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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역
기흥읍- 지곡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이복규 (68,남) 도깨비가 불을 밝혀준 할아버지------122 
(2) 이복규 (68,남) 마귀할멈이 나타난 석성산-------------123 
(3) 이복규 (68,남) 시신을 묻으면 비가 안 오는 명당------124 
(4) 이복규 (68,남) 조광조보타 실력이 좋았던 음애선생----124
(5) 이복규 (68,남) 까치산(오산)의 유래------------------126
(6) 김석순 (70,남) 지곡리의 지명유래--------------------127
 
  3) 민요
  (1) 박제희 (70,남) 모 심을때 부르던 노래--------------128
(2) 박제희 (70,남) 호미질할 때 부르던 노래--------------128

5. 지곡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김명식, 김화경, 박수진, 신현희, 안혜원, 최선영 조사(1997.5.25, 1999.5.16)

 지곡리는 신갈리에서 남동쪽으로 7~8km정도 떨어진 마을로, 남남동쪽에서 북북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그리고 남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주로 북쪽으로 통한 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지곡리는 기곡면에 속하여 지실, 디실, 지곡이라고 불리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사기막, 다래울, 기와집말을 합하여 지곡리라고 기흥면에 편입되었다. 지곡리란 이름은 이곳에 지초란 풀이 많이 나고, 부아산 뒤쪽으로 골이 깊어 지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이곳의 사은정에 모셔진 4분이 이곳에서 젊은 시절에 학문을 닦고 강론하며 교유하던 곳이라 해서 지곡(智谷)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곡리를 이루는 자연마을로는 하동, 중동, 상동, 사기막, 월애동, 기와집말 등이 있다. 월애동은 다래울이라고 하는데, 음애 이자선생이 달맞이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기와집말은 음애 이자 선생이 이곳에 기와집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사기막은 옛날 사기그릇을 굽던 집터가 있어 사기막골, 사구골이라고 한다. 그리고 상동․중동․하동은 지실의 위치에 따라서 붙여진 위쪽, 다운데, 아래쪽 마을의 이름들이다.


2) 설화

1. 도깨비가 불을 밝혀준 할아버지

이복규(68, 남)/지곡리T 1앞
[노인회관 2층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명식, 김화경, 박수진 조사(1997.5.25)

 조사자들은 이곳 저곳을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제보자를 노인회관 2층의 자택으로 찾아가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잘 아는 것이 없다고 사양하다가 조사자들이 도깨비에 대해 묻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옛날 말씀도 같고 불이 번쩍번쩍 했었다고. 여기 우리도 봤어. 여기에서 불이 쑥 갔다 쭉 왔다. 뭐 이렇게 왔다갔다하고 했었는데. 그건 저 비짜락(맞은편에 있던 싸리 빗자루를 가리키며), 저 비짜락을 뭐 잘못 해가지고, 으트게 돼서 부인네들이 깔고 앉았다가 그걸 버리면 그게 인시 뭐 그런 뭐 역할을 한다라고 하는 그런 얘기가 있는데 자세힌 몰라요.

