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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역
용인시내- 역북동
 

  1) 마을개관-------------------------------------------147 
  2) 설화-----------------------------------------------148 
(1) 김봉서 (76,남) 함박산의 유래 (홍수 전설)----------148 
(2) 김봉서 (76,남) 용인의 옛 이름-----------------------149 
(3) 제보자1(70대,남) 용머리산 유래(떠내려 온 산)--------149 
(4) 제보자2(70대,남) 부아산의 유래----------------------150 
(5) 제보자2(70대,남) 여자와 고무신----------------------150
(6) 제보자3(70대,남) 을지문덕의 성----------------------151 
(7) 제보자2(70대,남) 생거진천 사거 용인-----------------152 
(8) 제보자3(70대,남) 단혈에 대한 일화-------------------153 
(9) 제보자3(70대,남) 우물 속 명당-----------------------154 
(10)제보자3(70대,남) 꾀를 써서 얻어 쓴 명당-------------156 
(11)제보자3(70대,남) 낳은 정 기른정---------------------157 
(12)제보자3(70대,남) 욕심을 부리다 잃은 계족산의 명당---159 
(13)제보자2(70대,남) 친정의 명당을 빼앗은 딸------------161 
(14)제보자2(70대,남) 주원장과 이성계--------------------162 
 
  3) 민요-----------------------------------------------165  
(1) 김봉서 (76,남) 함경도 오랑타령--------------------165 
(2) 제보자3 (70대,남) 독립운동가------------------------166 
 

역북동
가.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역북동은 김량장동 서북쪽에 인접한 마을이다. 이곳은 최근에 용인시의 팽창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곳으로, 시청을 이전 계획에 따라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지역이다. 역북동은 본래 용인군 수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역말과 북동을 합하여 역북리라 칭하여 용인면에 편입시켰다.
이 역북동의 구성하고 있는 자연 마을을 보면, 평촌은 김량장동과 인접한 동쪽에 있는데, 벌판에 자리를 잡은 마을이라고 벌말이라고 한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신성은 평촌 마을에 한국전쟁으로 생긴 피난민을 위한 가옥을 건립하였는데, 처음에는 수용소라 불렀다가 새별마을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기록한 이름이다. 역동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금량역이 있던 곳이라 역말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 표기인데, 이곳에 운정이란 물맛이 좋았던 약수가 나오는 샘이 있어 운정이라고 불렸다. 신대는 역말의 서쪽에 새로 터를 잡았다고 하여 새터말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곳에 마을이 생기게 된 것은 새로운 주점이 생겼기 때문에 신점이라고 하여 이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관골은 관터가 이 골짜기에 있어 불려졌다고 하나, 금량역에 속한 관원들이 살아서 비롯된 명칭으로 보인다. 낙은은 김량장동 북구와 인접한 마을로 나그네들이 쉬어 가던 곳이라 나그네골이라고 한 것이 변음이 된 이름인데, 마을의 뜻을 한자로 표기하여 여곡이라고 쓰기도 한다. 중간말은 새터와 구성의 중간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구성은 마을이 구석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운터골은 일명 음덕굴이라고 하여 낙은 마을 북쪽에 있는데, 아마 금량원이 있어 원터골이라고 하다가 변음이 되어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

나. 설 화

1. 함박산의 유래(홍수 전설)

 김봉서(76, 남)/ 역북동T 1앞
 [관곡]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첫번째로 이야기를 해주신 분은 평소 한복을 즐겨 입어 저고리 동정을 사 가지고 돌아가시는 할아버지로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해 주셨다. 본 고향이 황해도 황주로, 그 곳에서 보통학교를 나오셨다고 하셨다. 용인읍 역북동 관곡 340 - 5통에 사신다고 친히 적어 주셨다.
 
함박산이라고 있어요. 함박산. 저기 가면 보여요, 함박산. 여기 저 명지대학 앞에 가면, 거 보면 함박산이 제일 높아요. [조사자 : 예, 함박산이요?] 저기 성산도 있고, 저건데.
에, 그런 나도 80까지 됐지만 얘기 들은건데, 함박산이라고 있어요, 함박산. 함박산 넘어서 가면 제짝 이동면 저 고개가 있어요. 그전에 옛날에 여가 바다였었데, 바다. 바다. 바단데, 왜 함박산이라고 이름을 졌냐 하면요, 함박만큼 남았대. 여기 물이 침수가 돼 가지고 옛날에 보니까. 고려 · 신라 · 백제 저거 당시 있지. 근데, 그래서 함박산이라고 지었다고.
고 밑에 가면 문혼 고개가 있어요, 문혼 고개. [조사자 : 문, 뭐요? 문어?] 문혼, 문혼 고개가 있는, [조사자 : 아! 문혼이요?] 그 고개가 제일 높대요. 그래서 배가 글로 넘어가지 못 했대요. 그래서 문혼 고개라 지었고, 그래서 함박산이라고 졌대.

