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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지역
모현면- 매산리
 

1) 마을개관-------------------------------------453
  2) 제보자 
  3) 설화
  (1) 이정희 (71,여) 호랑이 잡은 지혜----------455
(2) 이정희 (71,여) 호랑이를 만난 아버지--------456
  ① 호랑이를 만난 소--------------------------456
  ② 개를 업소 도망간 호랑이-------------------457
 
(3) 이정희 (71,여) 조정암을 낳은 어머니--------458
(4) 이정희 (71,여) 정몽주 서원과 일화----------460
(5) 이정희 (71,여) 수수깡을 도깨비로 본사람----461
(6) 정광시 (73,남) 사람잡아 먹는 호랑이--------462
(7) 정광시 (73,남) 호랑이가 지켜 준 황효자-----462

5. 매산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송윤경, 유희경, 조윤경 조사 (1996. 6. 1)

 매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고매곡과 상마산이 합하여 된 마을이다. 일명 이곳은 매화꽃이 떨어진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 매산리는 면소재지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일산리를 거쳐 가야만 한다.
 조사자들은 모현면 일산리에서 내려 걸어 들어 왓으면 한 시간을 족히 걸릴 거리인데, 지나가는 자가용의 뒷자석에 좁게 몸을 움츠리고 매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린 곳은 큼직한 다리가 보였고, 부근데 작은 공장들과 건물이 들어거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많은 시골이 그러하듯 이곳도 근대화. 도시화로 도시적인 냄새가 나는 마을이었다. 이곳도 공장이 많이 들서면서 요즘은 인심이 나빠져 걱정이라는 분도 있었다.
 다리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수퍼가 있고, 다리 밑의 큰 개울가를 중심으로 논들이 펼쳐져 있다. 산밑 부근에 있는 집들 사이에 밭이 있다. 시골의 푸르름이 정겨움을 더욱 북돋아 주어 처음 밟아보지만 낯설지 않은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도착한 시기가 농사철이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에 매달려 바쁜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내기가 한창이라 들려줄 이야기가 있어도 바빠 어쩔 수 없다며 아쉬워 하던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고, 시골의 상징인 커다란 나무 아래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며 잔돈을 수북히 쌓아놓고 화투를 치시던 토박이 할머니들도 계셨다. 이들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 갔지만, 냉정하게 거절 당할 때의 설움이란 말 할 수가 없었다.

2) 제보자
 (1) 이정희(71, 여)
 박종수, 강현모, 송윤경, 유희경, 조윤경 조사 (1996. 6. 1)

 할머니는 처음에 싫다고 하시다가 집안까지 쫓아가 요청하여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제보자는 조사자들이 관심있는 태도를 보이자, 말씀을 잘 해 주시고 사진도 보여 주었다. 또한 점심도 주는 인정이 많은 분이었다. 집이 크고 현대적인 건물이었으며, 자녀는 1남 6녀를 두었지만 결혼하거나 직장을 따라 떠나고, 막내마저 춘천에서 대학을 다녀 주말에나 집에 온다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환갑이 지난 후 돌아가셔 혼자 살고 계셨다. 제보자는 근처 마을에서 이 동네로 시집을 오셨다는데, 특별히 전해오는 이야기가 없다며 다른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몇 가지 짧은 이야기를 성의를 다하여 해 주셨다.

제공자료 : 설화 1~5.

 (2) 정광시(73, 남)
 박종수, 강현모, 송윤경, 유희경, 조윤경 조사 (1996. 6. 1)

 마을을 돌아다니며 제보자를 찾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조사에 응하려고 하지 않았다. 피곤한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 정류장에 왔는데 깨끗하게 옷을 입으신 부부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올 때까지만이라도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자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 제보자는 성남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온 지 두 달 밖에 안 된다고 하였다. 처음엔 말씀하기를 꺼렸으나, 이야기를 시작하자 열심히 해 주었다. 이야기 도중에 버스가 와서 뛰어갔다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어서 다시 와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조사자들은 도로가에서 녹음하였기 때문에, 차소리가 걱정이 되어 녹음기를 끌어안고 가까이 서서 녹음하였다.

제공자료 : 설화 6~7.