 우리 할아버지께서 이장을 보셨는데 이장을 32년간 보셨어. 근데 그때 소임이라고 있다고 소임. 소임. 그래서 신갈서 약주를 잡수고 안 오시면 얼른 안 오시면 지금 민속촌 고개 있지요. 그게 옛날 길예요. 민속촌에서 가는 길이 또 있어요. 고굴고개라고 우리가 그걸 넘어서 신갈 초등학교를 여기서 걸어 댕겼어요.(코 푸심)
 그런데 이 양반이 약주를 잡수면 얼른 오시진 않고. 인자 소임이, 그 사람이 마중을 나와서, 민속촌 그 저 저저 사은영고개라고 지금 차 다니는 데요. 거 선황밲이가 있었고, 거기가 아주 험했어요. 소가 이렇게 나무 싣고 가게되면 뭐 가까스로 가게 될 정도로 선황이 이렇게 있어서, 나무가 죽은 듯이 사람이 가면서 돌 하나 던지고 침 세 번 뱉고 그라는 거, 것을 내가 나도 봤어요. 그라고 하고 다니는 것을.
 그런데 신갈에서 약주를 잡수고 오시다가 인자 그 복고개, 복고개라고해. 거길 오면, 오시면 앞이 환한데. 앞이 이상하다는 얘기야. 그래서 인자 소임도 같이 쫓아오면서,
 “아 할아버지! 그 길을 밝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여기 계속 오시다가 여기, 여기 여기에 연못이 있었어요. (검지 손가락을 바깥쪽을 가리키며 원을 그린다) 우리 논인데. 연못을 없애고 논을 만들고, 저 위에 그 둔봉(둠벙)을 맨들었지.(둠뱅의 만든 유래 설명 생략)
 샛개울 다리라고 해, 샛개울 다리. 여기 다리에 오게 되면 불이 온데간데 없어졌디야. 그래서 이상하다고 하는 얘기를 제가 들었어요. 근데 할아버지한테 듣지 않고 소임, 고산옥이라는데 고산옥, 높을 고자 무리 소자 구슬 옥자 고산옥이라고 그 양반 돌아갔지, 벌써.
 인자 그것을 전설이라고 할까 무슨 뭐 뭐라고 할까 얘기할 수가 있는 거고, 하나.


2. 마귀할멈이 나타난 석성산

이복규(68, 남)/지곡리T 1앞
[노인회관 2층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명식, 김화경, 박수진 조사(1997.5.25)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신이한 이야기란 측면에서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스스로 구술해 주었다.

 그리고 그게 이자 부아산이라고 있었어. 저 부아산. [조사자 : 저희 학교 있는데.] 여기서 가면 부아산이라고 있다, 여기 삼거리에 큰 산 있죠. 저 넘어 산은 석성산, 성산이라고 그라고.
 예전에 그 뫼여서 마귀할머니가 나온다고. 그래서 성이 있어요.
 지금도 우리가 신갈 학교에서 소풍을 가게 되면, 원정을 가게 되면 거길 갔었다고. 옛날에 인제. 그런데 여기 그거 그것에서 그건 끝을 내야 되는데,(웃음) 그러고 끝을 내고.


3. 시신을 묻으면 비가 안 오는 명당

이복규(68, 남)/지곡리T 1앞
[노인회관 2층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명식, 김화경, 박수진 조사(1997.5.25)

 앞의 이야기에 이어서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스스로 구술해 주었다.

 한참 가물고 그럴 때면,
 “누가 와서 모(묘)를 썼다.”
고 해서. 가서 파제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릴 들었어요. 그래 실제 송장이 나왔다는 얘기야. 그러니 야 묘자리가 좋으니까 거기다 갖다 쓰고는 비가 안 오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여기 이상하다. 여기다 뭐 갖다 묻지 않았는가!”
라고 생각을 하고는 가서 파헤치니까 송장이 나왔다. [조사자 : 원래 묘를 쓰면 안 되는 자리예요?] 네? [조사자 : 묘를 쓰면 안 되는 자리에요?] 안 되는 자린데, 자린데, 자리는 좋다는 이런 얘기야.
 그래서 제사장들이 보면 틀림없이 쓰면 되는데, 여기다 쓰면 비가 안 오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농민들한테 시련, 농민들이 시련을 겪는다. 아 그 자리는 좋은데. [조사자 : 그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가 많이 가는 거예요?] 예. 그렇지요. 갖다 쓰면은 임자가 써도 소용이 없어, 파헤치니까. 산 임자가 써도 소용이 없는 거야. 저는 보지는 못 했어요. ‘파제쳤다’고 하는 얘기만 들었어.
 이제 그런 것이 아마 구전으로 전해졌어.