 

2. 용인의 옛 이름
 
김봉서(76, 남)/역북동T 1앞
 [관곡]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곳 용인의 지명에 대해 조사자가 묻자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 이야기를 마친 후에 기우제와 함경도 오랑 타령에 대해 말씀을 하여 주었다.

요게 용인면이야, 용인면. 용인면인데, 용인읍으로 시정된 지 3년 밖에 안 됐어. 날짜로 3년 전인데 용인읍으로 시정이 됐어.
그전에 여가 물 수자 나무 려자 수여면이였어요. 수여면.
 

3. 용머리산 유래(떠내려 온 산)

 제보자1(70대, 남)/역북동T 1앞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역북동 노인회관을 찾아가 할아버님들이 운동하는 놀이터에 찾아 뵜으나, 서로 이야기 해 주길 꺼려 하였다. 그 중 한 분이 우리의 요청에 이야기 한 토막을 해 주셨다. 성함과 연세는 말씀을 안 하셨다.

용머리 산이라고 칭을 해요. [조사자 : 예. 용머리 산요?] 자세한 건 몰라도 어느 구절에 장마가 크게 져서 떠내려 와 가지고, 용의 머리가 짤라져 가지고 산이 됐는데.
[조사자 : 아- 산이 된 거예요?] 그건 몰라. 그건 얼마가 됐는지. 몇 년도에 그렇게 됐는지 그것도 모르고. [조사자 : 그냥 그렇게 전해 내려온다 구요?] 응, 그렇지.


4. 부아산의 유래

 제보자2(70대, 남)/역북동T 1앞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노인정 놀이터를 떠나 마을 안으로 더 들어가 보니, 조그만 가게 옆에 노인회 간판이 있고 할아버지 두 분이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두 분 다 일흔이 넘으셨고, 자세한 연세와 성함은 밝히지 않으셨지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저게 질 부자 아이 아자 아이를 진다는 뜻인데, 그래 가지고서 유도대학이 제 생긴 게, 유도는 업는 거 아녀? 그래 가지고서 부아산이 제대로 임자 찾아왔다 그거야.
[조사자 : 아이를 지는 산요? 그런데 왜 아이를 지는 산이라 했어요?] 그건 뭐 옛날부터 내려 왔으니까 내막은 잘 모르겠고. 그게 아이를 지는 산에 유도대학이 들어 왔으니까 업는 게 아녀. 그래 가지고서 유도대학이 제 자리를 제대로 찾아왔다 아 이렇게 생각한다고.


5. 여자와 고무신

 제보자2(70대, 남)/역북동T 1앞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지금 세대에 여자들에 대해서 얘기 하나 할까? 왜냐며는 여자들하고 남자하고 촌수가 없어, 여자하고. 그러니까 어머니하고 아들과 딸 사이에도 촌수가 없어요. 어머니하고는 아버지에 대한 촌수여.
그러기 때문에, 촌수가 없기 때문에 여자들은 옛날 우리나라 조상들이 고무신을 갖다 왼쪽 바른쪽 없이 맨들어 놨어. 왜냐하며는 이쪽 욕할지 몰라도,(여학생을 보면서) 아무 남자가 신어도 맞게끔 되어 있어, 왼쪽이나 바른쪽이나. 그렇지?
그건 이치상 그래, 촌수도 없구. 그렇지만 부부지간 같이 가장 친한 친구가 없는 거여. 부부지간 외는. 그래서 이제 친구로만 생각하면 되는 거여. 단 한 가지, 여자는 그러니까 항시 몸가짐 몸조심을 잘 하라는 거여. 그거 한 가지만 내가 얘기해 줄께. 틀림없는 얘기지 그게.


