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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역
기흥읍- 공세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제보자1 (70대,남) 공세리의 지명유래---------130
(2) 최순규 (66,남) 충신 편도공의 일화-------------130
(3) 최순규 (66,남) 백련지-------------------------132
(4) 최순규 (66,남) 3개의 명당을 가진 능선---------133
(5) 오광형 (44,남) 능이 있을 능안골---------------134
(6) 제보자2 (60대,남) 여우에 홀린 사람------------135
(7) 제보자2 (60대,남) 마을의풍흉을 가리는 나무----135
(8) 윤긍중 (84,남) 겨울에 잉어를 구한 효자--------136
 
  3) 민요
  (1) 가게주인 (68,남) 둘래요---------------------137

6. 공세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박용헌, 사은택, 한원섭 조사(1997.5.18)

 공세리는 신갈리에서 남쪽으로 8km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로, 신갈저수지 동쪽 중앙에 위치하여 저수지를 이용한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이 마을은 원래 나라에 바치는 세금을 저장하여 두던 창고가 있었으므로 공세굴 또는 공세동이라고 하였다.
 공세리는 기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에 공세동에 한의동을 합쳐 공세리라 이름을 지어 기흥면에 편입되었다. 공세동이라는 지명은 각 군․현 등의 치소와 관련되어 자주 보이고 있는 이름이다.
 공세리의 자연마을로는 한일, 큰말, 공세, 불당골, 탑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일은 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한의동이 변음된 것으로 보인다. 한의동의 유래는 ‘크다 넓다’에서 비롯된 것으로, 큰 마을의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공세는 세금을 걷어 쌓아놓은 창고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불당골은 절골이라고도 하는데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 공세리의 지명유래

제보자1(70대, 남)/공세리T 1앞
[큰마을 자택] 박종수, 강현모, 박용헌, 사은택, 한원섭 조사(1997.5.18)

 조사자들이 이 마을에 도착하여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마을 사람의 소개로 제보자를 댁으로 찾아갔다.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이곳의 지명에 대해 설명하여 주었다.
 
 여기 저, 고속도 궁따릴 내려가면 여 탑이 있는데, 그래서 그 탑. 탑이 있기 때문에 그 부락을 탑안이라고 해요. 그 뿐이에요. [조사자 : 근데 왜 그게 탑안이에요?] 탑이 있는 동네라 탑안이라고 탑안.


2. 충신 편도공의 일화

최순규(66, 남)/공세리T 1앞
[큰마을 밭가] 박종수, 강현모, 박용헌, 사은택, 한원섭 조사(1997.5.18)

 조사자들은 앞 제보자에게 더 이상 이야기를 채록할 수 없어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자리를 옮기는 도중에 밭가에서 일을 하는 제보자를 만났다. 제보자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이사를 하여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 일요일에 심심하여 이곳의 밭에 무엇을 심고 산소도 볼 겸하여 왔다가 조사자 일행을 만났던 것이다.

