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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역
용인시내- 고림동
 

  1) 마을개관----------------------------------------------223
  2) 설화--------------------------------------------------224
  (1) 김명선 (69,남) 도깨비 홀린 사람----------------------224
(2) 김명선 (69,남) 불을 켜 주는 호랑이---------------------226
(3) 김정순 (75,여) 강림도령의 효도-------------------------227
(4) 이택수 (56,남) 신방지키기의 유래-----------------------230
(5) 민배식 (80,남) 고림동의 지명유래-----------------------232
  ① 림원의 유래-------------------------------------------232
  ② 가정자의 유래-----------------------------------------233
  ③ 고진의 유래-------------------------------------------233
  ④ 용마뱀------------------------------------------------234
 
(6) 민배식 (80,남) 생거진천 사거용인-----------------------234
(7) 박용남 (72,여) 목에 비녀 걸린 호랑이를 구한 사람-------235
(8) 이강래 (59,남) 떡국새----------------------------------237
(9) 안종수 (59,남) 안자 묘가 살아난 유래-------------------238
(10)안종수 (59,남) 정몽주 선생의 묘소 쓴 유래--------------239
(11)안종수 (59,남) 이진 마을의 유래------------------------241
(12)이덕재 (63.남) 용인의 유래-----------------------------242
(13)최영은 (74,남) 오누이 싸움은 한 석성산-----------------242
(14)최영은 (74,남) 물이 넘어가야 할 태화산-----------------244 
(15)최영은 (74,남) 봇둔지와 보평 유래----------------------245
(16)최영은 (74,남) 돌무덤과 아기장사-----------------------246
(17)문성의 (74,여) 구렁이를 상하게 하여 벌을 받은 사람-----248
(18)문성의 (74,여) 나라의 왕이 된 아이---------------------251
  ① 어머니의 원수 갚기------------------------------------251
  ② 아기장수 물리치기-------------------------------------253
  ③ 아기장수의 죽음 안 나무-------------------------------255
  ④ 장수의 자금을 마련한 여우-----------------------------256
 
(19)문성의 (74,여) 도깨비들의 말을 엿듣고 얻은 명당--------258
(20)문성의 (74,여) 흙토를 대우하고 잘된 흉가---------------260
(21)문성의 (74,여) 밤에 찾아오는 지네신랑------------------262 
 
  3) 민요--------------------------------------------------263
  (1) 심인식 (88,남) 상여가--------------------------------263
(2) 금팰영 (78,남) 농부가 (논맬 적에)----------------------264
 
  4) 속신어------------------------------------------------265

고림동
가.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황은정, 이은미,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안광연, 박수진, 장숙화, 한민정 조사 1995. 11. 4.., 11. 11., 1996. 6. 1.

고림동은 용인터미널에서 북쪽으로 2-5km 정도 떨어진 교통을 매우 편리한 마을이다. 이 고림동은 동으로 양지면 주북리, 북으로 포곡면은 금어리, 그리고 서쪽으로 용인시 유방동와 김량장동에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용인군 수여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고진리와 임원리를 합쳐 이들에서 한 자씩을 취하여 고림리가 칭하여 용인면에 편입하였다.
고림동을 이루는 자연마을을 보면, 고진은 고림동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때 이곳에 진을 치고 싸웠던 옛날 진 터가 있던 마을이라 옛진말, 예진말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현재 이진말, 이즌말이라고 하는데, 이를 한자로 고진이라 표기하였다. 이 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마을 뒷산에 집터가 있다고 하는데, 현재 25여 가구에 주민이 125여명 살고 있다고 한다. 金德井은 고진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살았던 김덕이란 부자가 먹던 우물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김덕우물에서 음이 변하여 진덕우물이 되었고 한다. 림원(林院)마을은 130여 년 전 참나무 정자가 있어, 앞에 가를 붙여 가정자로 불려졌다. 뒤에 숲이 많았으므로 숲원이라 하였다가 이를 한자 표기로 임원이 되었다. 일명 도룡계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마을은 40여 가구에 주민이 200여명 살고 있다. 보평(洑坪)은 임원 북쪽이 있는데, 보(洑)가 여러 개 있는 들판의 한가운데 있다 하여 봇들이라 부른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마을은 30여 가구에 주민이 140여명 살고 있다. 대소산동은 김덕정 북쪽에 있는 마을로, 크고 작은 산줄기가 뻗어내려 마을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대산동 소산동이라 하는데, 이를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단사(丹沙)는 대소산동 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이 당산인데 그 밑에 있는 마을이라 당산골이라 칭하게 되었다. 원래는 이 뒷산에 아가위 나무(棠)가 많아 비롯된 명칭인데 당제를 지내는 터가 있어 당산골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산이 단사로 변한 것을 그대로 부르고 있는데, 30여 가구에 주민이 150여 명 살고 있다. 한편 고림은 고림 2리 지역인데, 주북리와 불과 몇 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한 가구수가 40여 가구에 구성된 마을이다.
고림동은 꽤 현대화가 되어 마을이 커졌는데, 자연 마을을 대상으로 7리로 이루어져 있다. 윤씨와 한씨가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외지 인구가 많이 유입된 지금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양반이라고 하면서 이 마을에서 군수가 두 분이 나오셨다고 자랑이 대단한 마을이다. 마을에는 역시 젊은이보다는 노인들이 많이 계셨고, 아주 연세 드신 분도 농사일이나 소일거리에 열중하셨다. 이들은 마을에 몇 그루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밑에서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다. 농지에는 공장이 많이 들어섰고 주변에 고속도로나 큰 도로로 차량이 자주 눈에 띄었다. 교통은 용인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있으나, 중앙통과 인근에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학교나 병원은 읍으로 다니고 있다. 이 마을은 도시화로 인하여 여러 성씨가 모여 살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의식은 희미하였고, 종교는 도교와 불교가 몇 집 있으나 대부분은 종교가 없다고 하겠다.
 

나. 설 화

1. 도깨비 홀린 사람

김명선(69, 남) /고림동T 1뒤
[2리 노인정] 박종수, 강현모, 황은정, 이은미 조사 (1995. 11, 4.)

이 이야기는 세시풍속과 민간풍속 등에 대해 조사하는 도중에 제보자가 도깨비에 대해 묻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제보자는 이 고장에서 태어나 젊어서 외지의 산판을 따라 다녔으나, 나이 먹고 난 후에 고향이 좋아서 되돌아 왔다. 지금도 산이나 들로 다니면서 열매나 곡식을 주워서 그걸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하였다. 교육은 보통학교 중퇴자라고 하나, 여러 군데로 날품팔이로 떠돌아다니는 동안에 들은 이야기를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성격은 극히 내성적이었으며 온순하고 친절했다. 외모는 얼굴이 가는 편인 데다가 깡마른 모습이었으나 말씨는 치아가 많이 빠져서 발음이 분명치 못하였다. 또 귀가 잘 안 들려서 자꾸 물어보시거나 딴 말씀을 하여 힘이 들었다.

[조사자 : 도깨비 얘기들 들어보셨어요, 옛날에? 얘기, 도깨비에 관한 얘기?] [청중 : 응 술 먹고 산에 돌아다니다가,] 도깨비에게 홀려 가지고. [조사자 : 그 할머니, 할아버지가 해 주세요?]
그것은 그냥 이 맑은 정신은 괜찮아. 인자 술 먹고, 그냥 술이 얼큰하게 먹으며는 이게 갈 적이는 환하지, 이런 질마냥 환햐. 그러니께 무언 어디고 가다 보면 까시 등으로 덤풀서 걸리고, 무엇도 걸리지.
그래 그때 그래도 이 사람은 그러지 않아도 홀리며는 아프지 안 햐. 까시 찔리거나 어디서 찢어지거나, 찔린 줄 모르고서 그냥 사뭇 따라 가는 겨. 앞에서 그놈이 끌고 가니께. [청중 : 불이 환한데 따라가 댕겨요.] 끌고. 사뭇 따라가는 거이지.
그러고 데리고 가니가. 그래 내가 갈 적이는 질이 좋아, 넓고. 그래도 가다보면 이 옷이 인자 까시뎅이에 걸리고 어쩌고 해서 찢어지고, 손이 찢어지고 그렇지. 그런게, [청중 : 가다가 날 새면 인자.] 밤 새면 인자 그러면 인자 깨 가지고 인자 집이 들어오지, 날 새면. 밤새도락 돌아 댕긴께 깨지.
그런데 이렇게 시방도 그랬어. [조사자 : 도깨비요?] 응 시방, 시방도 있어. [청중 : 산, 깊은 산.] 왜냐허면 이런 외진디, 인자 그 산골짝 같은 디, 구름 끼고 비 오잖어. 그러면 저녁이 보면 불이 왔다갔다, 왔다갔다 허지, 저녁이지. 시방도 있어.

2. 불을 켜 주는 호랑이

김명선(69, 남) /고림동T 1뒤
[2리 노인정] 박종수, 강현모, 황은정, 이은미 조사 (1995. 11, 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계속하여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제보자는 도깨비를 끝까지 쫓아가 그 구멍을 뒤져보면 아무 것도 없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다가 산중에서 일어난 이야기라 생각이 났는지 이 이야기를 스스로 구술하여 주었다. 이 이야기는 제보자가 직접 경험한 내용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씀하였다.

[청중 : 옛날에 또 호랭이가, 호랭이가 불 써 가지고, 또 호랭이가 따라 댕기며, 따라 댕기는 것도 달밤에 헌,] 그거는 불 밝혀주는 거지, 호랭이가.
내가 잡어 먹을 사람이 아니고, [조사자 : 호랭이 얘기요?] 응. 내가 잡어 먹을 사람이 아니니께, 그 가는 대로 길을 밝혀 줘, 어두우니께. 인제 산골 같은 데.
[청중 : 가서 잡어 먹는데.] 집을 가잖아. 집을 가며는 고걸 밝혀 줘. 이리 질거름이, 불이 환하니가 질거름 찾아갈 꺼 아니여. 그게 인제 재밥이 되며는 인제 그, [청중 : 뜯어먹지.] 그 불은 안 써 주거든, 내 밥이 되며는. 그 고거는 인제 불 써줬다가 인자 거기 가며는 인저 깜깜, 인자 산골짜기 가며는 깜깜 허잖아.
[조사자 : 아하 그러니까 사람이 불, 앞만 보, 불을, 저기서 이렇게 해서 불 따라서 가는데 가 보면, 깜감하다는 거죠?] 응. 거기서 이렇게 잡아 먹을라면 불을 꺼 놓고서, 인제 산고랑이에 갖다가 넘어 가니께. 그런다 보면 고것 늦다없이 깜깜허니께, 인제 못 갈 것 아니여, 더듬더듬 허고. 인제 그때나 잡아먹는 겨. 그러니께 밤이 되야 잡아먹는 거여. 그 아무나 잡아먹는 게 아니여. 지 밥이 돼야 잡아먹지.

3. 강림도령의 효도

김명선(69, 남) /고림동T 2앞
[3리] 박종수, 강현모, 황은정, 이은미 조사 (1995. 11, 4.)