6. 을지문덕의 성

 제보자3(70대, 남)/역북동T 1앞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옆에 있던 제보자에게 다른 이야기를 부탁하자, 생각이 났는지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김은석 장군이, 아 어디서 을지성이라는데, 만주 사평성 산성리라는 데가 이렇게 산이 높은데, 거기다가 그 분이 인저 옛날에 진격하고 갔는데, 을지성이 있었데.
그런데 인저, 내가 인저 그래가지고 일본 사람도 패가 되고, 우리나라 사람도 손들어 가지고, 만주 놈들이 국치나 가 가지고 쳐들어 간 거여 .
저기서 비석까지 있으니까 그, 그러니까 대륙성 기후가 여름철에 언제 구름이 다 닥칠지 몰라. 나 닥치면 어딘가 패고 가니까. 이 번개가 벼락을 치고 가니까, 하다 못해 낭비에 비석 아래 돌을 치고 가니까.
그, 이건 만주 중국 놈이 국치라고 나서, 그 연처에 종종 올라갔다가 산, 이렇게 큰 산 인데 올라갔다가 겁먹어. 거긴 대륙성 기후라 언제 구름이 몰려올지 몰라. 거, 건제 구름이 뭉게뭉게 몰려와서 산하고서 벼락을 쳐서 직사해 뻔지고 혀.
이제 한, 내가 동문하고 일하고 중국사람이 얘기했기 때문에 아는데, 그래 인제 이거는 영혼이 있다. 응 ‘을지산성에 염력이 있다’ 이런 얘기야. 그러니까 거 못 가서 비석 못 밟고 벼락에 맞아 죽었다. 이건, 이건 송나라와 전설이 내려와서 아무도 못 올라가고. 겁이 나서 저 죽을까 봐 올라갈 수 있느냐 이 얘기야. 그래, 이건 해방 직전까징두 이젠 일본 놈이 선(손) 뺼 때, 몇 개월 앞두고 나왔지만 사직을 끼지 않은 을지성이라 이 얘기야.


7. 생거진천 사거용인

 제보자2(70대, 남)/역북동T 1앞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제보자가 독립운동가를 부르기를 마치고 자신이 충주에서 이사온 유래에 대해 길게 말을 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제보자가 생각이 났는지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지명 하나가 상당히 좋단 말유. 용 용자 어질 인잔데, 용인하면 옛날에서부터 여자들 때문에 골치 아픈데, 이 왜냐하면 풍수지리 하는 사람들은 ‘생거진천 사후용인’이라 했단 말여. 용인에 명당자리가 있어 가지고서 사후용인이 아니거든.
왜냐 하면은 용인 여자가 시집을 왔어요. 용인 여자가 시집을 와 가지고서 사는데, 아들 하나 딱 낳고서 남편이 죽었어. 그래 가지고서 남편이 죽고, 아들 하나를 내팽개쳐 놓고서, 저 진천으로 시집을 갔어. 재가를 했단 말여. 거 가서 아들 삼 형제를 났단 말여, 진천 가 가지고.
게~ 용인에 있는 큰아들이 자기 어머니를 찾아오긴 찾아와야겠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진천 가 가지고 자기 어머니가 아들을 셋을 낳았으니 찾아오지도 못하고, 가서 쑤구리지도 못 허고, 그 애들 때매. 얘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야, 좋다. 어머니가 돌아가면 송장을 찾아와야겠다.”
그래가지고 자기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는 진천 가 살아온 거여. 돌아가자마자 어머니를 갖다 모셔다가 용인에다 묻었어. 그러니까 살아서 ‘생거’ ‘진천’이 ‘생거진천’이고, ‘사후용인’이 죽어서 용인에 왔다구 해서 용인이여. 묘 자리가 좋아서 용인이 아녀.
거 용인이 골치 아픈 거여, 여자 때문에.


8. 단혈에 대한 일화

 제보자3(70대, 남)/역북동T 1앞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제보자가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란 이야기를 마친 후에, 제보자가 앞의 이야기에서 명당이란 단어에서 생각이 났는지 명당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하여 조사자가 해달라고 말하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조사자 : 그 얘기 또 해 주세요. 재미있어요.] 왕비혈이 있어요. 용 용비혈. 왕이 거기서는 장군이, 아 나르고는 거저 이렇게 바우나게 하는데, 그 도막 위에다가 쇠를 요만치 댄, 요걸 갖다가 반구를 요만침 떼구는 땅에 들이박았다 이거야.
그럼 그거는 ‘혈을 질렀다’ 그러는데, [청중 : 그치, 그렇지.] 혈 찔렸다 그러는데, 이 이렇게 산세가 이렇게 나오므는, 이 날개가 이 짝 산에도 있고 저 짝 산에도 있는데, 두들겨 꾀고는 쇠붙이를 박았단 (말이여). 누가 얘기가 ‘혈을 질렀다.’ 건데, 사실이 이거, 건 지리사에 대해선 모르지만, ‘혈을 질렀다’ 하면 거기 정기를 빼앗기는 데, 그런 게 나와 있더라구.
[청중 : 아니, 숨어 있는 거야. 그냥 숨어 있는 거야. 고기 그대로 숨어 있는 거야, 그냥. 그거 빼면 바로 발복이 되요.] 직접 봤으니까, 세는데, [조사자 : 바로 발복이 되요, 빼면?] 거. 뭐 엄청나게 두들겨 박아 가지고, [청중 : 빨라야 30년. 혈이 끊어지며는 빨라야 30년이 되야 쪼끔 운이 돌어 오구.] 일본 놈이 박았다는데, 뭐 하긴 몰라. 이제 이건 불가사이니까. [청중 : 그러니까 그,] 혈을 질렀다는 얘기가, 사람이 침을 맞지 않습니까? 침을 그냥 꼽아 논 상태니까, 꼽아 노면 꼼짝 못하지. [청중 : 빼야만 낫던지 뭐가 되지.] 딱 찍어 놓은 건 절대로 꼼짝 못하지. [청중 :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면, 침을 빼면 낫던지 안 낫던지 자기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급소를 찔러 놓으면 이건 못 움직이니까, 그러니까 그게 정기를 못한다. 거 정기를 누가 우러러…. 무서운 얘기여 외로운 얘기구.


