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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역
수지읍- 고기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이찬순 (37,남) 광교산의 혈을 끊은 중공군------------262
(2) 정연수 (87,남) 영무장군 일화--------------------------263
(3) 정연수 (87,남) 산소 근처에서 나무 못하게 말린 효자----266
(4) 정연수 (87,남) 원귀를 물리친 11대 조상----------------267
(5) 정연수 (87,남) 도깨비불 홀린 사람---------------------269
(6) 정연수 (87,남) 남사고의 예언--------------------------270
(7) 정연수 (87,남) 고기리의 지명유래----------------------271
 
  3) 민요 
  (1) 정연수 (87,남) 단발령-------------------------------272

3. 고기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소경석, 전명곤, 김종윤 조사(1997.5.18)

 고기리는 수지면의 서북쪽 끝에 위치한 산간마을이다. 이 마을은 서쪼게 광교산, 백운산, 바리산으로 막혀 교통이 불편한 곳이다. 서쪽은 높은 산들을 경계로 수원시 상광교동, 의왕시 오전동과 학의동, 북쪽은 분당구 석운동, 대장동과 인접하여 있고, 마을의 중심 입구인 동남쪽에 수지면 동천동과 인접되어 있다.
 고기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수진면 지역인 고분현과 손기동을 합쳐 마을 이름을 정하여 수지면에 편입되었다. 이 고기리를 형성하는 자연마을은 손기, 자의, 굑현, 샛말, 배나무골, 언덕말과 늦은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에 손기는 고기리를 중심마을로 손의터라고 하여 마을의 입구에 있다. 이마을의 이름은 호랑이가 많았던 이곳에서 손으로 호랑이를 잡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의는 손기에서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장토리라고 하는데, 산간인데 비하여 토지가 비옥한 데서 붙여졌다. 그리고 곡현은 고분재 또는 고분현이라고 하는데, 마을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고분재란 굽은재의 변음으로 보이는데, 의왕시 학의리로 넘어가는 고개의 길이 굽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그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샛말은 고분재와 손의터 사이에 있다고 해서, 그리고 배나무골은 옛날에 이곳에 배나무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언덕말은 언덕 아래 있는 마을이라고 붙여졌는데 안하동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늦은재는 늦은재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것이다.
 이 고기리는 지금도 2년에 한 번씩 산치성을 드리는데, 수퇘지를 잡아서 지낸다고 한다.

2) 설화

1. 광교산의 혈을 끊은 중공군

이찬순(37, 남)/고기리T 1앞
[고기 2리 이장댁] 박종수, 강현모, 소경석, 전명곤, 김종윤 조사(1997.5.18)

