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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역
기흥읍- 영덕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양선명 (81,여) 도깨비 일화(1)-----------------208
(2) 이종범 (52,남) 시묘살이 한 효자-----------------209
(3) 이종범 (52,남) 퇴계선생과 덕수 이씨-------------210
(4) 이종범 (52,남) 혈맥이 끊긴 영덕리---------------211
(5) 이종범 (52,남) 용인의 8명당의 하나--------------212
(6) 이종범 (52,남) 제물이 많은데 자손이 귀한 집터---212
(7) 이종범 (52,남) 후손을 무사하게 지켜준 비석------213
(8) 양대수 (59,남) 중의 우물------------------------214
(9) 양대수 (59,남) 부처님이 가르쳐 준 우물----------215
(10)유기진 (75,남) 불길한 일을 알려주는 느티나무----217
(11)유기진 (75,남) 선녀가 내려왔던 청명산-----------218
(12)유기진 (75,남) 도깨비 일화(2)-------------------219
(13)김한선 (69,남) 영덕리의 골명 유래---------------222
(14)김한선 (69,남) 연애바위-------------------------224
(15)김한선 (69,남) 원수고개-------------------------225
(16)김한선 (69,남) 나무가 베어 나빠진 영덕리--------226
(17)김한선 (69,남) 원천과 신갈의 유래---------------226
 
  3) 민요
  (1) 양선명 (81,여) 자장가-------------------------228

11. 영덕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김효순, 김윤미, 박진숙, 김무경, 김정선, 김종숙 조사(1997.5.18, 1999.5.27~30.)

 영덕리는 신갈리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영통지구의 개발로 교통이 발달되어 있다. 최근에 이 영덕지역은 수원시에서 편입시키려 하고 있어 용인에서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덕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영통리와 덕곡을 합하여 영덕리라 하여 기흥면에 편입되었다. 이 영덕리를 이루는 자연마을로는 잔다리, 오금이, 덕골, 석현, 샘말, 기와집말, 황곡이 있다. 잔다리는 마을의 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 강이 흘렀을 때, 배를 매어 두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을 한자어로 세교, 잔교라고 하는데, 배를 매어두었다는 점에서 보면 잔교가 옳다고 하겠다. 그리고 오금이는 한자어로 오평이라고 하여 마을의 서쪽에 있다. 오금이는 5부자가 살았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는데, 마을의 형태가 굼이 깊다거나 구석진 곳을 칭하는 오구미에서 유래된 것 같다. 덕국은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덕암산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큰골의 뜻으로 보인다. 그리고 석현은 돌고개라 하여 잔다리와 오평의 중간에 있는 마을인데, 돌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덕고과 잔다리 사이에 있는 샘말은 샘이 많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나 두 마을 사이에 있다고 해서 사이말 또는 한자어로 간촌이라고 쓴다. 기와집말은 석현 동쪽에 있는 마을로 큰 기와집이 있었기에 생긴 이름이고, 마을의 남쪽에 위치한 봉곡은 황골이라 하여 풍수지리상 봉황이 앉아 있는 형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덕리는 옛날에 주로 경주 이씨, 전주 이씨, 김해 김씨가 많았으나 요즘은 근대화로 인하여 많은 성씨가 어울려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을은 양반계층이 많이 살았다고 하며, 마을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임업이 주산업이었다. 근래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특별히 발전된 산업이 없다.
 영덕 4리인 덕곡은 큰 도로변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주위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구 수는 약 50여 호로 이루어져 있다. 길을 따라 들어가면 우선 버섯을 재배하는 하우스가 눈에 띠였고, 논과 밭에는 젊은 층보다는 중・노년층이 많았다. 또한 풀이 무성한 논과 밭이 간혹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농촌의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을의 이야기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나 가게에 들어가 물어보니 외부인임에도 별 의심 없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시골 인심은 여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 설화

1. 도깨비 일화(1)

양선명(81, 여)/영덕리T 1앞
[영덕 4리] 박종수, 강현모, 김효순, 김윤미, 박진숙 조사(1997.5.18)

 시집살이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마을에서 물에 빠져 죽은 동네 할머니에 대해 말씀하다가 도깨비에 관해 묻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옛날이야 그냥 참 전기불이 있어? 등잔불이니께 맨 도깨비지 뭘. 요 아랫집이 도깨비가 많어. 저녁에 나오면 그냥 불이 번쩍번쩍뻔쩍하고 그냥 들어 댕기고, 소당도 요렇게 홀딱 뒤집어서, 요렇게 재쳐서 덮어놓고, [조사자 : 뭐?] 소당. [조사자1 : 솥뚜껑.] 엉. 그걸 요렇게, 부엌에 들어가서 뒤집어서 덮어 놓고. 절구질도 해고. 아주 절구질도 청승같이 막 절구질을 그렇게 잘 한다구. 그래 내가 우리 시어머니더러,
 "어머니! 어머니! 저 소리 좀 들어봐요?“
 “무슨 소릴 들어보니?”
 “아유 저기서 절구질을 저렇게 해유. 아무게네 집에서 절구질을 해유.”
 “아니다. 들어가 자라. 그까짓 거 가지고 뭘 저기 하니.”
그러시고. 어떤 땐 날 불르고, 그냥 배깥에서 불러. 그러면,
 “엄니! 저기서 누가 불러요.”
 “에유! 그런 소리 듣지 말고 들어가.”
우리 시어머니가 그냥. [조사자 : 아시면서도 시어머닌 그냥 그러시는 거예요?] 나 놀래꺼배. ‘들어가라고. 그런 소릴 듣고 있냐’구, 그냥.
 “콩당, 콩당, 콩당.”
말래(마루)도 올라오고. 그냥 별짓 다 해요. 요 아래 올라오면 2층집 그집이가 그렇게 도깨비가 심해. 아이고. [조사자 : 요즘에도 그래요?] 요즘에는 읎어. 요즘에는 요기 배깥에 요기 나가면 거기가 옻낭구가 참 많어. 그냥 도깨비 불이 츠르륵 왔다 츠르륵 갔다 아주 도깨비 많았어.


