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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역
구성면- 청덕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이일순 (55,여) 오는 소님을 막아 망한 집안----------414
(2) 이일순 (55,여) 떠는 다리를 짤라 망하기 면한 집안-----416
(3) 이일순 (55,여) 빌린 담배불을 벌니 사람---------------418
(4) 이일순 (55,여) 죽은 여자의 원한을 풀어준 원님--------420
(5) 이일순 (55,여) 달래나 보지---------------------------422
(6) 이일순 (55,여) 도습하기 때문에 잡아먹어야 할 짐승----423
(7) 이옥순 (61,여) 부모의 자식 걱정----------------------425
(8) 이옥순 (61,여) 떡하난 주면 안잡아먹지----------------426
(9) 이정희 (79,남) 청덕리의 유래-------------------------426
(10)이정희 (79,남) 덕수동의 유래-------------------------427
(11)이정희 (79,남) 빈대 때문에 망한 절-------------------428

3. 청덕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한상언, 서대정, 주현정, 김소희 조사(1996.6.16, 1997.6.2)

 청덕리는 언남리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동북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에는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이 청덕리는 원래 용인군 동변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청수동과 덕수동 그리고 읍내동의 언동 일부를 합하여 청덕리라고 하여 읍삼면에 편입되었다.
 이 청덕리를 이루는 중심 자연마을은 덕수동과 청수동이다. 덕수동은 덕수 또는 덕수굴이라고 하는데, 맑고 푸른 물이 많이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 전설에 의하면 마을 위에 있는 절에서 떡이 많이 내려왔기 때문에 떡수동이란 말이 바뀌어 되었다고도 한다. 청수동은 물푸레울이라고 하는데, 물푸레나무가 많아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물이 항상 맑고 푸르게 흘러서 물푸른이란 말이 변해서 되었다는 설이 있다.


2) 설화


1. 오는 손님을 막아 망한 집안

이일순(55, 여)/청덕리T 1앞
[청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상언, 서대정 조사(1996.6.16)

 조사자들은 청덕리에 도착하여 노인정을 찾았으나 문이 닫혀 있어 막막하였다.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각 개인집을 돌아다니며 조사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한 집에 들어가 이야기를 잘 하는 분을 묻자 제보자를 소개하여 주었다. 그래 제보자의 댁을 찾아가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처음에는 꺼려하다가 조사자들이 계속항 간청하자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옛날에 아주 부잣집 양반이 있었대. 대감이지. 대감의 집이 있었는데, 그 대감이 얼마나 부잔지, 진짜 부자로 대감이 하도 잘 살으니까, 아 사람들이 끊길 때가 없이 술상을 보는데, 메느리를 얻었는데 이양, 메느리가 그냥 술상을 이냥 하도 봐서 이양, 다리도 아프고 힘도 들고. 그러고 인자 날이면 날마다 이양 저녁까지 술상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하니께, 그 메느리가 아주 힘이 들고 괴로운 거야.
 그런데 하루는 스님이 목탁ㅇ르 ‘떡떡’두드리면서 시주를 하러왔어. 그래서 그 있는 집이라, 아 있는 집이라 인저 쌀을 한 바가지 푹 퍼주며 인자 스님한테,
 “스님! 저희는 손님이 하두 많이 와서 지가 술상 보기가 너무 괴로우니께, 어떻게 하면 좀 손님 좀 안 오게 해, 하게 해 달라.”
고. 그 스님한테 그러니께. 그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그게 소원이십니까?”
그렇게 말을 했어. 그러니까,
 “네! 저는 힘이 들고 괴로워서 그럽니다.”
그랬어. 그러니까,
 “그러면 내가 비법을 하나 가르켜 드릴테니께, 그러면 내가 시키는대로 하실래요?”
그러니까.
 “그런다.”
그랬어. 아 그래서 그 스님이 하시는 말이,
 “그러문 아침 저녁으로 쌀을 씻어서 일어가꼬, 그 돌을,”
지금은 사정이 좋은 시대라서 석발을 해서 돌이 없지만, 그때만 해도 이제 석발이 어디 있고, 옛날이니까 뭐 그런 것이 어디 있것어? 그러면 쌀을 또 식구도 많고 그러니까 뭐, 이냥 돌이 바가지로 하나씩 나오지. 그러니께,
 “그 바가지로 돌을 갖다가 이냥 아궁지에다 아침 저녁으로 넣으라고 그랬어. 그러면은 이자 삼 년만 그러면 손님이 없을 거라.”
고 그러니께.
 “아 그러냐!”
고. 아 그랬어.
 “아 그럼, 그렇게 할 거냐?”고.
 “한다.”
고. 그러고 인저 스님은 시주를 받아갖고 갔어. 그 메느리는 아침 저녁 이루 뭐 이냥 바가지에 일으면 한 바가지씩 돌이 나오지. 그러면 그것을 아궁지에다 삼 년을 부니까, 그 집이가 아무 것도 읎이 홀랑 망했더래.
 그러니께 사람은, 사람의 집에 사람이 오야 되고, 사람한테 진짜 사람이 끌어야하고, 그 집안이 모든 것이 되는 거고. 그런께 사람이 ‘오는 손님 잉 막지 말고, 가는 손님 잡지 말랬대.’ 내 집에 오는 손님 후이 대접해 보내면 복이 돌아오는 거고. 또 이 다음에라도 훗날에 자식 대대가 좋은 거지. 사람이 안 오는 집은 그만큼 인심을 잃고, 그마만큼 사람이 나쁜 거야.
 그러니께 우리 나라 사람은 아직까지도 그런 저기가 있어서, 사람이 오야 되고 가야 되고 하는 그런 풍토가 있어서 참 좋은 거야.
 그러니께 그 대감 며느리도 봐라. 응 아무리 술상 보기가 힘들어도 자기가 참고 견디면 얼마나 좋고 얼마나 영화스러운데, 그게 구찬다고 그게 참지 못해 갖고, 그래갖고 홀랑 망하니까 뭐가 좋은게 있니. 그러니께 사람은 항상 그 좋은 마음을 쓰고, 사람들에게 좋게 대해 조(줘)야 돼.