3) 설화

󰊱 호랑이 잡은 지혜

이정희(71, 여) / 매산리T 1앞
[매산리] 박종수, 강현모, 송윤경, 유희경, 조윤경 조사 (1996. 6. 1)

 조사자 일행은 매산리에 들려 나무밑에서 화투를 치시는 할머니들에게 1차로 거절당하고 난감한 마음으로 옆에 있던 제보자에게 이야기를 부탁하자 모른다며, 옆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셨다. 조사자들도 제보자를 따라 집안에 들어가서 조사 목적을 다시 설명하고 이야기를 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 자신이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조사자: 호랑이 얘기요?] 옛날에 얘기, 현재 누구한테 들은 얘긴데, 호랑이가 저 광주군 쑥굴이라는 데가 있어, 쑥굴. 대원(지명인 듯). 대원이라는 데, 쑥굴이라는 데 사람이 사는데, 호랑이가 그냥 밤이면 그냥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잠을 못잤대.
 동네 사람이 아이 무엇을 이렇게 빨리 잡든지, 고생을 해야. 잠을 못 자서. 그 호랑이를 잡아야 할텐데, 원악 여간이 아니라서 못 잡았대, 못 잡는데. 그래서 표(포)수가 그냥 총에다 화승불을 켜 가지고, [조사자: 화승불요?] 화승불이라고 옛날에, 지금은 이렇게 총알을 대지만, 옛날엔 화승불이라고 뭐 있냐. 몰라.
 켜 가지고 마을에서 인자 표수가 인자 지키고, 골목 구녘을 지키고 산꼭대기에서 이렇게 하고서 인자는 그러는데, 중간에서 호랭이가 어디로 올 데 갈 데가 읎어. 잘못하면 인제 사람도 죽고.
 그래 인자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호랭이가 이렇게 내려오려고 하려니까는, 아래 있는 사람더러 그랬댜.
 “정신들 차리라구. 난 여긴 지금 화승불이 꺼져서 총을 못 쏘니까, 그 아래설랑은 총을 쏠 중비를 하고 있으라.”
고 그랬대. 그러니까 이 호랑이가 화승불이 꺼졌다니깐 그냥 꼭대기로 올라간 거야, 그냥. 거기 불이 꺼졌으니깐 지가 가도 안 죽거던. 그래 올라가니깐 그냥 방아쇠를 잡아 당겼지, 그냥. 그러니까 호랭이가 맞았어.
 그래서 이냥 다들 인제 나가서 자고, 인자 주막에 가서 자구선 아침에 올라가니까, 밤새도록 이놈의 호랭이가 그냥 요만한 돌맹이를 물고서는 그냥, 입에다 물고 밤새도록 깨물다가 죽었대.(웃음) 그렇게 호랑이가 영특하댜. 말 뜻을 알아가지고.
 그러니까 그 옆에, 저 수놈이 죽었다나 암놈이 죽었다나. 그러니까 또 한 놈이 그냥 울고 그냥 돌아댕기는 거지. 지 친구가 죽었으니까. 그러니까는 그냥 또 다시 표수들이 전부 모아가지고설랑 그걸 잡아서, 대황, 대황이라는데, 대황이면 저 어디지, 대황이면 저 거기가 저기 모란이로 그 들어가는데, 말죽거리 가는 디 거기 어딨냐? 쑥굴. 대황. 쑥굴이래, 쑥굴.(웃음)

󰊲 호랑이를 만난 아버지

이정희(71, 여) / 매산리T 1앞
[매산리] 박종수, 강현모, 송윤경, 유희경, 조윤경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곧 생각이 나셨는지 스스로 계속 구술하였다. 같은 호랑이 이야기로 친정아버지가 따라온 호랑이에게 집안에 와서 개를 잡아가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 호랑이를 만난 소