앞의 제보자에게 세시풍속과 장례법 등을 조사한 뒤에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나서 만난 제보자이다. 찾아온 목적을 말하자 선뜻 구술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이 고장에서 태어나 계속 이곳에서만 거주해 온 할머니다. 성격이 매우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어서 노인답지 않게 수줍음을 많이 타 겨우 한 편의 설화를 제공하였을 뿐이다. 깡마른 외모에는 넉넉지 못한 생활에 찌들은 자취가 역력하였으며, 말씨는 상당히 빨랐다.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는 말은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았다는 뜻으로 파악되며, 기억력도 그리 좋지는 않으셨다.

효자, 그런 말씀 하셨는데, 옛날에 아희 조경은 강님도령이란 것이 있었잖아요? 아희 조경은 강님도령. 아희가 아니라 큰 사람이 아희의 등에 큰 사람은 강님도령이라는 얘기죠. 아마, 강님서 도령으로 아마 있었던 모양이예요.
강님은 여기서 대면 영월, 평창, 여기 강님이라고 있잖아요. 지방 명이죠. 그 강님도령이 어려서 이제, 저의 부모네가 낳아 키울 적에 말이죠. 이제 한 살, 두 살 먹어 세 살 때 차차 말 배우고 이럴 때, 그 아주 늦게 두셨어요. 거의 부모네가 그래 거 거적에 잠자리 할 때, 그 복판에다 누이고서 내외분이 귀여워서,
“아버지를 때려라.”
이거야. 그래, 이 녀석이 세 살 먹었으니까 아버지를 툭 치고 사랑 적어서 차차 크는데,
“어머니 때려라.”
하필 그게 부모네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어머니를 툭 치고. 그러다가 차차 요놈이 클수록, 아홉 살 먹어. 이 때는 이제 글을 배울 때 아니예요? 책을 끼고 가서도 글을 배우고 와서도, 아버지가 눈에 안 띄면 어머니를 때리고. 또 어머니가 눈에 안 띄면 아버질 때리구.
그랬는데 아 요거 큰일 났단 말이야. 아, 이러다가 지 아버지가 그만 일찌기 사망이 됐어요. 그래 장사를 지냈는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래니까 어머니를 때릴 수밖에. 아, 이놈이 공부를 하고 와서는 어머니를 때리는 거야.
아 그러니 처음에는 귀여워서 그저 때려도 아픈 척을 안 했지만, 차차 이놈이 크니까 힘이 늘어서 치는 게 아플 게 아니예요. 그러니까 하 무얼 하니까 나라에서, 관청에다 일렀단 말이예요.
“난 아들이 이렇게 참 매를 쳐서 더 못 견디겠으니까 조정해 주시요.”
그때 그 놈이 열한 살쯤 되었을 거에요. 관청에서도 할 수 없으니까, 김효자 댁이라는 효자 댁으로 그만 보냈답니다. 그러니까 구양이죠. 그게 수양이자 구양이죠.
그래 보냈는데 걔가 가만이 보니까 그 효자라는 분이 다 늙은 모친 한 분을 위해서, 내외분이 지내는데 아 어떻게 부모에게 정성스럽게 하는지. 매 치는 일도 없고, 그 공경하는게 무릎을 꿇고 극진히 대접을 하는 거며, 잠자리에 침구 펴 놔드리는 것 하며, 아침에 개는 거며, 아 뭐 어떻게 저 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거든요. 그래 이제 거기서 두고 보죠. 멕이긴 잘 멕이고. 이제 거 부자 집에서 멕이는 거니까.
그래 하루는 지름을 짜게 되었어요. 부자 집에서 지름을 짜게 됐는데 부인더러 이르는 거예요.
“오늘 어머니 아직 쉬니까 이따 일어나시거든 진지 대접하라고. 나는 오늘 어디 가면 저물게 올 테니까.”
그러니까 방글에 짜설랑 마루에다 놔두었는데, 그제 이제 두 번 그 위를 넣어서 짜는 그판에 시어머니가 깨셨단 말이야. 깨서 나오니,
“아니, 여태 오줌을 안 쏟았구나!”
하고. 그 지름을 보고, 이걸 들고 주춤주춤 하구 나오시거든.
“아이 어머니! 지가 갖다 쏟을 게 놔 두세요.”
갖다, 지름을 그만 갖다 벌밭 고랑에다 주루루 내버렸단 말야. 아이고 며느리가 이제 시어머니가 그래니깐 ‘어떻게 갖다 부시게냐’고, 자기가 갖다 붓는 거야 며느리가. 그래 강님도령이 보기에,
“오늘 저녁에 남편한테 경을 쳤다. 거름을 갖다가, ‘그걸 거름이라고 하지.’ 그걸 갖다가 오줌이라고 버렸으니까.”
아. 그러다 저러다 해가 저무니까, 참 남편이 왔다 그거야.
“아, 지름을 다 짰소?”
“아! 다 짰어요. 그래 아희 기름을 갖다 버렸어요.”
“왜?”
“아, 어머니가 나오시더니 여태 오줌을 안 버렸다고 하시며 들고 나오셨는데, 아 그 거름을 얘기하면 ‘아이구, 내가 거름을 쏟을 뻔 했구나.’ 하면 감수 하실까 봐 지가 갖다 벌밭 고랑에다 부었습니다.”
“아주 잘 했다.”
고. 부인을 보고 절을 구부렁하고 하거든. ‘야, 저렇구나! 어머니 대우를 저렇구나.’ 거기서 몇 해를 공부를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그래 배워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나도 집에 갔으면 어머니 대우 해 보겠는데, 이거 여기 와서 가지 못하고 가만히 효자가 두고 보니까 이제 사람이 됐거든요.
“내 이제 오늘은 너의 집으로 보낼테니,”
그게 아마 열댓 살 됬다 그거예요.
“오늘 조반을 먹구 가라.”
구. 아주 조반을. 무슨 환갑잔치 차리듯 했거든. 해다가 차려 주니까,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안 먹고 있어요. 강님도령이.
“아, 너 가래는데. 잘 먹고 가지 왜 안 먹고 그렇게 눈물을 흘리느냐?”
“저도 노모가 계신데 어머니 생각이 나서 이거 못 먹겠습니다.”
“너는 이제 사람이 됐다. 너의 어머니 갖다 드릴 건 저기 다 배치해 놨어. 그러니까 먹어라.”
그걸 먹고 그날 효자 집에서 인사를 하고 떠나는 거예요. 항담에다 그 해 지케서 지구 가는데, 아 그런데 자기 어머니는 자식을 그렇게 효자 집에 보낸 뒤에, 아 어떻게 편한지 매를 안 맞아서 아주 혼자 있으니 아주 편하거든. 그래 이제 혼자니까 갈퀴를 후려다가 이렇게 보에다 싸다 군불을 넣어 가지고 참 이렇게 지내는데, 그게 집이며 말며 그렇지요. 그저 저의 어머니가 낭구를 하러 갈퀴를 보에다 싸들고 비탈길로 올라간단 말이야. 거기다 항담을 내려놓고,
“어머니! 어머니!”
하고 쫓아와.
“아이 어머니! 지가 안 때립니다. 안 때립니다.”
올라가서 어머니를 붙들어 모셔다가 그래가지고 공경을 잘 해 가지고 나중에 효자가 됐데요.


4. 신방 지키기의 유래

이택수(56, 남) /고림동T 1뒤
[5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황은정, 이은미 조사 (1995. 11, 4.)

앞의 제보자에게 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새로운 이야기를 부탁하였으나 없다고 하여 앞의 제보자 집을 나와 마을을 돌아다니는 도중에 제보자를 만나 세시풍속과 민속을 조사하다가 듣게 된 것이다. 제보자는 이 고장에서 태어나 계속 이곳에서만 살아오면서 농사밖에는 모른다고 한다. 성격은 극히 외향적이어서 활달하며 개성이 몹시 강한 인상이었다. 술을 몹시 즐기는 편인지 술을 드신 상태이었다.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며 분위기에 쉽게 동요되어 몇 가지 자료를 제공해 주셨으며 설화도 말씀해 주셨다.
창문 하나에 찢구 이렇게 들여다 본대는 거, 그걸 왜 찢느냐? 그 내력이 모냐? 옛날에 이 어느 고을에 이 부자 사람이 살았는데 이 사람의 소원이 글이야. 공부를 못 했어요. 공부를 못했는데, 이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은 먹구 공부밖에 모르는 거
야. 공부밖에 모르는데, 이 아들을 장가를 보냈어요. 장가를 보냈는 데두 이놈이 아는 거라군 글밖에 모르니깐, 먹구 앉아선 모 마누라 옆에 있어두 ‘마누라 너는 너구 나는 나다’ 이런 식으로 그냥 글만 읽거든. 글만 계속 읽구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그 첫날 저녁엔 잘 다뤄야 된다. 잘 다뤄야 된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잘 다뤄야 된다. 잘 다뤄야 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이놈이 그래두 뭐인가 머리에는 뉘우치는 게 있거든. 남자들이라면 표창이라는 거 음 그것이 칼이라구. 칼을 넣구 다녔는데, 아 첫날 저녁이 딱 됐는데 신랑 신부 방에서,
“아야! 아야!”
소리가 나거든.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옆방에서,
“잘 다뤄야 된다. 잘 다뤄야 된다.”
이런 얘기야. 근데 이 미련한 놈이 ‘여자래는 것은 뭐 사흘만 안 때리면 여우가 된다.’ 그런 말을 들었거든. 근데 이놈이 표창을 꺼내 가지구선 가죽을 벗기는 거야. 그렇지. 칼루다가 가죽을 베끼니깐, 이 여자가 새댁으로서 반응을 할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깐 쓰라린 걸 참아가면서 ‘아야, 아야’ 소리만 질른 거야. 그래 아침이 딱 되 가지구선 옛날엔 시어머니 시아버지한테,
“문안을 드립니다.”
그래 인제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그만 둬라.”
할 때까지 아침에 자구 일어나면 세수하고 문안부터 드리고, 큰절루다가 문안부터 드리구 나와서 밥을 짓는 건데, 아침에 문안을 드릴 땔 바라니까 생전 문안을 안 드리거든, 며느리가. 그래서 문을 열어 봤어요. 문을 열어 보니까 아들놈이 영 앉아서 공부만 하구. 이렇게 옆을 쳐다보니까 가죽을 버껴서 딱 매달아 놓은 거야. 인피를 말하는 거야. 그래서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놀랜 거야.
“야! ‘잘 다뤄라 잘 다뤄라’했더니 이놈아가 그게 무슨 소린질 모르구 가죽을 베껴 매달았구나!”
아 며느린 그대로 간(죽은) 거지. 그러기 땜에 지금 신랑 신부 장가가면 문을 찢구 들여다 보는게 가죽을 벗낄까 봐 그래서 들여다보는 거야. 그래서 그게 신방을 지킨대는 거요.


5. 고림동의 지명 유래

민배식(80, 남) /고림동T 3앞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조사자들이 고림동에 도착하여 마을 사람들의 소개를 받고 제보자의 댁으로 찾아갔다. 이곳에는 놀러오신 할아버지들과 6명이 함께 들었다.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놀러오신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구술하여 주도록 응원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조용하고 차분하게 구술하고, 청중은 바닥에 앉아서 들었다.