 여기는 저 공세리라고 말이여.(녹음 작동을 시험함) 공세리라고 주을 공자, 세금 세자. 세금을 이자 최씨네 문중으로 주라는 그런 그 전설이 있어요. 그래서 공세리여, 여기가.
 근데 저 위에 가면 능안골이라고 있어요, 능안골. 저 위에 가면 능안골이라고, 거기가 저 최씨네들 선산이요, 이 얘기가 사패지지여. 이조 대 여기를 전부 이자, 이 근처 땅을 전부 다 인저 하사 받은 거여. [조사자 : 누가요?] 최씨 문중에.
 아 어떤 때 언제 그랬냐면은, 이성계 있잖아요. 이성계. 저 아 태조, 태조. 태조가 도통사, 요동반도를 치러 갔잖어. 거기에 좌 뭐야, 좌장군, 우장군 뭐 다 거기 밑에 있잖아요. 그 밑에 한 사람이 우리 저, 편동호 할아버지여.
 근데 요동반도를 인자 가서 치기 위해서 압록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너무나 장마가 많이 져가지고 도저히 거기를 갈 수가 없어. 그래가지고 거기서 회군하기로 한 거여, 회군
 그날 저녁에 모이가 전부 다 회군하기로 인자 하는데, 거기에 인자 우리 인자 전부 다 찬성하는데, 한 사람이 반대를 했어. 바로 누구냐 하면은 여기 와 계시는 그 양반이여. [조사자 : 최씨?] 응. 그래가지고 그 양반이 거기에서 자다가는 죽게 생겼으니까 그날 저녁에 말을 몰아가지고 개성을 오셨어. 그래가지고 개성에 와가지고 인자 최영 장군한테 그 보고를 했어.
 그래가지고 이저 거시기가 인저 이 이성계가 회군을 해가지고, 이자 저 이조를 창건을 했잖어. 그때에 이 양반이 벼슬을 고만두고 전주로 피난을 가셨어. 근대 이성계가,
 “그 양반을 불러 오라.”
이거여. 그래서 갔어. 신하를 시켜서 갔는데. 이 대답 할, 안, 안 올라 오셨어. 대답도 오질 않고. 그래갖고 ‘여기 있다면 죽겠다’ 해가지고 또 청주로 가셨어. 청주, 저 진천 거가 가면 죽전천이라고 있고, 죽전내라고 있고. 이 뭐 저 죽전리라고 있어. 거기에 머무르셨다고. 그런데 다시 이자 이 이성계가 또 보냈어, 신하를. 거기가 있다는 걸, 계시다는 것을 알고, 그 때 그 양반이 거기서 또 사양을 했어.
 다음에는 3대 태종, 태종대왕 방원이가 세 번째 직접 왔어. 신하로써 두 임금을 또 섬기면은 충신이 아니다. 내가 술을 먹어가지고 이것 자꾸 엉뚱한 말이 나오네. 또,
 “신하가 임금에 명령을 복종하지 않으면은 어떻게 되시는지 아십니까?”
하고서는 그냥 돌아가 버렸어, 방원이가. 근데 태종대왕 되기 전에. 그러면 이미 죽인다는 거 아니야. 죽는다 아니여. 사형선고 받은 거지. 그래가지고 이 양반의 형님들이나 모여, 그 분들이 전부 고려 벼슬을 하시다가 다 인자 그만두시고, 어디 산속에 가 다 묻혀 계시고 하는데, 인자 찾아갔어.
 “어떻게 해면 좋겠냐?”고.
 “이모(이미) 인자 고려는 망했다 이거여. 그러니까 나가서, 우리는 늙어서 인자 죽어야 하고, 자네는 동새은 아직 젊으니까 나가서 백성을 위해서 일을 하라.”
고. 그래가지고 그 양반이 인자 벼슬을 하셨어. 그래 좌참참. 인자 그때로 말할 것 같으면 의정부사가 좌참참이여. 근데 그 양반이 참찬으로서 그 뭐야 저 의, 의정부사를 하셨거든.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국회의장이지. 그리고 서울판윤을 하셨고, 서울판윤은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시장.
 [조사자 : 그런 것을 하시면서 여기 이 땅을 하사받으신 거예요?] 응. 아니 내 말 들어봐. 그러다가 인자 그 양반이 인자 돌아가셨어. 돌아가셨는데 아 태조가 편도라는, 인자 자 방원이가 편도라는 호를 지어 주었어. 돌아가신 뒤에. 저 편할 편자 건널 도자 편편하게 건넜다, 고려에서 이조를. 편도라는 호를 내려 줘갖고. 지금도 편도공 산소라고 지금 이 그렇게 인정공 있거든. 그래서 그 양반이 에 인자 돌아가신 뒤에 산소를 여기다가 정했는데, 이 전체를 인자 하사했지, 정부에서. 그래서 하사받은 땅이야.


3. 백련지

최순규(66, 남)/공세리T 1앞
[큰마을 밭가] 박종수, 강현모, 박용헌, 사은택, 한원섭 조사(1997.5.18)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도중에 묘지와 관련된 지명을 채록하였다.

 여기 가면은 그 양반 인자 제각도 있고, 저 시름사라고. 또 그 위로 올라가면 백련지라고 연못이 있어요. 또 그 연못에 유래가 또 유명합니다. [조사자 : 무슨 지?] 백련지. [조사자 : 백련지요?] 응. 백련지라고 했느냐 하면은, 거기에 인자 에 길 닦은 연꽃이 분홍색 아니여.
 그런데, 하얀 연꽃이 필 때가 있어. 그 해에 우리 최문에서 벼슬을 하면은 꼭 장원급제를 해. 그래서 그 이름을 백련지라 지었어 그래서. 그런 연못이 있고.


4. 3개의 명당을 가진 능선

최순규(66, 남)/공세리T 1앞
[큰마을 밭가] 박종수, 강현모, 박용헌, 사은택, 한원섭 조사(1997.5.18)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계속하여 편도공의 일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가문의 일이라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준 것이다.
 