4. 조광조보다 실력이 좋았던 음애선생

이복규(68, 남)/지곡리T 1앞
[노인회관 2층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명식, 김화경, 박수진 조사(1997.5.25)

 앞의 이야기에 이어서 농사가 잘 되었다고 간략하게 말한 뒤에 생각이 났는지 자신의 조상에 대해 구술하여 주었다. 음애 선생은 제보자의 14조 할아버지로 조선 중종 때의 본명이 이자라는 분이다.

 그(조광조) 양반하고 동연배 양반이야. 한 시대 양반인데, 우리 음애 할아버님이 연연 연세가 위시고, 대과 급제 장원 과거에서 일등을 해서 장원 자원급제, 장원급제라고 있지요. 그걸 하신 양반이 음애 선생, 우리14대 할아버지.
 근데 조광조 선생은 대과에 급제를 못 했어요. 진사에 급제를 해가지고 진사, 진사한 사람은 초시라고 그러지. 옛날로 따지면 보통문과를 그걸 봐가지고, 요즈음 말하면 고등고시라고 그러지요. 보통문과 시험을 봐가지고, 고등 보통문과 시험을 봐야 되는 건데. 보통문과 시험에 합격해서 해가지고 픽업[pick up : 중간에 발탁되는 것]이 되가지고, 이 양반이 개혁 그래서 우리 음애 할아버님은 그때 인자 조광조 선생하고 같이 이렇게 저기 하다가,
 “너무 과격하다 중용(바닥에 가운데 중(中)자를 쓰며)을 지켜야지. 중용이라든가 중도라는 게 있지요. 중(할아버지 기침) 중용을 지켜라.”
그래서 우리 음애 할아버님께서는 파직을 당하시고, 조광조 선생은 사약을 받고 돌아가셨어.
 그런데 저저 수지면 있지요. 수지면 거기에 서원이 있지요. 조광조 선생 서원이야.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사람을 이제 시체를 가져다 묻는 것이 순리인데, 이것은 평상시에 입던 옷을 가져다 묻었다고, 저 수지면에.
 그래서 그 양반이 어디서 돌아갔냐 하면은 우리 저 사원정이라고 있어요. 여기 우리 음애선생께서 한양 조씨가 조광조 선생하고, 그 밑에 두 분 하고 네 분이 사은정,(한참 동안 기침) 저저 보라리는 민속촌 아래야. 한양 조씨가 많이 사셔, 여기는 한산 이가가 많이 살고.
 그리고 이 동네는 한산 이가, 밀양 박씨, 현풍 곽씨, 제주 고씨 대개 이러한 풍파가 전에 살았었어. 지금은 개발이 돼서 게다가 또 뭐뭐 다 와서 살지. 근데 모르겠어 지금은 성씨가 어떻게 되는지


5. 까치산(오산)의 유래

이복규(70, 남)/지곡리T 2앞
[지곡2리 고추받] 박종수, 강현모, 신현희, 안혜원, 최선영 조사(1999.5.16)

 조사자들은 지곡 2리에 도착하여 이장님을 찾아갔다. 이장님께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이 제보자를 소개하여 주었다. 이 제보자는 지곡 2리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다른 곳에서 생활을 하다가 이곳으로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제보자는 이곳의 시제에 대해 말씀을 하시다가 이곳의 지명에 대해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준 것이다.

