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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역
기흥읍- 서천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제보자1(70대,여) 서천리의 유래----182 
(2) 한종순 (61,여) 가막골의 유래--------183 
(3) 김종원 (75,남) 임생골의 유래--------183 
(4) 김종원 (75,남) 궁말의 유래----------184
(5) 김종원 (75,남) 고래뿌리의 유래------185

9. 서천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한정아, 조영옥 조사(1997.5.11)

 서천리는 신갈리로부터 남서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마을로, 신갈저수지 서쪽에 위치한다. 이 마을은 경희대학교 수원 캠퍼스가 들어서면서 교통이 발달하였다.
 서천리는 용인군 기곡면 지역에 속하였던 곳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외서천 내서천을 합하여 서천리라고 하여 기흥면에 편입되었다. 서천리는 서그내 또는 서천이라고 하는데, 이 서그네는 호미 서를 쓰는 서그내로 호미나 쟁기를 뜻하는 말이 농업과 관련되어 생긴 지명으로 생각되는데, 이 서그내가 소리나는 대로 서(書)와 내 천(川)자의 한자를 차용하여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서천리를 이루는 자연마을로는 내서천, 외서천, 상서천, 불당골, 가마골 등이 있는데, 내서천, 외서천, 상서천은 마을의 위치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가마골은 서그네 동쪽에 있는 마을로 그릇을 굽던 가마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불당골은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1. 서천리의 유래

제보자1(70대, 여)/서천리T 1앞
[서천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정아, 조영옥 조사(1997.5.11)

 조사자들이 서천리에 도착하여 조사하려고 생각하니 막막하였다. 도시화된 마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지 몰라 잠시 망설이다가, 노인정을 찾아갔으나 문이 잠겨 있어 가정집을 돌아다니면서 채록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때 집에서 쉬고 있는 제보자를 만나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그런데 단 저기는 전설이 못 들었는데 그러드라고 으른들. 옛날이는, 옛날이는 여기 쌀을 많이 해서 쌓서 둘 데가 읎어가지고 땅에다 묻어 놨대. 쌀 다 썩었대. 쌀이 하두 많아가지고. 그래서 썩은내대. 원 썩은내인데 서그내라고 짓지. 이름을.
 [조사자 : 썩그낸대 서그내가 다시 서천리로 바뀐거에요?] 엉. 그렇지 썩은내래요, 썩은내. 그런데 서천리 바꿨지. [조사자 : 그럼 여기 농사가 돼가지고 쌀이 많은 거에요. 아니면,] 그렇지요.
 옛날이은 저 가마골, 가마골 부자라고 이름도 냈었데요. 그래서 가막골 [청취불능] 저 경희대 짓은데, 거기. [조사자 : 예 경희대요?] 거기는 가막골 부자라고 이름도 나서 철공시공도 허고. 지금은.
 [조사자 : 그러면 이쪽은 농사가 잘 돼갖고, 그게 계속 쌓여가지고 그렇게 해서 계속 부자가 돼서.] 그렇지. 부자가 여기가 더 많이 있었다가. [조사자 : 그럼 가막골같은 디는 특히 더 그렇다는 거네요?] 그렇지.


2. 가막골의 유래

한정순(61. 여)/서천리T 1앞
[서천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정아, 조영옥 조사(1997.5.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점인 아주머니에게 이곳 마을에서 지내는 마을제사인 성황당에 관해 들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제보자에게 가막골에 대해 묻자 구술해 주신 것이다.

 [조사자 : 여기가 가막골이 왜 가막골이라고 그런 거예요?] 그런 뭐 가막골이라고 핸 것은 옛날에 뭐 여러 가지로 말한, 말이 있는데 몰라. 가막골이란게. [조사자들 : 그래도 한 가지라도요 아시는 것요?] (웃음) 거기 저, 그러니깐 그전에 대장깐 알지요 대장간. 이렇게쇠 달궈서 뚜드리는것. 그 대장간도 있었고.
 그러고 인저 그것 굽는 가마가 골짜구니마다 있어가지고, 그래서 인저, [조사자1 : 그러면 대장간 마을이라고 해서, 그게?] 아니. 그 가마. [조사자1 : 그 가마 때문에 가마골이라 했, 그 가마가 많어서 그렇게 된 거예요?] 그렇지. 인제 뭐 인저 그릇 굽고, 뭐 쇠붙이 인저 달구고 이러느냐고. [청취불능] 응. 그런게 있어서 그런 겨.