 그 위에 올라가면 인자 산소가 있는데, 그 산소가 또 유명해. 와 유명하느냐면, 한 능선에 명당이 이렇게 3개가 있다는 것은, [조사자 : 한 능선이요?] 한 응. 능선 하나에.
 제일 위에는 천을이라고 해가지고 ‘거기에다가 산소를 쓰면 왕이 난다.’ 그래서 능안골이여. 그 밑에 에 지열이라고 있어. 그래 우리 백로호 할아버지가 지열에 모셨고. 그 밑에 에 그 양반의 다섯째 아드님에 산소가 있어. 인열, 인열이라고 그래가지고, 그것이 풍설이 그 거짓말 아닌 것 같애.
 그 인열에다 모신 그 저, 산소 있잖아, 그 자손네들이 오늘날까지 벼슬 명맥을 계속 이어오고 있어. 지천대감 있잖아, 지천대감. 저 최명길 그 양반 손이고. 도 명곡상공, 정승을 여덟 번하신 분. 명곡 상공. 여덟 번 한 게 아니고, 여덟 번 사표를 써 냈지. 그래서 여덟 번 하셨다 해. 그 명곡상공도 그 양반 손이고, 그 인열에 모신 분.
 그리고 그 후손들이 계속 그냥 그렇게 번창하고 많은 벼슬들을 했어.
[조사자 : 그 묘를 잘 써가지고 그런?] 그러니깐 그런 전설이 있지. 인자 왜냐면 천열, 지열, 인열. 그런게 팔대, 우리 에 대한민국의 팔대 명다의 하나다. [조사자 : 팔대 명당 중 하나예요. 여기가?] 잉. 그래서 지관 공부하는 사람들이, 뭐 떡 그냥 여기를 공부허러 많이 온다고. 이 안에 가면, 내가 가면 또 자세히 설명도 해 줄 수 있는데.


5. 능이 있을 능안골

오광형(44, 남)/공세리T 1앞
[능안골] 박종수, 강현모, 박용헌, 사은택, 한원섭 조사(1997.5.18)

 조사자들은 앞 제보자에게서 더 이상 이야기를 채록할 수 없어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능안골로 옮겼다. 능안골에 들어섰을 때 제보자가 집안에 쉬고 있기 때문에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여기가 인제 뭐냐 하면은, 인저 옛날에는 능안골이라고 했단 말이에요. 능안. 응 (녹음상태에 대해 조사자에게 물음) 능안이 왜 능안이냐? 예날 임금이 저 여기 능텃 자리에요. 여기 올라가시다 보면은 아 한 300m올라가서 좌측으로 가면은 거기 굴이 있어요. 거기 능안골. 으 능, 능이 슬 자리로 여기를 옛날부터 지목을 했다고.
 근데 용인이 원래 인저 ‘살아서 진천 죽어서 용인’이라는 소린 들었죠. 그런데 용인이 인저 능자리가 좋단 말이에요. 그래서 능을 핼라고 그랬는데, 여기가 즘 물이 없어요. 물이. 그래가지고 실질적으로 능이, 여기, 여기 보시면 강도 없고 물이 없잖아. 그래서 능안. 여기가 안쪽에 있다 이런 얘기지.
 그래서 여길 능안골이라고 그러는 건데, 그러다 보니깐 전주 최씨, 그 옛날에 뭐 어디까지 벼슬이 올라 갔는지 몰라도, 여하튼 그 전주 최씨 그 벼슬했단 말이야. 그래 인저 능은 못 됐고, 전주 최씨 그냥 벼슬한 사람덜 여워 줬어요.
 그래서 그러다 보니깐 전주 최씨 그 묘가 굉장히 많단 말이야. 가 보면 묘도 잘 해 놓고. 그래서 고것 정도이지. 그러고 특별한 그런 건 없어요.