 조사자들은 고기리에 도착하여 이곳저곳을 찾던 중에 고기 2리 이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고 사람들을 소개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런 설명 중에 인물이 경상도에 많이 나온다는 유래에 대해 묻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여기 중공군들이 넘어와 가지고 여기 뒷산, 뒷산(광교산)에 내려오는 혈이 있는데, 그 혈을 끊었다는. [조사자 : 혈을 끊었다는 것은?] 산혈을. 그냥 산인데 쭉 맥이 이렇게(앞산을 가르키며) 내려 오잖아요. 그럼 맥, 맥을 제일 약한 부분을, 너무 끊기 좋은 부분을 갖다가 끊어버리는 거죠,
 인제. 지리적으로 그 옛날에 뭐 따지고 보면, 이렇게 산혈에다가 뭐 쇠말뚝을 박았다는 둥, 쇠물을 부어서 막았다는 등 그런 식으로다가 한 거죠. 산혈을 끊은 겆. [조사자 : 왜 그렇게 한 거죠?]
 에, 그러니까 옛날에 장수들이 많이 나왔다고 그러잖아요. 장수들이 전부 그 산맥이나 이런 데서 장수들이 많이 나와가지구 그 중공, 중국이나 인자 일본에서는 그 장수들이 나오지 못하게, 장수가 나지 못하게 그 산혈을 끊으며는, [조사자 : 그 기를 막아 버리는 거죠?] 그렇죠. 산 기를 없애 버리는 거죠.
 [조사자 : 예전에 중공군들이.] 에, 중국에서 내려와가지고. [조사자 : 아주 오래된, 오래된 얘기에요?] 오래된 얘기죠. [조사자 : 그 언제쯤 나온 겁니까?] 그러니까 그게 고려 때가 그때 될 거요. 오래 됐을거예요. 이 얘기.
 그리고 중공군의 장수가 군사들을 끌고 내려와서 여기서부터 저 이북서부터 끊어 내려오는 거죠. 끊어 내려와가지구 경상도도 일부 못 끊고, 전라도도 일부 못 끊구 그랬는데, 전라도를 끊다 보니까 그 장수가 이렇게 끊고 보니까 자기네 그 조상혈을 끊었다고 그러드라구요. 그 중국 장수가.
 [조사자 : 어릴 때 들으니까, 청나라.] 예 그렇죠. 그래 저 끊고 보니까 자기 조상혈을 끊었으니까, 더 이상 안 끊고 그 장수가 올라갔다는 거예요, 그 중국으로. 그러니까 그 장수라는 사람이, 그러니까 한국 지형에도 밝구 그런 사람을 중국에서 아마 장수로 해가지구 아마 조선으로 내려보낸 모양이죠.
 그래 끊다끊다 보니가 자기 조상혈을 끊고 나니가, 그때부터 안 끊고 도로 올라갔다 그래서, 지금은 인재가 경상도허고 전라도 쪽에서 많이 난다는 이런 얘기요. 전라도도 얼추 다 끊고 경상도로 넘어갈 찬데, 자기 조상혈을 끊었기 때문에 그냥 그리 올라갔다 그러더라구요. 그래 지금 경상도에서 인재들이 많이 나고.
 [조사자 : 아 그게 신빙성이 있겠네요.] 그렇죠. 아 전라북도도 거의 많이 끊었다고 하더라구요. 끊다 보니까 자기 조상혈을 끊어서 그러고 올라갔다 그러더라구요.


2. 영무장군 일화

정연수(87, 남)/고기리T 1앞
[고기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소경석, 전명곤, 김종윤 조사(1997.5.18)