2. 시묘살이 한 효자

이종범(52, 남)/영덕리T 2앞
[영덕 4리] 박종수, 강현모, 김효순, 김윤미, 박진숙 조사(1997.5.18)

 앞 제보자의 이야기 듣기를 마치고 조사자는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동네를 돌아다녔다. 이때 술을 마시고 있는 술자리에 들어가서 조사 나온 목적을 설명하자 제보자가 관심 있게 물어 보았다. 그래서 조사자들은 이 동네의 효자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뒤의 마을 지명 유래에 대한 설명 후에 계속한 이야기를 같은 주제이기 때문에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9대째 되시는 분께서 그 효자로 살었어. 그때 시묘살이라 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묘지에 가서 에 그 움막을 짓고 에 3년 동안을 사셨대는거지. 집엘 안 오시고.
 그래서 인제 그 효자비를 그 나라에서 하사한 걸로 제가 알고 있고요. 지금 저거는 일제 명치시대에 준수한 거고. 원래 효문은 그 불에 타가지고 없어지고, 그 후에 준수한 걸로 제가 알고 있어요. 그런 거고.
 (뒤에 있는 것을 옮겨 놓았음) [조사자 : 효자문은 어떻게 생긴 거예요?] 효자문은 그래서 내 저 9대 선조되시는 분이 시묘살이를 해서. 저 묘지에 가서, 부모님 묘소에 할아버지, 아버님 묘소에 가서 무릎뼈가 이게 닿도록 빠질 정도로 가서 효를 하고서 자손이 읎었어요. 그렇잖아요? 부부 생활을 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되닌가.
 이거 손이 끊겨가지고 양자를, 그 후에 양자를 해서 이렇게 드이고 대가 그렇게 이어 나가는데. 그 후에도 손이 귀해가지고, 사실 손이 귀해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저 할아버지 때만 해도, 보면은 우리 족보 보면은 양자 들어왔다 나갔다 한 게 많아요. 수없이 많어.
 그런데 그 후에 인저 아버님 대에 와가지고 저 사남매 그게 번접한 거지. 그 후에 또 우리 대에서, 내 대에서 사남매,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됐다는 것.


3. 퇴계 선생과 덕수 이씨

이종범(52, 남)/영덕리T 2앞
[영덕 4리] 박종수, 강현모, 김효순, 김윤미, 박진숙 조사(1997.5.18)

 앞의 이야기에 이어서 자기 조상에 관한 이야기를 구술하여 주었다.

 제가 인제 그 덕수 이씨에요. 덕수 이씨이면 아실는지 모르지만은 그 율곡선생 아시죠? 율곡이 인제 우리에게 선조 되시는 분인데, [조사자 : 오천원자리 줘 봐. 인상이 비슷하신 것 같어.] 그래 덕수 이씨도 충무공하고 율곡이 있지요. 그래 두 분 중에 한분은 인제 무인이고, 한 분은 인제 문인이신데. 율곡은 나한테 한 17대조 정도 되죠.
 [청중 : 거 분당, 분당에 가면 퇴계선생, 그 중앙공원, 그 묘지에는 퇴계선생은 땅을 살 때마다 자손에게 요지만 사주어 가지고 전부 다 갑부로 사는데, 왜 율곡이 자손이 이렇게 사는지 몰라.] (일동웃음)
 그래서 용인 문화사에 제가 저희 집안의 내력이 나와요. 인저 저, 저대로 인제 그러니까 여기 즤 중시조라서, 이조 때 인저 이조판서를 저희 11대 되시는 분이 인저 여기 묘소가 있는데, 이따 보면 알겠지만, 그 양반이 인저 그 유공하셔가지고, 세자를 자신을, 세자를 가르치고, 인현왕후가 그 양반은 외조부 되시고.
 그런게, 그래서 인저 그, 이 전라도 그 천석하고 인저 땅을 하사를 받았는데, 전라도는 가기가 싫으시다고 해가지고 여기로다 해서 다 저것들 된건대.


4. 혈맥이 끊기 영덕리

이종범(52, 남)/영덕리T 2앞
[영덕 4리] 박종수, 강현모, 김효순, 김윤미, 박진숙 조사(1997.5.18)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곳의 지명에 대해서 구술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이곳이 지금 골프장과 개발로 인하여 마을이 망가지고 있음을 한탄하였다.

 여기 옛날에는 큰 덕자 골 곡자에요. 그래서 여기가 뭐냐면 에 피난곳이라 해서, 중시조께서 청렴결백해셨기 때문에 일루 터를 잡으신 거예요. 보다시피 들어오다 보면은 찻길이 안 닿잖아요? 쑥 들어와 있잖아. 그냥 ‘난을 피해야겠다.’ 해서 인제 자리잡은 곳이. 여기를.
 참 그 옛날에 일제시대에 수여선에서 철로가 이루 나가고 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이건대. 그 후에 인저 일제 시대에 이 철로가 나는 바람에 혈맥이 끊겼다 해가지고, 여기가 인저 말하자면 폐허가 됐다 이런 얘기지. 그전만 해도 부유하게 지내오고 그랬지.


5. 용인의 8명당의 하나

이종범(52, 남)/영덕리T 2앞
[영덕 4리] 박종수, 강현모, 김효순, 김윤미, 박진숙 조사(1997.5.18)

 앞의 이야기에 마치고 자기 조상 중에 효자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여 주었다. 그러다가 묘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자, 앞에 있는 묘지가 용인의 8대 명당 중에 하나임을 강조하면서 구술하여 주었다.

 그래서 여 묘소가 에 8대 3명당에 든다는 거야. 그 용인에는 산수(산소)지가 좋잖아요. 그런데 인제 그  그 중에도 이 명당자리에 든다. 그런데 3명당에는, 명당이라면 아주 제일 좋은 거고. 8대지 고 밑창에 드는 거라해서, 이 묘소가 삼태기형이라 해서 내려오는 그런 건데.
 [조사자 : 딴데 묘자리도 좀 가 봤어요. 저짝 모현에 정몽주.] 에. 그렇지. 거기도 유명한 데도. 저 여기 저 뭐 뭡니까. 민영환씨, 그 구성 거기도 그 유명한 데고.
 그런데 인제 그 여기 능자리를 잡는다 해가지고 그럴 정도로, 하여튼 저기 했던 거지. 그래서 인저 후대를 갖다가 우에다 썼었다. 묘소를 망,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그 저것도 있었고.