9. 우물 속 명당

 제보자3(70대, 남)/역북동T 1앞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같은 명당에 관한 이야기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이것을 물 명당이라고 명명하였다.

자기 아버지가 일류 지관인데 자기 시비는 안 잡더라 이거여. 그래 아들이 볼 때는 이상 터라. 아버지가 그래도 굴지에 지관인데, 당신의 터는 잡아놔야 될 꺼 아니여? 게,
“아버지 어째 되실려고 아버지 들어앉을,”
“너 베깥을 내다 봐라. 너의 어머니 있니, 없니?”
그러니까.
“아무도 없어요.”
“나 죽으면은 목을 싹 비어 가지고, 관을 비어 가지고, 머리를 그대로 봉해 가지고 요 샘에다 느라 이거지. 샘에다 느코, 몸둥일 갖다 남 몰래 장사를 지내라.”
아버지가,
“꼭, 그케 장사 지내라.”
물 명당이라 이런 얘기여. 그걸 엄마가 지나가다가 들었다 이런 얘기여. 엄마가 그걸 안 들었어야 물 명당이 있고 없고 하는 얘기지.
엄마가 인저 들었는데, 아버진 돌아 가셨구. 인제 자식하구 살다 보니까 뭐라고 했냐. 지 아버지 유언을 다 있구, 참 죽은 뒤에 남들 몰래 이렇게 싹 다 해치웠는데. 인저 자식하고 살다 보니까 거 으악이 나 가지구는 ‘오르니, 그르니’ 거 바른 소리가 문제가 돼 가지고는,
“이노므 새끼! 지 애비 목아지 잘라다가 물 속에 장사 지낸다.”
이 소리를 엄마가 소리냈네. 게 이웃에서 들었네. 이놈의 소리를 들었네. 그래서 동네방네 소문이 들어 가지고는 이웃에서 물을 퍼 보니까, 아주 깨끗이 짜 가지고 그냥 거기서 집어 는(넣은) 거여. 그 물을 여지껏 먹은 거지 인저. 그러니까, 물 속이 냉해서, 물 속에서 썩지 안잖아요? 얼음에 갇혀 안 썩어요. 냉수에 시체가 안 나타나니까 말이죠.
그래서 거기서 못 살고 딸려 나가지고 게, [청중 : 아- 뭐시기 됐다고.] 게 사람은, 인간이라는 건 비밀이 없어. 특히 명당 비밀인 건. 그리구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어떠한 비밀이라도 간직해야 할 비밀이 있으면 간직해야 된다.’ 이런 얘기여. 이것이 물명당 얘기예요.
[청중 : 나쁜 짓을 많이 하면 좋은 자리에 못 들어가, 천하없어도.] 자기 아니면 자식들한테도. [청중 : 힘이 없어요. 거진 다 그래.] 묫자리 좋은 것 들어간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착한 일을 많이 했고, 착하고. [청중 : 그런 고약한데 보며는, 살아 생전에 아주 고약한 짓을 많이 했지.]

 
10. 꾀를 써서 얻어 쓴 명당

 제보자3(70대, 남)/역북동T 1앞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제보자가 앞의 이야기를 끝마치고 같은 소재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또 인저 해방 후 얘긴데, 아주 가난해서 남의 집 살이 했는데, 그 동네 제일 부자 집에 가서 겹살이를 했는데, 어느 지관이 술을 먹고 그 집에 와 가지고 있었대. 접살이를 하니까 산으로 들로 들락날락 하고, 인제 여자 심부름 남자 심부름을 가릴 것 없이 하는대.
아, 고 밑에 제일 부자가 사는데, 한 삼백 석 지기 한단 이런 얘기여. 삼백 석 지기를 한다면 큰 부자는 못 돼. 그 뒤가 그 집 모이(묘)라 이런 얘기여. 할아버지 때 모인데,
“아! 조기다 쪼금만 모이를 돌렸으면 천 석을 할텐데,”
하고, 이 지관이 이런 얘기를 했다 이거야. 이걸 이 겹살이 하는 그 인제, 남의 집 사는 사람이 인자, 이 소릴 듣고는 집에 와서 마누라한테 얘기를 했다 이거여.
“거다 모이를 쪼끔만 해서, 이렇게 했으면 하더라.”
구. 그 마을에 있다 가만히 보니까,
“쓸 수 있다.”
이거여. 모이를 쓸 수 있다 이거여.
“내 시키는대로 해라.”
이거여.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하냐믄, 우연히 미치는데 가장해서 미친 겨. 부러 미친 척을 하면서 여기저기 돌아 댕기면서, ‘무얼 묻었다 파내고, 묻었다 파내고’ 그러고 다닌 겨.
(이하는 테이프를 갈아주는 것을 잊어 녹취하지 못함, 생각하여 후반을 기록한 것임) 그 후 2년 동안 무언가 묻었다 파내는 그런 미친 짓을 계속해 사람들을 속인 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때, 자기 아버지의 유골을 파내어 그 묘 자리에 묻었지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마을을 떠나 부산인가로 가서 아주 큰 부자가 되어 돌아 왔을 땐, 그 삼백 석 지기 부자는 망해 버렸어. 그래 그 집을 사서 묘를 다시 잘 해서 잘 살았대.