 조사자들은 이장님에게 이 마을의 산신제에 대해 듣고 마을에서 연세가 가장 많다는 제보자를 소개받았다. 제보자는 연세가 여든일곱이지만 매우 정정하셨다. 그렇지만 말하는 중간 중간에 발음이 잘 들리지 않아서 채록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영무장군, 대마도 점령할 때 통제사를 지내신 분여. 대마도 전쟁 때 통제사를 지낸 영무장군이라고. 장수가 있는데 에, 여기 이 근처 저기 머내라고 거기 살피고, 저 고림동 젓고개라고 있어. 해갖구 젓고개라고 몇 집이 있지. 옛날에 거기 공묘가 좋으니까.
 아 근데, 아 인제 어느 때인가노니, 그 손이 임진왜란 때 여기 사는데, 집이 살았었는데, 첫 뭐니 그 손이 얼마 안 됐어. 하이 임진왜란 때 쳐들어오니까, 어디로 오냐, 황해도를 금천으로 피난을 갔어. [조사자 : 임진왜란 때 쳐들어와가지고 여기 있는데, 피신을 황해도 들어가요?] 엉. 왜적이 쳐들어오니까 피난을 갔어요. [조사자 : 피난을 갔다구요.] 네.
 그러자 여기 전주 이씨네 늙은 장씨가 있는데, 외가가 장순 이씬데, 여기서 장순 이씨 구경을 못 한다요. [조사자 : 아 거기 황해도에서요.] 아, 여기서. 요 넘어 좁은 골짜구. 그래 장순 이씨 구경을 못하는데, 그 분이 황해유수로 가셨거든, 그때 이근찬씨가. 황해유수로 가니가, 황해도 금천골에 갔니끼 장순 이씨가 있거든.
 “아! 반갑다고.”고.
 “아! 왜 그러시냐?”
고 하니까.
 “아 내가 외가가 장순 이씬데, 경기도에선 장순 이씨를 구경을 못했는데, 그러니께 그 부친에 들으니까 옛날에, 전에 웃어른께서 왜적이 쳐올르니가 여기쯤 와서 배놓고, 너 여기서 살았다.”
고. (지나가는 사람이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는 과정 생략) 아 그러니까.
 “그러냐!”
고. 그러니까 후하니까 장사를 훤해 보여. 그때 그 산소가 묶었었어. 시방은 저 사방사업 해 놓고 거기다 다 묻는 거기 때문에. 손이 없으니까 뭐하나 들어갔어. [조사자: 예, 소원이 없으시죠.] 인자 황해도로 갔어.
 “내 외가 인제, 거기가 장수 이씨 장천부원군여.”
 “그러냐고. 내 사는 댁경인까.”
그 일러줬거든, 그 외손이니까. 그래 처도 실전을 했었는데. 그 틈 안에 병자호란 때 여 광주 이씨가, 여기 이, 여기 와 장점한 양반이 주다 보니까, 한 염포점배기 누매하고 말짱, 아 막말로 목탄을 귀 먹고 살아도 지낼만허게 이렇게 자릴 잡았어, 처음에. [조사자 : 아 목탄요.] 네. 그 지방에. [조사자 : 황해도 지방에 목탄이 많이 났었나봐요?] 아, 그럼. 나무가 좋으니까. 그 놈을 맘대로 그, 그때야 허가니 뭐니 그저 마음대로 할 때니.
 그렇게 됐는데, 그 장순 이씨의 신두비 있잖아. [조사자 : 신두비요?] 신두비. 아 예전에 대관들 사는데 신두비라고 있어요. 신두비를 빼서 감추고서, 어따 파묻어가지고. 그런데 우리 열 한 살 적엔가 그 찾는다고 황해도 와가지고 무두 불룩불룩한 데는 전부 파보고. 근데 영 못 찾았어요.
 그러니까 그때는 저, 그렇게 사패를 지냈었는 그 문서가 있나? 그냥 말어디 사패라고 말대로 했는데, 시방 땅문서니 뭐니 있잖아요. 그게 읎으니까 전부 딴 사람들이, 전부 땅 그 채고 이러고 그렇거든. 그러자 왜놈 또 일본놈들이 인자 침략해 오니까, [조사자 : 일본놈들이 침략해 또?] 일본놈들이 왜적들이 분풀이 해러 또, 일정 때 말하자면 침략을 해오니까 그장순 이씨 한 집이 여기 살다가 그 종손네를 거기를 찾아 갔거든. 아 그, 우리 시방 내려오는데, 이러이러헌데 저희가 땅 따 가겠느냐고. 뭐 뭐 아 이 분이 올라와서 아 자기 앞으로 쟀다, 전부.
 그러니까 처음에 그 항렬이 높으니까, 대번 내려오시면 시방 정토를 헐라고 허는 걸, 우리 정종을 산을,
 “아 좋다.”
고. 내가 그랬었거든. ‘좋다’고 그러니까.
 “그 돈은 읎고, 에 아무 때 내려오시면 내 증서를 써 주마.”
하고 말이여. 그래 떡 증서를 써 주고 가. 그래 증손이라는 분이 그 써 줘서. 인저 기일이 되니까 내려가서, 돈 준다는 기일이 되니까 내려가서, 돈 준다는 기일,
 "그 증서 내 놓으라.“
고. 그래 돈 궤짝을 이렇게 염내(여는 척) 허고서 증서를 줬거든. 찢어버리고 내 주긴 뭘 줘요, 매만 실컷 맞고 왔데요. (웃음)
 [조사자 : 아이, 할아버지가 저 고기 만나셨어요?] 아 그전 얘기 허느니까 그렇지.(기침) 어든 이왕자하고 뭐 그 종손의 아들이 와서, 그 종손이 날보고 그런 얘기를 해. 자기 아버지가 어디 가서 뚜들여 요빈 냈다고. 나시방 점심 잔뜩 먹고 왔는데
 그래 또, 여기 황매만 맞고 땅을, 증서는 딱 며듯이, 증서를 내놓고, 그래 종터가 있음 뭐예요. 에 몇 천 평 되는데, 산이 십삼장 이반삼묘래요. 그 영무장군 시방 묻힌 산이. [조사자 : 산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요.] 십상장 이반삼묘. 그래 성안이 골은 이걸 따야, 이걸 제 놓았기에 단 사람이, 그 지천이. 그런데, [조사자 : 어느 지역이요? 황해도예요 여기예요?] 여기지. [조사자 : 여기요. 이 고기리에 있어요?] 아 그럼요. 영무장군.


