라두   한백옥의 십만대병
 구리산 지면에다 대진을 둘러치고  초패왕을 잡으려 헐제
 천하병마 모원수는   절지 교묘한 진이라.
 대장배 높이 앉어   천하지후 호령헐제
 영양성부 험한 길과 뱅성 구백 리는 거리거리 복병이요.
 골골마다 매복이라   요괴마는 인자거늘
 패왕을 유인헐제    살 잘 놓는 장자방은
 기명산 추야월에    옥통수를 슬피 불어
 팔천제자 흩어질제   그 노래에 하여슬 제
 구추구추 깊은 밤에   하날 높고 달 밝은제
 울고가는 저 기러기   개개소 도웁되는 듯
 변방 갱님 사지 중에   정부 사는 저 문사야.
 너의 패왕 쇄진헐제   전장허면 죽을 깨라
 저 탑을 구지 잊고   날랜 칼을 뽑아드니
 천금같이 중한 몸이   전장고혼 되겠구나
 호생호사 거는 마음   사람마다 있건마는
 느희들은 무슨 일로   죽기를 즐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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