6. 여우에 홀린 사람

제보자2(60대, 남)/공세리T 1앞
[능안골] 박종수, 강현모, 박용헌, 사은택, 한원섭 조사(1997.5.18)

 조사자들은 앞 제보자에 더 이상 이야기를 채록할 수 없어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마을안을 돌아다니다가 제보자를 만나 부탁드리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오다가 여우한테 홀려가주고, 그 그 노인네가 그이한테 혼나서 놀래서, 그 병으로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돌아가신 기여, 그로다 놀래가지고. 그 여우한테 놀라가지고. 혼날 것 아니여.
 그, 그래 비 오다가 여우한테 홀려가지고 혼나서 그 병을 앓아가주고는 그양 돌아, 돌아가셨어. [조사자 : 근데 그 여우한테 홀린 사람이여, 그 할아버지 한 분밖에 안 계세요?] 그 다음, 그 분 베께 없지. 딴 분은 없어. [조사자 : 근데 그 여우가요 어디서 나온 거?] 어서 나온 건지 그건 모르지. 그건 뭔지 모르는 건데.


7. 마을의 풍흉을 가리는 나무

제보자2 (60대, 남)/공세리T 1앞
[능안골] 박종수, 강현모, 박용헌, 사은택, 한원섭 조사(1997.5.18)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잠시 멈추었다. 그래서 조사자가 마을의 제사에 대해 묻자 이에 대해 설명하는 도중에 채록한 것이다.
 옛날에, 아 모르신데 그 할아버지도 어쩌컨대, 낭구가 저기 뭐 풍, 풍년이 들면 밑창에서 피구. 또, [조사자 : 나뭇잎이요?] 응. 저기 흉년 풍년을 가린데, 이게.
 풍년 들 때는 밑창에서 먼저 피구. 중모 나갈 때, 나갈 때는 중간에서 피고. 만약 나갈 때는 꼭대기서 핀다고. 그런 소리를 들었대, 난.


8. 겨울에 잉어를 구한 효자

윤긍중(84, 남)/ 공세리T 1앞
[저수지 앞] 박종수, 강현모, 박용헌, 사은택, 한원섭 조사(1997.5.18)

 앞의 제보자에게 조사를 마치고 새로운 제보자를 찾았는데 연세가 좀 많았다. 제보자는 황해도에서 전승되는 것을 들은 것이라 한다. 제보자는 충청도로 이사를 갔다가 거기에서 살았다고 한다.

 우리 웃대 할아버지가 겨울게 인저 아버지가 병이 나셔 누어 계신데, 아주 꽝꽝 얼어붙은 겨울게.
 “잉어가 잡숩고 싶다.”
고. 그러고 하셨는데, 그러니 뭐 생각이 참 난감하지. 겨울기에 물이 다 얼어 붙었는데, 어디가 잉어를 잡을 수 있나.
 그래 어쨌던지 낚시를 해서 들구선, 거기 아주 큰 한강 같은 저 개울이 있어요. 저 황해도 저- 그게 무슨 나무리(냇물이) 그리 내려가는, 해주에서 내려가는 건데, 그거 아주 강 같아요. 그런 개울인데, 거길 인저 낚시를 들고 가셔서 인저,
 “아버지께서 이 겨울게 잉어가 잡숩고 싶다고 해서 왔으니, 잉어를 잡게 해 주십사.”
이렇게, 하 그냥 별안간에 구름이 들면서 뇌성벽력을 하더래요. 그래, 그 낚시를 그냥 무심코 얼음 위에 던졌다 말이야. 그래 이 얼음이 뇌성벽력에 즤 깨졌지. 인제 얼마 있으니께, 정말 큰 잉어가 하나 낚시에 물렸어, 올라왔던게. 그래 잡아갖고 집에 와서, 인저 그 아버님한테,
 “잉어를 잡았습니다.”
 “이건 내가 먹을 잉어가 아니다. 그런게 도로 갔다 놔 줘라.”
 그런 우리 집안에 전설이 있어요. [조사자 : 그래 잉어가 어떻게 됐어요?] 그런게 도로 갖다가 보내 줬지. [조사자 : 그 다음에 일 같은 거 안 생겼어요?] 이게 그래서 나라에서 그걸 알고, 효 효자 효자문을 세워서 외정 때까정 있었어요. 외정 말년까징. 그 전가기 있고 그랬었어요.


3) 민요

1. 둘 래 요

가게 주인(68, 남)/고매리T 1뒤
[공세 2리 가게] 박종수, 강현모, 우영제, 유도열, 권오준, 조정현 조사(1996.5.18)

 조사자들은 고매리에서 노래듣기를 마치고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다니다가 공세 2리까지 오게 되었다. 그래서 길가에 있는 가게 들려서 음료수를 사 마시며 주인에게 이야기나 노래를 부탁하자 들려주신 것이다.

    둘래요 둘래에요~
    어하오기나 (잊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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