 우리 친정 아버지가 저 선지굴이라고 다니는데 가서, [조사자: 선지굴이요?] 선지굴이야. 저 갈월 덕담 밑에 거기 가 밭을 가는데, 소를 소를 가지고 밭을 갈으셨는데, 소가 그냥 냅대 쟁기를 끌고서 그냥 뛰어 가더래. 그래서,
 “왜? 왜 가느냐? 왜 가느냐?”
고. 소를 붙들러 뛰니까는 호랭이가 쫓아와. 호랭이가 무서워 소가 내뛰는 거여. 그냥 호랭이가 얼마나 무서운대. 거기 가면 지금도 있어요. 저기 가면. [조사자: 선지굴이요?] 호랭이가 가면은 있어.
 그런데 매산리 가면, 저 사람이 마음이 저기, 무서움을 안타나 타나허고 나무 막대기를 딱딱 꺾고, 흙을 파 훽훽 던지고 그런다고. [조사자: 호랑이가요?] 그럼. 흙을 파서 던져요. 그러면은 나물, 나물 하다, 지금 저 지금 나물하러 갈 때면, 지금 나물하다가 그냥 나물 보따리를 내버리고 뛰어와, 무서워서. 신발짝도 다 벗어지고 그냥 내 버리고 뛴다구, 그냥. 호랭이가 있어. 지금도 있어 무서워.

 󰊊 개를 업고 도망간 호랑이

 저 이천에서 저 고개를 넘어서 노시니까, 호랭이가 줄렁줄렁 쫓아오더래. 그래서 오다가 거 저 상양군 밑에 저기 부잣집 행랑채가 있어. 행랑.
 행랑이 뭐냐 하면은 이제 주인은 이렇게 잘 살고. 거기다 집 하나를 짓구설랑은 거기다 일하는 사람을 살려. 일하는 사람을. 그 집에 들어와 내가 잘 살면 거기다 이제 집을 지어서, 그 일하는 사람을 안팎을 인자 거기에 가서 살면은, 애들 데리고 인제 살면은 안에 들어와서 상전 집에 가 일하고 먹고 살고 하면서 묵는, 허는 집이 있어.
 그래서 거기를 오다가 그 집을 들어갔지. 호랭이가 자꾸 쫓아 오니까. 들어갔더니 들어가서,
 “아, 여기 손님 오시니까 손님 대접 잘 하라.”
고. 그래고 그냥 그라고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그때 개를 그냥 업고 도망가. [조사자: 호랑이가요?] 그럼. 사람 대신 개를 업고 도망 가지.(웃음) [조사자: 그럼 잡아 먹어요?] 그럼 갖다가 잡아 먹지. 갖다가 사정읎이 동댕이를 쳐다가서는, 쳐다.
 인자 모가지를 잘라서 바윗돌에다 올려놓고, [조사자: 어머.] 고사를 지내지. 산에 바위가 많거던. 바위에다 이렇게 올려놓구설랑은 저기 고사를 지내지. 그래서 몸뚱이만 먹는거야. 대가리는 안 먹어. 대가리 놓고. [조사자: 대가리는 왜 안 먹어요? 왜요?] 대가리는 저기 저, 집 짓구 고사할 때 돼지 대가리로 고사 하잖아. 그러니까 그것도 거 대가리 놓고 고사하지.

󰊳 조정암을 낳은 어머니

이정희(71, 여) / 매산리T 1앞
[매산리] 박종수, 강현모, 송윤경, 유희경, 조윤경 조사 (1996. 6. 1)

 제보자는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집안의 내력에 대해서 말씀을 하였다. 그러고 조사자들의 성씨를 묻다가 한양 조씨가 있다고 하자, 조봉암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보자는 봉암이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조정암 조광조를 가르키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는 어려서 할머니한테 들었다고 한다.

