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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역
수지읍- 성복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황희철 (66,남) 빈대 때문에 망하였던 성복리 절터---290
(2) 이상설 (79,남) 이빈의 효행--------------------------291
(3) 김주명 (48,남) 정몽주의 최후와 사당-----------------293
(4) 김주명 (48,남) 형제봉의 유래------------------------294
(5) 김주명 (48,남) 호랑이굴 속의 금부처-----------------295
(6) 김주명 (48,남) 수원에서 이곳까지 뚫린 호랑이굴------296
(7) 송산스님 (64,남) 빈대때문에 망한 성복사지-----------296
(8) 송산스님 (64,남) 개 때문에 찾은 금부처--------------298
(9) 송산스님 (64,남) 금은 보화가 묻힌 우물--------------298
(10) 허현욱 (78,남) 인자한 성종대왕---------------------299
(11) 허현욱 (78,남) 사이가 좋은 거지 형제---------------303
(12) 허현욱 (78,남) 사라진 돌부처-----------------------308
(13) 조돈희 (70,여) 도깨비 일화-------------------------309
(14) 허현욱 (78,남) 지하도적 퇴치설화-------------------309
(15) 조돈희 (70,여) 남편의 인덕으로 부자된 첬째딸-------313
(16) 조돈희 (70,여) 구렁덩덩 신선비---------------------317
(17) 허현욱 (78,남) 절친한 친구의 우정시험--------------319
(18) 허현욱 (78,남) 집안 대 잇기 (씨내리)---------------323

5. 성복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김도희, 이정현,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 (1997.5.18, 199.5.15)

 조사자들이 지도를 들고 성복리를 찾아 출발할 때는 날씨가 매우 좋아 왠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성복리는 광주 수원간 국도변에 있어, 직행버스와 시내버스가 자주 다녀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사자들은 버스에서 내려 성복 1리를 지나 마을로 계속해서 들어가 성복 2리에서 조사를 착수하였다. 성복 2리에 도착하여 어른들게 물어서 노인당이나 마을회관을 찾았으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날씨조차 갑자기 바람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지자 너무 막막하여 포기할까도 생각하였지만, 이장님 댁을 찾아 사정 이야기를 하자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성복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수지년 지역이었던 곳을 수지면으로 편입되었다. 이곳 이름의 유래를 보면 옛날에 성주 이씨가 많이 살았는데, 자손들이 복을 많이 받으라고 성복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성복굴 또는 성복동이라고 하는 이 마을을 구성하는 자연마을로는, 성남, 성동, 성서, 능구리, 도리실, 도탐말, 응굴, 응달말, 정자들 등이 있다. 성남, 성동, 성서 마을은 마을의 남쪽과 동쪽 서쪽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도리실은 성서의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고 도탐말은 서쪽에 있는 마을일라고 한다. 또 응굴은 마을에서 동쪽의 국도변에 있는 마을이고, 정자들은 정평이라고 하여 정자나무가 있었으므로 생긴 이름인데 그대로 마을에 붙여진 것이다. 응달말은 국도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응달이 지기 때문에 붙여졌다.
 성복리는 3개 마을로 이루어진 총 761세대에 주민수가 2219명이나 되는 큰 마을이다. 성복 1리는 315세대에 820명, 성복 2리는 362세대에 1055명, 성복 3리는 83세대에 244명으로 연암 김씨와 양천 허씨를 중심으로 9개 성씨로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은 효자각과 산 유래 등과 관련된 많은 민속이 있는 고장이었다. 많은 개발이 이루어져 별장처럼 화려하게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돌 있으면서도,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의 향취를 느끼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서 전승되고 있는 민속학적 의의가 있는 유무형 유산들을 알지 못하고 잊어가고 있다는 것은 안타깝다.


2) 설화

1. 빈대 때문에 망하였던 성복리 절터

황희철(66, 남)/성복리T 1앞
[성복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도희, 이정현 조사 (1997.5.18)

 앞에서 이곳의 산제사에 대해 설명하는 도중에 이곳에 절이 많았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제보자느 성복 2리 이장인데, 조사자들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옛날에 이장을 하였던 분의댁까지 조사자들을 인도하여 주었다.
 그게 인저, 이 안에 전부가 절로는 절이 몇 개, 절마다 댕겨 내버리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려가지고, 그 밑이가 한 사흘 정도가 돼야 절을 다 돌아서 내려온다고 그렇게 얘길했다구.
 근데 이 골짝마다 다 절터가 있지 없는 데가 없어. [청중 : 절이 굉장히 많았대.] 응. 절이 많았다는 얘기야. 그리고 인저 상대방 불상에는, 에 고려 말년에 빈대가 들었다고. 그 절터를 완전히 석조상도 다 있구, 다 있어. 근데 건물만 없지.
 빈대들이 와서 망했다고 하지. 근데 그건 몰러. 학생들은 학술적으로 배우는 게 더 빨러.


2. 이빈의 효행

이상설(79, 남)/성복리T 1앞
[성복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도희, 이정현 조사(1997.5.18)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약도로 효자비를 찾아보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우선, 마을 사람들도 자세히 모르고 있었고,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아서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황희철 이장님을 찾아뵙고 부탁드렸다. 1시간 정도 헤맨 후에야 간신히 이상설씨를 찾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아 주시며 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할아버진데 성함은 이빈, 에 그 냥반이 철종 때, 철종 때 분여. 근데 에 철종 5년에 저 에 비각을 세웠거든.
 에 그런데 원체 저 분이 철종보다 한 70년 전에 숙종 때, 숙종 때에 효행이 있으신 분이야. 그런데 그때 아마 국가에 무슨 사정에 따라서 금방, 에 저어 표창을 못 하구서 70년 후에야 저것이, 에 인제 임금님의 명령에 따라서 저어 효자문을 세웠거든.
 그랬는데, 그 효행에 대해서 나두 좀 어떻게 확실한, 무신 근거가 있으면 저 좋겠어서 근거를 좀 알아 보려 했는데, 알아 볼 도리가 없었어. 그래서 나두 인자 그전에 노인네들이 헐, 얘기 허던 얘길 들으면.
 그 어머니가, 이빈 효자 어머니께서 병환이 들으셨는데, 병환이 들으셨는데 에 암만 약을 써도 안 듣더래요. 근데 게~ 병자가 겨울에,
 “참외가 먹구 싶다.”
구 찾더래. 참외가. [조사자 : 어머니가요?] 에. 근데 옛날에 더군다나, 지금이야 뭐어 겨울에두 참외 어어 수박두 다 있지만, 옛날이야 뭐 그게 있나. 철종 때니까 지금부터 즉어도 백 한 삼십여 년 전 일인데. 없으니까 자손된, 어 자손에 입장으로 말하자면 애처롭기 짝이 읎었지. 그래 겨울긴데, 그때가 더군다나.
 겨울인데, 그 이튿날 아침에 이제 지금두 그렇지만은, 지금은 아파트 생활을 해서 뭐 마당이라는 게 읎지만, 옛날에 이렇게 단독주택에 다 마당이 있구 다 있지. 그러니까 노인네뿐만 아니라, 집안 식구 먼저 일어난 사람이 나가서 마당을 쓸게 마련이지. 에 손님을 마중하는데두 그렇구, 편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마당을 쓰는 법인데.
 마당을 쓸러 나가니까 그 눈이 왔는데, 눈 위에 에 참외 넝쿨이 있으면서 거기 가서 참외가 한 개 달렸더래. 그래서 그 놈을 따다가 인제 봉양을 해 드렸다는 거여. [조사자 : 겨울인데요?] 으응. 겨울인데, 에 그게 그것이 확실한 건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좌우간 그런 얘기가 전해와요. 그렇게 효행을 했구,
 (잠시 생각하시다가.) 그 다음엔 또 에에, 별안간 무슨 으음, 물고기, 무슨 저 청어라나 뭐라나,
 “그것이 잡숫구 싶다.”
구 그러시더래. 오래도록 아마 앓으셨던 모냥이여. 그래 청어가 그때만 해두, 에 정말 여긴 산간 지방이 돼서 구하기가 어렵지. 그런데 저어 뒤에 여기 냇깔에 흐르거든. 넓은 냇갈이 흘러. 그래 여름에 목욕두 허구 그러는데, 그런게 옛날에 빨래라는 거를 다 개울에 가서 하지 않았겄어. 추울 때구 더운 때구.
 그래 어 이날 빨래를 허러 에 그 며느님이, 그러니까 이빈씨의 아내지. 며느님이 나가서 빨래를 허러 나가서, 인저 물에다 빨래를 담그구 빨래를 하다 보니까, 거기에 커다란 고기가 놀더랴. 그러니까 더군다나 인자 이 시어머니가 아프셔서 앓으시는데, ‘그걸 잡숫구 싶다’구 그러셨는데, 더군다나 눈에 그게 띄었으니까,
 “얼씨구나!”
허구. 잡아서 해다 드렸을 거 아냐. 그렇게 에, 그러니깐 효행이 에 그러헥 효행을 이미 얘기하더라서, 그 효행이 인제 나라에까지 전해져서 임금님께서 에,
 “효자문을 세워라. 세워줘라.”
그래서 저 효자문을 세워 주었는데.


3. 정몽주의 최후와 사당

김주명(48, 남)/성복리T 2앞
[성복 2리 길가]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1999.5.15)

 조사자들은 마을에 도착하여, 길을 가다 밭에서 고추 모종을 옮겨 심는 네 분을 보았다. 그래서 그 중 한 분께 여쭤보았다. 바쁘셔서 좀 꺼려하셨지만, 우리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탁드리자 일을 하시면서 구술하여 주셨다. 이야기해 주신 분은 그 동네에서 집안 대대로 3대째 방앗간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옛날에는 통통방아로 방아를 찧고 다녔다고 한다.