11. 낳은 정 기른 정

 제보자3(70대, 남)/역북동T 1앞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씨내리의 변형된 내용으로, 제보자는 이것을 실제로 일어났던 부산 사건이라고 하였다.

거, 부산 사건인데, 부산 해방 후 부산 사건인데 한 삼천 석은 인저.
칠 남매를 나 논 거, 엿 장사가 그걸 먹여 살릴 도리가 없더거라. 이 실화로 흘려내려 왔는데, 거 먹여 살릴 도리 없어 부자 집에 내뿌렸어.
거, 그 집에 아들이 없어. 아들이 없으니까 반갑긴 반가운데 이거를 키우나 안 키우나, 안 키울 수가 없으니 키웠다 이거여. 자 근데 아이는 모르는데 아버이는 알지. 엿 장사를 하고 그저 나와서 엿을 쪼금씩, 자기 자식이니까 저, ‘내가 아비란’ 소린 발설할 수 없고.
그래 가지고는 공부 잘 해 가지고, 옛 국민학교 중핵교라고 일본, 삼천 석을 하니까 일본 유학을 갔다 이거야. 근데 유학까지 갔는 데도 와서 엿을 비(베어) 준다 이런 얘기여. 대학생이 자존심이 상해서 그거이 엿을 받아먹겠어.
그래서 안 받아먹고, 그냥 받아 먹긴 받아먹었지. 하도 국민학생부터두 엿을 주고 다정하게 해 주니까 정에 못 이겨 받아 먹음시로 세상에, 이게 아저씨 그러대, 아저씨라고 했는지 할아버지라 했는지 뭐, 그런 아저씨라고 했겠지.
“아저씨는 나하고 우트케 됐길래, 꼬마서 부텀 내가 대학을 댕기고 일본 유학을 댕기는 데도 응 엿을 주느냐?”
이거야. 게 엿을, 게 사실은 얘기를 했다 이런 얘기야. 게 아버지가, 아버지가 얘기를 하니까, 얘기를 하니까,
“그러냐구. 도리 없지요.”
그래 가지고서 인저, 전 가서 어떤 노인을 보니까, 할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아니라고. 할아버지라고 참 그랬어. 그 할아부지 쎄게 왔단 말이여. 근데,
“아부지! 누가 있길래 어렵다.”
고. 그러면은 [청취 불능] 게, 그런 얘기를 죽 하니까. 고백 안 할 수가 없잖아. 안 할 수가 없으니까, 그럼 이걸 판단을 해야지. 저 와서 이케 돌봐 줬는데, 안 되는 게 이 집 돌봐주고 재산을 들여다고. 이게 합세도 안 되고. 그래 이 대학생이 딱 생각할 때 기른 정도 있고 낳은 정도 있으니까, 딱 천 석을 떼 줘 가지고 아버지 어머니를 떼 버렸어.
“이거 인연을 끊어야지. 이래가지고는 사회문제 밖에 안 되니까. 천 석 지기를 떼 내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떠나고. 가 잘 살고.”
그케 그렇게 냉정할 때는 냉정해야 되거든. 그게 뒤범벅이 되면은 이 집도 저 집도 다 맹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날(나를) 낳아주신 분도 부모고, 날 기른 분도 부몬데 인정에 따라 참 정에 따라 살라 이거여.


12. 욕심을 부리다 잃은 계족산의 명당

 제보자3(70대, 남)/역북동T 1앞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사람이 정의에 따라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과 노태우 대통령에 관련된 예화를 들어 설명하였다. 앞의 것과 같은 풍수지리에 관련된 소재라 생각이 났는지 자신의 고향인 충주에서 들은 이야기라며 계속 구술하여 주었다.
 