1) 림원의 유래
[조사자 : 이 마을 이름이 뭐라고요?] 림원이라고 적어, 림원. 수풀 림자에 언덕 원자여. [조사자 : 림원요. 이 마을에 대해서.] 그래. 이 마을 유래 먼저 얘기헐 께요. 이 림원에 대한 것.
이 마을을 그 림원이라고 핸 건 수풀 임자는 에 그 전에 여기가 전부 숲이 많았어요. 그러구 그 숲밖에 에 하천이 쭉 내려 가구. 그래서 그 숲이 있으니까, 수풀 림자, 림자를 써 가지고 언덕 원자라서 림원이라고 이름을 졌어, 이 마을을.
그런데 그게 뭐 한 몇백 년 전에 핸거지. 그러니께 우린 나이 80밲에 안 됐으니까, 그것 잘 보구 듣고, 어른들한테 가끔 들을 얘기이거든. 이게.
그러면 숲이 왜 없어졌냐?. 그게 옛날에, 아주 여기 뭐야 장마가 져 가지구 큰비가, 지금같이 둑을 갖다 이렇게 놓구 개울을 곧게 하면은 그렇질 않은데, 큰 장마가 지니까 산에서 사태가 나구, 위에서 물이 많이 내려 오구 그런 바람에 숲이 전부 다 떠내려 간 거야. 그래 가지고 앞에 숲이 없구. 저 냇개도 저 위로에 다 물러가고 그랬거든.

2) 가정자의 유래
여기 또 아래 가정자가 있어, 가정자. 왜 가정자라고 했느냐? 고 밑으로 개울이 나갈 적에, 여기 에 반상간일 적에 양반들이 많이 살았는데, 그 정자로 거기다 짓고, 고 밑으로 내가 흘러갔다고. 고래 고 마을을 가정자라고 이렇게 얘기한 거야.

3) 고진의 유래
고림리란게 4개 동네인데, 4개 리인데. 지금은 뭐 10개 리가 넘어. 용인읍 거기서 요렇게 개울 건너면, 거기 것부텀 여기까지가 전부 고림리야. 그렇지 거게.
그, 그 당시에, 여기두 뭔가 조선 난리지 뭐. 옛날 얘기니까 난리 날 적에, 그 장사가 저 짝에 고진이란데, 거기다 진을 치고 그 뭔가, 전장을 하기 위해서 진을 쳤다고 해서, 그 동네 이름이 고진.


4) 용마뱀
또 고기 오다가서 논이 있는데, 논 이름이 용마뱀이란 게 하나 있어. 근데 이 진을 치고 인제 거기 싸움을 하니까, 거 말을 타고서 적을 쫓아서 가다가 그 용마뱀이란 데서 물을 먹였다구 해서 용마뱀이라. 아직까지 논, 논 이름이 그런게 있다구. 그래 인제 거기서 인제 물을 맥이구. 에 여기 고림리 림원 언덕을 보니까. [청취불능] 여기를 들어오지 않고 피해가지고 저 광주 땅으로 넘어간 거지.


6. 생거진천  사거용인

민배식(80, 남) /고림동T 3앞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마을 가운데 있는 나무에 대해 묻자 말씀하여 주었다. 그러나 서사를 갖추지 못하여 ‘이곳에 전하는 전설 같은 것이 없느냐’고 묻자 ‘잊어버려 알지 못한다’며 효도에 관한 것이나, 실생활이 관한 것을 말씀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준 것이다.

에 돈 있는 사람은 용인 와서 산을 많이 사, 묘이 쓸라고. 그래 이것 예전부터 내려온 얘기인데, 에 에 그러니까 ‘이 용인이 좋다’는 게 왜 문제가 생겼느냐 할 것 같으면은 생거, 사거용인이란 말이 나왔어. 사거, 죽은 다음에는 용인으로 가야한다, 산세가 좋구. 그러니까 요 여기다 묻혀야 된다.
인자 그런 얘기가 인자 쭉 나타났는데, 뭐이가 있냐면은, 용 용인에서 사시던 양반이, 영감님께서 돌아가니까, 진천. 진천 알어? 진천 가서 영감님하고 인자 살았단 말이야. 그러니까 용인이 먼저 오는데 에 아들이 하나 있고. 진천 가 사니까 또 거기 가 또 아들을 낳단 말야.
그래 가지구 내중에 죽으니까, 큰아들이 그 즤 어머니를 찾는 거야. 그러니 즤 어머니가, 아, 큰아들 사는 데가 용인이니까 용인으로 오게 되잖아. 그때 고기 에 생거 살아서는 진천서 살구, 죽어서는 용인으로 왔다. 그 무슨 말이냐 하면, 에 생거진천하여 사거용인이라.(웃음)
이게 나왔는데, 에 인자 그런 예가 있으니까, 고걸 피해가지고 그걸 악이 악영향으로, 또 약으로 인제 고걸 해석을 했지 뭐야. 근데 실지가 진천 쪽에는 산이 이렇게 용인같이 좋질 않아요. 나도 이 저 피난 갈 때 진천을 들러 가지고 가 봤는데, 그래서 지금은 현재에 그래서 실제 용인의 산세가 좋다. 아이 그런 것 나 하나 헌 것 있다구. 에이 근처에 산을 판다해도 서울 사람들이 다 사는 거야.


7. 목에 비녀 걸린 호랑이를 구한 사람

박용남(72, 여) /고림동T 3앞
[2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조사자들은 앞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채록할 수 없어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나섰다. 그런 도중에 집 마당에 쉬고 있는 제보자를 만나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 자리에는 5명의 청중들이 조용하게 듣고 있었다. 제보자는 마당에 쭈그려 앉아서, 조사자의 유도로 인해서 구술하여 주었다. 옛날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라 하였고, 구술하는 억양은 조금 소란스러웠다.

금호 어머니한테 들었어. [조사자 : 예, 인제 말씀하세요?] 그런데 그 때는, 그때 시절도, 우리가 얘(옆에 있던 7살 소년)만할 때밖에 안 됐었어. 그랬는데 이웃 집 노인네가 하는 소리가,
“범두 사람은 해꼬지 하는 사람이나 해꼬지 하지, 아무나 안 한다.”
그러는 거야.
“왜 그래, 할머니?”
그랬더니, 우리 시아버지가 수원으로 장사를, 쇠장사를 허러 갔는데, 가져가서 인제 좋은 거 가져가서 팔구, 쬐그만 거 또 사오잖아. 그런데 저 충산에, 저기 청산에 거기로 오는데, 밤중에 인제 오는데 범이 내려 오드라야. 범이 내려오는데,
“왜 내려오니, 이 드런 인간에 왜 눈에 띄느냐고. 올라가라.”
고. 그러니까, ‘안 올라간다’고 머리를 흔들더랴. 머리를 흔들더랴.
“안 올라 간다.”구.
“그럼, 어떻게 허라고 그러느냐?”
구. 그랬더니 아가리를 딱 벌리드리야. 사람 앞에 이렇게 떡 와 가지고서(간식으로 이야기 중단) 그래서, 그래서 그런 거니까 또 틀렸지. 그러는디 인제 사람 앞으로 배싹 와 가지고 머리를, 아가리를 딱 벌리더랴. [조사자 : 호랭이가요?] 응. 그래서,
“어떻게 하라구 그러냐?”
구 그랬더니,
“아가리 있는 걸 끄내 달라.”
구. 그래서 손을 부치고 끄냈대, 그 노인네가. 남자 노인네가. 그런데 죽은 목숨을 허고서 끄낸 거지 뭐. 그랬더니 이전이 비냐 있잖어. 사람 하나 잡어 먹었드랴. 비냐가 이렇게 딱 걸렸드랴, 목구녕에가. [조사자 : 비녀요?] 비냐. 비냐. 쪽진 비냐. 쪽진 비냐인디 이렇게 뜩 걸쳐는디, 그걸 끄내 주었대. 그랬더니,
“좋고 고맙다.”
구. 그냥 절을 허구, 절을 허구. 그러더니 먼저 찌룽찌룽 오더니, 그 집꺼, 근처까정, 집 앞에꺼정 데려다 주드리야. 그 그거야. [조사자 : 그렇게 해서 인제 호랑이 목숨, 호랭이 그것 끄내 줘 가지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고요?] 잉. 고맙다구.


8. 떡국새

이강래(59, 남) /고림동T 3앞
[4리 밭둑]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조사자는 앞의 제보자에게 이야기 듣기를 마치고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남사면이 고향인 제보자를 만났다. 찾아온 목적을 말하고 부탁하자 할 이야기가 하도 많아서 어떤 것을 해야할지 모른다고 하여, 재미있는 것을 부탁하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제보자는 조사자의 유도로 생각이 났는지 서서 소란스럽고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을 무척이나 빠르게 구술하여 주었다. 이 이야기는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진짜, 진짜 저기유. 나는 거짓말이 아니라, 요는 내는 맨날 거짓말 하기 싫어요. 인제 뻐꾹새가 아니라, 뻐국새가 아닌가 진짜요. 그 뭘로 생각 했어요. 떡꾹새요. [조사자 : 떡국새요?] 비슷하죠,
“떡꾹!”
내가, 저 옛날에 시집살이가 심해 가지구, 인자 며느리가 이웃집에 가서, [조사자 : 소쩍새, 소쩍새 그 얘기라구요.] 아니 뻐국. 뻐꾹새라는데, 나는 나 혼자면 떡꾹새라 그래요.
근데 그 시어머니 줄라구, 저기 이웃집에 갔다가 그래 먹구서 인자, 시어머니 드린다구 갖다 주었어요. 그 주는 건 먹구. 또,
“아이, 우리 시어머니 갖다 드리게.”
인자, 다만 누가 주었는지, 하야간 그건 아무러면 줬겄지. 어른이 있으니가. 어르른을 몰르면 안 되거든. 인자 시어머니 드릴라구. 갖다 어디다 놨냐구, 해필 벜(부엌) 부뚜막에 놨어. 부뚜막에 놨거든.
그런데 개가 이걸 봤어요. [조사자 : 며느리가요?] 개. 개가 봤다구. [조사자 : 그 무슨 개가요?] 그 집에 개가 봤다구. 그런디 어디 잠간 비운 사이에, 인자 살그머니 올라가서 먹었어요. 인자 시어머니가 갔다 왔는데, 어이 떡국을 이냥 다 먹었네. 싹 긁어 먹었네요. 인제 싹 핧아 먹었어.
“야, 애 어른도 모르고 싹 먹었다.”
고. 막 야단이여. 막 야단쳤지 그냥. 아우 어떻게 분한지, 며느리가 에 자살해 죽었어요. 물에 빠져 죽었어요. 그래구 저 새가 됬어요. 근데 인제 그게,
“떡국! 떡국!”
개 때문에 그래요. 떡국허고, 개 떡국 두 가지. 그래
“떡국! 떡국! 개개개개개.”
그런다구. 난 시골에 태어나 여태까지 살았기 때문에 제법 잘 알아요. ‘떡국!’ 진짜예요. ‘개개개개’ 그런다구. 거짓말 아니니여. [조사자 : 그래요.] ‘개개개개’ 그런다구, 그 떡국새가. 나 혼자 떡국새라, 누구나한테 질문해도 좋아요. 틀림없어. 나 노인네들한테 들었기 때문에.