 [조사자 : 복이 많아서 성복리에요?] 응. 버스 타고 오다가 구길로 왔지? 그게 뭐냐면은 저기, 이성계 알어? 이성계가 거, 이성계가 저기, 방언이가 저기, 정몽주 도리깨로 때린 거 선죽교에서 알어? 그 사람 거기 거, 서당이야 서당. [조사자 : 어~, 서당이에요?] 서당이구.
 그 사람이 이방언이가, 거 이성계를, 저 정몽주를 때려 죽인 거 아니여, 도리깨로. 선죽교에서. 응? 그래가지구 그 사람이 인제 거기 서당이구. 어, 그리구 그 사람이 죽어가지구. 여기 용인군에 묻혔다구. [조사자 : 어~ 어...] 용인군에 묻혔는데. (호미로 땅을 파는 소리)
 그거를 저 어떻게 묻힌 거냐 하면은, 저 옛날에 명정 있잖아. 명정같은 거 저기(녹음이 지워짐) 거 모를 거야. 명정이라는 게. [조사자 : 명정이 뭐에요?] 명정이며는 저 거 죽어가지고 앞에 글씨 써가지고 앞에 이렇게 들고 행여, [조사자 : 아~ 예.] 들고 가는 사람 있지? 그 명정을 날렸다는 거여. 명정을 날려가지구 거 광주 모현면, 모현면에 거기서 거 떨어져가지구 명당 자리라서 저 정몽주 산소가 거기 있다구.
 [조사자 : 아 그게 산소인 거에요?] 어. 그래서 거기가 저기, [조사자 : 떨어지는 자리에 놓는 거에요?] 그래서 거 명당자리라서 정몽주 산소가 거기에 있다구. (동네 개가 짖음)
 (이후 부분은 이 제보자에 대한 조사 뒷부분에서 구술한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임) 이방언이가 죽인다는 걸 그 정몽주를 , 그 사람이 저기 아니야, 학자 아니야, 정몽주가.
 그러면서 나 죽이라고 정몽주가 알면서도 말을 앞에 타고 간게 아니라 뒤로, 말을 말 대가리가 사람 몸 반대로 된 거지. 잉? 사람은 말 궁뎅이 쪽으로 보고 음? 엉뎅이는 말 대가리를 보고 이렇게 타고 갔대는 거여. 그 그래서 거기서 쇠도리깨로 맞아 죽였대. 선죽교에서 죽어가지고 된 거지.
 정몽주가 그전에 거기 가리쳤던 서당이라구. 거기 가 보면 푯말에 뭐라고 돼 있냐면, ‘하마비’라고 돼 있어. 하마비. [조사자 : 하마비요?] 한문으로 하마비가 돼 있다구. [조사자 : 왜 그렇게 돼 있어요?] 글세, 그건 모르지. 하마비.


4. 형제봉의 유래

김주명(48, 남)/성복리T 2앞
[성복 2리 길가]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 (1999.5.15)

 정몽주의 최후와 사당에 관한 이야기가 끝난 후, 밭에서 일하고 계신 네 분께 영비천을 드렸다. 그러자 아저씨께서는 영비천을 드시면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형제봉을 가리키며 해 주신 이야기이다.

1) 형제봉

 형제봉이라구 있다구. [조사자 : 형제봉이요?] 형제봉이 있는데, 그 봉우라지가 똑같애요, 봉우라지가. [조사자 : 똑같이 생긴 거에요?] 어. 그래서 그 옛날서부텀 내려오는 거 저기가 전설이 있다며는 형제봉이구.
 (호랑이 굴에서 금부처를 발견하였다는 뒤에 연결된 것을 옮긴 것임.) 굴이 있긴 있는데 안덜 가. [조사자 : 형제봉이 어느 쪽?] 형제봉이 이 쭉 올라가면, 저기 봉우라지, 요렇게 요렇게(산을 가리키며) 두개 된 봉우라지가 있다구. 그래서 형제봉이라고 그러는 거, 형제봉.

2) 빈대 때문에 망한 절터

 형제봉 밑에 가면 그런 큰 옛날 절터가 있어. 절터. [조사자 : 절터요?] 엉. 절터가 있구. 그래가지구 그 절이 왜 망했냐며는, 그 옛날에 보면 이 빈대라구 있어. 빈대. 지금 저 옛날에는, [조사자 : 몸에요?] 아니 저, 빈대. 빈대라는 게 뭐냐며는 이런 벌러지, 그러니까 그 벌러지.
 그래서 그 빈대가 하두 많아가지구, 빈대가 하두 많아 가지고 절이 기냥 망해가지구 도망갔다는 그런 전설이 있구. 빈대가 너무 많아 가지구 배기질 못 해니까.


5. 호랑이굴 속의 금부처

김주명(48, 남)/성복리T 2앞
[성복 2리 길가]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 (1999.5.15)
 앞의 절터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서 계속해 구술하여 주신 이야기이다. 옆에 아저씨가 장난으로 계속 ‘저 사람 얘기 믿지 말라’ 고 말씀하셔서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었다.

 그래가지구 그 절에서, 옛날 사람들이 이제 떠날 때, 우물에다 거 금부처를 묻어가지구선, 저 금부처를 묻어가지구선 그 동네 사람들이 거 금부처를 묻었다 그래서, 금부처를 캘려고 우물을 죄 뒤져보고 그래도 없더라구. [조사자 : 금부처가요?]
 그러고 그 위에 절터 위에 올라가며는 큰 동굴이 하나 있어요. [조사자 : 위에요?] 저기에 올라가면 동굴이 있는데, 그래가지구선 그 동굴이, 동굴이 있는데 동굴 안에다가 그 전에, 그 나두 여기서 계속 살다 이렇게 보니까 누가 어디서 금부처를 캐가지구 금부처를 동굴 안에서 너.
 그러니까 호랭이 굴이지, 거기가. 옛날엔 호랭이 굴이랬는데, 거기다가 인저 누가 인자 나무들, 옛날이면 나무덜 해다 때고 그러잖아. 그래가지구선 거 동굴에서 금부처 두 개를 발견해가지구, 그 주워갔다는 그 얘기를 내 옛날부터 내 들었어.


6. 수원에서 이곳까지 뚫린 호랑이굴 

김주명(48, 남)/성복리T 2앞
[성복 2리 길가]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 (1999.5.15)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형제봉에 관련된 말씀을 하여 주었다. 그러다가 생각이 났는지 가리키면서 계속 구술하여 주었다.

 여 군부대 있잖아. 군부대. [조사자 : 이 근처에요?] 어. 요기 독바위라구 군부대 있다구. 거기 보면 수원시 그 저기 청소 처리장, 폐기물 처리장 그 맞은 편에 보면은 거 있다구.
 그 옛날에 큰 굴이 있었어요, 거기가. [조사자 : 굴이요?] 굴이 있었는데. 거 굴하고 통해서 일루 나왔다는 소리가 있더라구. 호랭이 굴하고 맞닿다는 소리가 있어. 어. 굴이. 우리도 굴도 봤지. 여기 수원 나가다가 굴도 있는데 그 굴에서 이렇게 통과하면은 거 호랭이굴 맞닿는, 그 옛날 사람들이 그러더라구.
 그런 소리도 듣고 우린 자랬시니까. 그래가지구 그 도로가 새로 나가지구 인제 그 굴이 다 메꿔지고 없지.


7. 빈대 때문에 망한 성복사지

송산 스님(64, 남)/성복리T 2앞
[성복 2리 대원사]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 (1999.5.15)

 수지초등학교에서 수지읍 70세 이상 노인 분들의 경로잔치 행사 때문에 대부분 어른들이 계시지 않았다. 그러나 혹시 어른들이 계시지 않을까 하고 찾던 중 우연히 절을 발견하고 그곳에 가면 어른들이 계실 것 같아 찾아갔다. 그 곳에서 한 불자님께 우리들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주지 스님께 우리를 소개시켜 주셨다. 그래서 그 스님께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준비하시다가 하던 일을 멈추시고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해 주신 이야기이다.

 원래 그 성복사지가 있었어. [조사자 : 성복사지요?] 성복사지. 에~ 성복사지가 있는데, 그게 인제 그 고려의 현우국사 [조사자 : 현국사요?] 현우. [조사자 : 현우요.] 야. 현우국사가 계셨던 사찰이라구.
 그래 그 성복리는 특이하게 그 자랑할 만한 건 없고, 고려시대 현우국사가 계셨던 그 성복사지. 그게 인제 저~ 광교산 옆에께가 있고. 그래서 인자 그 사찰이 그 유효 때, 전에 근게 고려 말 그때, 아니 조선 말, 조선 말 그때 그 뭐 빈대가 많아 가지고 엉? 예, 그래서 사찰이 폐사가 된 거라.
 그래서 그 사찰, 빈대 때문에 불을 질러버렸다. 그래가지구 폐사가 됐다는 그런 얘기는 있어. 그런데 특이하게 이 동네에서는 이제, 내가 와 있는지 20년이 됐는데도, 특별한 그 무슨 유래된 얘기라든가 그런 것 잘 모르겠더라구.


8. 개 때문에 찾은 금부처

송산 스님(64, 남)/성복리T 2앞
[성복 2리 대원사]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 (1999.5.15)

 스님께서는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곳에 맑았던 개울에 대해 말씀을 하시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부탁하자 구술하여 준 것으로, 말씀 도중 현재의 사회 모습과 삼세(전생, 현세, 내세), 삼악도와 삼선도 등 불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이건 내가 들어서 아는 건데, 그 저 현우국사 사지터 있잖아. 그 터 거기에서 올라가면 이런 굴이 하나 있어요, 굴이.
 그래서 인저 사냥꾼이 그 굴을 이자 뭐 잡을려고, 들어요. 먹으면서 얘기해요. 잡을 라고 개를 굴에다 보냈대. 그러니까, [조사자 : 어떤 개요?] 개. [조사자 : 멍멍 개요?] 엉. 그 사냥개. 그러니께 그 안에서 짖고 난리거덩. 그래서 사람이 뜩 들어가 보니까 금부처가 하나 있다는 거야, 금부처. 그래서 그 금부처를 인자 주워 왔어. 와 가지고,
 “이 금부처를 이자 인사동 거리에 가서 팔면은 돈을 억수로 많이 받을 것이다.”
허고 금부처를 가지고 갔어요. 가지고 가서 이자 여 허니까 어떤 사람이,
 “아, 그것 좀 보자.”
그러더래.
 “아. 이거 참 돈 많이 나가겄다.”
고. 허고 빌딩, 해가지고 빌딩 앞에서 이 분 보고,
 “여기 섰어라고. 섰어라고. 나는 여기 올라가서 물어보고 어, 거시기 해서 잉? 해줄 테니까. 팔아 줄테니까.”
섰으랑께. 이 시골 사람이 모르니까, 빌딩 앞에 가 서갖고 이자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 사람은 고것 가지고 어디로 갔겄어? [조사자 : 팔러 갔어요?] 팔러 가긴, 갖고 도망갔지. 아 빌딩에 문이 하나만 있어. 근께 시골 사람이 앞에서 그냥 올 때까지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 응, 남 좋은 일 해븐 거야.
 아 그런 얘기가 있더라구. 그래서 그런 얘기도 있어. 그런데 인자 모르지. 이 동네 사람들이 그 얘기는 해.