난 충주서 온 사람인데, 충주에 계룡산이 있어요. 남산 계룡산이 있는데, [청중 : 계룡산은 공주지.] 아니 계족산. 내가 잘못 알은 거여. [조사자 : 계족산이 대전에서부터 이어지나요. 계족산은 대전에 있지 않아요?] 계족산이 어디서부터 내려왔는지 난 모르고 제일 크고, 해발 500m 남산이 한 400m 되는데, 어느 지과사(지관) 하는 분이 과객으로 누구 댁에 들렀다 이거여.
과객이라, 마침 보니까 고을 원을 해먹던 집이라 이거여. 시방으로 말하면 군수쯤. 그래 옛날 과객을 무시 못한 원인이 있어요. 뭐시냐 과객 중에 보따리에 보며는 무신 글을 배웠는지 또 글 배우는 사람이 과객질을 하지. 아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은 뭐, 거 문간에 가서 바가치나 흔들고 이런 뭐, 생활이나 해 갖고 그 사람 뭐. 근데 거기서 인저, 그때 원이 원이라는 걸 몰르고 풍설이니까. 제 대접을 받았다 이런 얘기야.
대접을 받고 나서 쪼금 안다 그래. 허- 그래 인저 계족산으로 올라가서 보니까 용비, 학비혈이라 이거여. 학이 나르는 혈이라 이런 얘기여. 나도 들은 얘기지. 직접 올라가 본 것도 아니고. 그러다 참 등에다 (묘를) 이러구 쓰고, 참 그거,
“이거 학 하면 참 옛날에 뭐, 뭐 큰 대인이 된다.”
그러드래 이러거든. 그냥 참 자리도 좋고 훌륭하거든. 그 당시는 대문을 닫고. 거 뭐, 매일을 놓고 또 자연 괘사매라나, 또 쉽게 애기하면 간단히 한 잔 되받으면 나오리. 거기서 오래 있으면 자꾸 떨어지잖아. 그러고 나서 점점 잘 되서 집도 부자가 되고, 점점 명의가 높고 잘 됬다.
아, 그게 미련이지 인간. 게 인제 요번에 잘 됬으면 대우를 받을 테구. 이제 옛날 이야기 처음에 들어가서, 들어가 자니까 아주 박대를 하드라 이런 얘기여. 되긴 더 잘 됬는데, 뭐가 더 잘 됬는지 뭐, 돈을 잘 벌었던지 칭송이 많던지. 거 크는, 그 고을에서 점점 명성이 높으니까 큰 거야. 그래 그래 가지고서,
“그 자리다, 양짝에다 비석을 한 짝 세웠으면 대재해서 대감을 해 먹것다.”
그러니까. 이 원에 있던 머시기가, 우선 제 욕심만 냄기고 그 이치를 생각지도 않고, 그 고을 원이니까, 대감 막 석수 데려 놓고 비석을 해 가지고 학비혈 양쪽에다 딱 놔 버렸어. 결과는 어떻게 됬느냐, 망했다 이거여.
날아가는 학에 탄, 날아가는 양짝 날개다 돌을 놓았으니 날라 갈 수 있느냐 이 말이여. 그래 모든 것은 다 이치에 따라서, 지과사도 이치에 요해 날라 가고, 인생도 다 사회적인 원리에 맞아서 돌아가는 거 아녀.
우리 선생님들은 아주 그런 전설이 있어. 학이 날아가는데 ‘양쪽 날개에다 냅다 비석을 세우면 더 잘 된 데니까’ 그러지 않아도 잘 되고 있는데 더 잘 될 거다 욕심이 땡겨 가지구. 아 뭐 학이 나를 수 있어. 돌로다 꼭꼭 눌러 놨으니. 그런 전설이 있어.