 인제 조봉암이, 조 봉, 조봉암이래. 조봉암이 자손.
 옛날에 한양 조씨 저 조봉암이라고 여기서, 저기 가면 서원이 있어. 조봉암의 서원. 저 이제 숙사 서울 차 타고 가면은, 저기 저 풍덕천, 정자뜩, 정자동, 이제 정자동 지나서 저기 너머 가면은 저기가 중간에 있는가. 저 하여간 조봉암 서원이 있어.
 조봉암 서원이 어떻게 됐느냐 하면은 조봉암이가, 조봉암의 할머니가 손자 볼려고 저기 위했대. 위했는데 조봉암 어머니, 어머니가 시집을 왔는데 시집을 와가지구선 저기 새색시를 부엌에다가 갔다가 절을 시키고, 그 위해 놓는, 위해 논 토지가리에 갔다가 절을 시키고 그랬대.
 그런데 안했데. 조봉암이의 어머니가 절을 안 했대. 그냥 그러니까, 그냥 그 시어머니가 그냥,
 “인자 우리 집은 망했다.”고.
 “위해기는 뭘 위해느냐?”
고 그리고는,
 “망했다.”
고 그러니까. 그러고는 사는데, 조봉암의 어머니가 첫 아들을 낳았대요. 첫 아들을 낳고, 둘째 아들을 낳고, 조봉암이가 셋짼데. 꿈에 하얀 할아버지가 선몽을 하면서,
 “나를, 니가 그렇게 반대를 하니까, 내가 니 아들을 잡아간다.”
 그랬대. 그러니까 조봉암 어머니가,
 “잡아 가라.”
고 그랬대. 그랬더니 진짜 죽더래. 그랬는데 인자 또 졸지 얼매 있다가 둘째 아들이 또 앓는데, 그 할아버지가 또 선몽을 하면서,
 “이 자식마저 내가 잡아간다.”고.
 “에, 잡아 가라.”
고. 그랬더니 또 죽더래. 그랬는데 인제 셋째가 또 앓는데, 셋째 저기가 저기,
 “또 잡아 간다.”
고 그러더래. 그래서,
 “잡아 가라.”
구. 그 얘기니까 그렇지. 그 사람도 꽤 억쎠, 억쎴던 모양이지. 그러니까 인제 집에서 난리가 났지. ‘잡아 가라’고 그랬더니,
 “아유, 지독한 년! 정승 자리를 내가 어떻게 잡아가니!”
 그러고 그냥 공중으로 올라가더래. 그랬는데 그 아들을 길러가지고, 그래서 벼슬을 해서 정승이 해가지고, 지금 저기 돌아가는데 저 옆에 서원을 해 놓고.
 거기다가는 조봉암 서원에 일 년이면은 봄에 가서 제사 지내고, 가을에 제가 지내고. 저기 팔도 사람이 다 와. 거기로 제사 지내러, 가을 봄으로. 제는 아무 때나 제사 지내는가 거기 가면 별묘가 있다. 그렇게 아주 이렇게 서원이 이렇게 잘 지어놓고, 아주 느티나무가 그냥 크다란 느티나무가 있거든. 그런데 거기 그 뒤로 지금 길을 뚫려다가 아주 말았는데, 거기는.

󰊴 정몽주 서원과 일화

이정희(71, 여) / 매산리T 1앞
[매산리] 박종수, 강현모, 송윤경, 유희경, 조윤경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는 마을 근처에 생긴 절의 유래와 그곳에 발행하는 부적에 관한 것. 시조에 관한 것 등에 있어서 정몽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 이야기는 어려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 들은 것이라 한다.

 가는데 거기 있어. [조사자: 정몽주 서원요?] 정몽주 서원. [조사자: 정몽주 서원에 대해 얘기 좀 해 주세요?] 응? [조사자: 정몽주 서원에 대해.]
 정몽주 뭐 옛날에 뭐 쇠도끼 맞아 돌아갔다고 그러데. 거기 가면은 정몽주는 자식이, 손이 읎어. [조사자: 손이 읎어요?] 자식이 읎어. 딸만 하나야. 딸이 하난데, 딸이 누구냐 하면은 우리, 나도 연암 이가거든. [조사자: 연암 이?] 연암 이씨래. 그래서 그 딸님이 우리 연암 이씨 정암 자손인데, 정암 자손에 그리 정몽주의 손주 복상사 하는 것은 외손자 딸이 해 왔다고, 옛날에는 나 쬐그말 적에 할아버지들이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몰라.
 그래서 연일 정씨지. [조사자: 연일 정요?] 연일 정씨. 거기 가. 지금도 가면 거기 있다는데. 돌다리에 저기 강원도. 강원도 어디에서 쇠도끼에 맞아 돌아갔잖아, 정몽주가. 그래서 [조사자: 피!] 응. 이 흘린 자리고 있디야. 어딘지 돌다리에.
 거기다가 할머니들 얘기허는 소리 들었어도 몰러. 그 춘분 제사 지내고, [조사자: 무슨, 뭐라고요? 춘분 때 지내고요 추분 때 지내고요?] 그렇게 제사를 지낸 것을 봤는데, 말하자면 서원이 여러 군데니까는 언제는 어디, 어느 날은 어디를 가고, 어느 날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해서 학교에서 다 옮겨져 있잖아. 고속도로. 그래 아마 여기서 가면 시흥리, 시흥리 조금 더 가면 있어, 정몽주 서원이. 제사 지내는디 거기서 더 가면 조봉암 서원이 있고.