9. 안자 묘가 살아난 유래

안종수(59, 남) /고림동T 3앞
[4리 비닐하우스]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조사자들은 앞의 제보자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이동하는 도중에 경운기를 몰고 가는 제보자를 만났다. 그래서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부탁하자, 조사자들을 경운기를 태우고 비닐하우스로 갔다. 비닐하우스에는 일을 하다가 쉬고 있는 일행 3명을 있었다. 제보자는 말씀을 차분하게 하시다가, 조사자의 옛날 이야기를 부탁하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저기 부곡에 가면은, 내가 원래 저 순응 안씨인데, 거기 가면은 안자 묘가 있어. 안자 묘가 있는데, 부곡 역전에 한 오백 미터, 1킬로 정도 들어가면은 있는데, 거기는 불청지이란 게 있어, 땅이.
불천지이란 게 뭐냐? 나라 임금도 그 지역을 갖다가, [조사자 : 건드리지 못한다.] 건드리지 못 한다. 그게 왜 그러냐면, 우리나라 저 박정희 당시에, 혁명이 일어났을 적에, 에 그린벨트고 뭐고 거기를 개발을 헐라고 했단 말이여.
그 안자 묘를 동양에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공자, 맹자, 주자, 안자 해 가지구 동양에서는 안자가 들어갔단 말야. 그 자가 상당히 그 저기한 거란 말이야. 근데 그 묘를 박정희가 없앨려구 그런 거야. 그래서 그때 육군대위 젊은 장교가 하나 쫓아 들어가 가지구,
“각하! 이 동양에서 일본이나 인도나 기타 동남아 각국에서 이 안자를 갖다가 제사를 지내구. 세계 5대 성인으로 모시는데, 동양에. 저 이것을 갖다가 그 문데면 어떻게 돼느냐?”
그래 가지구 박정희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사실 그래 가지구 그때 안자 묘가 살아났다는 거야. 이것이 우리 그 순응 안씨에 중대한 그 역사적 속 얘기가 담겨 있는 거고.


10. 정몽주 선생의 묘소 쓴 유래

안종수(59, 남) /고림동T 3앞
[4리 비닐하우스]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에 마치고, 묘지에 관련된 같은 소재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그리구 인제 정포은 산소가 용인에 있단 말야. 용인은 인제 정포은이, 내일이 정포은 산소 그 제사를 지내는데, 내가 인자 여기 유지를 일하고 그래서 제사 해마다 지내려 가는대.
그것 산소가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선죽교에서 이방언이한테 결국은 철퇴 맞아 죽은 것 아니냐 이거지.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인제 그 저기가 될 때, 그걸 뭐라 그러지? 응? 지금 말하면 그 뭐야? 그 저 봐 주는 것, 나중에 밑하기 있다가 그 법, 법에서 벗어나는 거 있쟎아. 그걸 뭐라고 그러는 거야. 지금 술을 먹었더니 생각이 안 나네.
그런데 그때 당시에 선죽교에서 그 사람이 온거나 이것이 아니구, 그때 당시 선죽교에서 맞어 죽어가지구, 어 갔다 아무 데나 묻어놨다가, 야중에 그 복권이라고 그러지?
저 복권도 돼 가지구서 유골을 갖다가 모시고 올 적에, 여기 풍덕천이라고 있어. 거기서 인제 그 명정이 바람에 날러 가지구, 그 거기가 딱 떨어졌단 말야. 그래 가지구 그 자리에다 모셨는데, 이 아마 그 저 경기도에선 그 명당이라면 명당자리란 말이야.
명당자리인데, 고 옆에 이 무슨 산소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 저 정몽주 선생의 누이동생이 있었어.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밤새도록 거기다 그 묘 파묻은 데다 물을 갖다가 들이 붜놓은 거야. 정몽주 산소 그 자리에다가, 쓸 자리에다가 물을 퍼붓구서, 정몽주 선생 동생이.
거기다 물을 퍼 놓구. 여기는, 그 이튿날 와보니까 물이 난단 말이야. 그 물 나온 자리라고 해서 딴 데로 욈기구, 거기는 파묻었다가 이 다음에 자기 신랑을 갖다 모셔논 거야.
그래서 정몽주 산소 가면 산소가 둘인데, 지금 그 산소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사실은 거기가 더 명당자리인데, 아무리 응 남매지간이라두.(Tape 뒷면으로 넘어가며 녹음이 중단됨)


11. 이진마을의 유래

안종수(59, 남) /고림동T 3뒤
[4리 비닐하우스]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곳에 세워진 철탑에 대해 설명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스스로 구술하여 준 것이다.

그 김민우가 그 철례탑은 유래했을 적에, 사실은 그 용인서 그 전공을 많이 세운 자리이구. 그리로 여기가 삼도에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다 올라올 적에 이 용인을 거치지 않으면 통과하지 못하는 교통의 요충이란 말이야.
그래 가지구 인제 이 용인에 요기 가면은 일진마을, 이진마을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리구 이 고기 가면은 진도 금물이라고 있어. 진도 금성이라고 있는데, 그 일진마을이 오래 변해 가지구 이진마을이 됬느냐?
그러니까 요기를 항상 전장터였단 말이야. 6.25당시에 저 중국군이 들어와서 38선, 37도 선을 못 넘어 가지구 여기서 굉장이 전장을 하고 있었는대. 이 일본사람이 진을 쳤는데 일진마을인지, 오랑캐 이자를 써 가지구 진을 쳐 가지구 이진마을인지 그거는 내 소재를 못 밝히고 있는 거야.
그래서 원은 일진마을인데, 오래도록 부르다 보니까 일진마을, 일진마을 하다 보니까, 이자로 변해 가지고 이진마을이다 이렇게 변했다고 저기가 있고.


12. 용인의 유래

이덕재(63, 남) /고림동T 3뒤
[4리 비닐하우스]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앞 제보자의 이야기를 듣고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닭이 먼저나 계란이 먼저나’ 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제보자에게 이곳의 전설에 대해 묻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녹음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꺼려하며 이야기를 구술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여기 용인은, 내가 옛날 얘기를 헐께, 여기 용인은 용 용자에 사람 인자거든. 그 저기가 석성산이 있어요.(청중 웃음) [조사자 : 석성산요?] 응.
이 용인은, 옛날에 용이 편케 누어있는 형극이라서, 풍수지리 상으로. 태백산맥으로, [조사자 : 용이 편하게 누워있는 형요?] 응, 응. 누워있는 형국인대. 그래서 인저 옛날 무슨 뭡니까?
우리 조상을 얘기는, 그게 뭐여, 저 풍수지리 상으로 명소가 많다는 얘기야. 그래서 응, 좌청룡 우백호가 제대로 되구. 이래서 인제 용인에가 그 옛날부터 전설이 내려와서, 그런데 이것 왜 그걸을 자꾸 녹음을 헐라고 들어. 그만 둬, 아 에 나 안 해, 인자.


13. 오누이 싸움을 한 석성산

최영은(74, 남) /고림동T 3뒤
[4리 비닐하우스]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앞의 제보자가 녹음하는 것을 꺼려하여 이야기를 중단하자 옆에 있던 제보자가, 청중들이 마저 이야기를 해 주라고 하자 나섰다. 이곳에는 4명의 청중이 있었는데, 조사자의 요청과 청중의 응원으로 구술하여 주었다. 억양은 부드러우며 재미있게 구술하셨으며, 인상이 무척 좋으신 분으로 구비문학에 대해 반감을 갖고 계시지 않았다.

섞어들은 얘기가 아니지. 그것 맞는 얘기이지. 이게 에 석성산 할미성이라고 있어요.
그래서 그 양반들이 노부모가 살았는데, 슬하에 아들딸을 두었어요. 그래서 인제 가뭄이 아홉 해를 들어서 인제, 어떤 도사에 지나가면서 얘기가,
“아들이건 딸이건 하날 없애야 풍년이 든다.”
이래 가지고서 인제 딸은 나막신을 신어서 한양을 댕겨 오게 하구. 아들은 인제 성을 쌓게 했어요. 여기 여 석성산에서. 그래 가지구 인제 영 노인네 두 양반이 따지기를, 아들보다 딸이 없어지는 게 낫어서, 아들은 나막신을 신겨서 한양을 댕겨 오는데, 그래 그 얘기 알아요, 형님!
그런데 그 아들을 돕기 위해서 밤새, 어머니나 할머니는 앞치마에다 돌을 주워다, 아들은 성을 쌓아야 되니까. 할아버지는 흙을 한 짐씩 져담은 것이 아흔아홉 봉 되구. 그래서 성을 또 쌓기 전에 딸이, 서울 간 딸이 먼저 돌아왔어요.
[조사자 : 그래서요?] 그래서 차마 아들은 못 죽이고 주저하는 참에, 하늘에서 인제 천둥번개가 치면서, 그 물구회의, 잉 그 구 년째 가물었는데 벼락을 때렸어. 벼락을 때려서 인제, 이 아들하구 영감은 벼락에 맞아 죽고, [조사자 : 딸만?] 응. 딸만 살았다는 얘기여.
그래서 그때부터 풍년이 들기 시작해서, 인제 제가 석성산 할미성이 이짝에 있어요. 이 아흔아홉 봉이구. [조사자 : 석성 옆에?] 용인의 전설이 그렇게 된 거여.
[청중 : 마귀산이라 있어요.] [조사자 : 마귀산요? 석성산 옆에 마귀산요?] 이 양반은 여기서 70년을 살은 사람인데, 나는 40년 밖에 안 살았어. [조사자 : 마귀산은 또 뭐예요?] 응. [조사자 : 마귀산은 또 뭐예요?] 마귀도 몰라. [조사자 : 왜 그러니까, 왜 마귀산이예요?] 늙은 귀신이 마귀지 뭐여. 할머니 신이 아니야. 마귀는 아는 사람은 다 알아.
[조사자2 : 그것 좀 얘기해 주세요? 왜 마귀산이라고 했어요.] 할머니. 그 사람이 아니고, 예전에 신이니까. 이런 말똥어서 그래서 마귀다. 사람이 그렇게 치마폭에 하나 갖다 놓은게 저렇게 높어? 그런게 그 인제 그때 우리가 말하기를 마귀라구 그러지.