3. 임생골의 유래

김종원(75, 남)/서천리T 1앞
[서천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정아, 조영옥 조사(1997.5.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장을 10년 동안 하였다는 제보자를 댁으로 찾아갔다. 조사자가 지명유래에 대해 유도하는 도중에 채록한 것이다.

 여기가, 이 동네 종손들인데, 여기를 갖다가 이 골자구니 이름이 임생골이라고 그러거든. [조사자 : 임생골요?] 예, 임생골. 임생골.
 그게 왜 그러냐 허면은, 그 임자가 아 맺길 임자 임가, 임씨가 있어. 맺길 임자. [조사자 : 맺길 임자요?] 잉. 맺길 임자가 뭐냐면 왜 책임감, [조사자 : 책임감요?] 책임 진다는 임자, 그게 맺길 임자거든.
 그래서 예전에 궁녀가 하나가 있었어요. 임씨. 그 여자 성이 임씨인데, 궁녀였어요. 궁녀. 그래서 여기서 죽어서, 거기서 낳아가지고선 죽어서 거기다 갖다 파묻었어요, 그 궁녀를. 거기가 임생골. 그래서 그 궁녀의 그 성을 따서 임생골이라고 이름을 졌었어요.
 [조사자 : 여기다 묻었으면, 여기 무덤도 있겠네요?] 녜. 그것 퍽 오랜 얘기인데, 여 여기를 파 보았더니, 거기 혹시 무슨 유물이나 들었을까 하고 궁녀니가. 그것 파보았대, 동네 사람들이. 노인네들이 몇 분이 팠는데, 아무것도 뼈도 안 나오고 숯만 나왔대, 숯. [조사자 : 숯요?] 숯은 그전에 사람 죽으면 [청취불능] 하느라고 숯을 묻었다고. [조사자2 : 밑에다 숯을 밑에 깔고 거기다가 사람을 이렇게.] 숯을 옆에다 묻었어.
 그래 숯만 나오고 아무 것도 읎었어. 그래서 거기가 임생골이라고 이름을 지었어.


4. 궁말의 유래

김종원(75, 남)/서천리T 1앞
[서천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정아, 조영옥 조사(1997.5.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그리고 이 동네 이름도, 동네 이름도 그 궁자를 땄어. 여기가 궁촌이여, 궁촌. 궁말. [조사자 : 궁촌요?] 응. 마을 촌자 그런게 궁말이라고 헌다고 여기를 서천리에서 여기를 이를 적에 궁말.
 그래 여기가 왜 궁말이냐? 그런게 그 궁녀 하나에 얽힌 전설이 그렇게 큰 거지. 옛날에는 궁녀도 큰 것 아니여. 그러니가 거기가 임씨가 성장했기 때문에 임생골. 여기 이 동네 이름을 궁말, 궁촌이라고 했어. 궁촌.
 [조사자2 : 아니, 서천리에서 여기를 부를 적에 그렇게 부른다고요?] 엉, 궁말.


5. 고래뿌리의 유래

김종원(75, 남)/서천리T 1앞
[서천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한정아, 조영옥 조사(1997.5.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계속하여 이곳의 지명에 대해 청중과 함께 제시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구술하였다.

 저, 이 동네 끝에 내려가면, 저 고래뿌리라고 고래뿌리. [조사자 : 고래풀요?] 고래뿌리. 고래뿌리라고 그러는데, 그 옛날에는 그러니깐 여기에 바닷물이 막 들어옹고 그랬어요. [조사자 : 여까지요?] 예. [청중 : 고래가 살았다는대.]
 그래서 고래가 거기 들어와서 나가질 못허고 죽었어요. 큰 고래가. 그래서 거길 갖다가 고래뿌리라고 그러는 거여. 그런, [조사자 : 이쪽 동네 끝이 어느 쪽이에요?]
 끝은, 요 아래 내려가면 거긴 뭐라고 그러는고 허니 와곡이라고 해. 왜골. 여기서 부를 적에는 왜골, 왜골 그렇게 불르는데. 거기가 와골여 와곡. [청중 : 지금들은 사람들이 그냥 왜골.] 왜골이라고 그러지. 왜골, 왜골. 그런데 거기가 그걸 한자로 쓰며는 와곡이라고, 와곡이 한문으로. [조사자 : 거기가 전해 내려요는 몇 가지?]
 그 와곡에 고래뿌리라는 데가 있는데, 그걸 왜 고래뿌리라고 했느냐면, 전에 그 물이 들어왔을 적에 고래가 거길 들어와 가지고 못 나가고 거기서 고래가 죽었어, 큰게. 그래서 거길 갖다가 고래부리라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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