󰊵 수수깡을 도깨비로 본 사람

이정희(71, 여) / 매산리T 1앞
[매산리] 박종수, 강현모, 송윤경, 유희경, 조윤경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도깨비에 대해 묻자 해 준 이야기이다.

 옛날이 아냐. 우리 저기 사촌 시동생이 저기 저 정미(지명)가 처갓집인데. 정월 초하룻날 세배를 가는데 술을 잔뜩 잡숫고 저녁 때 갔대. 가셨대.
 그랬는데 주책같은 놈이 뎀벼서 그냥 줴패대기를 쳤대요. 줴패대기를 치고 처갓집에 들려서 지내시고서, 그 이튿날 오다가 보니까는 수수깡 묶어서 이렇게 세워서, 수수깡 묶어설라므는 그 이파리로 수수단 이어가지고 이만큼씩 묶어서 요렇게 동글해가지고 세우거든, 봄이면. 왜 가을에 그거 말려서 땔라고.
 그래 세웠더니, 그걸 가서 쥐패대기를 쳤어. 술 잡수시고 그게 도깨비로 보여서 줴패대기를 친거여.(웃음) 아이구 술도 그렇게 잘 잡숫고 그 양반, 한참이니까 그렇지.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그냥 저기 그리 올라가며는 거기 옛날에 뭐 배바위 옆에 있잖아. [조사자: 배바위요?] 배바위라고 바위가 이렇게 괴팍스럽게 생긴게 있는데, 그 배바위 있었거든. 거기서 개상으로 해서 능골로 해서 수원 가는 것이고, 이 밑으로 복이라는 곳이 있어. 거기서 그렇게 가시다가, 술 잡숫고 가다가 도깨비하고 씨름을 했대지 뭐.
 그때 그게 도깨비가 아니고 술을 먹으니까는 그렇게 홀려서 보인거지. 도깨비가 어딨어. 수수깡을 죄패대기 쳐서 죄 패 놨드랴 이거. 주책,
 “그까짓 거 내가 그냥, 그놈들 그냥 이런 것 다 되지는 막 때리고 왔다.”
고 그러드래. 수수깡을 죄 둘러엎었다는 걸 뭐. 도깨비가 어디 있어.

󰊶 사람 잡아 먹는 호랑이

정광시(73, 남) / 매산리T 1앞
[매산리] 박종수, 강현모, 송윤경, 유희경, 조윤경 조사 (1996. 6. 1)

 조사자들은 앞 제보자의 집을 나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제보자들을 찾았지만 아무도 조사에 응하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쉴겸 정류장에 나왔을 때 제보자가 부인과 함께 있었다. 그래서 조사나온 목적을 말하자, 광주를 가야한다며 거절하여 차가 올 때까지만 해달라고 하여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아주머니가 저 강안도에서, 우리 강안도 사람이거든. [조사자: 강원도요?] 강안도에서 깊은 산중으로, 강안도 산내 가 봤지?
 그 산골로 나무를 하러 갔는데 호랭이가 내려와 가지고 물어가지고, 그냥 그 양반이 그 길로 와서 돌아가셔 가지고, 6월 며칠 날, 날은 잘 모르겄어, 잊어버렸어.
 그날 저녁에 오뚝 제사 시간에, 거기 배나무가 돌배 나무가 있거든. 그 시간에 꼭 호랭이가 내려 온다고. 그래서 돌아가셨어. 옛날에 허고, 옛날에.