9. 금은 보화가 묻힌 우물

송산 스님(64, 남)/성복리T 2앞
[성복 2리 대원사]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 (1999.5.15)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준 것이다.

 그리고 그 성복사지 옆에 인자 우물터가 하나 있어요. 우물터가 있는데, 에 그 우물터에 옛날에 그 금, 금수저 뭐 그 다음에 금으로 만든 뭐, 그 뭐 화루같은 거 이런 것이 거기다 있다 이거야.
 그래가지구 그 우물을 누가 덮어뿌렀어요. 큰 바위로 우물을 딱 덮어버렸어. [조사자 : 쓰던 걸요?] 어. 이자 그 돌을 놔가지고 우물을 딱 덮어부렀는데.
 그 우물은 인자 팔라고, 지금도 그 우물을 손대면 비가 와요. 어. [조사자 : 고대로 놔둬야 되는 거예요?] 그대로 놔두는 거래. 누가 손대도 못해. 그래도 이 동네 사람들이 그 우물을 손을 댈라고 올라가며는, 올라가서 우물을 파며는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그래서 못하고 또 와버리고, 와버리고.
 지금도 그 우물이 못 쓰게 돼뿔고, 물만 옆으로 흐르는데, 가서 보니까 돌이 덮었는데 손도 못 대겄더라구. 그러면서 그런 얘기도, 그런 얘기도 있더라구.
 근자, 성복사지에 대해서, 대해서는 얘기가 있는데, 이 동네에 대해서는 특별히 몰라(웃음). 음 그래. [조사자 : 그럼 지금도 그걸 손대지 못하는 거예요?] 어, 지금도 손 안 대. 그걸 여러 사람이 손댈라고 어 뭐 했는데, 지금도 손 안 대더라구.


10. 인자한 성종대왕

허현욱(78, 남)/성복리T 2앞
[성복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 (1999.5.16)

 동네에 다니면서 어른들게 이야기해 달라고 청하자 모든 분들이 이 할아버지께서 이야기를 잘 하신다면서 추천해 주셨다. 그래서 15일에 몇 번 찾아갔지만 계시진 않았는데, 다음날이 돼서야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와 단 둘이 계셨는데, 우리가 온 사정을 말씀드리자 웃으시면서 방으로 들어오라고 권하셨다. 그리고 점심때가 좀 지났을 시간인데도 우리들에게 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총각김치가 유난히 맛있었다.

 며칠 저녁을 해도 내가 얘기가 남아요. [조사자 : 아, 정말. 식사는 하셨어요?] 왜 식사를 대접할려고?(웃음) 이것도 워낙에 내가 얘기꾼이라, 얘기꾼이 아니라 좀 몇 가지 알아요. 인자 시작하는 거여 인저.
 왜, 우리 나라 임금님이, 저 이씨 조선에 태종태세문단세 있잖어. 그 지금 지금 이 저 ‘왕과 비’에 나오는 게 그 세종대왕 세종대왕이야, 세조. 근데 세조 담에 세조의 둘째 아들, 아 첫 큰 아아 저기 그게 보며는 큰 아들이 죽었는데, 책에 보며는 장자라구 그랬더라구. 큰 아들 작은 아들. 둘째 큰 아들이 에~ 임금 들어 앉으면서 바로 또 죽었쎄유. 그가 또 덕종대왕이구. 고 다음에 또 둘째 아들이 임금이 돼서 죽었는데 예조대왕이야. 그것도 얼마 못 했어. 몇 해 안하고 그냥 바로 죽었어유.
 그래, 그래고 나서 고 다음에 세조, 저 성종대왕인데. 폭군 연산 알지? 그 연산군의 아버지가 성종대왕이거던. 근데 성종대왕이(기침) 에 그 황후가 윤씨에요. 그 윤씨가 어떡키 사나운지, 그 저 말하자면 에 궁안에 인저 궁녀들을 그냥, 이쁜 궁녀들을 데려다가 많이 놔뒀잖아. 그건 왜 데려다놨느냐 하믄, 저녁에 임금이 순행 돌다가 말하자면 마음에 드는 새악시 있으면 하룻저녁 자고 그렇게 해서, 그래 임금이 아들들이 많아요. 딸이고 아들이. 이 저 우리 저 성종대왕 그 냥반이 18남이여.
 근데 그 성종대왕이 어떻게 정치를 잘 했는지. 인저 해가 저물고 날이 저물무는, 저녁 때찜(쯤)해서 순행원을 들고 서울 장안을 쓱 돈단 말이여. 어떤 집이 연기나 나나, 또 밤이 오라(오래)도록 뭐 말하자면 대문을 열어 놓고 자나.
 그런 걸 살피고 돌아다니는데, 아 하룻 저녁엔 어떤 골목을 지나다 보니깐 큰 기와집이,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있는데 문이 안 닫혔어. 그래서 이 양반이 슬슬 들어가 보니까, 안방에도 불이 꺼져 다 불이 꺼졌는데 저짝 뒷사람에 불이 켜져 있어요. 그래서 가보니까 그 술먹는 소리가 여러 사람 먹는 소리요. 근데 문 앞에 보니까 신발은 한 켤레밲에 없거던, 그래서 문을 똑똑 뚜드리면서,
 “여보시오.”
하고 물으니까, 문을 열어주는데 보니까 술상을 기냥 크게 차려놨는데, 한 사람이 똑 한 사함이 술을 먹으면서 친구들허고 같이 술먹는 식으로다가,
 “아, 자네 한 잔 들게?”
 “아이고 과음하였네.”
저 잔 보고 그래면서 혼자 미친 사람 모냥 그렇게 하고 있거던. 그래서 임금이 물어 보았어요.
 “어떤 이유냐? 이왕이면 친구들 여러 사람이 앉아서 술을 먹는 식인데, 으째 그러냐?”
그러니깐.
 “아이 영감님은 어디 사람이시유? 어디 사시오?”
그러니깐,
 “난 대궐 앞에 사는 이 서방이라는 사람인데, 이것 당신네 집에 불이켜져서 내 들어왔소.”
 “애기하면 기가 맥힙니다.”
 옛날에 과거 있잖아, 과거. 이 양반이 과거를 열두 번을 보고 이번엔 열세 번째 마지막 봤는데, 볼 적에 친구들하고 약속을 했어요.
 “내가 과거에 급제를 허믄, 여러 사람들이 나 말하자면 축하주를 해 줄거냐?”
그래선 이 사람이 과거를 봤는데 열세 번째 떨어졌어. 그래서 자기가 당선된 것처럼 친구들이 앉아서 술 권하는 식을 그렇게 하더라 이 말이여.
 그런게 임금이 앉아서 가만히 생각하니깐 ‘세상에 저런 사람을 좀 살려야겄다.’ 인제 내가 과거에 떨어져서 말하자면 그냥 벌써 가족은 친구 저 친정으로 보내고, 자기는 벌써 개나리 봇짐을 싸놓고 그렇게 술 놓는 식으로 허고, 그날 밤으로 그냥 아무 절이나 떠난 대요. 그래서 임금이 허는 말이,
 “자, 내가 대궐 앞에 사는 이첨지라는 사람인데, 보니까 과거를 새로 본다고, 아주 급시로 본다고 써 붙였는데 내일 가서 그 과거를 보시오.”
말이야. 그 임금이 마음대로 하는 거니까.
 “근데 과거 문제도 쉽디다. 아주 쉬워. 대당댁 그 등우에다 이 갈매기 구자를 하나 떡 써 놓고 ‘이게 무신 자요?’ 할 적에 그 ‘갈매, 갈매기 구자 올습니다.’ 이렇게 허며는 당선이다.”
이거여. 근게 그 이튿날 영감이. 이 사람이 인저 대궐 앞에 떡 갔어요. 아 과거에 급하게 과거 본다고 써 붙였거던. 어 어끄제 본 그 영감 말이 옳단 말이야. 근데 그저 갈매기 구자를 외우면서 들어갔데요. 근데 저 들어가면서도 ‘갈매기 구, 갈매기 구구’ 허고 들어갔는데, 또 그거 내놓으면서,
 “이게 무슨 자냐?”
할 적에는 저놈의 께 구잔 구잔데, 심, 당체 무슨 구잔지 그렇게 잊어부렸어요. 왜 그랬냐면 이 사람이 아주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야. 아 그래선 낙제다 이거여. 그거 못 알켜냈으니깐 낙제 아니여. 대궐 밖에 쓱 나오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 헐헐단심을 하고 뛰어오더래요.
 “아아, 여보! 여보!”
 “아 왜 그러냐구. 바빠서 죽겠는데, 지금. 과거보러 들어간다.”
고 근께. 이 사람이 붙들고선, 과거 문제 쉽디다 이거여.
 “내가 건망증이 심해서 갈매기 구자를 못 밝혀내서 내가.”
 아 그게 아니라, 그걸 못 밝혀내니까 임금이, 뜩 저 병풍에 갈매기 그런걸 똑똑 두드렸단 말이야. 게 이 사람은,
 “똑똑이 구자.”
라고 그랬어요. 그걸. ‘갈매기 구’자를 ‘똑똑이 구’자라고 그랬으니깐 그냥, 정말 떨어져서 나왔, 나오는데 한 사람이 그렇게 들어오더라 그 말이야.
 “그러믄 내가 과거보고 나올 때까지 여기서 좀 기다리시오.”
그래 이 사람이 과거를 보러 들어갔어. 어 인제 어쨌든 그 문제를 낸거니까, 한 사람이라도 최후 불러야 될 것 아니여. 그래선 그 사람이 들어가선 서신께,
 “이게 무신 자냐?”
고. 딱 내놓으니깐, 이 사람이 허는 소리가,
 “거 시골 사투리로는 똑똑이 구자요, 서울 말로는 갈매기 구자 올시다.”
이래 이렇켄 임금이 있다가, 아까 그 사람도 맞은 사람이라고 말이야.
 “맞었다고 불러 들이라.”
고. 아 그래서 두 사람이 합격이 됐데요. 그, 그말이 어떻게 해서 났느냐 하면은,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 하나 잘 되면 고만인데 남을 살리지 않는다 이거여.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가 당선이 됐으면서도, 그 사람은 또 말을 고렇게 해가지고 시골 사투리 서울말 이거 글자는 맞았다 이거여. 그래니깐 그 사람도 당선을 시키고, 자기도 당선을 시키고. 그래서 두 사람이 벼슬 해 먹었어요. 인제 요간 요거 하나.
 [조사자 : 근데 옛날에 임금님이 돌아다니면서 불이 켜지고 대문 열린데 들어간다고 했잖아요. 그거 왜 그런 거에요?] 에. 그거 도둑, 도둑 맞을까배. 그러니깐 혹시나 몰라서 말하자면 대문을 열어놓고 자며는, 인제 도둑 맞으니까 ‘이 문을 닫고 자라.’
 아 그래고 이 집이 연기가 나나? 안 나나? 그건 조석을 못 끓이면 연기가 안 나거던. 그러니깐 밥을 못 허며는 연기가 안 나요. 그러니까 연기 안나는 집이, 이 양반이 그 집을 이리저리 쌀이라도 참 원조해 주고, 그렇게 참 정치 잘 했어요, 성종대왕이.