2. 떠는 다리를 짤라 망하기 면한 집안

이일순(55, 여)/청덕리T 1앞
[청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상언, 서대정 조사(1996.6.16)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잠시 생각하시더니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 이야기도 앞의 이야기처럼 복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 생각이 난 것 같다.

 옛날에 참 스님이 어느 산을 넘고 재를 넘어서, 어느 한 고을을 들어갔는데, 참 참 부자집이었어. 그래서 그 부자집을 찾았어. 해는 너울너울 저녁인데 지고, 어디 기거할 데가 없어가꼬. 인저 그 큰 집을 찾아갔어. 찾아 가서,
 “주인장 계십니까? 주인장 계십니까?”
그러니께. 소리를 지르니까, 안에서 어떤 진짜 종이 나와가꼬,
 “왜 그러십니까?”
그래. 그러니까,
 “아, 여기서 하룻밤 기거하고 갈 수 없습니까?”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그 종이 인저 그 안에 들어가서 대감께서,
 “대감님! 대감님! 저기 지나가는 스님이 하룻밤만 묵어가자고 그런데 어떡하면 좋습니까?”
이러니까.
 “아, 묵어 가라.”
아 그래서 사랑방에, 옛날에는 안방, 건너방, 사랑방, 뭐 문간방, 뭐 행랑채 다 있었지. 그래서 백깥채를, 백깥채에다 그 어 그 스님을 재우고, 아들도 백깥에다 재우고. 그래갖고 하룻밤을 자는데, 가만히 스님이 인자 자다가 보니까, 그 큰 아들이 계속 발을 떨고 자는 거야? 그래가꼬, 그 가만히 스님이 보니까 발을 계속 떨어.
 그 발을 떠는 것을 보니까. 그 스님이 보니께, 그 집이가 및 해 안 가서 망하겠어. 그 복이, 복이 달아나서. 그 다리를 하도 떨어서. 그래서 이 스님이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이 집은 인제 그 다리를 계속 그 아들이 떨다 보면, 이 집이 아주 뿌리도 안 남게 생기고, 그냥 가자니 집안이 홀랑 망해지고. 그러니 어떻게 도리가 없는 거야. 그래갖고 인자 그 스님이 참 생각다 못 해,
 “내가 이 집에서 증말 이렇게 신세를 지고 하룻밤을 자게 되는데, 이 집을 망가지면 안 된다.”
이러구서. 인자 자다가 일어나서 그 가만히 보니께 발을 꼭 떠는데, 그 복을 떨, 떨치는 거야. 그래갖고 그 스님이 인제 생각다 못 해, 인제 그 아들 다리를 뚝 잘라 놓고서 그냥 가 버렸어. 가 버리고 그래서 세월이 얼마를, 몇 해를 인자 흘렀어.
 그래갖고 ‘그 집은 어떻게 사냐?’ 그러고 인자 그 스님이 정말로, 참 또 그 집을 또 찾아가 본 거야. 그래갖고 참 찾아가 보니까 정말 망하지 않고 그대로 잘 보전이 되어 있어서 잘하고 사러. 그래서,
 “기세요 기세요. 인자 어 주인장 안 계십니까? 주인장 안 계십니까?
인자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인자 또 종이 역시 나와서,
 “왜 그러시냐?”고.
 “아, 이 집에서 하룻밤만 묵어가자.”
고. 그러니께,
 “그 저기 인자 대감한테 또 물어봐야 된다.”
고 그래서. 종이 또 인자 가서 대감한테 물어 보니까, 대감이 펄쩍펄쩍 뛰는 거야.
 “아 내가 좋은 일을 해갖고 우리 아들이 병신이 됐는데, 내가 어는 중을 재우냐고. 안 재운다.”
고. 막 그러는 거야. 그래서, 그래도 억지로 인자,
 “하룻밤만 잔다.”
고 그랬어. 그러니까 인자 또,
 “들어오라.”