3. 산소 근처에서 나무 못하게 말린 효자

정연수(87, 남)/고기리T 1앞
[고기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소경석, 전명곤, 김종윤 조사(1997.5.18)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완 장군 묘소가 있다고 하면서 배우지 못하여 구술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조사자가 ‘효자 이야기를 하나 해 달라’ 고 부탁을 드리자 생각이 났는지 시작한 이야기이다.

 효자 얘기요? 효자 얘기는 또 인자 여기 저 판교라고, 고향이 어디 신지. [조사자 : 저는 서울입니다.] 여 판교라고 짐작하시지요? [조사자 : 예 판교 이야기.] 판교 넘어 그거 전에 나씨가 사는 데여. [조사자 : 나씨요?] 예, 그래 상을 놔서 인자 그 넘어로다가, 판교가 넘어가, 행촌이라고 하는데, 상을 참 친상을 맞고서 하는데.
 광주 어디 지나다 보니까, 거기 지나다 보니까 애들이 때 낭구를, 낭구를 자꾸하고. 하루 그냥 허는데, 한 사람이 그 산소 앞에서 대성통곡을 울고 있거든요. 그 원이,
 “아, 그 무슨 그 그렇게 우느냐?” 니깐.
 “내 다름이 아니라 내 선산인데, 요기 산이 우리 산이라고. [조사자 : 선산요?] 예. 선산으로 이렇게 하는데, 아 저 되련님들이 와 낭구를 저렇게 망세기니, 그걸 하지 말랄 수도 읎고. 내가 이렇게 있다.”
 “아, 그러시냐?”
구. 광주원이면, 그래서 효자집이라구, 요 근처로는 효자집이 나씨밲이 읎어요. 효자집이는. [조사자 : 이곳의 효자는 나씨 형제 그 쪽이밖에 읎다고요?]


4. 원귀를 물리친 11대 조상

정연수(87, 남)/고기리T 1앞
[고기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소경석, 전명곤, 김종윤 조사(1997.5.18)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자신의 조상에 대한 말씀을 하여 주었다. 즉 십대조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로, 원귀 때문에 고을이 폐쇄의 위기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그 원혼을 위로해 주고 그 덕분에 벼슬을 하게 되었다는 아랑형 전설이다.

