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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역
양지면- 송문리
 

  1) 마을개관--------------------------------------------539 
  2) 설화------------------------------------------------540 
  (1) 송재윤 (60,남) 지극 정성을 보인 효자---------------540 
(2) 송재윤 (60,남) 방앗간에 상주 하는 달걀 도깨비--------542 
(3) 김남이 (63,여) 호랑이 태몽으로 얻은 아들-------------543
(4) 김남이 (63,여) 죽은 용꿈으로 얻은 딸-----------------544
(5) 이영자 (67,여) 뱀 꿈으로 얻은 아들-------------------545
(6) 김남이 (63,여) 돼지 꿈을 꾸고 얻은 아들--------------546
(7) 김남이 (63,여) 무 꿈으로 얻은 손자-------------------547 
(8) 류봉수 (71,남) 반정의 유래---------------------------548
(9) 류봉수 (71,남) 송문리의 유래-------------------------550
(10)류봉수 (71,남) 잔치에 채일을 치는 유래---------------552
(11)유한종모친 (70,여) 송문 3리에 있는 정려의 유래-------554 

송문리
가.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유은숙, 이선경, 임옥인, 김보경, 원지현, 정화영 조사
 1995. 5. 13., 2000. 5. 14.

송문리는 용인시 마평동과 양지면 양지리 사이에 있는 마을로, 버스로 2-3분 거리에 있는 교통이 매우 편리한 곳이다. 양지군 주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반정리, 정문리, 송동 일부를 합쳐 송문리라 하여 내사면에 편입하였다.
송문리를 이루는 자연마을을 보면, 송동은 소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아니면 송씨가 많이 살아서, 그리고 옛날에 소나무 대문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일명 굴안, 구란이라고도 하는데, 형제봉에서 바라보면 용인이 전부 보이나 형제봉에 있는 굴속에 들어가서 보면 오직 송동 지역만 보여 굴안이라 하게 되었다. 굴안은 벌판에 있다고 벌구란과 안쪽에 있다고 해서 안구란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반정은 형국이 소반 모양으로 생겨서 칭하여진 이름이다. 일명 잔정이 반쟁이라고 하는데,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지 소나무를 반송이라고 하는데 이것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한다. 정문은 충신 유복립의 정려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정문말이라고 한다. 주막거리는 옛날에 주막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문리는 1995년 5월 13일에 유은숙, 이선경, 임옥인이 송문리 송동마을에서 조사를 하였고, 2000년 5월 14일에 김보경, 원지현, 정화영이 송문 2리와 3리에서 추가 조사를 하였다. 송문리는 1리, 2리, 3리로 나뉘어져 있었다. 복지회관을 중심으로 조사하고자 했으나, 송문 2리 복지회관만 할머님들이 계셨고, 다른 곳은 다 비어 있었다. 더욱이 농번기라 주민들 대부분이 논에 나가 계신다는 소릴 들었다. 그래서 추가 조사는 송문 2리를 중심으로 복지회관, 송문 2리 논옆 나무 그늘, 송문 3리 유씨 댁 등에서 조사하였다.


나. 설 화

1. 지극 정성을 보인 효자

 송재윤(60, 남)/송문리T 1앞
[송동마을] 박종수, 강현모, 유은숙, 이선경, 임옥인 조사 (1995. 5. 13.)