6. 재물이 많은데 자손이 귀한 집터

이종범(52, 남)/영덕리T 2앞
[영덕 4리] 박종수, 강현모, 김효순, 김윤미, 박진숙 조사(1997.5.18)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제보자는 자신이 조상의 묘지를 잘 관리하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의 말씀과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구술하여 주었다. 그런데 귀신에 관한 이야기는 주위 사람들의 방해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기와장이 나왔다며 이야기를 계속 구술하여 준 것이 이 이야기이다.

 지금도 여기를 파보면 기와장, 또 이조자기 이런 것이 출토도 되고 그러지요. 그래서 인제 그 저짝에 밭이 하나 있는데, 그 밭은 이 기와집터라 해가지고 에 거기를 파며는 기와장이 나와요. 그 집에도, 에 거기다가 옛날에 집이 있었대.
 그런데 ‘거기다 집을 지면 에 재물적으로는 부한데, 에 자손이 귀하대.’ 그런 전설적인 얘기도 있어. 그래서 인제 거기서 살던 사람이 자손이 귀하니까, 재물은 느는데 자손이 귀하니까 그 집을 읎앴다는 그런 얘기도 있어요.
 그 대대로 인저 내려오는, 내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때부터 들어왔던 얘기지.


7. 후손을 무사하게 지켜준 비석

이종범(52, 남)/영덕리T 2앞
[영덕 4리] 박종수, 강현모, 김효순, 김윤미, 박진숙 조사(1997.5.18)

 앞의 집터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 이곳의 지형에 대해 말씀하였다. 그리고 이야기가 잠시 중단되었다가 자신의 선조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이 났는지 스스로 구술하여 주었다.

 왜 청주까지 가셨느냐. 우리 할아버지께서 꿈을 꾸시니까, 이 저 비석이 남쪽으로 이렇게 숙었대요, 꿈에. 그래서 인저 에 그 전에도, 젊어서 인저 꿈을 꾸시며는 그 원래 조상을 숭배하고 그래서인지, 에 그런 뭐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가지고,
 “아 비석이 남쪽으로 숙었으니까, 남쪽으로 피난 가면 니들 안심할 거다.”
해서. 사실 남쪽으로 피난을 갔어요. 해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게, 그런 거 저게 있었고.


8. 중의 우물

양대수(59, 남)/영덕리T 3앞
[영덕리 영통사] 박종수, 강현모, 김무경, 김정선, 김종숙 조사(1999.5.27)

 조사자들은 영덕리에 도착하여 제보자들을 찾아다녔으나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을에 있는 저을 찾아가 스님의 제보자를 만났다. 제보자의 법명은 혜천으로 1971년에 이곳의 절에 스님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제보자는 이곳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는 말씀으로 보아 이곳에서 자랐다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이성을 은근하게 자랑하는 분이었다.

 내가 1971년도에, 에 여기에 내가 창건을 했어요, 저기 앞산이 청명산이에요. 푸를 청자. 맑을 명자. 청명산에서 꼭대기에 우물이 있어요. 그래서 인자 그 우물이, 녹음을 해도 괜찮아요. 뭐 우물이 이제 고 넘어가 용인 땅이에요, 거기가. 여기는 수원 땅이고.
 그 용인 땅에 고 넘어를 가면 베지밀 공장이 있잖아요. 여기는 이렇게 산이 가프라지지만 고 넘어는 편해요. 그래 절터가 있었어요. 옛날 거기 절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스님들이 우물을 팠다고 해서 ‘중의 우물’ 이에요. 중이 팠다고 해서 중의 우물이란 말이야. 그래 중의 우물이라고 하는데, 에 인저 얘기 듣기론 인제 오래 돼서, 이제 지나가다가 뭐 인자 지팽이를 이렇게 해서 물이 나왔다.
 그래 산꼭대기는, 그래 여기가 가물어 가지고 에 아주 뭐 논에 모를 못내더라도, 거기는 항시 이렇게 그 많이 [조사자 : 괴여?] 겹쳐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나무 다니면서 그 우물을 병에다 끈을 달아가지고, 내가 이렇게 물을 떠먹은 장소에요, 거기가.
 그래서 어떻게 나뭇잎이 떨어지고 낙엽이 떨어지니까, 인저 뭐 뭣이냐 요 물이 썩잖아요. 그래서 그 우물을 풀 수가 없으니까, 좁으니까 그래서 스님이 연구를 해서 올라가서 ‘이걸 어떻게 바가지로 떠먹지 않을까’ 하고 연구를 하다가 인자 그 밑의 흙을 싹 파내니까 인저 바가지로 떠먹게 되어 있어요.
 인자 그 옆에 흙이 엄청나게 많잖아요. 이제 돌을 쌓아야 된단 말이야. 내가 다 지게로 빼다가, 뽑아다가 돌을 쌓고 나무를 갖다가 주변에 심고, 뭐 이렇게 해서 아주 거기가 약수터가 되었어요.


9. 부처님이 가르쳐 준 우물

양대수(59, 남)/영덕리T 3앞
[영덕리 영통사] 박종수, 강현모, 김무경, 김정선, 김종숙 조사(1999.5.27)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 우물의 주변의 정화사업이나 이에 관련된 기우제 신앙에 대해 간략하게 구술하여 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신령을 만나서 산에 올라가지 않았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구술하여 주었다.