11. 사이가 좋은 거지 형제

허현욱(78, 남)/성복리T 2앞뒤
[성복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1999.5.16)

 앞의 성종대왕의 순행을 돌다 불쌍한 선비를 과거에 합격시켰다는 이야기를 끝내고 나자, “아 그럼 한 마디 가지고 안 되지. 두어 마디 해야지.” 하시면서 계속 구술하여 준 것이다.

 전에 저 경상도 어는 지방에 참 한 백여 대촌이 사는데, 그 동네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아들이 열 살이요, 둘째 아들이 아홉 살 연년생인데.
 고렇게 두고선 근께 세 살 먹어서부텀 독선생을 두고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이 글방, 옛날엔 그 글방이 학교에요. 동네 사람 여러 사람이 모여 공부하는 데가 그 글방인데, 학교지. 근데 이이는 돈이 많고 부자니까 선생 하나를 들여서 자기 아들 둘만 가리키는 거여. 그애 인저 애들이 논어 맹자 다 읽고 아주 참 그 유식하게 많이 배웠어. 열 살 만에 많이 배운 거예요.
 아 그래서 자기 아버지가 도아갔거던. 그래 돌아갔는데, 그 선생, 선생한테서 공부를 애들이 허기는 허는데, 아 이놈의 마나님이 선생님하고 눈이 맞았어요. 눈이 맞았어. 그런데 둘이 아주 똘망 재미나게 살아야 하는데, 아 이놈의 애들이 걸리적 거리거던.
 “이놈의 애들 때문에, 이거 아주 애덜을 죽여 없애야지. 그래야 우리 둘이 재미나게 산다.”
고. 애들 죽일 연구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동네 왜 돼지도 잡고 뭐 꿩도 잡고 하는 푀수가 하나 있어요. 그, 그 푀수보고 짰어.
 “자. 우리 애들을 어디어디로 보낼테니, 당신이 가서 걔들만 죽여 주며는 논 두 섬지기를 준다.”
 “그러냐구. 그렇게 허마.”
그래고선 그냥 앓는 시늉을 이 어머니가 하면서,
 “나는 죽겄다고. 누가 그래는데 닭소리 안 들리고 개소리 안 들리는 산꼴짜기에 가서 어~ 고사리를 꺾어다 그걸 삶아 먹으면 내가 낫는 대는데, 가서 그걸 꺾어 오너라.”
근께 애들이 효자여. 그래 이날 식전 밥을 해서, 쌀 달래고선, 밥을 싸 짊어지고 형제가 참 여길로 치면 저 산골 개소리 안 들리고 닭소리 안 들리는 데면 참 무지무지한 산골 아니여. 거기 가서 둘이 인저 고사리를 꺾는 거여. 그냥 조곤조곤,
 “우리들이 꺾어서 어머니 약을 해드려 어머니 얼른 나으셔야지, 이거 큰일 났다.”
고 그러면서. 근데 푀수가 인저 죽일라고 산에 올라갔어요. 아 내려다 보니까 그 꼴짜구니에서 얘들이 그냥 둘이 지어머니 그 얼른 고친다는 그런 참 얘길 해가면서 하는 걸 보니까 도대체 죽일 수가 없거던, 그 사람이. 근게,
 “이리 오너라.”
그래가지고 걔들을 불러다 놓고,
 “너희 어머니가 너들을 이렇게 죽여달라고 그래서 내 죽이러 온 건데, 차마 너들한테 총을 못 들이대겠으니, 너들 윗도리 하나씩 벗어라.”
말이야. 벗어서 땅바닥에다 놓고 거기다가 총을 쏘아선 이 푀수가 그걸 해 짊어지고,
 “너들은 그냥 두말 말고 그냥 서울로 향해서 가라. 그냥 도망을 가라.”
말이야. 그래서 형제가 둘이 천상 지 어머니가 지들을 싫어하니 도망 안갈 수 있어. 그냥 서울로 그냥 빌어 빌어 먹어서 그냥, 아마 한 일 년 이상을 두고서 서울을 걸어 올라간 거여. 걸어 올라가니 뭐 아는 사람이 있어 뭐 있어. 근데 둘이 형제가 날마다 같이 빌어 먹어. 대문 깐에 가서,
 “밥 좀 주시오.”
허고. 그래니깐 형젠데 한 집에서 밥 주는 걸 가지고는 항상 모자라거던. 그래서 서울 보터고개라고 한람동 꼭대기 보터고개 있어요. 그 너머는 장충단이고. 고기 가서 둘이 의논을 했어요.
 “야, 우리 형제가 된 걸 빌어 먹으면 정말 어렵다. 그러니깐 너는 남문 밖에 가서 읃어 먹고, 나는 남문 안에 가서 읃어 먹자. 그러고 꼭 일 년에 두 번씩만 만나. 네 생일날하고 내 생일날하고.”
 근데 이 에 어떻게 동생 생일은 만나서 같이 먹고. 형 생일날이 아마 지금으로 일면(치면) 한 시월달 쯤 이렇게 됐는데.(Tape 뒷면에 계속) [조사자 : 시월요?] 시월달쯤. 그렇게 됐는데, 에~ 그 집에서, 아니 이 사람이 인저 어떤 큰, 비가 구중구중 오는 구죽쭉허게 오고 그러니깐 어디가 잘 데 있어. 큰 소슬대문 옆댕이 가서 인저 자는 거여. 둘, 혼자, 형이.
 아 자고 있는데, 아 인저 이 사람 정신없이 자는데 안에서 대감, 그 큰 대감 집이야 바로. 대감집 문간에서 자는데, 대감이 꿈을 꾸니까 아 소슬 대문 바깥에서 그냥 청룡 황룡이 그냥 막 꿈트러져 꿈에 올라가더래요. 그래서 놀라서 깨보니까 꿈이거든. 하인을 불러 가지고,
 “바깥에 대문 밖에 무슨 개가 있던 거지가 있던 그냥 가 데리고 들어오너라.”
이 말이야. 그래 하인이 나가 보니까, 아 청년이 하나, 저 뭐야 아이가 하나 빌어먹는 그지가 웅크리고 자거든. 그래 그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어요. 데리고 들어가선, 그저 밤에 난리가 난 거지, 그냥.
 “일던 물 디어라(데워라).”
 해서 그냥 그 놈이 크게 될 놈인 줄 아고. ‘물 디라’고 그래서 목간을 시켜서 인저 해놓으니까 얼굴이 참 잘 생겼거든. 그래 그때만 해도 열 살 열 한 살이면 장가 들일 때에요. 그래 얘를. 그 집이 또 아들도 없고 무남독녀 외딸이여. 아 두 내우, 인제 대감 두 내우분이 의논을 한 거여.
 “우리 사우 삼자.”
고 말이야. 시월 달인데 자기 생일도 몰르지, 잊어부렸지. 거기서 공부해가면서, 공부도 참 뭐 그냥 가르쳐 주니까 공부도 그냥 무불통지여. 그래서 그 집에서 사우를 삼아가지고 인저 결혼을 해서 첫날밤을 자는데, 새악시하고 둘이 인저 첫날밤을 떡 자는데, 가만히 눈을 감, 눈을 감고서 생각하니까 그날 저녁이 자기 그 날이 생일이여. 제 생일날이여.
 아 제 동생하고 만나기로 하고 약속을 했는데 큰일 났지 뭐여. 그냥 자다 말고, 그냥 색시보고 얘기도 안하고 그냥 들고 냅뛰는 거여. 보터고개로. 거기 가 보니까 동생이 기다리려니 허고 생각을 하고 갔는데 보이질 않터라 그 말이여. 거기 나무가 큰 게 하나가 있는데, 보니까 목을 매달았더래, 동생이.
 그래 쫓아 올라가선 그냥 끌러선 만져 보니까 몸땡이가 뜨뜻하거던. 아직 죽진 않았어요. 그런게 드리쳐 허고선(들쳐업고선) 새악시 방으로, 자기 새악시 방에 들어가선 그 참 요이불에다가 그냥 푹 묻어선 놔니까 깨더래요. 깨나선, 이 자기 동생 하나 살릴라고 허기는 했는데, 이거 처갓집한테 여간 미안한 일이 생겼어요. 그래 새악시가 들어가선 자기 부모님한테 가 보, 보고를 했어요.
 “이상시럽다고. 신랑이 밤에 자다 말고 뛰어나가더니, 왠 그지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선 살리긴 살렸는데 이상하다.”
고 그래. 그 사우를 불러서 인저 얘기를 허니깐, 그런 사실 얘기를 하거던.
 “동생하고 오늘, 내 생일날 생일인데 동생하고 약속한 일이 있어서 가보니까, 정말 목을 매서 내가 참 얘기도 못하고 이렇게 업고 들어와서 그냥 내 방에다 재웠노라.”
고. 거 살리긴 살렸어. 근데 그 보따리를 뒤져보니까, 그냥 댕기 읃어서 좋은 놈은 형하고 같이 먹을라고 싸고, 나쁜 것만 먹고. 근데 그게 그냥, 그레 시월달이래도 먼저부텀 해서 읃어 쌓기 때문에 곰팡이 씰은 놈도 있고 썩은 놈도 있고 그렇더래요. 에 그걸 그냥 그 집에서 이걸 좋은 음식아라고 말이지, 만조백관이 모여 가지고선 그냥 그걸 씻어서 그냥 죄들 먹어치우고 그랬데요.
 근데 걔도 또 역시 목간을 시키고 모두 해보니까, 걔도 그렇게 미남이거든. 걔도 또 공부를 시켜보니까 걔도 그렇게 공부를 잘 해. 그래서 그과가 뵈이는 그 대감한테도 또 딸이 있어서, 그 양반이 사우를 삼았어.
 그래서 인제 과거를 보는데 애들 둘이 다 과거에 급제를 했어요. 하나는 경상남, 형은 경상감사를 따고, 동생은 전라감사를 따고. 근데 도지사 따는 거는 그때만, 그때만 해도 도지사. 그렇게 따 가지고 의(어)사회를 꽂고선 그냥 일가치례 하고선 길을 막 고향에 가는 거라. 우선 어머님부텀 뵈야 됐어요.
 그래서 형제가 막 그냥, 그 뭐 감사 둘이 내려가는데, 하인들도 여간 많이 쫓아 내려갔을 거여. 암 길이 메어지게 하고 들어가는데, 바로 그 자기네 집 앞으로 가거던. 자기 어머니가 앉아서 기다리니까, 가 서서 보니까 아이고 자기네 집 앞으로 오거던.
 ‘아 이거 이거 장사가 나서, 내가 인제 아들 형제 죽이고 내가 죽나보다.’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 들어가더니 자기 어머니한테 형제들이 그냥 절하고, 그때서 자기 어머니가 잘못이, 잘못을 생각하는 거여. ‘내가 왜 내 아들들을 그렇게 했, 했는가.’ 그러나 이 아들들 형제들은 어머니를 고맙게 생각을 하는 거여.
 “어머니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기 땜매네, 내 우리 둘이 이렇게 크게 됐다.”
그래서 어머니를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효자 노릇허고 정치 잘하고 그렇게 했대요. 이거 뭐 얘기라고 좋지 않죠? [조사자 : 재밌어요.] (웃음)