고 그랬어. 그래 보니까 그 아들이 병신이 되고, 부자는 하나도 망해지지가 않았어. 그래서 그 스님이 한단 소리가 자면서,
 “내가, 옛날에 한 몇 년, 7~8년 전에 내가 이 집에 왔다 갔오. 왔다갔는데, 와서 같이 당신 아들이 허고 자다 보니까 당신 아들이 발을 어떻게 떠는데, 그 발을 떨면, 떨다 보면 이 삼 년 내에 당신이 하나도 재산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그 다리를 잘랐으니까, 당신네가 이렇게 부자로 잘 사는 거에요.”
이러면서, 그 스님이 인자 그 대감한테 말을 했어. 그러니까 대감이 무릎을 탁 치면서,
 “아 그러시냐고. 난 그것도 몰랐다.”
고. 그러면서 후한 대접을 해 가꼬, 호의해서 잘 믹여서 그렇게서 보내서, 그 대감은 아들은 병신이 되었을망정, 그 집은 아주 부유하게 잘 살았다느 그런 전설이라는 것이 있었던 거여.


3. 빌린 담뱃불을 버린 사람

이일순(55, 여)/청덕리T 1앞
[청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상언, 서대정 조사(1996.6.16)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요즘 사람들의 예의가 없다고 질책을 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이 이야기를 구술하여 주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실화이다.

 인저 어느, 참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 참 담배가 피우고 싶은데, 담배를 닥 어떤 사람이 꼬나물고 피고 있더래. 그래서 그 사람이 한다 소리가, 지나가다,
 “아 담배 불 좀 주실래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담뱃불을 주었을 거 아니야. 그러니께 그 사람이 담뱃불을, 그 그 사람이 담배를 달라던 사람이 인자 담뱃불을 주니까, 그 담뱃불을 피고는 그, 그 준, 빌려준 사람 담배붓을 갖다가 버리고 그냥 간 거야. 그런게 너무 그 사람이 황당하잖아. 도로,
 “고맙다.”
고. 이렇게 도로, 도로 돌려줘야 하는 건데, 그 사람 담뱃불을 피고는 그 사람이 담배를 버리고 지(자기)만 피고 가는 거야. 가만히 뒤를 돌아서 그 보니께, 얼마나 그 남자가 괴씸스러운지 싸가지가 너무 없는 거야. 사람이 진짜 담뱃불을 주었으면 그걸 도루 주면서 참,
 “고마이 잘 폈다.”
고. 그래야 되는데. 그냥 외려 그 사람 담뱃불을 탁 던지고서, 지 담뱃불만 피고 가는 거야. 그래서 인저 그 사람이 꾀를 낸 거야.
 “여보! 여보! 이리 와 봐.”
그러니께. 그 사람이 이렇게 돌아서는 거야.
 “나 담뱃불이 없으니까, 당신 담뱃불을 나한테 돌려 달라.”
고. 그러니께 그 사람이, 당신 담뱃불을 나한테 돌려 달라.“
고. 그러니께 그 사람이, 자기한테도 그 사람한테서 담뱃불을 빌렸으니까, 이 사람이 담뱃불을 도로 줘야 될 꺼 아냐. 그래서 냅데 답뱃불을 자기도 이렇게 피고 나서 그 담뱃불을 딱 버렸는 거야. 그러니까 이이가 황당해서, 그 이를 막 아래 위로 째리고 쳐다보는 거야. 그러니까,
 “당신! 내 담뱃불을 빌려다 버렸으니까, 나도 당연히 버려야 되지 않느냐!”
고. 그러니께 그 사람이 거기서 뭐라고 그러면 되지게 맞을꺼고. 그러니께 자기가 잘못을 뉘우치고 아무 말없이 갔다는 거여.
 그러니께 사람은 그 공을 모르면, 응 그 공의 댓가를 모르며는 자기가 도루 그 죄를 받는 거여. 그러니께 사람은 그렇게 양보를 하고 살아야 돼.