 그래서 내가 이제 못 올라가고 있는데, 거기 신령님이 꼭 있어요. 그래 없는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텔레비 보면 막 신령님이 이렇게 지팽이 짚고, 수염 이렇게 나가지고(웃음)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요. 그건 틀림없이 나타납니다. 나타나서 뭐라고 허느냐면은 인자 영통사 스님 저보고,
 “올라오지 말라.”
는 거여, 인제. 거기 기도허러 올라오지 말고, 여기서 하라는 거지. 그래 이게 잣나무잖아요. 이게 큰 잣나무. 여기 모셔놓은 분이 용왕님이에요.
 이게 용왕은 물 속의 왕이란 말이라 말이제. 그런게 우리가 텔레비 보면 막 관, 관을 쓰고 그 용왕이 계신단 말이에요. 용왕이 계신 자리는 물이 있어야 된단 말이야.
 (현실적인 이야기 생략 : 물이 없어 살 수가 없어) 그래서 인제 그 부처님한테 기도를 했더니 물 자리를 가르쳐 주더라 이것이여. 그러니까 나 영험이 있어요. 여기 그래서 신령 령자 통할 통자 그래서 여기가 영통사여, 여기가.
 그런게 그래서 화성군 영통리 했지만, 동네 마을도 있었지만, 그래 동네 마을 이름을 따서 영통사. 그래서 신령이 통한 절이니 아주 유명한 절이란 말이여. 그런게 인자 영통지구, 그런게 영통동. 그래서 여기가 영통동이 되는 거여, 여기가. 그래 인자 여기가 화성군에 있었다가, 이제 영통, 수원시 팔달구 영통동 그렇게 되어 있었거든. 여기서 71년 정도부터 있었지만 그런 내력 내가 지켜나온 일.
 그러니까 아까 신령님이 올라오지 말라고 했다고 했지 않았어요. 올라 오지 말라고 해가지고, 우물이 없으니까 부처님 앞에 인제 기도를 했더니 우물자리를 가르쳐 줘가지고, [조사자 : 거기가 여기에요?] 잉. 여기가 바로 용왕님을 뫼셔 놨었어. 그런게 여기서 우물자리가 그렇게 물이 나오는 거요. 그래서 그 거기서 인제 무지개를 박는 거여, 여기다가. 인제 비 오면 이렇게 무지개를 박잖아요? 게 영통사 절에다가 무지개를 박았으니까 엄청 좋은 터여, 여기가. 좋은 터는.
 그래서 인제 무지개를 박고 헌 자리는 물이 나온다는 얘긴데. 중생이니까 답답해서 우물이 나올지 안 나올지, 동네 분이고,
 “여기서 물이 나오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는 얘기지 그게. 그래서 인제 그 공장, 큰 공장에 뚫는 큰 기계 있잖아요. 그걸 데려다 놓고, 인제 오산에서 기계를 데려다 놓고 허니까, 안 파주는 거여.
 “물이 안 나온다.”
고. 여기는, 여기는 근본적으로 물이 없는 데여, 여기가. 그러니까 그냥 싣고 기계를 갈라고 헌다 말이여. 그래서,
 “안 된다. 일단 기계를 내려 놔라.”
 “그러면 스님이 책임을 질 것이냐?”
이거지. 인자.
 “책임을 지겠다. 그러면 당신들에게 기계가, 여기 품값만 주면 되는 것이지 뭐 다른 것 있느냐?”
그런게 일단 기계를 내려놔야 못 갈 것 아니에요. 그래 인자 기계를 내려놓고, 내가 좀 기도를 잠깐 했어요. 하여튼 이제 그 마당에다가 내가 인자 동그라미를 그려 줬지, 인제. 이제 동그라미를 그려주고, 이제 그 큰 기계 끝이서 회회 뱅뱅 돌아가면 우물이 뚫지 않는게비.
 그래서 이거를 한 100m를 뚫었어요. 그런게 100m는 다 안 되고, 한 85m 되거든. 그런게 순 바위만 뚫어가지고. 그래 얼마나 바위를 뚫었으니 그 사람들이 힘들었지요. 근데 물이 많이 나와요 예. 그래서 아주 약수에요. 그래서 이제 그런 전설이 있고,


10. 불길한 일을 알려주는 느티나무

유기진(75, 남)/영덕리T 3앞
[영덕리 느티나무 밑] 박종수, 강현모, 김무경, 김정선, 김종숙 조사(1999.5.27)

 앞의 제보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사찰 경내를 한 번 둘러본 뒤에 마을로 내려왔다.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느티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제보자를 발견하고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그 느티나무 역사가 500년인데, 500년인데(기침) 여그 인제 이거 본토 그 할아버지들 얘기를 들어 보면은, 그 느티나무가 역사가 500년인데 전장(전쟁)이 날라면은, 전쟁이 날라면은 그러니께 우리가 전장이 지금 많이 났잖어? 여학생들은 잘 모르지만도, 일정 때 제2차 전장, 뭐 그 후로 6.25전장. 뭐 수없이 전장이 이렇게 우리는 겪었는데, 그런 전장이 날 때는 이 느티나무가 운다는 거야.
 [조사자 : 어떻게?] 어떻게 우냐? 그러면은 아주 그 서글픈, 아주 슬픈 그런 음향을 내면서 어, 이 일대가 막,
 “웅~ 웅~!”
울리면서 그 느티남가 울었다는 거여, 전장이 날라면은. 왜 전장이 날라면은 그렇게 느티나무가, 나무가 ‘중겅 중겅’ 우냐? 전장이 나게 되면, 아 아군이 됐든 적이 됐든 사람이 많이 죽는단 이 말이여. 전장이 났다 하면은. 그러니까 사람이 많이 죽게 되니까 슬프다 이거지요. 사람이 안 죽어야 되는데, 많이 죽어서. 그 젊은이들이 전장터에서 죽어 나가니까, 인자 즉 말하자면 슬픔에 젖어서, 어 즉 말하자면 초목도 울었다. 나무도 울었다. 즉 말하자면 그런 전설이 있어.
 그럼 그 느티나무 앞에 가면은 비문이 있어요. 그 느티나무 역사에 대해서 비문이 있다니까. 어 비문을 거 딱 읽어 보면은 ‘인제 그 전장 날라면은 느티나무가 슬픔에 젖어서 울었다.’ 인자 그런 역사가 나와 있어. 써져 있어. 그렇게 써져 있고.