12. 사라진 돌부처

허현욱(78, 남)/성복리T 2앞뒤
[성복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1999.5.16)

 도중에 할아버지의 손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돈을 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우리처럼 이렇게 대학생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성불리라는 덴데, 요 위 동네가 성 성부리라는, 성부리라는 동네에요. 근데 저 위 광교산에 절터가 있는데, 그 절터가 옛날에 성불사였데요. 성불사. 그래서 성북골, 성북골 성불.
 근데 절터 지금도 있는데, 보물은 안 나와, 지금. 보물을 캘, 캘라고 가며는 뭐 비가 오고 뭐 그랬다고 그러는데. 보무을 나도 좀 혹히 있나하고 주, 주으러 가봤더니 없고.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뭐 부처하고 돌부처하고 뭐하고 있으므는 산다고 야단해서, 근께 그저께쯤 그저께쯤 우리 큰아들 뭐 친구 애들이 산으로 꼴 비러 갔다가, 그 돌부처를 하나 놓고선 막 장난하고 그랬대나.
 그래가지구 그저께 봤데니까, 오늘 사러온 사람이 있씨니까 그거 갖다가 팔아 먹는다고선 절로 올라갔는데 없어졌어요. 같이 노은(놀은) 자리 풀 뽑아놓, 풀을 뜯어다 놓고 아주 뭐 우여고 뭐고 그러는 식으로 장난하고 놀았다는데 부처는 없어졌어요.
 어 이상하데 거. 그런 보물은 그냥 있다가도 없어지고 그래는 모양이여.


13. 도깨비 일화

조돈희(70, 여)/성복리T 2뒤
[성복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1999.5.16)

 옆에서 옷을 다리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도깨비 이야기를 꺼내시길래 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쑥쓰러워 하시면서 안 하시겠다고 그러시다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조사자 : 얘기 좀 해 주세요. 도깨비.] 아이 도깨비 얘기할 줄 몰라. [조사자 : 지금 하셨잖아요. 저희 어렸을 때 막 할머니들이 손자에게 해 주시던 얘기 있잖아요.] 다 잊어먹었어, 나도.
 [조사자 : 도깨비불 그런 거 보셨어요?] 도깨비 불이 그냥, 저기서 그냥 퍼런 불이 쫘악 내려와요. 산을 타고. [조사자 : 그게 사람 죽으면 나오는 불이라고 막 그러는데.] 아 몰라. 도깨비 불이니까 도깨비들이 끌고 댕기다가 그냥 어디쯤 가면 집이, 집도 몰르고, 그랬다가 환하게 밝았대나 봐. 퍼런 불이 왔다갔다 그러더래. [조사자 : 파랗게 보여요?] 응.
 우리 작은 아버지가 약초 캐러 갔는데 그냥, [청취불능] 에 가서 거시 했는데, 그냥 도깨비불이 그냥 파란게 촤악 나오더래잖아. 그래가지구 밤새도록 돌아다니다가 아, 어딘지 갔데니까, 아치이니까 참, (녹음이 지워짐) 작은 아버지가 술 처서(취해서). 음 그렇게 도깨비한테 홀려 다니셨대. 깜빡하면 죽는 거여. 그 도깨비가.


14. 지하도적 퇴치 실화

허현욱(78, 남)/성복리T 2앞뒤
[성복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1999.5.16)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옆에 있던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듣고만 있었다.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생각이 났는지 스스로 나서서 이야기를 계속하여 구술하였다.

 도깨비불은 몰라도 이거 거짓말 같은 얘긴데. 내가 그 무서운 얘기 하나 허지. [조사자 : 오싹한 거 아녜요?] (웃음) 오싹할 것도 없지.
 아, 옛날에 한 사람이 장가를 들어, 들어서 길을 차려 와가지고 첫날밤을 자는데, 왠 남포소리 같은 게,
 “꽈르릉! 꾸르릉!”
울리더랴. [조사자 : 남포요?] 남포소리 같은 게. [조사자 : 대포요?] 어. 대포 소리같은 게. [조사자 : 아아.] 그게,
 “꽈르릉! 꽈르릉!”
울려서 점점 가깝게 들리더니, 어떤 그냥 무섭게 이렇게 생긴 놈이, 사람은 사람인데 무섭게 생긴 놈이 문을 버썩 열더니, 그냥 자기 새악시를 그냥 안고 내빼거던. 근게 첫날밤에 색시를 잃어버렸잖아.
 거 이 사람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냥 분해 죽겄어. 근데 이눔을 어디가 찾느냔 말이야. 근데 그 그날부터 찾아 나선 거여. 자기 샥시를. 찾아 나섰는데 어딘가 어딘가 그냥 발붐발붐 그냥 동네마다 찾아 돌아댕기고 그러는데, 어떤 동네를 떡 가니까는, 그런 얘길 하니가,
 “아~, 그 눔이 그랬구나!”
그러더래.
 “그 눔이 어떤 눔이냐?”
그러니깐,
 “이 산 넘어 가면은 거기 그 도둑놈이 있대는데, 일반 사람은 거기 못 들어간다.”
이 말이여 그냥. 이렇게 삼태기 같이 생긴 동넨데, 거 산이 상당히 높은데 그냥 대나무가 그냥 총총 들어서서, 도대체 그 그 새로 거길 갈 수가 없어. 그래 이 사람이 그냥 톱을 하나 구해 가지고 그 대나무를 잘르면서 그 산을 참 산을 넘어갔어.
 넘어가서 그 아래 내려가 보니까는, 그냥 동네가 요렇게 삼태기 안같은게 아주 기와집이, 뭐 그냥 큰놈의 기와집이 있는데, 아 이 뺑뺑 돌아도 당체 들어가는 문이 없더래요. 그래 한 쪽에 보니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샘문이 하나 있더래요.
 고기 나와서 물 퍼가는 사람이 있는 모냥 같아서. 이 사람이 그 샘문우에 저 뭐 뭐야, 오리나문가 무신 나무가 하나 있어서, 그 나무 꼭대기에서 가만히 숨어서 있으니까, 한 여자가 물을 길러 나오더래요. 그래 이 사람이 그 나뭇 잎사귀를 쭈욱 훌터선 물에다가 떨어뜨렸어. 그러니까 이 여자가 가만히 이렇게 보더니,
 “사람이거든 내려오고, 짐승이거든 어디로 가거라.”
그래서 이 사람이 내려갔어. 내려가니깐,
 “어떤 분이요?”
묻더래.
 “그런게 아니라, 나 사실이 여편넬에 장가 들어서 첫날밤에 잊어 부렸는데, 그걸 찾으러 왔는데, 여기 여기 이눔이 가져갔다는데 그걸 찾으러 왔소.”
그러니까는,
 “그러냐.”
구. 자기도 역시 그렇게 첫날밤에 거길 붙들려 온 사람이다 이 말이여. 근데,
 “요새 여자 하나, 요즘에 여자 하나 데려고, 데리고 들어오더니, 나는 내쫓아서 나를 하인 하인으로 시키고, 그 여자하고 지금 산다.”
이 말이여. 그 무지한 놈이.
 “그러냐.” 구.
 “일리 들어오라.”
구. 데리고 들어오더니 큰 광에다가 집어넣더래요. 집어넣고,
 “거길 그냥 아뭇 소리 말고 있으라.”
고. 근데 밥 먹을 꺼, 그런 음식을 줘 가며 한 끼에 물을 마 지금에 이르면 정종 병 하나씩을 갖다 떠다 줘요. 그 물을 먹고 그렇게 장사가 되는 거여. 그 물, 그 물을 먹고. 근데 그거 그 물을 먹고선 있으니까, 한 한 달 두 달 이렇게 먹고 들어 앉았는데, 그냥 그 안이 부듯하게 그냥 몸뚱이가 살이 찌더래요, 이 사람이. 괜히,
 “이눔의 새끼! 내가 인저 원을 푼다.”
고. 인저 그 여자한테 그러니까,
 “아니라고. 좀 더 있으라고 더.”
물을 또 갖다 먹이더래요. 그래 먹고선,
 “인저 나와 나오슈.”
 말이여.
 “그눔 이길 자신 있다.”
구. 그 문을 열었어. 이 자식이, 그 무지한 놈이 돌다가 보니까는 그 창고문이 열려 있거던. 그 문을 뜩 열어 보니까 웬 자식이 여기 들어 앉았어.
 “너, 일루 나와.”
나갔어. 나가더니,
 “야 너도 힘꼴이나 쓰것다. 한 번 해 보자.”
 “너 임마! 내 마누라 내 놔.”
그러니깐.
 “글세 내놓고 안 내놓는 건, 니가 나를 이기므는 네 마누라를 가져가고 [할머니 : 재밌는 얘기 좀 해 주지.] 지므는 너는 내 손에 죽는다.”
근데 대포(거짓말) 얘기지. 말하자면 이만한 무쇠공이 하난 있는데,
 “이걸 떨어뜨려서 아니 내던져서, 하늘로 집어 던져가지구 맨 나중 떨어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근데 먼저 그 주인 놈은 떨어뜨렸는데, 아마 한 두 시간 있다 떨어지더래. 근데 이 사람은 집어던지니까 하루만에 떨어지더라나. (웃음) 그렇게 힘이 장사였어요. 그래선 이제 다하고 그러니까는,
 “음 그럴 껏 없이 우리 싸우믕ㄹ 하자고. 칼 가지고 해서 너 누구 모가지가 먼저 돌아가던지 그러곤 이기자.”
그래 두 놈이 그냥 싸우는데, 하늘 하늘까지 그냥 날라 올라가면서 싸우는데 그 물 떠다가 이 사람 맥인 사람도 치마폭에다가 재를, 고운 고운 저기 재를 들고 나가섰고, 또 저쪽 에펜네도 들통을 들고 나가섰는데, 그냥 칼날이 번쩍 하늘 반쯤에서 번쩍하더니 대가리가 하나 떨어지는데 보니까 주인 놈의 대가리더래.
 거기다가 이 물 떠다 준 사람, 그 사람이, 그 여자가 재를 갖다 끼얹었어. 재를 안 낀지면 도로 그 눔이 올라가 붙는데요. 그런 장사들은. 그래서 그냥 재를 갖다 끼얹으면 못 붙어.
 그래서 이기고서는, 창고가 여럿인데 보니까는 그냥 창고마다 그 여자들이여, 그냥. 남의 집 저 첫날밤에 데려다가 그냥 하룻밤 자고, 또 가서 데려오믄 이쁘믄 그눔 데려가 살고, 이건 갖다 가둬 놓고 그냥 이지랄해서. 그런 그런 나쁜 놈이 있더래요.
 그래선 그 여잔 물 떠다 준 사람은 자기 부인이 되고, 잊어부린 여자는 거기서 죽이고. 그렇게 해서 손잡고 살았더래요.(웃음)