14. 물이 넘어가야 할 태화산

최영은(74, 남) /고림동T 3뒤
[4리 비닐하우스]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인간을 만든 것에 대해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을 하시다가, 같은 산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태화산, [조사자 : 태화산.] 태화산. [조사자 : 태화산?] 응. 클 태자 잉 이렇게 쓴 것. 또 빛날 화자. [조사자 : 빛날 화요?] 응. 이렇게 쓴 것. 태화산. 그런게 옆짝에는 인제 그 뭐라고 그러지. 마라갈이라고 그런데, 여기선. [조사자 : 마라갈요?] 응. 이름을 마라갈이라고 그러는데. 고 옆에는 거기도 할미성이 있어. [조사자 : 할미성요?] 응. 할미성이 마귀산이라고 할껴. [조사자 : 이게 마귀산이라고요?] 그렇지.
[조사자 : 그래 여기에 얽힌 얘기 좀 해 주세요?] 여기가 저기 어딘고 허니, 지금 팔당댐 막은데 있잖아. 거기가 양쪽에 산이 있거든. 그것이 메뀌지면은 물이 어디로 내려가니, 이리 역수 한단 말이여, 일리로 가요. 그 요 용인읍, 읍에서 꼭 여기도 용인읍이니까, 읍 그 동네에서 쪼금 가면은, 거기 무네미이라고 있어. 근데 이 물이 그리 넘어간다는 것여. 그래서 어디까지 가는가 하면, 저 금강으로 빠지는 거여. [조사자 : 금강요?] 응.
그리고 그 때에서 할 적에는 얼마가 남는가 하니, 저 태화선 저 높은 봉이 광주땅인데, 그 산에서 인제 그 태야 엎어놓은 만큼 남는다고 해서 태화산이여.


15. 봇둔지와 보평 유래

최영은(74, 남) /고림동T 3뒤
[4리 비닐하우스]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앞의 이야기에서 이곳을 지나간다고 말할 때 지명에 대해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그러고 이 동네 얘기를 할까. 이 동네는, 이 동네 이름이 여간 많잖어.
근데 여기서 고림 4리라는 게, 여기 고림리라는 게 왜 그러니? 옛날 진터가 여기 있거든. [조사자 : 진터요?] 응. 응 옛날 진터가. 옛 고자를 쓰고. 그래 옛 고자지.
그리고 여 위가 숲원이야, 이 동네 이름이. 그래서 여기가 고림리구. 그리고 이 동네는 볏다는 게 뭐냐 하면은 여기선, 여기선 이번에는 봇둔지라고 하는데, 인제 그거부텀 얘기하지.
봇둔지래는고 왜 봇둔지냐? 여기가 둔전이거든. [조사자 : 둔전요?] 둔전대랑 알아? [조사자 : 모르겠어요.] 둔전이라는 것은 그전 정부에서 이렇게 저렇게 군대를 이렇게 보내면은, 거기서 자구 먹구 하는 데가 둔전이여. 그래서 그 둔전 사람을 거기서 살림 살면서 농사를 짓고, 군대가 오면은 밥을 해주게 되 있어. 그게 둔전이야.
그리고 또 역말이고 있는데, 역, 역말이라고 있는데, 그건 양반들 거 가서 자는 데가 역말이구. 그래서 그런데 이, 이 땅이 둔전에 속해 있어서, 보통 때 둔전을 보호한다고 그래서 이것이 봇둔지야. [조사자 : 아하 그래요. 봇둔지요.] 엉. 그렇게 허고.
그리고 여기서 보평이라구 그러는데, 그거는 여기서 동네가 저, 이 넘어 갱변에서 동네가 있었거든. 개울 옆에 보숨이 있었는데, 임술년 장마에 거기서 인제 떠내려가는 바람에, 떠나 내려가서 일루 올라와서, 그래서 이름이 봇뜰이라고 그러지, 거기를. 그래서 보평이야. 이름이 보막을 보자 하구 들 평자하구 해서 보평이라구.


16. 돌무덤과 아기장사

최영은(74, 남) /고림동T 3뒤
[4리 비닐하우스]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곳 주변의 지명에 대해 계속 구술하여 주었다.

그리고. 그런데 또 그것 하기도 웃은 얘기를 하지. 여기가, 이 산 이름이 액기산이야. [조사자 : 액기산요?] 액기산. 두루미 액자, 달기 기자야. 그 액기산 인자 그 이름이 그 산밑에서 산다고 그래 가지구서 여기서 살구.
또 저 이 개울 이름이 연해야. 제비 연자 연해거든. 그러게 해서. 이걸 뭐 뭐 (녹음) 허면, 이 말을 못 허잖아.(일동 웃음) [조사자 : 그냥 하세요?] 인자 웃는 얘기야. [조사자 : 연, 연 강 이름이 뭐라교요?] 연해. 그 냇물이 이름이. 제비 연자 내 천자 그러면 연해가 되거든.
그리구 여기가 과거 왜정 시절에는 일본놈 땅이어서 전부 묵어 자빠져서 번더구번이 있는데, 인제 이 그 남병철이란 사람이 와서 개간을 해서, 여기 와서 지금 농장이라고 그러지. 이들이 농장이야.
[조사자 : 돌무데기요?] 동네 이름이 돌무데기인데, 지금은 저, 저마평리 산촌이라고 그래. 거기 신평리, 산 신천이지. 신천이 저 위지. 저기 저 석담이라구 그래. 석담. [조사자 : 석담요?] 그렇지. 석담이라구 해야 돌, 돌무데이거든. 그래 거기 가서 물어보면 그 내력이 잘 알아.
그리구 여기 옛날 진터가 여기 있는데, 그래서 그 고진래 뒤에, 예 고자 이 진터가. 거기가 옛날 진터가 있는데, 거기서 이 아래 와서 그 합수 웅덩이라 데가 있거든.
그래 거기서 여기 저 남서방네가 여기 사는데 장사가 하나 있었어. 근데 장사가 그 아래, 아래에서 니려 오는데, 그 봉댕이가 100봉이 되야 되는데 99봉이구, 그 밑에다 썼거든. 게 99봉에다 썼는데, 그 밑에가 무덤이가 공동묘지가 됬단 말야.
그래 장군들이 그래 칼을 또 투구를 벗어들고, 하나는 투구봉이고 하나는 칼봉이야. 인제 저기서 와 여 유방리 있는데, 인제 거기서 칼봉이 있고 인제 투구봉이 있는데, 장군이 칼, 투구를 벗어들고 칼을 까꾸로 지고서 절을 하거든. 그 앞에서 곡소리가 났거거든, 공동묘지가 있었어. 그래서 그 남서방네들이 성과를 못했다는 거야.
[조사자 : 고림리 얘기 해 주세요?] 그래. 고림리가 그 앞에 진터가 있는데, 거기서 진을 치구서, 거기서 전쟁을 하다가 패해서 이짝으로 내려 왔는데, 그 합수 웅덩이 된 다음에, 지금 고속도로 다리 밑이여. 그 다리 밑에, 에 거기에 진짜 웅덩이가 하나 있거든, 양쪽에. 합수되는 웅덩이가 있는데, 거기 가서 빠져 죽었어서, 피가 흘러서 내가 됬다구 해서 그게 합수 웅덩이여. 그것 옛날부터 유명하다더니, 지끔은 저 흔적도 읎어져 버렸지.

17. 구렁이를 상하게 하여 벌을 받은 사람

문성의(74, 남) /고림동T 4앞
[2리 노인정앞] 박종수, 강현모, 안광연, 박수진, 장숙화, 한민정 조사 (1996. 6. 1.)

원래의 조사지역인 주북리보다도 이곳 고림동에서 훨씬 많은 채록을 하였다. 특히 이 제보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놀라운 것은 긴 이야기 몇 편이 있는데 이 제보자의 연령에 비해서 기억력이 참 좋았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강약을 더해 가며 재미있게 해 주셨다. 이야기는 어릴 때 전주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들은 것이라 한다.

화성암(절 이름)이라고 아는가? 그래서, ‘우리 앞마당 가생에 있다.’고 그랬더니만, ‘아이 거기 좀 가봐야겠다.’고 그러는데, 가니까 누가 있어, 아무도 읎지. 그러니까 그냥 보살이 없으니까, 그냥 거기 나와 앉아서 얘기가, 얘기하는 소리가 그러는 거여.
그런데 안 될라면, 이 손이 뱀 허물 벗은 것 같으요.(조사자가 제보자 옷깃에 마이크를 달아준다.) 아이고 그걸 해요 어따가 아이고 이걸 어쪄. 뱀 허물, 어 뱀 허물 벗은 것 같고, 새(혀)바닥을 이렇게 내 놓드라고.
“내 새바닥을 볼라, 보라.”
고. 그러는데 새바닥이 양쪽이 꼭 뱀눈마냥 빵 뚫어졌어요. [조사자 : 그 사람이요?] 예. 그런데 남잔데요.
“거 왜 그랜나, 왜 그러느냐?”
고 그러니까, 저기 사는데, 저 여주 쪽에서 살다가, 작년 그 그끄럭겐가 왜, 장마 몹시 졌지? 장마 몹시 졌는데 인저 일꾼을 데리고, 일꾼을 데리고 논둑이 터지니까, 논둑 그 가마짝 그런 걸 이렇게 가지고 가느라고 가니까, 가서 이렇게 몇 가마니 해서, 이렇게 모래로다 해서 거기를 틀어막다 하도 죽겠으니까 이렇게 그 일꾼하고 앉어 있으니까, 자기네 집 있는 데서 연기가 푹삭 나더랴.
푹삭 나더니 그 집이 쓰러지느라고. 그래 중학교 다니는 아들 하나, 마누라 하나 그냥 집에서 그냥 씨러 졌대. 씨러져 죽었 데지. 하도 기가 막혀서 인저(웃음) 그래 그래설랑은, 어?(웃음) 그래서 인저 그 마누라를, 죽은 마누라를, 아들은 아무렇게나 해지만 그래도 마누라는 이 생여도 쓰고 그러잖어?
그래서 저기 그 산이, 이 범의 혈(穴)이래요, 그 산 이름이. [조사자 : 범의 혈이요?] 범. 범. [조사자 : 좋은 산 아니에요. 좋은 산?] 그렇지. 그렇지, 범. 호랭이 혈. 거기다 이렇게 파는데, 인저 동네 사람들이 가서 파는데 큰 구랭이가 나오드래요. [조사자 : 산에서요?] 응. 그 파는 구뎅이에서. 그래서 남자는 그랬댜.
“저기 여길 파지말고, 다른 데로다 파라.”
고. 돈, 그, [조사자 : 그 부인 남편이요?] 응. 그 남편이.
“여기다 어떻게 팔 수가 있냐? 다른 데다 파라.”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까지 거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고. 그래면서 이렇게 파다가 어떻게 잘 못해서 좀 찍혔대요? [조사자 : 살에요?] 엉, 아니 그, [조사자 : 구랭이요?] 구랭이. 좀 찍혔대요. 그런 거를, 고 옆에다가 이렇게 파고는 그걸 묻고 여자는 그냥 묻었대지.
그랬더니 그냥 그때부터 그 남자가 앓는 거래. 잃, 앓아서 돌아 댕기다, 돌아 댕기다 아이 곤치러 댕겨도 못 고치고 그랬는대. 그렇게 뱀 허물이 벗 벗는 거래. 정말 뱀 허물 벗는 것 같아요, 이 팔이. 그러고는 헌 새(혀)바닥은 이렇게 내밀어 보이는데, 양짝에 꼭 뱀눈마냥 빵 뚫어졌어요. 난 그런 거 처음 봤어. 그래, 그래, 그런데 인저 뭐라냐? 그냥 저기, [조사자 : 화성암을 찾아온 거여요?] 응. 용허대 소리가, 여 저기 수원까지 와 가지고 용인, 용인을 그냥 넘어 왔는데.
그래 수원까지 와 가지고 용인 오는 차를 탔는데, 이러 이렇게 저기 버스를 타고 오는데, 그 동안 쓰리꾼이 가져 갔데는 거지, 주머니를. [청중1 : 주머니에 뭐가 들었는데?] 돈. 돈하고 무슨 엉, 그래야 수원 댕기는 그런 거 있었어. 거 털어 갔대지. 그래서 아무 것도 안 가져 왔데는 거여. 저 읎데는 거여. 그래서 여북하면 그 저기 앞집 할멈네 살던 그 있어.
원식 엄마라고 왜 여자 있지, 애들, 아들만 둘. [청중1 : 영석이?] 응, 응식이. 그 니가 자꾸 돈 사천 원, 그래 화성암에 오니까 보살은 읎지. 좀 물어보라고 온 거래. 좌우간 용허대 소리가 있더래, 용인에서 들으니. [조사자 : 점쟁이한테 물어 보려고요?] 예. 화성암에서 그런 걸 보거던요. 보는 이 거던요. 그래,
“그 니네한테 좀 여기 와서 자세히 물어봐 가지고 그 산소를 옮길까, 산소를 옮기면 괜찮을까.”
그래고는 왔대는 거여. 그런데 보살이 읎었어. 그래서 그냥, 그냥 갔어. 그런데 영식이 엄만가 그 니가 돈 사천 원을,
“노자래도 하라.”
고. 주니까 그냥, 십 원 안 받고 그냥 가더라고. 그래서 그냥 갔어. 그런 것도 있어.(웃음) [청중 : 그럼 뭐야? 벌을 입었구만.] 벌을 입었지. 그래서 그 지관을 그냥 거기서 못 살게 인이가 가서 하도 띵깡을 놓아 가지고 지관이 어디로 내뺐댜. 지관, 지관보고 잘못 봤대는 거지 응. 그런 혈이라면 좀 저기허지 않고. [조사자 : 피해야 되는데.] 어. 어 그래서 뱀이 나오더래요, 그런 거를. 그런 걸 크니까, 크더래요. 그래서 그걸 이렇게 저기하다 보니까 저기를 찍혔대. 저기 삽 그런 걸로. 지금이니까 포크레인으로 하지, 그전에는 다 삽으로 팠잖어요? 아휴 그랬다고. 그러면서,
“아이구 집을 어떻게 그래 집은 어떻게 하구 왔수?”
그러니까. 그래도 살기는 괜찮게 살았나 봐. 살았길래 그 밥 해주는 할머니가 하나 있데, 그 동네에. 증말 그 할머니도 어디 의지할 곳 읎고, 이 니도 식구도 별안간 저기 했으니 의지할 곳이 읎어서 그냥 저기, 쌀은 넉넉하니까 ‘두고 왔다’고 그러더라고. 그런 소리도 있어요.(웃음)