 그래 여기가 해주 오씨네, 해주 오씨네 산소가 저기 있는데, 근처의 17대에 서일공이라는 산소가 있어, 지금도. 그 바람에 우리가 산을 50, 40정 보구를 빼앗겼어. 우리는 사패를 그 후에 받은 거고, 그 냥반들은 그 전에. 17대하고 14대하고 차이가 무척 3대 차이가 나죠?
 그러니까 실천을 했는데, 산소를 잊어 버렸었어요. 그래 우리가 이렇게 보면은, 산소가 보니까 비석이 나오거든. 그래서 보니깐 해조 오씨다 이런 얘기여. 그래서 가르쳐 줬어요. 해주 오씨에다가. 가르쳐 줬는데, 이 냥반 들이 떼를 쓰는 거야.
 “이거 우리 산이다.”
 그래 4패를 받았으니 방법이 읎지. 그래 권력 투쟁을 한 거야. 그래 원이라 해서, 저 지금의 군이죠. 군에서 해결을 못하고 조정에서 해결을 했어, 중앙에서. 그래 거기서는 중앙에서 얘기가,
 “한산 이씨 댁은 많고, 해주 오씨네 산소 밲에 없으니께, 그 한40정보만 줘라.”
그러고 판결을 내려서 40정보 줬어.
 저 오산이라 해서, [조사자 : 저기요?] 아니. 이 산 보이는 것이 오산이요, 오산. [조사자 : 저 산요?] 엉. 저기 전기 첨탑 있죠? 저기가 오산이라고 그런다고. 그래 나라 오자 오씨인데, 까마구 오자 오산이라고 그런다구.
 그래 나쁘게 평을, 평이야, 평을 해기 위해서 나라 오자가 오산인데, 마구 오자 오산이라. 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 몰라요. 그런 일화가 있어요. [조사자 : 해주 오씨네 그것 때문에.] 예. [조사자 : 저 산이요?] 엉.


6. 지곡리의 지명유래

김석순(70, 남)/지곡리T 2뒤
[지곡 1리 어느 절] 박종수, 강현모, 신현희, 안혜원, 최선영 조사(1999.5.16)

 조사자들은 지곡리에 도착하여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길가에서 한 마을 분을 만나 제보자를 소개받았다. 제보자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5대째 살고 있다고 한다. 제보자는 절에 의지하여 살고 있었는데, 조사자들이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쉽게 호응하여 주었다.

 어느 비석에 보면, 지곡리가 지금 지초 지자 난초 지자 지곡린데, 이은제(언제)는 이게 그흥면 기곡리라고도 있고, 또 기흥면이 곧을 직 어디 뭐 다른데 꾸부러진 데도 없어요. 여기 외골자구니요, 여기. 그래 곧을 직자 직곡리라고 그러고. [조사자 : 직곡리요?] 응. 있고. 여기가 기흥면 기곡리여. 그런게, [조사자 : 기곡리요?] 기곡리.
 그래서 피난곳이라고 그랬어. 들어오면 나갈 데가 없으니까. [조사자 : 마을이 지고.] 지곡 지곡. 여기가 삥 들러 이렇게 외, 외골짜구니가 외골짜구니가 뭐냐면, 지끔은 그 뭐야 그 용인으로 뚫어져가지고, 제기 차가 넘어 다니지만, 전에는 이게 뚫리질 않고 맥혔으니까는, 들어오면 도로 빠꾸해 나가야 되고. [조사자 : 그래서 직곡리요?] 응.
 근데 그 곧을 직자가 뭐하니까, 그 난초 지자가 그게 향기로 지짜란 말이야. 또 향기로. 난초가 향기롭고 해서, 인자 이 중간에 지초 지자를 써서 지곡리라 그랬어요.


3) 민요

1. 모 심을 때 부르던 노래

박제희(70, 남)/지곡리T 2앞
[지곡 1리 어느 논가] 박종수, 강현모, 신현희, 안혜원, 최선영 조사(1999.5.16)

 제보자는 이곳에서 13대째 여기서 사는 분으로 이장님의 소개로 댁을 찾아갔으나 안계셨다. 그래 나중에 논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논으로 찾아가서,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민요를 음영조로 불러 주었다. 이 노래는 모 심을 때나 논맬 때, 호미질 할 때 부르는 민요라고 한다.

    어~ 화 어기 넘자~
    지거~ 었~ 네에


2. 호미질 할 때 부르던 소리

박제희(70, 남)/지곡리T 2앞
[지곡 1리 어느 논가] 박종수, 강현모, 신현희, 안혜원, 최선영 조사(1999.5.16)

 앞의 민요를 불러주고 나서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불러주신 것이다. 이 노래는 호미로 매거나 소질을 할 때 부르는 민요라고 한다.

    둘레야~~ 둘레야~~
    어~허와 둘~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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