4. 죽은 여자의 원한을 풀어준 원님

이일순(55, 여)/청덕리T 1앞
[청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상언, 서대정 조사(1996.6.16)

 앞의 이야기를 끝내자 마자 계속하여 구술한 것이다. 이 이야기의 내용은 ‘아랑의 정조’와 같이 귀신 이야기 유형으로 끝부분이 구성되어 있다.
 
 옛날에 참 부자로 잘 살으니께, 옛날에는 다 지금은 파출부라고 그라고, 지금 저기라 그러지. 여자는 파출부라고 그러고, 남자는 인자 그 집 저기, 일하는 일꾼이라고 그러지. 그 전에는 머슴이라고 그랬어.
 그래서 그 대감네서 참 잘 살으니까 머슴을 하나 뒀어. 머슴을 하나뒀는데, 그 집이가 무남독녀 외딸이야. 아들도 읎고, 아들도 읎고 딸 하난데, 참 그 딸이 이쁘게 생겼어.
 아 그 머슴이 진짜 너무너무 그 딸을 보고 미치고 환장하겄는 거야. 그러니 감히 자기네 대감의 딸인데 어떻게 넘 볼 수가 없는 거야. 아주 그 여자가 너무너무 이쁘고 진짜 너무 귀엽게 생겼여.
 그래서 이 머슴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 바로 이렇게 문에 나가자면은 인저 바로 그 앞에 큰 대나무 밭이 총총하게 들어 섰어. 그래서 그 인제 그 종이 인제 한다 소리가,
 “야! 우리 저기 참 좋은데 있으니께, 조기 잠깐 갈래.”
인제 그러고서니, 그 걔를 데리고 꼬시고 갔어. 가가꾸서니 그 이냥 그 얘를, 이냥 죽여 버렸어. 죽여 버리고 난, 나갖고 그 머슴, 머슴이 겁이 나니께 그 얘는 인저 대밭에다 버리고, 그 머슴은 인자 도망을 갔어. 정처없이 도망을 갔어.
 근데 그 딸은 세상에 암만 찾아 봐도 없는 거야. 행방 불명인 거야. 그러니 글쎄 암만 수소문을 하고, 뭐 지금같이 좋은 세상에야 뭐 찾지. 그러니께 암만 수소문을 해도 그 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참 무남독녀 외딸이니깐, 그 엄마 아버지 그 식구가 얼마나 한이 되겠니.
 그러니께 인제 대감도 그만 두고, 벼슬도 싫고 그 고을을 떠난 거야. 그 고을을 떠나갖고, 다시 그 고을에 오는 대감이 오는 족족 그 대감이 죽는 거야. 응. 그 여자가 죽고 나서. 인저 그래서,
 “참 이상하다.”
그래갖고 인저 그 소문이, 소문이 소문이 이렇게 퍼져갖고 인자 나라까지 갔는데. 인자 나라에 소문이 났으니까, 어느 아주 인제 사또가, 참 사또가,
 “내가 그 점, 그 고을을 지키겠다.”
고. 인자 그러고 아주 왔어. 아주 대담한 인저 사또가. 그래가꼬 인저 딱 열두 시가 되면, 인저 그 사또가 하나씩 죽어 나가는 거야, 부임 하면은. 그래서 그 이는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인저 열두 시가 딱 되는데, 이냥 촛불을 켜놓고 이렇게 앉아 있는데 이냥, 회오리 바람이 싹 꺼지더니. 이냥 촛불이 딱 꺼지더래. 아 그래서 이이는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고 가만이 있으니까, 하얀 소복한 여자가 오더니 딱 들어오더래. 그래서,
 “너는 누구냐? 뭐가 소원이길래, 이렇게 오는, 고을에 오는 저기 사또마다 다 이렇게 죽어 나가느냐?”
그러니까.
 “예! 나는 그게 아니라 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니 소원이 뭐냐?”
그러니까.
 “내가 그전이 여기서 살던 대감의 무남독녀 외딸인데, 그 머슴이 나를 신세를 조져 놓고, 나를 죽이고 이렇게 도망르 가서 내가 그게 한이 되어, 그 한풀이를 할라고 내가 이렇게 찾아온 거라.”
고 그러니까.
 “그러냐고. 그럼 그 한을 풀어주면 너 괜찮겠느냐?”
고 그러니까.
 “아 괜찮다.”
고 그러더랴. 그래서 인자 그 이는 인자 그러고 갔대.
 “그럼 걱정은 하지 말아라. 내가 한을 풀어 주마.”
인자 이러고서니, 그 사람이 증말 인자 날이 밝기를 기달려갖고, 날이 밝아갖고 인자 신하들을 다 불러갖구서,
 “야! 저 대밭에 그 시신이 있으니께, 그 대나무를 전부 다 잘라갖고 그 시신을 찾아서 좋은, 물 좋고 산 좋고 아주 경치 좋고 좋은 디다가 묻어주라.”
고. 인자 그랬대. 그랬더니 인제 시신이 맷(몇), 맷, 맷 십 년이 세월이 흘렀는데, 인자 뼈대기만 있는 거지. 그래서 그걸 추려다가 좋은, 아주 명당자리에다 묻어줬구 잘 위했더니, 그 고을이 번성해 갖고 대대손손 자식들 그렇게 잘 되고, 자식마다 벼슬을 했다는 거야.