15. 남편의 인덕으로 부자된 첫째딸

조돈희(70, 여)/성복리T 2뒤
[성복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1999.5.16)

 할아버지께서 계속하여 혼자 말씀을 하시었다. 그러자 옆에서 계시던 할머니께서도 앞의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이 나셨는지 처음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셨다.

 (큰딸이 이제) 지 아부지 환갑 잔치에 왔대. 그렇게 환갑잔치가 왔는데, 지 아버지가 가니까는 그냥 쪽지게 차리더래. 쪽지게 차려놓고 그냥 상 받고 야단이더래. 그러니까 어렵잖아. 내가 없이니까 갈게 없잖어. 그러니까 인저 개나리 봇짐을 이렇게 싸가지고 가면서는,
 “아이 여보! 개나리 봇짐을 싸가지고 갑시다.”
그러고 봇따리 하나를 딱 짊어지고 갔대. 작은애 집이를, 친정에를, 아버지 환갑인데. 근데 그냥 잔치꾼이 많고 참 잘 살더래. 그런데 인저 이이가 먼저 갔나 봐, 큰딸이 먼저 갔는데 그냥,
 “먹던 상에서 먹으라.”
그래구 먹으래더래. 그냥 ‘여기서 먹으라’ 그러고 반가워하지도 않구. 그러니까 저 저기, 그때 저 잘 사는 딸이 왔잖아. 인저 둘째 딸이라는 작은딸이 왔는데,
 “야, 평풍 갖다 쳐라. 자부덩 갖다 놔라.”
그러더래. 작은 사우가 오니까. 부잣집 사우가 오니까. 그래고,
 “상 다시 보라.”
고 그러고. 장인 장모가 그냥 받아들이고 야단이더래. 장인 장모가 그냥.
‘상도 다시 잘 받아다 주라’ 고 그러고, 큰 사우는 먹던 상에서 먹게 그냥두더래. 그래서 딸이 인제 그랬대.
 “여보! 여보! 당신은 오장동 없냐구. 여보 이리 나오게.”
그래. 이제 마누라가, 색시가.
 “왜 나오래냐? 응, 친정에 왔는데 바로 가냐구. 그러니까, 부모가 그러는 걸 뭘 오해를 사냐.”
인저 친정 어머니가, 인저 이 딸이,
 “오해를 사냐구. 어머니가 그러는 걸 뭘 오해를 사냐구. 그럼 친정 부모를 버리냐고 말이야. 잉? 다 끝까지 보고 가자.”
고 그러더래. 저기 장모가 그러는 거지, 아니 사위가 그러는 거지. 사위가 인저 ‘끝까지 보고가자’ 고 그러니까, 딸이 더러워 못 있겄잖아. 그 칭(층)하를 그렇게 하니까. 사위는 똑같은데, 있는 사위가 오니깐 그냥 상을 다시 그냥 차리고 그냥, ‘자부덩을 갖다 놔라, 돗자리를 갖다 깔아라.’ 그러더래.
 그러니까 이 색시가 그깐(그러니까) 참 분하고 아주 못 보겠더래. 그래서 ‘여보! 이리 나오라’ 구 그러니까, 그 사위는 먹는 거여, 배 고프니까. 그냥 배 고프니까 먹지 뭐여. 그러니까 인저 그 여자가 나와서,
 “여보, 갑시다 그러더래. 그거 도로 짊어지고 오라고. 가자.”
구. 그래 도로 짊어지곤 왔대, 집이를. 와 가지고는 어떻게 할 수 가없어서, 저 옛날이지 뭐, 선비 이 아랫집 가서 하전을 파는 거여. 하(화)전 모를 거여. 그 괭이로 파서 산에 가서 땅을 파는 거여. 이 저 하전을 팔았대, 둘이.
 “우리도 이렇게 파서래도 스슥 이렇게 심어서 먹고 살자구. 우떻게 하냐.”
구. [할아버지 : 그 다음 얘긴 내가 허지. 당신 고거.] 부모는, 부모는 저기라구 그래드래. 그래 가지고선 있는데 중이 지나가더래. 중이 둘이 지나가더니,
 “하, 여기다가 집을 지며는 어디로 문을 한을 하고(향하고) 어디로 여렇게 하면 잘 살겠다.
그러더래, 중이. 그래 가만히 들으니까는 중이 그러더래.
 “낮말은 쥐가 듣고 아니 밤말을 새가 듣는다고 그러더래나. 그런 소릴 왜 하냐구. 알켜(가르쳐)주지 말라.”
구 그러더래. 사람이 없는 줄 알고 한거여 인저. 그러니까는 영, 근디 가만히 있다가,
 “아르켜 다라.”
고 그랬대. 그러니까는,
 “그것 봐. 아르쳐 줘야지. 해지 말랬지 않냐?”
구. 스님이 하나 그러더래.
 “아르쳐 주고 가야지, 어떻게 안 아르쳐 주냐?”
그러더래, 스님이. 그런데 해니까는, 파다파다 보니까 꼬부랑 암소가 와서 그냥 돈을 한가득 지고 와서 거기 와서 엎어져 죽더래. 꼬부랑 암소가. [조사자 : 암소요?] 어 옛날에. 돈을 지고 와서. 그래서 인이가 인저, 인이가 인저 지서에 갖다 준 거여. 저기다가 갖다가, 면에 갖다가,
 “이렇게 돈이 왔시니, 이렇게 꼬부랑 암소가 이렇게 됐시니까, 이 돈은 내께 아니니까 여기다 둔다고. 임자가 나서면 주라.”
고. 마음이 곧지 뭐여. 그러니까 그게 복이 온 거여. 인저 갖다 주고 있시니까는, 암만 있어도 임자가 없더래. 암만 몇 년을 둬도 임자가 없더래, 이게. 그러니깐 그 준 면에서,
 “가져 가라.”
구 그러더래.
 “이건 당신 복이라구. 당신, 찾는 사람이 없으니까 당신 복이라.”
구. 그래서 그걸 가져가서 그냥 집을 거기다 고래등같은 집을 잘 졌대, 그냥. 잘 짓고 그냥 하인을 몇을 두고 그랬대, 그이가. 그런데 인저 하두 저렇게 되니까,
 “우리 친정에 가 보자.”
고. 딸이. ‘친정에 좀 가 보자’ 고 그랬대. [조사자 : 부자 됐으니까요?] 잉.
 “이렇게 부자 됐시니까 우리 친정에 좀 가 봅시다. 개나리 봇짐만 지고 가 봅시다.”
그랬드래. 예전마냥 그렇게 지고 갔대, 친정에를. 지고 가면서 그랬대. 어머니 아버지더러.
 “우떻게 왔냐?”
고. 반가와 하지도 않고 그러더래. 그래서 인저,
 “우리 집 우떻게 사냐?”
그러더래. 아버지가. 어머나,
 “아, 이것 못 보냐구. 개나리 봇짐 지고 맨날 그 타령이라구. 에 뭐 별 수 있냐구. 없는 사람이 별 수 있나?”
고. 하면서 점심을 해 줘서 먹고 왰대. 그러면서,
 “우리 우떻게 사나 어머니 아버지 좀 와 보슈.”
그러더래. 즤 어머니 아버지더러.
 “우리 집 와 보슈.”
그러더래. 그런데 인이가 맨날 그렇게 사니까 안 간거여. 그래서 안 갔다가 ‘으떻게 사나? 그러니까 진짜 으떻게 사나? 그대로 맨날 사나?’ 그러고 아버지가 갔대. 어머이 아버지가 갔는데, 물어 물어 갔대. 가니까는 세상에 그 성(姓)을 묻고 그 상우 이름을 대니까는,
 “이 집이라.”
고 그러더래. 세상에 안이 그냥 대문이 열두 대문도 더 되더랴. 아주 그렇게 잘 산대, 하인을 두고. 마루에서 왔다갔다 하더래, 딸이. 그래서 인저 불르니까 나오더래.
 “아니, 니가 으떻게 해서 이렇게 부자가 됐냐?”
고 그러더래. 그러니까,
 “웬 일이냐?”
고 그랬댜. [청중 : 거기가, 그러니까 그 여기가 이동면 샘골이라는 디여. 샘골.] 옛날이 그랬지. [청중 : 아니 옛날에 용인군, 용인군, 바로 용인 살면 그 이동면 고개 있잖아, 고개. 고 넘어가며는 샘골이란 동네가 있어.] 그것도 우리 작은 어머니가 해 주었었어.
 [청중 : 그것 그것 있는 말이여. 샘골이라는데 그때는 그 저 사람이 안살고, 말하자면 그 그냥 산이 그냥 우거지고 그래. 그랬을 적이야. 그 사람들이 거기 와서 하전 밥 파먹고 살다가 그렇게 됐는데, 그 절 중이, 그 아래 저기 그 이동면 저 덩굴, 덩굴이 아니라 저 뭐여 굴암, 굴암절 중들이 그렇게 가르켜 준 거여. 굴암절 중.
 [조사자 : 이것 실제 있었던 거예요?] 그럼. [청중 : 실제 있었어. 거기 거기 우리 어려서두 그 부자가 그 이경하라고, 경하집이라고 아주 부자집이 여기 와서 땅 사고 그랬었어요. 그건 뭐 실지 있었던 얘기여. 그런 그 사람들은 경상동에서 온 사람들이여.]