 우리 할아버지 십대조께서, 춘천 부사또가 옛전에, 촌간 때 외졌데요, 가면. 도임하면 그날 저녁으로 죽고 죽고. [조사자 : 춘천 그 관가?] 어. 춘천 그때 부사또죠. 그 내 십대조께서 자원을 했어요.
 “그 춘천 그 짐(신의 잘못)이 가겄습니다.”
그랬더니, 나라에서는 그러니까,
 “내려가라.”
고. 내려 가셨지. 그래 내려가니까, 동헌 대청에서 황초롱을 밝히시고, 밤을 인제, 밤새 인제 헐 때, 아마 새벽 한 시 쯤 됐었지. 자정이 지냈는데 동헌 대청에다가 황초를 이렇게 양짝을, 그 팔뚝같은 초 있잖어. 그 밝히고 지내시는데, 아 젊은 여자가 머리를 풀어서 산발하고, 목에 칼을 이렇게 꽂고 어여삐 걸어 오더래.
 “너 귀신이냐 사람이냐?”
그러니까.
 “예! 저 귀신이올시다.”
 “그래, 귀신이면 너 무슨 소원이 있어서 왔느냐?”
고 그러니가
 “제가 여기 박 아무개랑 장 아무개 딸인데, 머 아전 아무가 거 겁탈할려고 해서 용정 싫어하니까 저를 이렇게 칼을 목에 찔러서 이 관사태 고목나무에다 넣어는데요. 올려놓았다. 여기 사또에게 ‘원수를 갚아 달라’ 고 이렇게 밤이면 들어와서 앉으면 그날로 돌아가시고 돌아가신 그런다.”
 “아 그러냐고. 내 원수를 갚아 주마.”
 그래 그 이튿날 새벽에 되니까 인자 아전들이,
 “이 양반도 또 돌아가 어쩐느냐?”
허고. 가서 큰 기침을 해서,
 “아무 양반이 인자 쌍반이 오셨냐 보다.”
그러고. 이렇게 되니, 아침 식사를 에 딱 지나시더니, 이것 아전들 모아 놓고,
 “야! 춘천 군내에 에 강원도, 강원도에서 장작 두 개비, 하 숯 한 섬. [조사자 : 장작 두 쪽?] 두 쪽요. [조사자 : 장작 두 쪽허고.] 숯 한 섬. [조사자 : 숯 한 섬요. 이렇게 숯 한 덩어리요.] 그 그러니까 한 덩어리가 옛날에는 섬으로 쪼금만 있었어요. 그것을 구해오라.”
고 허니까.
 “아 그건 왜 구하느냐?” 고.
 “그자, 해 오라.”
고 그랬단 말이여. 그러니까,
 “그 고목나무를, 그 큰 고목나무에다 갖다가 전부 장작하고 숯하고 싸으라.”
고 그러드래. 싸으라고 하니까, 인자 그 춘천군 다 모으니까 그건 뭐 태산으로, 강원도에서 전부 모아 논 것을 거두더니,
 “불을 놓으라.”
고. 불을 놓으니까 그냥 불이 막 불길이 하늘에 닿을 법하고, 어 고목나무가 삽시간에 타서 파란 안개가 일더니,
 “정 아무씨는 명관입니다. 아무 날 아무 시에 죽을 줄 알라.”
고. 휘파람을 불고 파란 안개가 일더니 날아갔어. ‘누구 아무 모일에 죽을 줄 알라’ 고, 그 귀신이. [조사자 : 그 사또에게 그런 거예요?] 그래. 부사또. 내 십대조여. 그때 부사또 있을 때. 그때 구신 나왔으니까, 내 구대조께서 안주 명사로 가서 20메꺼 계시다가, 제주 목사로 또 갔는데, 기별을 하니께,
 “아무 날 아무 시에 죽을 듯하니, 올라오라.”
고. 그러니께 아들 아니예요. 올라오니까 멀쩡하시거든. 그런데 그 시간에 운명 딱 했어. 그 귀신이 얘기한 날. 운명을 딱 했는데, 그 후로는 고목나무에서 처음 보고, 그 후로 내 구대조께서 부사또 벼슬을 사셨거든. 그런데 지사가 어느 날이냐면 시월 시무날이요. 아니야 시월 초열흘날, 시월 스무날이라니, 시월 초 열흘날. 이 몇 년 전에 갔다가, 참 제사에 내가 며칠 댕겼어요.


5. 도깨비불에 홀린 사람

정연수(87, 남)/고기리T 1앞
[고기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소경석, 전명곤, 김종윤 조사(1997.5.18)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도깨비에 대해 묻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였다. 이 이야기는 제보자가 어렸을 때 경험한 것이라 한다.

 [조사자 : 도깨비불도 있어요?] 아 불도 있시오. 불이 있는데 인제 또 허지요. 여기 등짐을 해가지고 어디느냐면 거기를 시방 사당동 어디를, 서울서 저, [조사자 : 과천?] 고천 넘어가 남태령, [조사자 : 남태령 고개.] 아래가 그 장승백이라고 있어요. 돌간 밑단에.
 거길 가는데 날이 잔뜩 흐렸어요. 잔뜩 흐렸는데 인자 여럿이들 가는 것이지요. 이 집에다 뭣을 들고 이럴 때, 소나무에다 등불이 쭉 걸려 있어요. 이렇게 가다 보니까.
 아 그런데 닭이 우는 소리가 나니까 일시에 없어져요. [조사자 : 소나무에 등불들이요?] 네. 아 저게, 그게 도께비불이에요, 그게. 도깨비라는게 그게.
 [조사자 : 언제 때예요?] 그 때가 내가 열 다섯 먹던 핸가. 옛날 옛적 일정 때죠. [조사자 : 색깔이 있어요?] 소나무 틈에 이렇게 그때에, 시방은 길이 좋지만요, 소나무 틈에 그저 소바리 하나 나서면 짐 싣고 댕길만 했는데, 저기 저 소나무께에 등불이 쭉 걸려 있어요.
 [조사자 : 일반 등 켜 놓은 겁니까, 호롱불 켜 놓은 겁니까?] 절에 불켜 놓았던 것 같이. [조사자 : 연등 동그랗게요?] 네. 그게 있는대. 그 근처에 절이 있고 허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런데 닭이, 절이 훤 해. 저 심방절이라고 사뱅이 고개로다가 지나가는 배 있고, 종지기로 내려가는 그 [청취불능] 지나가는 내려 고개가 있어요. 거 가니까 닭이 우는데, 그 불이 싹 없어져요, 닭소리 듣더니. 그게 도깨비불이에요.