18. 나라의 왕이 된 아이

문성의(74, 남) /고림동T 4앞
[2리 노인정앞] 박종수, 강현모, 안광연, 박수진, 장숙화, 한민정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에 이어서 계속 구술하여 주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나무장사에서 시작하여, 아기장수를 물리친 장수로 중간에 등장시키고, 끝에 나라의 임금으로 등극하였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어릴 때 명절날에 소설책을 읽은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해 주신 것을 전주에서 들었다고 한다.

1) 어머니의 원수 갚기
이렇게, 지금이니까 그렇지 옛날에는 왜 장사가 많이 나오잖아요. 이 산, 지금은 저런 산을 모두 까뭉기고 그래서 장사가 그렇게 나오질 않아요. 그런데 그전엔 장사가 많이 나오는데, 동네서 어떤 이가 인저 저 산중에서 이렇게 기냥 아버지하고 나무장사 허고 이렇게 사는대.
아버지가 밤에 돌아갔대요. [조사자 : 남자가요?] 응. 이렇게 두, 두 째만 살았지, 아들하고. 저 참! 어머니하고 살았어. 아이고 이것 왔다 갔다 하네. 어머니하고 이렇게 사는데, 그 어머니, 한 날은 이 마을, 이 이 동네로 밤에 이렇게 횃불이 있어요. 이런 데다 불을 켜가지고. 뭐 그 때는 뭐가 있어요? 불, 달 아니면 그것만 볼 그것 밲에 읎지.
그러니까 횃불을 켜 가지고 동네로 내려와서 놀다가 기껏 놀다 올라가니까, 깜깜한 방에, 옛날은 이렇게, 이렇게 해서(불키는 시늉) 불 키는 게 있어요, 부싯. 부싯돌이라고 해서 이렇게 해서 오니, 불 키는 게 있어요. 그걸로 불을 켤래니 얼른 더디고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허니께, 방을, 깜깜한 방을 더듬으니까 어머니가 없더래요. [조사자 : 네에?] 어머니가 없어서 아, 아휴, 엄마마 밤중에 인저 호랭이가 물어간 줄 알고,
“엄마! 엄마!”
불르면서 이렇게 돌아 댕기니까, 돌아 대니니까 구석에 요 다리가 하나, 다리가 요렇게 구석에서 이렇게 다리 둘, 이렇게 둘이 만져지는데 하나는 차갑고 하나는 뜨듯 하더래. 그러니까. 그래서, [청중1 : 뭐야?] 하나는 차갑고, 얘기를 들어야지 인저.(일동 웃음) 하나는 차갑고 하나는 뜨듯해서, 이렇게 뜨듯한 다리를 더듬더듬 더듬해서 이렇게 올라가니까 여자가, 여자가 하나가 지 어머니를, 그 어머니를, 시체 죽은 시체를 세워놓고 코를, 코를 빨더래. 그런 걸 양 머리 끄댕이를 팍 펴서 방바닥에다가 저기 뺑이, 저기, 저기 하니까. [청중 : 여운가 보네?] 아녀. 사람이 병 고칠라고, 자기 병. [청중 : 아이고!] 옛날에 약이 있어요? 그 문등병 같은 건 사람 그런 걸 먹어야 낫, 낫는 데니까.
그래설람은 뿌리치니까 어머닌 벌떡, 인저 시체니까 벌떡 씨러지고. 그 여자는 방바닥에 팽개치니까 머리가 한 움큼 쑥 빠졌는데 어디로 달아 나더랴. [조사자 : 여자가요?] 그렇지. 그 빨아먹은 여자가 어디로 달아 나더래요. 그러니까 이 남자가 그냥 동, 또 동네를 또 내려와 가지고 그런 얘기를 했댜.
“우리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고. 그래, 그래니 그 우리 친구들, 동네 아는 분들이 좀 올라가서 같이 저기 하자.”
고. 그래서 그 이튿날 장사를 지냈댜. 장사를 지내고는 집안에 있는 쇠를 죄 돌아데니면서 주서 모아서, 잘하는 대장간에 가서 칼을 하나, 칼을 하나 잘 치었대여. 지금, 그냥 지금이니까 그렇지, 대장간에 가서 칼을 맨들어요. 그 칼을 맨들어 가지고 숫돌에다 쓱쓱 갈아서, 뒤란에 무슨 나무를 한 번 턱 치니까, 그 나무가 턱 씨러지더랴.
씨러지니까, 인저 집은 그냥 그 뭐, 정말 산골 오막살이지. 뭐가 있겄어요?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냥 집은 내버리고 나섰대, 그냥. 좌우간 집집마다 몇, 몇십 리를 돌아대니다 보니까, [조사자 : 계속하세요.] 몇 십리를 돌아 댕기다 보니까, 어느, 어느 집에 이 마당에 우물이 있는데 수건을 썻더래요. 수건을. 아 그 때는 수건을 잘 안 쓰지. 수건을 쓰고는 이렇게 두레박 있잖우? 두레박, 물 푸는 두레박으로 이렇게 푸는데, 그 이 애가 가설람은 이렇게, 이렇게 해면서,
“아줌마! 나 물 좀 줘?”
그래. 그러고 비비니까 수건이 훌떡 벗어지는데, 한 움큼 빠졌더래요. 한 움큼 머리가 빠졌더랴. [청중 : 그 여자 찾으러 돌아 대녔구먼.] 응. ‘이 여자가 우리 엄마 그랬구나’ 하고, 칼을 쑥 빼설람은 그냥 이렇게 엎드려서 물 풀라고 이러는데 탁 치니까 그냥 목아지가 댕겅 떨어 지더랴.(웃음) 댕겅 떨어져서(웃음) 댕겅 떨어지니까 그 길로 동네 내려와서 외쳤대요.
“나는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서 응, 증말 돌아가신 것도 마음 아퍼 죽겄는데, 자기 병 고칠라면, 그러니까 문둥, 문둥이었어. 문둥이가 피 빨아 먹으면, [조사자 : 자기 병 고칠려고요?] 예.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마음 아파 죽겄는데, 자기 병 고친다고 우리 어머니가, 코를 빨아서 피를 빨아, 빨아서 내 그 여자를 이렇게 죽였다.”
고. 그냥 소리치고 동네 내려와서 그러니까, 누가 터치를 못 하더래요. 터치를 못 해설람은 저기 하는대.