11. 선녀가 내려왔던 청명산

유기진(75, 남)/영덕리T 3앞
[영덕리 느티나무 밑] 박종수, 강현모, 김무경, 김정선, 김종숙 조사(1999.5.27)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곳에 있는 청명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보자는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전설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곳에서 태어난 노인들이 하던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난 요기 이사 와가지고 인자 느티나무 밑에 더 시원하니까 가거든. 가면 인자 할아버지들 옛날에 여 살았던 할아버지들 만나. 자연히 만나면 인자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 보면은, 여그 동네 역사가 나온단 말이야? 그런 얘기가 인자 나오고 거 인제,
 이 앞에 있는 산은 청명산인데, 청명산. 이 산이 거 할아버지들 얘기를 들어보면은, 글자 그대로 인제 청명하다라 해서 청명산인데, 옛날에는 항시 이 산봉우리는 그렇게 높으게, 높으질 않는 산이지만도 이 산이 보면은 그렇게 큰 산은 아니거든?
 큰 산은 아닌 데도 항상 그 산봉우리가 보이지 않게 가려 있다는 거여. 안개가. 안개가 끼여가지고, 그 봉오리가. 그러면은 인제 왜 그렇게 봉아리 가려 있느냐? 하는 것을, 인자 그 뭐, 뭐냐?
 문장덜이, 문장덜이 해석을 해 놓은 것을 보니까, 하늘에서 선녀가, 선녀들이 이 산은 비록 그렇게 큰 산은 아니지만도, 하늘에서 선녀들이 이산을 많이 내려온다 이거야. 그러면 인제 일반인, 사람들이 선녀를 보이지 않게 할려고 안개가 항상 싸여 있다 이거야.
 어 그래서 이 산이 아주 명산이래, 명산. 이 산에 올라가면은, 산이 여가 제일 여가 상봉인데, 바로 그조금한 5m 밑에서 항상 물이 있어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있어요. 그 물을 인제 올라가서 벵(병) 가져가서 인자 한 병씩 떠다가 먹는데. 약수로 이렇게 먹는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판단을 해도 산봉우리에서 물이 나온다는 것은 그거는 아주 힘든 일이 아냐? 물이란 것은 낮은 데서 나오는게, 나오게끔 돼 있지. 높은 데서는 물이 안 나오게 돼 있다 이말이야. 그럼 여기는, 이 산은 올라가면 노상 그 산이 아주 물이 더 있지도 덜 있지도 않어, 딱 그 양이. 물통으로 말하자면 한 두 통 정도, 대개 고여 있어.(일상적인 이야기 생략)
 그래서 그 으 청명산, 청명산 상봉에서 나오는 약수는 특별한 약수다. 즉 말하자면 하늘에 그(기침) 선녀들이 먹는 약수다. 어 어 이제 이렇게 옛날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은 그런게 전설이 있어.


12. 도깨비 일화(2)

유기진(75, 남)/영덕리T 3앞
[영덕리 느티나무 밑] 박종수, 강현모, 김무경, 김정선, 김종숙 조사(1999.5.27)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들이 도깨비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자신이 어렸을 때 경험하였다는 이야기를 시작하여 주었다. 이 이야기에 앞의 도깨비를 만난 배경에 대해 설명하여 주었는데 생략하였다.

 그런데 이래가지고 친구들은 다 훤해서 가니까 이상이 읎이 집이를 돌아갔는데, 이놈은 인제 캄캄한, (Tape 뒷면에 계속) 군소재지도 전기 하나 읎어. 거 뭐 거기시 저 면은 더 두말할 것도 읎고, 전부 초롱불이야, 초롱불. 그렇게 했는데, 해만 졌다 하면은 뭐 캄캄한 밤중이지. 그런데 뭐 인자 해만 졌다하면 이 도개비들이 막 설쳐요. 해만 졌다 하면 도깨비불이.
 [조사자 : 도깨비불이 어떻게 생겼는데요?] 어떻게 생겼냐 허면은, 도깨비가 인자 혼자 다니는 거 아니고 집단으로 다녀. 도깨비는 혼자 절대 다니는 법이 읎어, 도깨비는. 집단, 이 한 20명, 30명 이렇게 집단적으로 이렇게 행동을 한다고. 그렇게 해가지고 좌~악 일렬로 나라비 서서, 나라비 서가지고 일려로 좌~악 가다가,
 “오늘밤에 이 사람을 체포하자.”
고 했을 때. 아 저 사람이 하나 간다. 이 사람을 체포하자고 했을 때 강강 술래하는 식으로 빙 둘러싸요. 그래가지고 좌~악 이렇게 오무라 들어요, 빙 둘러가지고. 일렬로 좌~악 가다가 사람이 저기 하나 나타났다 그러면. 그 도깨비불이 새파래요. [조사자 : 어 새파래요?] 아주 파래요.
 그런게 번쩍번쩍하고 막 지금 뭐 네온싸인 돌아가는 식으로 그렇게 불이 번짝반짝 하면서 막~ 일렬로 가요. 여기서 보면 저- 건너편에, 인제 그 산 밑구녕 부근에 골짜기 같은 데서 막 시작해서 나와요, 도채비들이. 그도채비가 그- 뭐냐? 지금 말하자면 뭐냐 하면은 죽어가는 그 혼시이야. 혼. 그 참 억울하게 죽었다. 뭐 참 제명을 다 살지 못하고 이렇게 죽었다. 또 인저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보면은 인자 뭐 묘도 없고 그냥 막 파고는 갖다 묻어버린 거야. 그런 혼, 그런 혼신이 인제 그,
 “남과 같이 나는 살지 못하고, 죽어서도 남과 같이 좋은 무덤을 갖지 못하고 또 대명 일이 닥쳐도 뭐 참 물 한 모금 못 얻어먹고, 너무너무 원통하다.”