16. 구렁덩덩 신선비

조돈희(70, 여)/성복리T 2뒤
[성복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1999.5.16)

 앞의 이야기 도중에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하시다가 잊어버렸는지, 앞의 이야기가 끝나고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당신 손녀의 사진을 보여 주시겠다며 앨범을 찾으셨다. 그래서 앞의 이야기를 마친 제보자에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다시 청하였다. 처음과는 달리 적극적인 자세로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전에 한 번을 그러더래. 우리 작은 엄니가 가마니 치며 새끼 꼬며, 얘기를 잘 해 줘. 한번은 그러드래.
 땔이, 딸이 삼 형젠데. 삼 형젠가 사 형젠데. 인제 숯장사를 했대. 즤 저기 엄마 아부지가 숯장사를 했대. 숯장사를 했는데 저기 그러더래. 딸이 삼 형젠데, 근데 그 집에가 구랭이가 엄청 큰게 있대. [조사자 : 구렁이요?] 잉. 구랭이가. 그러면 인제 그러더래.
 “나 저기 있는 저 색시 장가 안 들여주면, 엄마 뱃속으로 도로 들어갈꺼라.”
구 그러더래. 구렁이가 그렇게 말을 해드래. ‘엄마 뱃속으로 도로 들어간다’ 구. 그러니까 큰일 났지 뭐여. 엄마 뱃속으로 도로 들어간다니까 큰일 난 거여, 어머니가. 기가 맥히지 뭐여, 기냥 말을 하더래. 그래서 인제 그랬대. 딸이 왔길래, 큰딸이 왔는데,
 “야, 아무개야! 너 저기 있는 구렁덩덩 신선비한테 시집 갈래?”
그러니까,
 “아휴, 별꼴도 다 많다구. 내가 왜 굴앵이한테 시집을 가냐?”
구. 그냥 딸이 펄펄 뛰더래, 인자 큰딸이. 그래서 인저 또 작은딸한테,
 “야, 아무개야! 너 저 건너 구렁덩덩 신선비한테 시집 갈래?”
그러니까. 인자 구렁덩덩 신선비 그랬지. 그러니까 그게 인제 사람인가봐, 말을 하는게. 그런데 또 그냥 펄펄 뛰더래, 이 딸이 그냥.
 “싫다.”
고. 펄펄 뛰더래 그냥. 그러니깐 또 셋째 딸이 왔더래. 셋째 딸더러,
 “얘, 나 원을 좀 하나 풀어 줄래?”
 “왜요?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내가 다 듣는다.”
그러더래. 이 셋째 딸이.
 “그래 말씸 좀 해 보라.”
고. 그러더래.
 “저 건너 아무개 어머니가 저기 구렁덩덩 신선비한테 시집 갈래? 그 사이에 장가를 안 들여주면는 도로 엄니 뱃속으로 들어간다는데 어떻게 하냐?”
구 그래드래. 이 색시가 옆에서 그러드래.
 “아, 나는 부모가 해시는 대로 해요.”
그래드래. ‘아 나는 부모가 보내주는 데로 가지. 반대를 안 한다’ 고 그러더래, 셋째 딸이. 그래서 인제 어떻게 해서 잔치를 했거든. 잔치를 했는데 첫날밤에 요렇게 빼쪽한 칼을 주더래. 칼을 주면서,
 “나를 요렇게 배에서부터 요렇게 지 째라고 그러더래. 살을 째라.”
고. 그런떼 째는데, 세상에 사람이 그렇게 잘 생긴 사람이 나오더래. 그냥 아주 선비가 나오더래. 그러면서,
 “이 내 껍데기를 당신 주머니에다가, 이 허리춤에다가 넣어 가지구 태우지는 말라.”
고 그러더래. 이 ‘태우지 말라’ 고 그러더래. 그러면서 자기는 어디를 갈건 가 봐. 그래서 이제 있는데, 요년이, 신랑이 어디 갔는데,
 “나 이제 어디 간다.”
그러면서 이 다음에 어떻게 데려 갈까 그러더래. ‘간다’ 그랬는데,
 “이거를 태워서 내가 냄새를 맡으며는 당신한테 못 온다.”
그러더래. 그래 이, 저이 딸년덜이 그냥 그게 샘이 나서,
 “너, 그 저 구랭이 껍데기 어쨌어? 어쨌어?”
그러더래. 그래서,
 “없다.”
그랬는데, 어떻게 그걸 알고, 그거를 신랑 가는데 태웠대, 그거를. 태워가지고 그 냄새를 맡고 신랑이 안 왔더래요.


17. 절친한 친구의 우정 시험

허현욱(78, 남)/성복리T 2뒤3앞
[성복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1999.5.16)

 앞의 이야기를 마치자 손녀 사진을 찾다가 못 찾은 할아버지께서 다시 자리에 앉으시면서 할머니 말씀에 이어서 해 주신 이야기이다.

 두 사람이 형제처럼 아주 참 친허게 어려서부터 자라요. 자라면서 인제 공부를 하면서 둘이 약속을 허는 거여.
 “니가 잘 되고 내가 못 살면은 니가 나를 봐줘야 하고, 내가 잘 되고 니가 못 살면 내가 너를 봐주고.”
그렇게 아주 인제 약속을 하면서 인저 글방에 대니는 거여. 그래가지구 크게 자라서, 아 이거 한 놈은 과거를 봐서 평양감사가 됐는데, 아 이건 세상 과거를 봐도 그냥 과거에 떨어져. 거 맨날 술이나 먹고 그냥 건달 생활을 하고 인제 그러는데.
 그러다가 나중에 어려우니까는 헐 수 없이 친구를 찾아가는 거여, 평양을. 인자 감사가 되았으니가 물론 찾아, 찾아줄 거 아니여. 인제 좀 참 봐 줄 거 아니여. 그래서 평양을 찾아가니까, 찾아가서 인저, 평양에 그 자기 친구 있는데 가서 하인 보고,
 “시골에서 아무데서 친구가 찾아왔다고 가 전해라.”
그러니까. 그 이름까지 가르쳐 줘서 전했는데, 그냥 전허면 그냥 버선발로 뛰어나올 줄 알았거던. 근데 들어가서 얘길 하고 나오더니 에,
 “자기 일이 바쁘니까, 사랑방에서 좀 며칠만 쉬어 계시래요.”
그래거던. 그래 야속하잖어. 그렇게 약속을 하고 친군데, 며칠 사랑에서 있으래니 좀 야속하잖아.
 “아마 볼 일이 바빠서 그런가 보다.”
하구. 사랑방에서 인제 자는데, 그 평양에 감홍주라는 술이 있는데, 참 술이 좋아. 그래 친구한테 가서 감홍주도 얻어먹고 그럴려고 그랬는데, 감홍주 구경도 시키지도 않고 그저 조석으로 밥만 그냥 그리고 푸대접 하듯이 주거든. 그래 한 사흘 지났는데 또 그러니까,
 “한 사흘만 더 있으라.”
고 그러더래요. 그래서 사흘을 더 있는 데도, 아 영 나오질 않거던. 그래서 하인보고,
 “야! 들어가서 친구가 야속해서 말이여. 그냥 간다고 그래라.”
그래 들어갔다 나오더니,
 “그럼, 가실래면 가시래요.”
아, 그렇게 푸대접을 하거든. 얼마나 야속해. 한참 나오다 보니까 감홍주 파는 데가, 그냥 술집이 근사한 데가 있더래나. 이렇게 쓱 보더니 들어 가서,
 “감홍주 있느냐?”
고 그러니까.
 “있다.”
고 그러더래.
 “얼마든지 드린다.”
고. 그래서 감홍주를 그냥 실컷 먹고 그냥, 그냥 골아 떨어져서 잠이 들은 거여. 한 이틀을 잤는지 사흘을 잤는지 자고 일어나니까, 잠결에 귀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저럭저럭 나거든. 그래서 아니 고건 나중이로구나.
 자다 깨보니까 염라대왕이로다가 되었어, 이 사람이. 염라대왕. 그 인자 하인들이 쪽 늘어서 굴복사례 하고선,
 “아, 대왕님! 이제 일어 나시느냐?
고 말이야.
 “아 이거 어떻게 된 거냐?”
그러니깐.
 “돌아가셔서 염라대왕이 되셨습니다.”
이거여. 그것 참 이상하거든 그냥. 술 먹고 실컷 자고 일어나니까 염라대왕이 됐으니. 그러면,
 “염라대왕이 됐으면 뭐든지 시키는 대로 허겄느냐?”
고. 그저 그러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평양에 아무 그 감사놈 그 옥중에다가 잡아다 널(넣을) 수 있느냐?”
 “그렇겄습니다.”
이 이 하도 야속하게 해서 말이야. 염라대왕이 돼서 웬수를 갚는 거란 말이야. 그러면 어느 에(Tape 3앞에 계속) 들어가 앉으니까,
 “그 가방 좀 가지고 오니라.”
하이 그냥 (녹음이 지워짐 : 상을 차려 오는데) 기가 맥히게 차려 오거던. 그래서 싫컷 거기서 먹었어. 먹구선 이틀을 잤는지 사흘을 잤는지, 실컷 자고 일어나서, 일어나선 잠이 깼는데, 뒤에 참 또랑물 내려가는 소리가,
 “쫄쫄쫄!”
나더래. 그래 깨보니까 평양 개울 천지에 가서 두러 누워서 자거든. 자기 입고 간 옷 그래도 입고. 그래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당체 알 수, 알 수가 없더랴. 그러니까 아는 사람보고 그렇게 물으니까,
 “여기가 평양입니다.”
이거여. 그래 금방 염라, 염라대왕이 됐다가, 금방 또 도로 되는지, 이게 정말. 인제 그 친구라도 암만 잘못 했어도 그 귀신도 못 나오는 그 옥에다 친구를 가둬놓고선, 금방 이 저기 염라대왕이 됐다고 해서 그 짓을 해놨으니, 그 친구를 어떻게 만나느냐 말이여.
 그냥 그대로 그 입은 옷을 입고 서울을 온 거야. 자기네 집이로. 와보니까 자기, 자기네 집자리에 그냥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하인이 뭐 몇 명 두고 아주 그냥 굉장히 잘 해 놨거던.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저기 하니까, 자기 부인이 그냥 참 수단걸로 입고 나와선,
 “아 이게 무슨 짓이냐고. 당신이 이게, 당신 간 뒤에서, 평양에서 돈이 와가지고 와서 이렇게 집 잘 짓고 그냥 이렇게 사는데 이게 뭐냐.”
고. 아 이래 보니까, 그 감사가 장냥(장난)을 한 거예요. [조사자 : 친구를요?] 예. [조사자 : 장난을 헌 거요?] 친구가 장냥을 한 거여. 술을 잔득 멕여 놓고서 그 죽었다 살아난거랑 매찬가지거든. 술 잔뜩 멕였다가 깨고 난 다음에 염라대왕이 되게 해 것도 그 친구가 맹글어 가지고, 이 사람이 어떻게 허냐 하는 꼴을 볼라고 그렇게 한 건데.
 아 그 아 이 뭐 장냥을 해가지고, 내가 이렇게 부자가 되고 그랬는데, 이놈의 이 사람을 찾아가 보긴 봐야겠는데, 아 그 자기한테 푸대접했다고 해서 친구를 그냥 무지무지한 그 옥에다 가둬놓고 이 짓을 했으니, 이거 이거 어떻게 하나.
 “그러나 가 보긴 가 봐야 한다.”
고. 평양을 또 가니깐 그냥 맨발로 쫓아 나와서, 그냥 악수를 하고 그렇게 하더래요.
 “그래, 이거 나 미안해서 이것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하니까.
 “아니야. 내가 장냥 한 번 헨 거여.(웃음) 그러니까 섭섭한 것 생각지 말고, 우리 더 친, 더 친절히 지내자.”
고 그랬어요. 이 마음을 좀 저기 먹어야 돼요. 아무리 잘못 했어도 좀 저기 했었는데(웃음) 그냥.