5. 달래나 보지

이일순(55, 여)/청덕리T 1앞
[청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상언, 서대정 조사(1996.6.16)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서 조사자가 음담패설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달래나 바위 전설을 간략하게 말하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저 인저, 남매 인저 그러니까 이런 산꼴짜기야. 이런 산꼴짜기인데, 지금은 차도 있고 택시도 있고 뭐든지 있지. 그런데 인자 옛날만 해도 십 리, 이십 리를 걸어 가야만 심부름을 하고 그랬어.
 그런데 인저 그 저기 저런 이렇게 두메 산꼴 남매를 인저, 남매를 심부름을 보냈던 거야. 인저 오빠하고 언니하고. 그래갖고 이렇게 심부름을 이렇게 보냈는데, 막 한 여름이었겠지.
 그랬는데 이렇게 얇은 옷을 입고. 여름이니께 비치는 옷을 입고 이렇게 오빠하고 동생하고 이렇게 어느 산꼴을 이렇게 돌아가는데, 소낙비가 막 쏟아지더래. 그래서 인자 소낙비가 막 쏟아지니까, 그 누나의 입은 이 옷이, 다 이 야(나)체가, 이 몸 육체가 다 인제 비에 젖어가지고 다 보이는 거야.
 그러니께 그 동생이 어떻게, 저기 참 그 동생이라네! 오빠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그 막 동생을 근데리라 그러는 거야. 그러니께,
 “오빠! 오빠! 달래 보지, 달래 보지.”
했다는 거야. 그런 전설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렇게 이것은 진짜 남녀간은 참 저기한 거야.