13. 친정의 명당을 빼앗은 딸

 제보자2(70대, 남)/역북동T 1앞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자, 옆에 있던 제보자가 풍수지리라는 같은 소재라 생각이 났는지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여자가, [조사자 : 여자가요?] 왜냐면 저 여자가 시집을 가 가지고서 사는데. 아주 가난해, 아주. 워낙 가난해 가지고서 말도 못 해. 그런 데다가 친정 아버지가 죽었단 말여.
그래 가지고서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 뭐, 가서 보니까 아주 모이 자리가, [청중 : 한 잔 해요. 아니! 아주 조금만 해요.(음료수를 권하며)] 복호형이라고 호랑이가 엎드려 있던 자리인데 참 좋아! 암만 봐도 지금도 좋다고.
거다 인제 모이를 쓸라고 잡아 가지고서 구덩이를 파는데, 옛날에는 밤에 지켰어, 꼭. 광부가 파 놓고서 딴 사람들이 침범할까 봐, 갖다가 쓸까 봐 꼭 지킨다구. 게, 인자 뭐 부잣 집이구 벼슬 꽤나 하는 집이구 하니까 지키구 있는데, 암만 생각해 봐도 그 노무 자리가 욕심이 난다 말여. 그래 시집간 딸이 ‘뺏긴 뺏어야겠다’ 해서 친정 어머니한테 들어가 가지고서,
“엄마, 엄마! 나 저 약주 술 좋은 거, 독한 술로 해서 한 동이 하구 닭 볶은 거 다섯 마리만 달라.”구.
“너, 뭐 할라구 그러니?”
“아, 글쎄 나두 먹구. 응, 사위도 좀 주구. 누구 좀 노나 줄려구.”
“그럼 그래라.”
워낙, 시집가서 딸이 가난하게 살구 측은한 마음이 들어 가지구서, ‘그까짓 거야 못 해주랴.’ 하고 닭 몇 마리 볶구, 막걸리 좋은 약주 한 동이를 주었다구. 그랬더니 그걸 갖고 응, 닭을 들구 가 가지구서 밤에 지키는 사람들에게 갖다가 슬슬 따라 분 거여. 그래 가지구서 독한 술하구 닭고기를 주니까는, 배도 출출하니까는 먹고서는 뒤로 자빠졌단 말야. 그리고 그 동이로다가 옆에 개울에 가서 계속 물을 갖다 분 거여.
그래 그 새벽에 일어나서 이렇게 보니까 물이 한강 아녀. 그래 가지구서 인저 모이로 쓸려구 상주가 가서 딱 보니까 물이 잔뜩 고였으니 쓸 수가 없잖어. 그러니께 일단 지관을 불러다 놓구서 묘이 자리를 새로 잡는 겨. 잡아 가지구서 딴 데다 쓸라구 할라는 찰라에 시집간 딸이,
“오라버니, 오라버니! 모 자리 어차피 내빌라믄 날 좀 달라. 우리 저,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긴 돌아가셨는데, 어디 마땅한 자리가 없어 가지고서는 그냥 개 끌어 묻드시 묻어 가지구서 아주 볼쌍스럽다우. 이거 어차피 버릴 거면 저를 주시오.”
아! 덜컥 승낙해 버렸네. 아 그게 물 고였것다 까짓 거. 그래 가지고서 친정이 쫄닥 망했어. 친정은 쫄닥 망하고 그 집은 부자가 되어 가지고서, 그 전주 이가 효령대군파, 아주 잘들 살아요.

 
14. 주원장과 이성계

 제보자2(70대, 남)/역북동T 1앞뒤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제보자의 집안에 관련된 말씀을 하였다. 그러다가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구술해 준 것이다.