18. 집안 대 잇기(씨내리)

허현욱(78, 남)/성복리T 3앞
[성복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손정화, 은순희, 변민숙 조사(199.5.16)

 할아버지깨서 유씨 집안 이야기를 하시려고 하자 할머니께서 ‘욕먹을 얘기’라며 말씀하지 못하게 말리셨다. 그렇지만 ‘옛날 이야기인데, 해도 괜찮으니 해다라’고 조르자 해 주신 이야기이다.

 유씨 두 내우분이, 지끔은 사십이, 사십이 돼도 젊지만 옛날엔 한 삼심씩만 돼도 늙, 늙었다 그랬어요. 근데 그 두 내우가 삼십, 한 삼십이 되도록 어린앨 하나도 못 나. 딸도 못 낳고 아들도 못 낳고.
 근데 그 집 하인을(은) 그냥은 낳기만 하면 아들을 낳아. 아들 한 십형제를 낳았단 말이야. 근데 두 내외가, 그 유씨 두 내우가 죽어지면은 유가네란 거는 아주 멸종이여. 우리 허서방네 모냥, 우리 허서방네 그 저 뭐야, 가락구왕 그 냥반의 자손인데. 그래서 부인허고 남편허고 하루는 저녁에 자면서 의논을 했어요.
 “하인이 참 낳기만 하면 아들을 턱턱 놔 놓으니까, 우리 그 사람의 씨를 한번 받아 보자.”
고. 그래 둘이 의논을 해 가지고 그 사람을 불러들였어. 불러 들여가지고.
 “우리 씨만 하나 생산해 주며는 논을 한 두어 섬지기 줄테니 우리 씨를 좀 부쳐다오. 그리고 만약에 이 소리를 딴 사람한테 만약에 하며는,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같이 아주 죽을 테니까 그런 각오해고 해라.”
그러니깐. 처음엔 이 사람이,
 “원 별말씀 다 하신다.”
고. 그냥 그래. 그러나 그 어떻게, 두 내우가 다 약속해 가지고 허는 걸. 그래 하룻저녁 참 애기가 설 때쯤 됐는지 하룻저녁 참 잤는데, 아 그날부터 태기가 있어가지구 열 달만에 아들을 낳았어. 그래 유씨, 유씨 집안에 대를 이은 거여. 씨를. 그래 논 두 섬지기 줘가지고, 이 사람이 그냥 참 여러 아들들 데리고 참 넉넉하게 사는데.
 아, 얘가 나아, 나와가지고 자라서 공부를 어떻게 잘 하는지 잘 해가지고, 아이 나라에서 과거 보는데, 과거를 급제해 가지고 참 벼슬을 크게 했어요. 해서 정말 대궐에 가서 있는데, 이 놈이 가만히 생각해니간, 이제 먹을 것도 많고 재산 저도 넉넉하니까는, 아 이게 인날(?) 암만 하인이래도 내 자식은 서울 가서 과거 급제해 가지고 증말 양반노릇을 하고 사는데, 자기는 이게 뭐냔 말이야. 하인 노릇하고 살고. 그런게 자기 아들을 찾는다 이거여. 그 영감쟁이 보고, 유씨 보고 와서,
 “인저 아들을 나를 주시오.”
 그냥 하늘이 무너지는 거지 뭐. 이거 서로 얘기 안하기로 했는데, 이거 만일에 아들을 달래서 가져가며는, 아들 없는 것도 원통한데 이것 뺏기고 우리 망신하고 큰일 났단 말이여. 그러니깐,
 “에휴, 내가 죽어야지. 살아서 뭐하냐?”
고. 사랑 문을 꽉 닫아 맺, 닫어 저 안으로 잠그고선, 그냥 조석을 갖다 줘도 먹지 않고 그냥, 아무 대답도 읎이 그냥 사랑에서 드러눕는 거여 그냥. ‘굶어 죽는다’ 고. 이것 야단났지 뭐여. 아이 이것 대감이 통 조석을 안 들고 그렇게 드러누워 있으니, 이 노인네 죽으면 큰일 나겄다고 그냥 서울로다가 아들한테로 소식을 전했어. 그러니 아들이 그냥 사랑 앞에 와서 굴복사례 하면서,
 “아버지! 아버지! 누가 있습니까? 부자간에 누군데 못할 말이 뭐십니까? 무슨 할 말이 있으면 저에게 얘기하시고, 돌아가셔도 돌아가셔야지 않습니까?”
하고선, 그러니까 이 영감이 가만있다가 생각하니까 그냥 죽어도 좀 원통하더랴. 아들한테 그런 사실 얘기나 하고 죽는다고, 문을 열어주고 아들을 불러 들여서 사실 얘길 했어.
 “그렇게 그렇게 해서 니가 태어났다. 근데 니의 생부가 너를 찾는다고 하니 이게 이거 난 살, 죽지 살지 못하겠다.”
인제 그러니까,
 “염려 마시라구. 가만 계시라.”
고. 그래가지고 그날부터 집이 보고,
 “술 많이 좀 해 담그라.”
고 일르고. 소 두 마리 잡고 그렇게 해서, 근 지금 이 수지읍 하면 수지읍 사람들을 다 모여 놓고 잔채를 하는 거여, 이 아들이. 그래 이런 교단을 떡 내놓고선 그 꼭대기에 올라가서, 그 동네 여러 사람들 술을 얼간하게 맥이고, 괴기 실컷 맥이고선,
 “지가 이 수수께끼 한 마다 하겠습니다.”
 “아, 하라.” 구.
 “그런데 이 밭을 아래 웃데기 하는데, 갑이라는 사람은 꼭대기 밭을 하고 을이라는 사람은 밑장 밭을 하는데, 이 을이라는 사람은 팥을 심고 갑이라는 사람은 콩을 심었는데, 이 콩, 콩 한 알이 여기 떠내려 가서 이 팥밭에 가서 났어요. 났는데 이 콩이 아주 그냥 우러지게 열어, 열렸거든. 근데 이 콩 심은 사람이, ‘그 콩, 콩은 우리 씨가 내려가 난 거니까, 그 콩나무는 우리 꺼다.’ 그 찾는다.”
이 말이여. 그 수수께끼를 이 사람이 그렇게 얘기헌 거여. 그래니깐 그 많은 사람들이,
 “야, 뭐 이것, 응 씨 덩진 사람이 무신 소용이 있느, 있느냐 이 말이여. 밑창에서 매 가꾼 사람이 임자지. 씨 가진 사람은 소용읎다.”
고, 그러니간 이 사람이,
 “내가 사실은 그렇게 됐다.”
이거여. 그거랑 똑같으잖아. 씨가 떨어져서 유씨가 됐는데, 이 매 가꾼 사람이 아주 임자다 이거여. 그래 ‘사실 내가 그렇다“ 그러니깐. 그것허고 똑같으다 이 말이여. 그래서 이 사람이 자기 그래도 저기 생부니까 죽이던 못하고 말이지, 그냥 멀리멀리 그냥 몇 백리로 그냥 구양(귀양) 보내, 보내다시피 지 생부를 말이야 그냥 보내놓고.
 그 유씨의, 말하자면 씨를 퍼쳐가지고 지금까지 유씨가 내려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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