해가지고. 그 원한에 싸여가지고 도채비가 된 거야. 도깨비가 된거야. 아 그렇게 이 죽어 갔던 혼신덜이여, 혼신. 즉 말하자면 인제 거 보고 도깨비라고 그래.
 도깨비라고 그러는데,(기침) 그래가지고는 일렬로 가다가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했을 적에 저 사람은,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에게 해를 쳐서는 안 되는데, 이 사람은 뭔가 좀 틀렸다 이 말이야. 뭔가. 아 욕심이 지나쳤다. 남에게 좋지 않은 행동을 한다. 마음 심보가 좋지 않다. 그런게 이 사람은 좀 기압을 줘야겠다. 응? 버릇을 고쳐 놓아야겠다 이거야.
 그래가지고 인자 도채비가 그 사람을 인자 혼을 준거야. [조사자 : 혼을 줘요?] 근데 일렬로 가다가, 사람을 갖다가 더욱 가며는 빙둘러 싸가지고 포위를 해여. 포위를 해가지고 쪼금쪼금 이게 모아들어요. 그럼 망 안에가 딱 들었지, 사람이. 망 안에가 들었으면 이놈을 거꾸로 들어다가, 인자 어디 바우, 숲속 그 가시덤불 뭐 있는데, 그런데다가 갖다가 옴짝도 못하게 쭈그려 앉혀요. 죽이지는 안 해요. 기압을 준거야. 너는 욕심이 많아서 틀렸어. 다시금 니 마음에 있는 욕심을, 다음부터는 하지 않도록 정신적으로 기압을 준거야. 그러면 인자 동네서는 동물한테 물려갔나, 도 그렇지 않으면 도깨비한테 홀려갔나. 그런게 온 동네방네 막 인자 구석구석 찾고 돌아다니고, 골짜기는 골짜기대로 온 동네 사람이 나와가지고.(도깨비가 홀린 사람을 찾는 과정 생략)
 도채비가 홀려간 사람은 도채비가 죽이지는 않으니까, 또 먹지도 않으니까. 기압만 주는 거니까 도채비에 홀려간 사람은 살아있다. 그런게 찾는데까지 찾자.
 그래가지고 이렇게 그 도채비가, 도깨비가 사람을 갖다가 어디다가 어떻게 둔다는 걸 인자 알거든. 바우 틈이나 또 가시덤불 속이나 아주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데, 고런 데다 갖다 쑤셔 박아 놓는다 말이여. 딱 쪼그려 앉혀 놔. 옴짝도 못하게. 그러면 옴짝도 못 해요. 그래도 눈뜨고 그대로 있는 거여.
 [조사자 : 그냥 그대로 있어요?] 어. 옴짝도 못하고 숨만 쉬고 그대로 있는 거여.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고 도깨비들이 혼을 곽 누르고 있으니까. [조사자 : 그럼 어떻게 해요?] 그 혼이 말이야, 혼은 내가 보이지 않지. [조사자 :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도깨비에 홀린 사람들은요?] 그러니까, 그래가지고 인제 (지나가는 차량 때문에 청취불능) 몸에 있는 정신은 다 나가버린 거야, 그냥. 그 정도로 인제 그 도깨비가 기압을 준거여.
 [조사자 : 그러면 도깨비한테 홀렸다가 제 정신이 돌아오나요?] 그런게 우리가 가서 인자 찾아가지고, 지금 사고나면 뭐 그 소방대원이면 당나귀로 싣고 오니께 인자 병원으로 가는 식으로, 우리가 가서 인자 그 놈을 업고 가시덤불 속에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데 바우틈 속에 거기다 갖다 딱 쪼그리고 앉혀여, 거기다가. 그럼 가서 막 어거지로 그냥 빼가지고 업고,
 몰라. 아무것도 몰라. 살아는 있는데 아무것도 몰라. 넋이 다 나가버리고. 그놈을 업고 집에 와가지고, 인자 물을 뜨겁게 데워서 물 좀 먹이고, 사방을 이렇게 주무르고, 응 뉘어 놓고. 막 이렇게 주무르고 막 이렇게 인자 하면은 몇 시간 후에 눈이 깜박깜박 해여. 인자 정신이 좀 돌아오니까. 완전히 혼을 빼가버린 거야, 도깨비가.
 그래가지고 도로 회복이 되요. 아무 병도 없이 회복이 되는데, 그 도깨비한테 한 번 홀려 갔다 온 사람은 정상이 못 되어. 앞으로 살아나가는데도 정상이 못되고, 뭔가 조금 한 칠푼이나 팔푼이다 그러잖아? 너는 너는 육푼이냐 아니냐 이러고 농담도 하는데, 육푼이나 칠푼인가. 그런 평을 받는다고. 뭔가 좀 그 정상이 못되고, 좀 모자란 그런 행동을 한단 말이야. 도깨비한테 홀려 갔다 온 사람은. 그렇다고 해서 뭐 할 일을 못하고, 뭐 밥을 못 먹고 그런 것도 아니고. 정상인 것 같애도 정상이 아니다. 100% 정상이 못 된다 말이여. 도깨비한테 한 번 홀려 갔다 나온 사람들은 넋이 나갔던 사람이니까.


13. 영덕리의 골명 유래

김한선(69, 남)/영덕리T 3앞
[영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무경, 김정선, 김종숙 조사(1999.5.27)

 앞의 제보자에게 더 이상 조사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제보자를 돌아다니다가 어느 집 앞에 앉아 쉬고 있는 제보자를 발견하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부탁하자 이곳의 지명에 대해 구술하여 주었다.