6. 도습하기 때문에 잡아먹어야 할 짐승

이일순(55, 여)/청덕리T 1앞
[청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상언, 서대정 조사(1996.6.16)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귀신이나 도깨비에 대해 묻자 이 이야기를 구술하여 주었다. 이것은 동물들을 오래 두면 도습(변신)하기 때문에 잡아먹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 이야기를 마치고 제보자가 바쁘다고 하여 더 이상 채록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개하고 닭 없는 데는 읎다. 개하고 닭 읎는 데가. 그러니께 개나 닭은 잡아먹게 마련을 맨드어 놓은게, 닭이나 개는 오래 되면은 도습을 하는 거래.
 그런게 왜 도습을 하니냐. 그래갖구서니, 그래서 이 개도 오래 놔두지 않고, 한 오륙 년 있다가 잡아 먹고. 닭도 한 이년 일 년이면 잡아먹는 이유가.
 아 옛날에 이냥 참 농사를 다들, 옛날이는 많이 짓고, 인자 가을에 타작하고. 그 이렇게 떨어진 벼 이삭을 또 이렇게, 응 이렇게 두었다가 인자 또, 먹고 살기 힘들 때 인자 털어서 먹는 게 있어.
 그랬는데 닭이 이냥 없더래. 닭이 암만 찾아도. 큰 장닭인데 아주 읎드래. 그래서 그 주인은 의심을 낸 거야, 동네 사람을, ‘누구 갖다가 잡아먹었다.’
 옛날에는 그까지 것, 닭 하나 잡아먹어도 고소하고 뭐 이냥 쌈하고 그러는 것 없는 거야. 다 그래서 옛날 인심이 좋은 거고, 지금은 살기가 너무 야박하다는 거야. 긍께 ‘누가 잡아 먹었나 보다’ 그러고 그냥 말었다.
 그래가꼬 인저 그 해 봄이 됐는데, 그 인저 노적가리를 이렇게 인저 양식을 털어서, 인저 벼를 해서, 인저 쌀을 찧라고 노적가리를 이렇게 이렇게 젖어서 인저 그걸 할려고 보니까, 아 꼬리는 배암이 되고, 응 그 웃두리는 닭이 됐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 장닭이 오래 돼갖고 도습을 해서, 이 꼬리에서부터 배암이 도습이 된 거야. 그러니께 그 장닭이 죽은 줄 알았더니, 이 중간에는 배암이 딱, 이 꼬리서부터는 배암이 되고, 위에 닭하고 배암하고 그렇게 있었다는 거야.
 그러니께 개나 닭이나 모든 짐승은 잡아먹게 마련을 왜 그렇게 해 놨냐면, 그렇게 오래 되면 닭, 닭도 개도 모든 짐승도 도습을 하기 때문에 그게 잡아 먹기 마련이야.


7. 부모의 자식 걱정

이옥선(61, 여)/청덕리T 1앞
[청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상언, 서대정 조사(1996.6.16)

 앞의 제보자에게 조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나섰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집안에 쉬고 있는 한 할머니를 발견하고 들어가 찾아온 목적을 말하자, 부모님이 자식을 걱정한다며 일화로 들어 설명한 것을 채록한 것이다.

 아 그전에 옛날 얘기가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옛날에 아들 셋을 낳고 아버지가 돌아갔는데, 아버지 저기 뭐냐 그게.
 아들이 셋인데, 하나는 소금 장사를 하고. 하나는 짚세기 장사를 하고. 하나는 우산 장사를 하는데, 비가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
 비가 오면은 아 저기 짚세기 장사하고 소금 장사하고, 소금이 녹아서 못 쓰고.(웃음) 아 몰라요. 옛날에 노인네들이 쪼금 해 주는 거 들은 소린데, 그것 제대로 되는지. 그리고 뭐 또 비가 안 오면, 우산 장사 아들이 우산을 못 팔아 밥을 못 먹고.
 그래서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부모는 그래서 걱정이래, 그렇게 평생을 두고. 근데 나막신 장사는 또 비가 오면 못 신짢아, 가물어야 신지. 그래서 나막신 장사를 해도 그렇고. 아휴. 그렇게 옛날에는 왜 그렇게 살았나. 재 지금도 보며는 마찬가지겠지, 그냥 자식 걱정 하는 거는.


8.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이옥선(61, 여)/청덕리T 1앞
[청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상언, 서대정 조사(1996.6.16)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새로운 이야기를 부탁하자 아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준 것이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가 있고. 뭐 고개가 무척 길고 무섭고 험했대. 그래서 그 고개를 할머니가 떡을 팔고 가야 되는데 이 호랑이가, 떡을 팔다 가야 하는데 호랑이가,
 “할멈 어멈! 할멈 어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웃음)
그랬대. 그래가지고는 하나를 주고 나면, 한 고개 넘으면 또 호랑이가 있어가지고 또 주고. 낭중에는 다 주다주다 보니까는, 고개를 넘을 적마다 떡을 주다 보니까는, 낭중에는 사람까지 먹어 지러 들이드래.
 그래서 어떻게 집으로 갔는지. 갔데냐 뭔 어쨓데냐. 이게 우리 형석(아들 이름)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여.