2) 아기장수 물리치기
어떤 여자가, 어떤 여자가 어떤 그 어느 동네를 또 그냥 방향없이 돌아다니는데, 어떤 여자가 개울에 나왔는데 하는 소리가,
“웃도리 엄마! 웃도리 엄마!”
그러더랴. ‘웃도리 엄마’라고. ‘웃도리 엄마, 웃도리 어마’ 그러더랴. ‘저 여자가 이상하다고 왜 웃도리라고 부르나’ 하고 동네에 들어 갔댜. 동네를 들어가서 사랑방서 자면서, 그 쪼그 쪼끄만 애들이, 인자 으른 자는데 가서,
“아유, 아저씨! 이 동네에는 왜 웃도리가 다 있어요?”
그러니까. ‘에 웃도리가 다 있데요.’ 그러니까 허는 소리가, 응. 그 아줌마는 애기를 못 나서 저 근너, 근너 산에다 치성을 드렸더니, 한날은 그 밤에 주무시, 자는데 그 산이 입으로 쑥 들어 가더랴. 자는데 꿈에, 꿈에 그 산이 입으로 들어 가더래요. 그러다가 그래더니 그 산이 도로 나와서 저기 했다고 그래더래.
그래서 인저 애기를 열 달, 그러자 과부지. 그 애기 난 아줌마가 남자가 읎으니까.(웃음) 그랬는데 애기가 있더래요. 있어설람은 열 달, 열두 달을, 장사를 낳는냐고 열두 달을 채웠다네 봐. 열두 달을 채웠어.(웃음) 낳는데, 밤에 낳는데 죽겄다고 낳는데 애기가 웃도리만 나오더래, 아랫도리가 읎더래. 그러더니, 그러더니 한 손에는 콩을, 콩을 한 움쿰 쥐고, 한 손에는 저기 스속(조)이라고 있었어요, 스속. 밥해 먹는 거. 밥해 먹는, 밭에다 해서 스속이 있어. 그런데 요렇게 한 움쿰씩 쥐고 나왔더래요. 엄마 뱃속에서, 그 웃도리만 있는 사람이. 그래면서 그러더랴.
“엄마! 엄마! 나는, 나는 어디로 가니까, 어느 바우 밑으로 가니까 절대 동네 사람한테 일러주지 말라고. 일러주지 말라.”
고 그러더랴. 그러고는 그냥 이렇게 동동동동 떠서 가더래요. 그래서 동, 그 소리를 동네 사람 보고 허지 말라고 그러는데, 그 꼬마가 그 집이 가, 그 어머니 웃도리래는 집에 가 뭐 일꾼을 해주고 있었대요. 인저 알고 싶어서. [조사자 : 그렇죠.] 응. 알고 싶어서. 그냥 몇 년을, 한 삼 년 살다가 그걸 캐물었지. 물으니까 그 애보고,
“우리만 알자고. 우리만 알자.”
고. 그러면서 일러 주더래. 그래서 그 칼을 가지고. 어느 연못에 그 바우,
“연못 안에, 가운데 바우가 있는데 그 바우 밑으로 들어간다.”
고. 거기까지 일러준 거야. 그러니까 어머니는 못 믿는다는 게 어머니여. 그래설람은, 가설람은 그 칼로다 저기 그 강 저 연못을 턱 치니까 길이 나오더래요. 길이 나와서 그 바, 바, 바웃돌을,(청중들의 소란의 잠시 중단) 바우, 바웃돌을 이렇게 놓고는 그 칼로 탁 치니까 그 장사가 나오더래요. 그러데 좁쌀 한 움쿰 쥔 거는 죄 군사가 되더래요. 그러고 콩 한 움큼 쥔 거는 말이 돼. 말의 형영이 됬는데 눈 하나 안적(아직) 안 된 말 있고, 다리 하나 안적 못 일어슨 일어슨 말도 있고. 사람도 죄 그 형용이고 그러더랴. 그러니까 그 다리 하나, 한 사람도 다 되고 요 무릎 하나만 못 일으켰더래요. 그러면서,
“아유, 어매라고 일러줬더니!”
그러고는 그냥 사라지더래요. 그래서 그 아들을 망쳤데요. 그러니까 어머니는(웃음) 남이래는 거여, 일러 그런 말도 못 지켜준 거라. 그 집이 가 일꾼으로 있으니까, 그 자기는 해준 데는 게 잘못 일러 줬지. 해필 장사한테다 일러준 거지.(웃음) [청중2 : 그 장수가 태어나면 어마를 죽인 데요.] 영. 그렇데요. [청중2 : 어마는 일러주기 때문에 자기 엄마를 죽인데요?] 그래설람은 그 아들이 결국은 그냥 사라져 버렸지. 그 사라져 가지고 물 속으로 들어 가더래요. 그래서 그 아들 출세를 못 시키고는.

3) 아기장수의 죽음 안 나무
그래설람은 그래서 인저 그, 그러고는 이렇게 돌아서서 또 다른 데로 가니까, 가만히 이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느티나무 가운데 이렇게 구녁이 뻥 뚫어져서,
“아 여기 드러눠 있으면, 드러 눴으면 그래도 이슬은 안 맞겠다.”
하고 드러 눴으니까. 한 밤중쯤 되니까 저 건너편 느티나무가,
“얘, 아무게야! 아무게야! 이리 놀러 와.”
그러더랴. 느티나무끼리.(웃음) 그러니까,
“아이구 얘, 우리 저기, 저기 손님네가 오셔서 지금 자,”
그러드랴.
“무슨 손님네여?”
거기서 그러니까. 이 니가, 이 느티나무가 하는 소리가,
“아휴, 저기여 얼마나 장산데, 이 나라를 치고 들어앉을 [청중 : 장사가.] 응. 장사가 와 주무시는데.”
그러더랴. [조사자 : 나무들이 아는 거예요?] 응. 나무들이 그러게 서로 저녁이면 그러게 통한 데요.(웃음) 옛날 고목 같은 그, 그래. 예 그러니까,
“뭐, 여기 장사가 또 있는대.”
그러더랴. [청중 : 이 안에 있는데, 또 있다는 게 뭐여?] 응.
“장사가 우리나라에 있는데, 지금 크고 있는대.”
그러니까.
“아녀. 그 장사는 이미 저기 죽었어. 아이구 읎어 졌어. 그 어머니가 입을 잘못 놀려 가지고.”
그런게 나무끼리는 서로 알았지.(웃음)
 
4) 장수의 자금을 마련한 여우
그래설람은 또 어디만큼 가니까, 어디만큼 가니까 괜히 이 얘기가 긴 거 아니요? [조사자 : 아니예요.](웃음) 어디만큼 가니까, 어느 산 모랭이를 돌아가니까, 저기 산 모랭이를 돌아가니까,(잠시 다른 이야기로 중단) 저기 산 모랭이를 돌아가니까, 누가. 여우라는 놈이 앉었더니,
“헤! 헤! 헤!”
웃더랴. ‘헤헤헤’ 웃더니, ‘헤헤헤’ 웃더니 해골바가지를 이렇게 들고 앉아서, ‘박박박박’ 긁더니, 얼굴에도 이렇게 삭 바르니까 사람이 되더래요.(청중 놀람) ‘박박박박’ 긁어서 몸에다 이렇게 슥 바르더래. 그 니가, 자기가 장사니까,
“너 뭐 하는 거냐?”
그러니까.
“헤이, 저기 왜 그랴?”
그러더랴. 그래설람은,
“너, 뭐 하는 거여?”
“응. 이 동네 저기 굿, 굿을 허는데, 그 집이가 굿해, 굿해 줄라고.”
그러니까. 사람을, 그러니 그 옛날에 그 여우 도섭을 한대잖우, 그게. 그게 그거여.
“저기 굿하러 가는 건데.”
그러더랴. 그래서,
“네까 같은 게, 네까지 것 같은 게 무슨 굿을 해?”
그러고는 가설람은 그 여우를 해칠라고, ‘저런 거를 두면 안 된다.’고 해칠라고 그러니까.
“흥! 나를 그려?”
그러길래,
“아, 니까짓 게 뭘 알아서 그래니?”
그러니까.
“헹, 그래도 당신 뒤 바쳐줄라고, 지금 저 산 모랭이에 바우 밑에 금 항아리가, 항아리가 뭍혔는데, 거기 금이 세 항아, 항아리가 셋인데 다 차고 한 반 항아리 남았다고 그러더랴. 반 항아리 인저 고것만 차면, 당신도 이 나라를 치고 들아 앉는다.”
그러니까.
“너까지, 네까짓 게 뭘 그런 걸 아느냐?”
고. 그러고 인제,
“이리 와 보라.”
고. 그러드래, 여우가. 여우가 인제 사람 됐지 인저. 사람 돼 가지고 그래 슬슬 쫓아가설람은,
“장사니까 이것 밀어 보라.”
고 그러더랴. 그래서 그 바우를 이렇게 하나 밀고 보니까 증말 하나 가득하게 차고. 또 하나 밀으니까 가득하게 차고. 또 하나는 다, 반 항아리 냉겨 있대.
“이거만, 이것만 차면 당신 이 나라에 큰 일, 큰 일 해 먹어.”
그러더래.
“그렇구나!”
하고설람은(웃음) 그랬더니 결국 그 니가 큰 일 해 먹었대요. 그 어머니가 그렇게 되는 바람에. 그렇게 되가지고 그 니가 이 나라 치고 들어앉았댜.(웃음) 그만햐. 그만 해.


19. 도깨비들의 말을 엿듣고 얻은 명당

문성의(74, 남) /고림동T 4앞
[2리 노인정앞] 박종수, 강현모, 안광연, 박수진, 장숙화, 한민정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앞에서 여우와 비슷한 신기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는지 계속 구술하여 주었다. 이 이야기는 어릴 때 전주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들었다고 한다.

황방산이라고 산이 있었데요. [조사자 : 전주요?] 네. 전주 황방산이라고 산이 있는데, 지금은 거기가 효자동이고, 지금도 서구사 절은 있긴 있더라. 있나 보더라구, 저 테레비에 나오더라구.
그런데 서구사 절이 있는 황방산이라는 산이 있어요. 우리가 이렇게 동네 살면, 저쯤 황방산 절이 있는데 거 호랭이가 많아 또 호랭이가 많은데, 우리 뒷집에 사는 김택, 김택일이래는 이가 혼저 사는데, 기도를 해요. 뭐 증말 기도를 인저 밤새도록 그냥 뭐,
“가가서방 신매김을 ···”
뭐, 우짜고 그러잖아요? 밤새도록 그렇게 허는 건데, 그 우리 종종산이 있었어요, 산 하나. 그런데 거기가 그 산에 바우가 꼭 칙소마냥, 칙 소, 왜 황소에 얼룩얼룩한 황소 있잖아요? 그 소같은 바우가 있다구요, 그 산에. 나 이건 본 거 얘기하는 거유.
그런데 그 홀애비가 거기 가서 인저 그렇게 기도를 하는 거예유. 기도를 하며 인저 백 일을 허면, 산신님이 내려와 가지고 산신님이 내려와 가지고, ‘어디는 명당이고 어디는’ 이렇게 쭉 밤에 이렇게 보인 데요. 명당이니께 밤에 눈 감고 있어도 거기 보인 데요. 그래서 거기다가 집을 짓, 짓구는, 인제 집이라고 뭐 이냥 나무 좀 비어다가 이렇게 어리가리 허구 하는대.
인저 저녁을 헐 때는, 졸으니까 아무케도 그런 기도를 해도 그 졸음이 오니까 상투를, 상투를 여기 서까래에다가 이렇게 끈냉이로 해서, 노끈으로 해서 이렇게 매달고는, 밤새도록. 백 일을 거 반, 그냥 하다 보면 밤중이면 이렇게 앉아설람은 그냥 인자 이렇게 오이면(외우면), 밤에 와서는,
“어흥!”
허고 이렇게 잡아댕긴데, 호랭이가. 호랭이가 많으니까. 우리 어머니도 좌우간 나물 뜯으러 가서 호랭이를 봤데니까, 바우 밑에. 그래 그런댜. 그러도 거 이기는 거지. 말해자면 무서워서 이러질 않고 그냥 이기고. 하는데 한 저기 이저 거 반, 그때는 끝나는 때가 되어니까 떡을 해다 놓고 이렇게, 이렇게 인자 허는 거지.
 밤새도록 오이니까 새벽녘인데 이렇게 앉어 눈감고 하니까, 그냥 산신들이 무척 모여가지고 그냥, 부엌에도 있고 그냥 웃방에도 있고 이렇게 있더니, 가만히 보니까 바람이 휙 불더래요. 바람이 휙, 호랭이 바람이 불더니 그 호랭이는 간 곳이 읎고, 도깨비들만 달박달박 하더래요. 그래서 이렇게 눈감고 보니까, 저 아래 그 동네 안 노인네라고 안 서방네 노인네가 있어. 그러니까 고런 걸 살살 가 엿 들을라고, 엿 들을라고,
“어디가 명당자리고. 뭐 어디가 뭐가 있고,”
뭐 그런 걸 엿 들을라고, 훔쳐 들을라고 간 거지. 그러니까 가서 그냥 바람이 불어가지고, 바람이 불어가지고 그냥 그 호랭이는 간 곳이 읎고 도깨비들만 달박달박 하더랴. 그래설람은 자기가 상투를 그냥 냅다 잘르고, 저 황방산 꼭대기라는데 가 이렇게 보니까, 그 노인네가, 그 노인네들이 진짜 거기 살살 올라 오더래요, 둘이.
그래서 그냥 그 길로 내려와 가지고, 내려와 가지고 우리 동네에서 그냥, 우리 뒷집에다 집을 짓고 인자 그 남원댁이라는 이를 여자로 얻어 가지고 사는데, 그래도 계속 오여요, 뭐라고 저녁이면. [청중 : 그 짚인 사람도 아닌데, 그냥 그런 사람인데 그래요. 짚이지도 않았는데?] 그럼. 그러믄요. [청중 : 짚이지도 않았는데.] 응. 짚이지도 않는데. 그래 그래가지고 오이더라구. 오이는데 우리 어머니가 그랴, 한날은.
“어휴, 어저녁에 뭐가 왔었나 봐. 우리 뒤란, 우리 뒤가 대나무가 있었어요. 대나무 밭 저 뒤로 접시같은 발자국이 있다.”
고. 그래 호랭이 와 돌아 댕겼지. 그랬는데 인저 그 인저, 그 집은 인자 그냥 일 년이 나니까, 뭐 집은 흙으로다 간신히 어리가리 헌 집 뭐, 씨러지지 뭐여.
그래 우리 집안네 증조 할머니이래는 이네가 저기 있는데, 그 니네 일꾼이 나무하기 싫으니까 가서 그 서까래를 갖다가 불땐, 저 쇠죽을 쑨거야. 그랬더니 그 날 저녁부텀 앓더라고. 앓더니 결국은 문둥병이 되더라고, 거 일꾼이. 그거 봤어, 난. 시집올 때 본 거야 건, 어려서.
[조사자 : 전주에서요?] 네. 전주 황방산이래는 산이 있어요. 거기 황방산이라고 있어요. 테레비에도 더러 나오더라구. 서구사 절이라고 절이 있는 산인데, 거기 호랭이가 그렇게 있대요. 그래서(웃음) 이 얘기 고만해요.