주원장이 하고 우리 이태조 하고 같이 등극을 할 때, 이거 너무 거창한 거 같은데, 그짓말 반 참말 반인데. 근데 어느 집에 아가씨가 있는데, 과택이었다 이거여.
과택이 있는데, 거 인제 딸을 길러 곱게, 곱게 길렀는데, 꿈에 자꾸 그 미남자가 찾아와. 이쁜 미남이 찾아오니까, [청중 : 아무 기탄 없이 얘기해요. 기탄 없이 얘기해요.] 찾아와요. 거 심지어 몸까지 팔렸다 이거여. 어 몸뚱이랑 몽사까지 이뤘다 이거여. 그냥 자꾸 이쁜 남자가 찾아와 가지구서는.
그래 가지구서는 도태(임신)가 됐네. 도태가 되어 가지구 아들을 낳았어. 근데 남자도 없어. 남자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꿈에 몽사를 해 가지고 도태를 했는데, 근데 어머니하고 나이가 사춘기가 들어가니까 담판을 하는데, ‘나 이거 영락없이 애비 없는 호로새끼야.’ 옛날에 애비 없는 호로새끼가 무슨 말이냐 하면? 말할 것도 없지. 거시기 그래서 저다, 저다 보니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엄마하고 담판을 하는데,
“나는 이렇게 설움 받고 살 수 없어. 나가면 ‘애비 없는 호로새끼’라고 이거 살 수가 없어. 자존심 상해서 못 살겠다. 엄마! 얘기 좀 해 줘요.”
“난, 얘기 알 길이 없다.”
이거야. 게,
“너는 어떻게 됐냐면, 난 몽사를 한 사실이 있다. 꿈에 하두 그래서, 그 이튿날 아침에 아냐, 몽사를 해서,”
하루는 하얀해 가지구 바늘에다 실을 꼬여다가 명주실 있잖아. 서서히 풀려 나가는 거 있잖아, 베 짜는 것. 거기다 꼬여 가지고 옷에다가 꼬매 놨다 이거야. 단단히 안 빠지게 댕여 놨다 이거야.
그래 일찌감치 날이 샘으로부터 저기 압록강 사는 거기 다시 찾아가는데, 실 끝 따라서. 그래 이렇게 보니까 뭐가 하나 실 끝에 매달려 죽었는데, 물 위에 물건은 개볍그든. 이렇게 잡으 댕기니까 수달피가 죽어 있어. 꼬여서 수달피가 죽었다 이거여. 그러니까 그 질로,
“아! 난 수달피가 아버진가 보다.”
옛날엔 단군이 곰의 자식을 갖다, 수달피의 아내인가 부다.  그래 알고서는 그저 먹으면 강에가 놀고.
내다보니까 그 산기슭에 ‘모이 관 들어 갈 만한 곳이 딱 두 개가 있다’ 이런 얘기야. 옛날 관 들어 갈만한 곳. 그래가지고는 거기서 물 속에 들어가서 잼겨 보기도 하고, 괴기도 잡고, 물 속에 오래 헤엄을 치니까 물 속을 어느 정도, 아주 헤엄에 능란하지. 거 가보니까 이렇게 드러누워 사람 죽은 시체 진짜 꼭대기 관은 누울만 하고 탁 드러누워 있다 이 말이여. 거기서 참 노는데, 한 번은 점잖은 노인이 와서,
“얘야, 애야! 얘 너 저기 헤엄쳐 들어가 봤니?”
“예, 들어가 봤어요.”
“거, 어떻디?”
“거, 관 꼭대기 쓰고 밑에다 쓰고. 사람 죽은 거, 시체 관 두 개 넣으면 마침 맞겠대요.”
이거 바보지. 물에서 들락날락,
“그럼, 너 거기까지 뭐 운반할 수 있겠니?”
“네, 운반할 수 있습니다.”
“그래! 관두 해겠니?”
“뭘, 관은 개볍지요. 물 위에서 까짓 거.”
그러면,
“밑에다 쓰면 대국천자가 되고, 위에다 쓰면 조선왕이 된다.”
이거여. 그래 인제 이렇게 관을 가지고 물 속에 헤엄쳐 들어가니까, 가만히 생각하니까 ‘천자가 위에 있지 어찌 아래 있느냐’ 말여. 지기루 있지. 천자가 위에가 있지 아래가 있을 수 없지. 빌어먹을 바꿔치기 했다고.
그래서 그거 관을 바꿔치기 한 거야, 바꿔치기. 바꿔치기 했는데, 밑에 그거는 그러니까 인제 위에 쓸 이 사람은 정기를 빼앗겼지. 인저는,
“너는 천자가 되아라.”
인저, 거기서 즈 아버지를 모신 것이 꺽여서 주원장이 되고, 한국에는 이퇴계 아니 이성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저 아득한 옛날에 전설이 내려와 있어. 이건 그짓말이래도 이치는 맞아.
(이후 누루하치에 대한 설명 생략)

 
다. 민 요

1. 함경도 오랑 타령
 
김봉서(76, 남)/역북동T 1앞
[역북동]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이 노래는 용인의 이전 이름에 관한 지명을 마친 다음에 기우제 대해 말씀한 뒤에 생각이 났는지 불러주신 것이다. 이것을 끝으로 다른 제보자를 찾아 나섰다.
 
함경북도 · 함경남도 · 평안북도 · 평안남도 있는데, 함경도라는 데는 배를 많이 타고 저기 해야 하지 몰라요, 함경도 저 뭐이가 노래가 있어. 오랑 타랑 본 고향이 함경도 원산이지. 근 말이 있잖아? [조사자 : 끝까지 해주세요?] 아, 근데

 시자데이 자라게
 경서하고도 신마찌라

하는 말이 있잖아? 함경도 오랑 타랑


2. 독립운동가

 제보자3(70대, 남)/역북동T 1앞
[6리 노인회관] 박종수, 강현모, 성채순, 이호경, 최윤정 조사 (1995. 11. 11.)

앞의 을지성에 대해서 구술한 다음에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불러준 노래이다. 이 노래는 일제시대에 독립군이 독립 운동을 하면서 불렀던 노래라 하는데, 제보자는 고학할 때 어려우면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만 게서, 저-학생이 학교 댕길 시에는 독립가가 삼백 몇 가지나 되. 만주 만해도 그런데 우리가 부른,

 청춘은 맑고 맑은데
 앞을 가리고 다시 보지 못하는 이몽이로다
 잠든 나라 깨워서 고향 살리고
 천만리 앞을 나서고 가자

젊어 고학생 시절에 부르게 되서 잊어버리도 안 해. 입에다 설설설설. 가서 차안서 따먹고, 데모하고, 위암 철인 것은, 이제 이런 것을 우리 국사적인 훌륭한 일화로 얘기 거리가 됐지만. 이에 뭐, 용인에 와 보니까 하전찮어. 충주에서 이사온 지 2년 밖에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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