9. 청덕리의 유래

이정희(79, 여)/청덕리T 1앞
[청덕 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주현정, 김소희 조사(1997.6.2)

 조사자들은 청덕 2리 도착하여 이곳저곳을 헤매였지만 제보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맨 처음 만난 73세의 박씨 할아버지는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서사성을 갖추지 못하였다. 그런 뒤에 마을 사람들의 소개로 제보자를 댁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칭하자 이곳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여 주었다.

 여기 마을이, 마을은 오래된 마을이지. 옛날 때부터 오래된 마을. 청덕리란 데는 옛날에 이 동네 이름이 놈부레골(?) [조사자 : 네?] 높부레골. [조사자 : 높은 개울] 응. 높은 부래골이라고, 여기가.
 [조사잦 : 청덕 2리라는 그 마을에 대해서 특별하게 얘기헐 만한 것 읎어요?] 청덕 2리? [조사자 : 그 이름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이 청덕리란 데가 으째 청덕리라면 물이, 물이 맑다고 해서, 여기가 저기 질이 일루두 안나고, 여기가 인자 막다른 디거든, 아주. [조사자 : 더 이상 읎어요?] 그렇지. [조사자 : 이 위로 마을이 읎어요?] 응 읎어.
 여기가 아주 막바지여, 여기가. 그냥 그래서 여기가 물이 맑다고 해서 청덕리라고 했던 디야. 물이 맑고 저기 물이 좋아서.


10. 덕수동의 유래

이정희(79, 여)/청덕리T 1앞
[청덕 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주현정, 김소희 조사(1997.6.2)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마을에서 일어났던 사실적인 일화 1편과 마을에서 관련된 것을 듣던 중에 채록하게 된 것이다.

 덕수동인데, 위에 그 절이 있었대. [조사자 : 절이요?] 응. 절이 옛날에, 그 저 경찰대학 그 사격장 있어. 거기에 무슨 절이 있었대.
 거기 그 절에 아주 아마 불공이 많이 들어왔던 몬양이지. 그 장마 때면 떡이 그냥 굴러서 내 내려오고. 떡을 못 다 먹어서, 그 동네로 내려 보내줘서, 거기가 그래 저가 덕수라고 하는데, 떡수동이여.
 옛날이는 떡수동였다가 덕수동이라고 됐다고 그런 소리가 있어. 저 아래 마을에. [조사자 : 진짜 밤마다 떡 했다.] (웃음) [조사자2 : 그때 고사 지내고 남은 떡.] 절에. 절에 이리 많이 주어서 떡이 많이 들어와서 떡을 처치를 못해서 말이야. 장마 때면 그냥 떡까지 막 떠내려 오고 그랬다는 겨.
 장마 때면 떡을 그 비가 많이 오면 절에 있는 물건이 떠내려오곤 했지. 절에는 제사 비슷한 걸 많이 하잖아. 그래서 떡이 많았어. 장마 때면 떡이 떠내려 와서, 우린 그 절을 떡집이라고 불렀지. 떡집. 떡집, 떡집하다가 그 동네가 덕수동이 되었잖아.


11. 빈대 때문에 망한 절

이정희(79, 여)/청덕리T 1앞
[청덕 2리 제보자댁] 박종수, 강현모, 주현정, 김소희 조사(1997.6.2)

 앞의 이야기를 하다가 같은 절에 관한 이야기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구술해 주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향교에 대한 말씀을 듣는 것으로 조사를 마쳤다.

 거기 그 경찰대학교 그 사격장이 있는데, 거기. 예전에 그 절터가 지금까지도 있다는 거여. [조사자 : 절터만 있고 절은 읎고요?] 응. 절은 읎고 절터가 있는대.
 그 저기 이 무슨 무슨 이 빈대란 것 있잖아. 빈대가 하두 많아서 그절이 부서졌데, 그 절이. [조사자 : 빈대 때문에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말이 증말인 것처럼.(웃음)] 그런데 그 빈, 빈대 때문에 그 절을 저기 폐허했다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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