6. 남사고의 예언

정연수(87, 남)/고기리T 1앞
[고기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소경석, 전명곤, 김종윤 조사(1997.5.18)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부탁하자 모른다고 하였다. 조사자가 박문수에 대해 묻자 생각을 하더니 이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명지관 남사고의 일화로 후손이 자기의 묘소를 찾을 것을 예견하였다는 내용이다.

 [조사자 : 다른 어사 얘기 그런 것.] 어사요. [조사자 : 박문수 어사 그런 얘기 있잖아요. 그런 얘기 알고 계신 것 있으세요?] 박문수 얘기. 그런데 저 얘기는 내가, 박문수 얘기는 뭐 자세히는 모르고.
 전에 이 인자 정신이 잊어뻐렸어. 남씨 남, 남 뭐래. 남서골(남사고인듯) 지사로 아주 유명한 분이 있어요. [조사자 : 예. 남씨 성을 가지신 분요?] 예. 그런데 자기 그렇게 댕기며, 지사가 암만해도 자기 천상을 보러 댕기는데.
 그런데 저 경상도 내려가서 인자 문경 조령, 문경 새재 고개 있담애. 그 연통이라는데, [조사자 : 연풍? 현풍?] 엉, 연풍이라는데, 문경 고개 못, 저 새재 고개 올라가는 처참(처음)에 보니까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남씨 비석이거든.
 “구대장손 남서구나 개봉청을 헌다.”
고 그렇게 허였대. 자기가 남서구인데요. [조사자 : 비가요?] 비가 있는 데요. [조사자 : 신도가 있는 거예요?] 예. 자기가 남서군데요. 아 그런게 9대, 9대 장손이래요. 9대 장손인데 ‘이 개봉초를 헌다’ 이렇게 써 있드래요. 그래서 거 보고서는, 그 비석을 보고 표를 했드래요.


7. 고기리의 지명 유래

정연수(87, 남)/고기리T 1앞
[고기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소경석, 전명곤, 김종윤 조사(1997.5.18)

 앞에서 민요를 부른 뒤에 이곳의 지명에 대해 설명하여 주었다. 그리고 난 뒤 이곳에서 지내던 산신제에 대해 설명한 후 조사를 마쳤다.

① 배나무골

 옛날부터 이 지역에는 사기그릇을 만드는 사기터가 많았다. 지금은 백토를 구하기가 쉬운데 옛날에는 어려웠었다고 한다. 마을 앞에 죽은 배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백토를 구해다가 배나무에 주니까 죽은 배나무가 살아났다고 하여 배나무골이라 하였다.

② 샘 마을

 지금 금수골이라고 지금은 기도원이 있는 자리의 바위 사이에 샘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금붕어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금수물이라고 불렀고 지금의 샘마을이라는 유래가 되었다.

③ 고분재

 마을 앞에 고개가 있는데 곧바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굽이를 쳐서 내려와서 고분재라 불렀다.


3) 민요

1. 단발령

정연수(87, 남)/고기리T 1앞
[고기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소경석, 전명곤, 김종윤 조사(1997.5.18)

 앞의 남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제보자에게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나 노동요 아는 것이 있으면 하나 불러 달라고 하니까 시작한 짤막한 노래이다. 이 노래의 유래는 1907년 군대 해산을 계기로 단발령이 내렸을 때 단발령을 풍자하여 불렀던 노래라고 하면서 들려주었다. 음영조로 구술하여 주었다.

    왜정병 만나서 부러진 상투
    야! 망군아 풍장아 너나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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