󰊷 호랭이가 지켜 준 황효자

이정희(71, 여) / 매산리T 1앞
[매산리] 박종수, 강현모, 송윤경, 유희경, 조윤경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이야기를 요청하자 시계를 자주 보면서 망설였다. 이때 버스 한 대가 와 제보자는 달려갔다가 방향이 다른지 다시 와서 이야기를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 저 강원도 원성군 [조사자: 강원도 원성군.] 문막면이라고 있어. 거기 가면 돌무내기라고 있어. 돌무내기. 돌무내기. [청중: 돌무내기 있어.] 거기 가면 황효자가 있어. 황효자. 황효자. 그 황효자가 어떻게 부모한데 그 잘 하는지, 아주 음 옛날에 이름난 편인데. 그 분이 자기 나라에서 어떻게 했냐면.
 “참기름 한 되를 짜 오라.”
고 했거든. 그때 참기름 한 되 짤래면 힘들어. 그게 간편하고 쉽게 보아야. 그런데 그 황효자 부인이 남편의 명을 어길 수도 읎고, 참 그거를 모아가지고선 참 시잡쇠에 놔 참기름을 짜 놨어. 한 말을.
 근데 그 짜놓은 걸 어머니가, 그걸 거름방에 갖다 두었는데, 그것을 오줌인지 알고 겨울에 보리밭에다 갖다 줬어. 아 나라에서는 올 때 기다리는데, 황효자가 올 때 기다리는데 벌써, 황효자는 그냥 간 거야. 가서 벌써 임금님이 벌써 그걸 알고서는,
 “안 가져 와도 좋다. 가시거라.”
 그랬어, 임금님이. 그래가지고 그 자기 부인보구,
 “그 참기름 어쨌느냐?”
 그러니까.
 “그 거름방에다 뒀는데, 그 어머님이 몰르고, 오줌인 줄 알고 보리밭에다 갖다 끼얹었는데, 그 어쨀 수 없잖아!”
 그래 나중에 어떻게 됐느냐 하면,
 “어머님한테 절대 알리지 마라. 알리면 근심하니까 어머님께 알리지 마라.”
 그런게,(제보자가 서울을 가야한다 걱정) 어떻게 했냐면, 황효자는 나라에를 갔다 왔어. 와가지구서 4일 만에 황효자는 원주 원주시 어디에, 지금 군청에, 옛날 감찰사, 감찰사는 지금 경찰서야. 황효자가 어디 갔느냐며는 그 원성 군청으로 감찰사가 댕겼어.
 근데 그 호랭이가 하루는 와가지고, 그래 몇 시에 출발하, 거기서 4시에 출발해. 거기가 40리야 원주까지. 호랭이가 짜구 와가지구선 지를 기울인다 이거여, 전부터. 그러니깐 타래는 얘기라 이거여. 근께 황효자가 그 호랭이를 타고 감찰사를 댕겼어. 참 계속.
 그래가지고서는 황효자가 인제 돌아가셨는데, 돌아간 뒤로다가 4년 동안을, 4년 동안을 그 돼지 고기를 그 산에 놓으면은 그것이 읎어지는데, 4년 후에는 그게 안 읎어졌어. 그래가지고서는,
 “아, 인제 호랭이가 죽었다.”
고. 이래 이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잖니.
 그 인제 그런데 그거를 원주 아이 문막면 근동리라고 있어. 거기에 내 고종사촌 형님이 우리 조합장으로 가 있었어. 그 인제 고기 계량과에 가서 그 수리 조합에 수로를 내 주는데,
 “그 황효자 밑으로다가 수로를 내야지만이 예산이 되지, 딴 디로다 가는 예산이 많이 나와서 안 된다.”
 이렇게 됐어.
 “그러니깐 예산을 삭감하기 위해서 그냥 황효자 산소 밑을 파서 그대로 수로를 내라.”
 그래 인제 수로를 냈잖아. 냈는데 수로를 낸 뒤로 딱, 그 이튿날로 호랭이가 그 동네에 나타나서 동네 사람들이 마실을 못 댕겼어. 그래서 우리네 고종사촌 형님이 다시 도에 계량과에 가 가지고,
 “이런 사실이 있는데, 이거 어떻게 했으면 좋으냐?”
하니깐. 그래 도에서도,
 “안 된다. 다시 묻어라.”
 그래 그걸 묻은 뒤로는 호랭이가 나타나지 않았단 말야. 그런 역사도 있는 거야. 그게 황효자야. 그래 부모한테 위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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