 좌우간 여 항골 마을에 물땅골의 땅이여. 물땅 골의 골. 그 다음에 할머니 골, 그 다음에 늙은이 골, 그 다음에 젊은 총각골.
 [조사자 : 아, 그 청명산 골짜기마다 이름이 있어요?] 골짜기마다 그 명, 명칭이 있는 거여. 저게, [조사자 : 왜 그런 명칭을 붙였나요?] 그거는 나두 잘 모르는데, 그 곡적이 있는 거여. 물땅골. [조사자 : 말씀해 주세요.]
 엉. 그 다음에 중늙이골, 총각골 뭐 해서 일곱 골이 있는 거요, 그래. [조사자 : 총각골 말씀해 주세요. 할아버지.] 골은 골마다? [조사자 : 예 아니, 총각골이요. 총각골이 궁금해요.]
 총각골에는 거 총각무덤이 무덤이 거기 셋이 있다고 해가지고 총각골로 돼 있고. 그 다음에 제일 끄뜨머리는, 그저 끝의 머리가 짧아서 그냥 저 명이 그만큼 짧았다 해가지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일곱 골이 된 거여.
 그래서 옛날서부터 칠, 칠공주가 많이 나오는게, 이 전설의 고향이여. 여기 각 청명산에 이 골이 일곱 골이야. 저 영통지구까지. 황골마을부터 영통지구가지 일곱 골이 나온 거요. 작은 골까지. 큰 골서부텀 일곱 골.
 [조사자 : 아.. 할아버지 그리고 그 골짜기마다 그거 다 말씀해주세요. 그 골짜기 명칭이 왜 붙여졌는지?] 골짜기가 처음부텀 물땅골. [조사자 : 그러니까 그 이름이 어떻게 생겼죠?] 거기서 물이 많이 나와요. 이 큰 골이니까. [조사자 : 물 물이 뭐예요?] 먹는 물. 약수물. 약수물이 거기서 많이 나온 거여. 큰 골이니까. [조사자2 : 물탕골은?] 약수물, 약수터. [조사자2 : 그래 물터골에요?] 엉. [조사자 : 이름이요?] 물땅골이라고 그래요, 물땅골. 나도 몰러, 전해온 얘기가 물땅골이여.(구술상황 설명 생략)
 [조사자 : 저희도 무지 궁금해요. 지금 두 번째 골 얘기해 주세요.] 인제 두 번째골은 왜 늙은이골이라고 그러 거여. 늙은이골. 왜 늙은이 골이냐, 거기는 늙은이들이 거기서 놀기에 그 판단이 좋은 곳이 있어요. 그래서 저 늙은이들이 맨날 일은 안하고 거기서 그래도 놀고 그랬던 그 골이 있어요. 거기 골이 이렇게 넓어.
 [조사자 : 네. 그리고 세 번째는요?] 세 번째 골은 그게, 그거는 조금 더 저 그래도 핏기 있는 분들이 골을 찾는 건데, 그 골이 제일 길어요. 길으니까 그 젊은 사람들이 올라간다고 해서, 그 영통서부텀 그 올라가는 길이 아주 길다고. 그래서 거 젊은이 골이여. 그 다음에 저,
 [조사자 : 네 번째가 뭐였죠?] 네 번째가 이제 젊은이 골이라고 있어. 이제 짧은데 고걸 운치면, 그 저 오리나무 서낭댕이를 타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거기 길이 짧아요. 거 예전에 거 서천리 사람, 서천리 처녀하고 황골 총각하고 만나는, 골이 거기가 그 음침하다고 해가지고, 집도 읎어, 거기. 집도 읎이 거기서 만나는 골이 그게 다섯골째 골이여.
 [조사자 : 골 이름은 뭐에요?] 거 오리나무골이라고. 오리나무 골이라고 거기는 짧어. 거기는 사람은 얼만 안 살고, 아주 음침해 거긴. 고갤 넘어가도 집이 읎어. 인제 그게 다섯 개 아녀?
 [조사자 : 네. 그럼 여섯 번째요.] 여섯 번째는, 거기 여기서 이렇게 넘어가면은 그 하갈리 방죽이 뵈여. 근데 이거 저 거기 시루에서, 시루 그 오기를 검은 흙이루다가 맨들었다구, 옛날에. 그게 그 고개를 이리 넘어서 이리 가야 시장을 봤다구, 옛날에. 그런데 이 황골사람한테 마음을 사기위해서, 여기서 못 가게 하니까 여 마음을 사기 위해서 시루를 거 검은 시루를 하나씩 줬다는 전설이 있어.
 [조사자 : 아, 그럼 총각골은 어디로 갔어요?] 총각골은 저기 끄트머리 총각골이여. [조사자 : 일곱 골은 그냥 일곱 골이라며요. 할아버지?] (웃음) 그게 일곱 골이 총각골이여. 그걸로 끝난 거여.
 여 굽이굽이가 여기서 물탕골, 요렇게 구비가 저그서 일곱 골이여. 저 끄트머리까지.


14. 연애 바위
김한선(69, 남)/영덕리T 3앞
[영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무경, 김정선, 김종숙 조사(1999.5.27)

 앞의 이야기에 이어서 계속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것은 앞의 지명과 관련된 것이기는 하지만, 특벙 바위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립하여 실었다.

 거기에는 옛날옛날 그 곡절이 많은데, 거긴 연애 바우라는게 있었다구. 연애바우. [조사자 : 그런데 왜 지금은 없는 거에요?] 아 이래 개간이 되니까, 이 바우들이 다 읎어 졌지.
 [조사자 : 왜 연애 바우?] 거기 가면 연애 바우가 왜 연애 바우냐? 바우가 커다란데, 구멍이 이-만큼씩 뚫어졌어. 거기에 대해서 왜 옛날에 소꿉장난덜 해잖아. 그 바우를 자꾸 인저 ‘솥단지 건다’ 그러고 돌맹이로다 캔게 이렇게 뚫어진 거여. 이렇게 다섯 개가 ‘국 끓인다, 밥 끓인다.’ 인자 이렇게 구멍을 뚫어서, 이렇게 뚫어진게.
 아 이것 녹음이 되는 건가? [조사자 : 그럼요. 보세요. 여기 테잎이 돌아가고 있잖아요. 계속 얘기해 주세요.] 어. 그래 저 밥을 해갖고 해면, 그래도 총각 어른이 인저 저 늙은 할망구랑 이렇게 사귈 사람이 거기서 놀구 그렇게 지내구. 소꼽 장난 해구, 연애 걸던 그 묘(모)이한다 그런게. 이게 전설인게.