20. 흙토를 대우하고 잘 된 흉가

문성의(74, 남) /고림동T 4앞
[2리 노인정앞] 박종수, 강현모, 안광연, 박수진, 장숙화, 한민정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같은 신기한 이야기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이는 흙토란 귀신과 관련된 이야기로 어렸을 때 전주에서 어머니에게 들었다고 한다.

그 집으로 집은 좋은데, 이사만 들어가면 좌우간 그날 저녁이 사람이, 그 사람이 그날 저녁이면 사람이 죽더래요.
그래서, ‘참 이상도 하다’ 하고, 그 뭐 볼 줄 아는 이가 가만히 가서 그 집 대문간에 가 보니까, 그 집에 뭐 지킴이 꼭 있더래요. 그래서 그랬는데, 저녁에 밤중쯤 되니까 그냥, 도깨비가 오더래요. 도깨비가 오더니,
“아휴, 흙, 흙토야! 흙토야!”
그래고 들어 가더래요. [청중 : 흙토?] 응. 흙토. 인제 그래, 그래고 들어갔는데,
“에이 이 집이 흙토만 부르면 되겠구나!”
하고는 인저, 그날 저녁은 그러구 들어가더니, 그러구 들어가더니,
“아이 저기 오늘 저녁이 이사 안 왔구나!”
그러고 가더래. 갔는디, 그 니가 그 이튿날,
“흙토야!”
하면. 어디서,
“네!”
그러고.
“흙토야!” 하면
“네!”
하고. ‘네’ 하는 데로 자꾸 쫓아 들어갔대. 그랬더니, 옛날 옛날에 애들이 흙으로다 사람을 맨들어서 가지고 놀다가 인자 그 땅에다 논 건데, 그냥 거기다 이렇게 집을 지었대요. 그러니까 그 속에서 그, 그게 신이 붙어 가지고 그랬더랴. [청중의 말씀 청취불능] 응. 그래설람은(웃음) 누가 이사온다고 그러뎌랴. ‘이사온다’고 그러길래, 인제 그 니가 장담을 한거야.
“이렇게 해서 이렇게 살라고는. 저녁에 좌우간, 좌우간 여기서 당신이 하루 저녁을 이길, 이길래거든 그 광대 있지, 광대 이 저기 이렇게 사람 맨드는 것, 지금은 뭐 맨드는 거. [청중 : 탈.] 응. 탈. 그거 열두 개를 갖다 방에 죽 걸어 노라.”
고. 그러더래요. 그래 그래서 그걸 갖다가 방에다 죽 걸어 놨더니, [청중 : 옛날에도 탈이 있었어?] 예 있데요. 왜 광대들 저 줄 타고 허는 사람들이 썼잖아요. 그래 그래서 그걸 갖다가, 열둘을 갖다가 방에다 죽 걸아 놓았더니, 그날 저녁에, 또 가만히 보니까 도깨비가 또 오더랴. 오더니,
“흙토야!”
그런게. 대문을 안 열어 준대요. 다른 사람이 가서 대문을 뚜띵기면 안 열어주고, ‘흙토’를 불러 가주고 ‘흙토야’ 하면, 그게 무슨 신호로 해서 문을 열어 주더래요, 그래,
“흙토야!”
그러니까. 문이 열리더래. 그래서,
“흙토야! 흙토야!”
하고 들어가니까, 방에 들어가니까 그거를, 탈바가지를 열둘 개를 걸어 놨으니까,
“어휴, 우리 장군님은 얼굴이 하난데 열두 개라.”
고.(웃음) 그러고 그냥,
“여기는 못 살데라.”
고. 그 도깨비가 그냥 가더랴. 그래서 그 딴 사람이 와 가주고, 그 흙토를 친해 가지고 거기가 사는데, 왜 숭가(흉가)터가 부자가 된다는 소리가 있잖어? 그걸 새겨, 흙토를 새겨(친구 삼아) 가지고 부자로 잘 살았대요. 아휴 나 이거 짧아.(웃음)


21. 밤에 찾아오는 지네 신랑

문성의(74, 남) /고림동T 4앞
[2리 노인정앞] 박종수, 강현모, 안광연, 박수진, 장숙화, 한민정 조사 (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정신이 없어 이젠 못 하겠다’고 하였다. 조사자가 다른 이야기를 부탁하자 생각이 났는지 계속 구술하여 주었다. 이 이야기도 어렸을 때 전주에서 어머니에게 들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한테 들은 얘긴대. 어느, 어느 집이서, [조사자 : 어느 마을.] 엉. 어느 마을에서 시집을 왔는데, 자꾸 하루 저녁, 아니 남편네가 죽었대죠.
죽어 가지고 사는데 자꾸 말르더래잖아요, 그 여자가. [조사자 : 여자가요?] 응. 여자가 말르는데 가만히 보니까, 자기, 누가 보니까 ‘왜 저렇게 말르나’ 하고 이렇게 보니까, 저녁이면 신랑의 초립을 쓰고 오더랴, 그 방에. 저기 신랑마냥 하고 와설랑은 그날 저녁이 잘 지내고 가구, 지내구 가구. 그래설랑은 동네 사람이 그랬대지.
“그래지 말구, 오늘 저녁에 뭐를 좀 잘 응, 뭐를 표시를 해라.”
구 해서. 여자가 명지, 명지꾸리 하나에다가 실을 꼬여서, 바늘에다가 실을 꼬여서 놀다가는 뒤에다 인자 꽂였대여. 뒤에다 꽂이니까, 그 니가 저녁에 그 신랑이 왔다 갔는데, 인저 그날 밤을 새워 가지고 아침에 보니까, 그게 한없이 갔더래지. 그래 보니까 저 동산에 바우 밑으로 쏙 들어 갔더래요.
그래서 그 바우를 대들어서, 동네 분들이 대들어서 열어보니까, 지네가 이그만하게 엎드렸는데 거기가 바늘이 꽂혔대잖아요.(웃음) [청중1 : 신랑이 지네가 둔갑을 해가지고 신랑 노릇할려고 온 거여.] 예. 그렇죠. 그렇게 된 거지.
그래니까 그 지네하고 밤을 잘 지내다, 밤을 잘 지내다 갔는 데도 그 여자가 말르더래잖아요. [청중2 : 말르지.] 예. 배짝 말르드래잖아요. [청중2 : 말르지. 마르게 하라고, 그렇게 할라고 지네가 둔갑을 한 거여.]


다. 민 요

1. 상여가

심인식(88, 남) /고림동T 2앞
[1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황은정, 이은미 조사(1995. 11. 4.)
이 마을에서 태어나 계속 이 고장에서 생활하고 있다. 7, 8대가 여기서 계속 사셨다고 한다. 지금은 농업에 종사하나 젊어서는 우체부 일을 하기도 했고, 고림 1리 이장을 맡기도 하였다고 한다. 성격은 괄괄한 인상을 풍겼으며 외모는 머리가 다 빠져 거의 대머리였다. 말씨는 연세가 드셔 발음이 분명치 않아 이야기 도중에 몇 차례 되물어야 했다. 처음에는 사양하고 도무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다가 몇 차례 권유로 통과의례에 관한 몇 가지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중에 상례 행렬에 대해 말하다가 구술하여 준 것이다.

 에헤헤~ 미리 상타고
 일가 친척이 많다 한들
 대신 갈 사람 누가 있나


2. 농부가(논맬 적에)

심인식(88, 남) /고림동T 3앞
[4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고림 4리의 비닐하우스에서 조사를 마치고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이장의 소개로 할아버지를 댁으로 방문하여 조사하였다. 집으로 가서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이야기를 잘못하고 옛날 노래나 한 마디 해야겠다고 음영조로 불러 주었다. 인상과 마음씨가 부드럽고 온화하신 좋으신 분이셨다.
 
 닷새만큼 바람 불구
 열흘만큼 비가 와서
 오곡 잡곡 풍성하니
 성평 세계 이 아니냐
 어럴럴러 상사디야

 근검하면 부유하고
 사치하면 패망이라
 우리 농부 절약하야
 천하대본 힘을 쓰세
 어럴럴러 상사디야


라. 속신어

이강래(59, 남) /고림동T 3앞
[4리 밭둑] 박종수, 강현모, 김은주, 윤은경, 이정훈 조사 (1995. 11. 11.)

앞에서 설화 「떡국새의 유래」에 대해 말씀한 뒤에 해 주신 것이다

* 밤 까치가 짖으면 난리 난다.
* 개가 풀을 뜯어먹으면 삼일 내로 날이 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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