15. 원수 고개

김한선(69, 남)/영덕리T 3앞
[영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무경, 김정선, 김종숙 조사(1999.5.27)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마을과 관련된 지명에 대해 계속 구술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이곳에 있는 느티나무에 대해 말씀하시다 조사자가 고개에 대해 묻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 옛날 들은 애기인데, 원수 고개 거기 가면은, 거기 옛날에 나무가 굉장히 많았다고. 지금도 외진데.
 거기에 어떤 사람이 소를 팔아가지고 거기를 지나가다가, 거기서 살해 당했다고요. 그래가지고 거기가 원수 고개라고 이름이 지은게 있어요.
 [조사자 : 원소요?] 원수. [조사자들 : 원수. 왜 살해 당했데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돈을 뺏어 갔으니까, 소 팔은 돈을. 그 산이 굉장히 지금도 험해요. 요즘도 요기 요 산 넘어 들어가며는 사람이 안 사는데, 그 고개가 하나 있다고요.


16. 나무가 베어 나빠진 영덕리

김한선(69, 남)/영덕리T 3앞
[영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무경, 김정선, 김종숙 조사(1999.5.27)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마을에 관한 잡다한 말씀을 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구술해 주었다.

 솔직히 나무가 자끄만 읎어지고 나서 이 동네가 좀, 사람들이 잘 살았었는데, 그 당시 옛날에 제일 부자 동네였었거든. 그래서 황골이라면 제일 잘 사는 동네였었는데.
 저기 앞에 숲이, 나무가 자꾸만 짤러져 나가면서 그 복이 샜다고 그래가지고, 요 앞에 쪽 나무가 있었거든. 숲의 나무가. 이 동네를 외워싸고 있는 동네. 이 뒷전에 나무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런데 그 기가 빠져 나가니까, 나무를 짤르니까. 자꾸만 베어가고, 일본 사람들이 그 집짓을 사람은 다 베어가고, 이 앞에 숲이 이것 개발하기 전까지 쪼금씩은 있었어, 저기 뚝에.
 그전에 여기 앞이 안 보였다고, 저 길에서. 그 정도로 많은 숲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숲이, 나무를 비고 나서 참 이 동네 사람들이 못 살기 시작한 거지요.


17. 원천과 신갈의 유래

김한선(69, 남)/영덕리T 3앞
[영덕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무경, 김정선, 김종숙 조사(1999.5.27)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실제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잡답을 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이 이야기를 구술하여 주었다.

① 먼내

 저기 저 원천, 원 원천이라는 데가 있죠? 원천이 옛날에는 먼내라고 그랬다고, 먼내. [조사자 :먼내?] 먼내. [조사자2 : 먼-내] 잉 먼내.
 왜냐면 여기(영통)에서 가깝디도 않고, [조사자 : 멀지도 않고.] 멀지도 않고 중간이라고 해가지고, 먼내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고. 이것 먼내. (웃음) 그래가지고 이것 원천이라는 데가 먼내고.

② 신갈

 여기 신갈이래는 거를 뭐라고 그랬냐면, 그 신갈이 개울이 많잖어. 이 하갈리니, 뭐 저 서천리, 서천리도 천자가 내천(川)자 아녀? 그래 우갈리, 우갈리도 그 개울이 않여. 고속도로라나 뭐. 그래서 갈래라고 그랬어. 갈래.
 왜냐면 내천자에 네 갈래로 뻗었다. 내 천자, 내 천자니께 네 갈래로 뻗었다는 거 아녀? 그러니까 그 갈래라고 하는게, 신갈을 옛날에 ‘갈래’라고 그러고, 원천을 먼내라고 그랬었지.
 그래 그렇게 옛날에 짚신짝을 신고 댕길 적에, 그 뭔가가 먼내는 하루 갔다 와도 짚신짝이 덜 달고, 그러니까 거 짚신해서 먼내. 갈래는 워낙에 개울이 많다고 해서, 그 개울이 많잖어? 신갈 가면. 저 태평양 화학서부텀 접짝에 저 지곡리, 구성면도 뭐 냇갈 빼놓고 뭐 있겄어? 거 다 냇갈이지. 그러니까 거기는 그렇게 돼서 갈래라고 그런 거여. 갈래! 내천자. 그래서 갈래.

③ 황굴

 여기는 황굴(황굴마을 가리킴)이래는 게, 내가 볼적에는 한문으로 풀어 뵈면 곡 곡자라는게 들(덜) 좋아. 곡곡은 눈물 고인 곡이란 말이여. 눈물고인 곡곡. 거 곡을 핸다 하는 곡 곡자라. 밸루(별로) 몇 대, 3대 지나면은 다 그, 그 집안이 망해. 신씨, 이씨, 그런께 이씨, 신씨, 최씨, 김씨 다 망해서 됐구. 처음에 와서는 흥하다가 오래, 3대를, 아니 3대는 지나지만 4대가지는 못 나가. 여기가 그런 데여.
 [조사자 : 그게 왜 그럴까요? 지명 때문에.] 아니 그러니가, 한문으루 풀이하면 이름을 잘 지면은 벼슬도 따고 왜 그거 있잖어. 환 환경이 좋으면 벼슬도 되고, 뭐 산소자리 좋으면 그런 식으로 우리가 인저 그 고전 문화를 자꾸 캐고 보면은 그런게 조금 들어가잖어.


3) 민요

1. 자장가

양선명(81, 여)/영덕리T 1앞뒤
[영덕 4리] 박종수, 강현모, 김효순, 김윤미, 박진숙 조사(1997.5.18)

 앞에서 시집살이에 관한 말씀과 도깨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민요는 살아오면서 겪었던 것들을 말씀하던 도중에 불러준 것이다.

    멍멍 개는 짓는다.
    꼬꼬 닭은 운다.
    자장자장
하면서 뚜드리고 이렇게 등어리를 뚜드려 가면서,
    우리애기 잘도 잔다
    자장자장
그냥 그냥 이렇게 재밌었어. 업고 댕기면 그냥 이 사람이 얼러보고, 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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