산신제를 조사하는 도중에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본 정려문에 대해 묻자, 자신의 ‘직계 6대조 할아버지의 정려문이라’며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조사자 : 아까 여기 뒤에 뭐 있던데 그게 뭐예요?] 그건, 응 내가 송가인데. 나한테 6대조 할아버지가, 6대조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할아버지는 효자로써 그래가지고 효자 정문을 하사 받으신 분여.
[조사자 : 특별한 이유 없으시지요?] 특별한 이유는 구전이 되어내려 와. 근데 그게 뭐냐면, 이 여기 그 설문 세운 내력이라든가, 그 뭐이 근거되는 것이 뭐 뒤에서 어떻게 현판같이 것 해서 그것이 있었어요.
있는데, 6.25, 6.25 때 내가 그 때 15살이었거든. 근데 그 해 겨울 다시 개축을 했어. 여기 이쪽에 있던 것을 저 앞으로 내서설문 다시 지었다고. 그랬는데 짓기는 미완성 있다가 6.25가 났어요. 그래서 그 안에 있던 먼저 건물이 있는 것, 그것 전부다 우리 집이 고 앞 밑에 고 밑에 있었어. 여기다 전부다 넣어 두었어요.
그래서 인자 6.25가 났으니 피난을 갔지. 갔다 오니까 우리 집이 다 타지, 모두 다. 그 자료들이 다 타서 아무 것도 읎어요. 고 그래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거예요. 그 할아버지한테 듣고 했던 것 그런 것 밖에 못해요.
[조사자 : 지금 대충 아시는 거요.] 그런 것이 뭐냐면 우리가 6대조 할아버지가 바로 직계야, 내가. 할아버지가, 우리가 여기서 살지는 않고서 그전이는 옛날에 이 고개 넘어 하나 있어요. 고개 넘어 거기서 농사는 지었어요. 거기서. 그런데 거기서 살면서 인저 여기서 살기만 했지, 굉장히 어렵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께 아버지가 병을 나셨는데 참 제대로 이 약이란 것이 그렇고, 제대로 해 주덜 못하고 약 짓는 것을 못하고 어려웠던 몬양여. 그랬는데 불구하고 참 무술, 그, 그 양반이 잡수시것다 그런 얘기를 허면은 참 뭐 아무 때라도 이 큰 훌륭하고 그래서 나가면 다 들어온다는 거지.
나가면 겨울에도 그냥 뭐 어름 속에서 큰 잉어 같은 게 이렇게 잘 잡혀서, 잘 잡히고 그래가지고 밥 반찬해 공경을 했다는 그런 여러 가지 그런 얘기들이 있더라구.
그러면서 이런 밤같은 데 이런 짐승같은 것 먹고 이런다 할 것 같으면, 이 호랭이, 호랭이가 인자 그 할아버지 허고 그렇게 굉장히 친하셨대, 말은. 그래가지고 그 호랭이가 먹이를 해서 갖다주면 그걸 거기 갖다가 공양을 허고 그랬다는 얘긴데.
이것은 있어. 내가 어렸을 때 인자 제사를 여기서 지낼 때, 그때 그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는데, 내는 6대지만, 아가씨는 아는지 모르지만 보통 5대 봉사를 헌다고 허잖아. 5대 봉사라고 그러거든, 그전에. 나는 6대지만,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들은 4대가, 5대가 되는 게 벼.
그때 제사를 인자 지낼 때는 그 꼭 이렇게 밤에 훤한 것 같애. 그게 뭐냐 허면 그러면 호랭이가 와서, 늘 업고 다니던 그 호랑이, 그 호랑이가 니려와서, 그때 내려와서 참석을 한디야. 하야간 불도 쓰고 환하다는 그런, 그런 기억은 내가 나.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되었을 땐데, 그래가지고 그 그렇게 병간호하고 건강하고 아무 일도 없이 돌아 가셨데.
그렇게 돌아가셔 가지고. 그 다음해 돌아가신 다음에도 삼 년 동안 그 할아버지, 그 자기 아버지지. 그러니까 아버지 산소 인자 밑에다 움막을 지어놓고 삼 년 동안 거기 기거를 하셨데요. 그 모든 일을 전폐를 하고 삼 년 동안, 뭐 이런 봄갓도 고치지 않고서 있으니까 그것을 파했는 데는 그 삼 년 동안 거기서 있었다고. 그래가지고 그것이 여기서 여러 가지 하야튼 어떤 몇 가지 얘기가 들어가서. 결과 있다는 그런 얘기는 있어.


2. 방앗간에 상주하는 달걀 도깨비

 송재윤(60, 남)/송문리T 1앞
[송동마을] 박종수, 강현모, 유은숙, 이선경, 임옥인 조사 (1995. 5. 13.)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귀신이나 도깨비에 대해 묻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조사자 : 어릴 때 귀신같은 못 보셨어요. 도깨비?] 아 여기가 가면 개울 옆에 물방아가 있었지. 물레방아. 그런데 거기를 가을에 추수해서 갖다 놓으면, 그런데 정미소라는 게 드물었으니까. 여기에 전기가 안 들어오고 정미소도 없었으니까 물로써 하거든. 그런데 물레방아가 저기 있었는데, 그래 벼들이 많이 갖다 쌓아 놓았단 말이여. 밖으로 안으로 오통 많이 쌓아 놓으니 밀려요. 그랬는디 그거를 겨우내 찧어도 그게 한 2월 달까지를 쌓여 있었지.
2월 달까지 쪄요, 방아를. 그렇지 않으면 거기 바람이 굉장이 센 곳이거든. 그러면 이것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하야튼, 내가 굉장히 놀래는 건데. 거기 가서 밤에 우리는 방앗간 놓으니까는 그래 아버지 방앗간 대신 나갈 때 뒤쫓아 나가서 대신 볼 때가 인자 많아. 그때 내 나가 보라고 해서 그러면 그때 방아를 관리하는 사람이,
“물 없다.”
고. 인자 그러는 거야.
“방아를 찧다가는 물이 가만히 있다.”
고. 또 어떤 때는 혼자 와서 방아를 찧을 때란든지 이러면 그 방앗간 안에 쪼그만 방이 있었는데, 거기 방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방앗간 밖에 문이 달그닥 달그닥 하고, 한참 달그닥 달그닥 하다가 문이 저절로 열린 데요. 잉 문이 저절로 열린다가도. 그런데 문이 활짝 열리면은 뭐가 벗겨져. 피대가 삑겨진다 얘기여.(웃음) 그렇다고 작은 아버지가 졸졸 얘기를 해 주드라고. 그래서 끝나고 나서 가서 있는 거야. 그런데 거기 있는 사람들은 인제 그것이 있는데, 뭐냐하면 핑게인지 뭣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초하루나 보름이 되면, 꼭 떡을 해 놓으라고 그래. 우리 집에다가. [조사자 : 초하루하고 보름하고요?] 응. 보름에. 떡시루 해다 놓으라고 그러고 막걸리 받어 오라고. 그래가지고 이 더위 집에. [청취불능]
그것을 안하고 우두커니 있으면, 그 아까 같은 그런 자꾸 되풀이가 되고, 또 방아가 유지 돌아가지를 않아요. [조사자 : 방아가요?] 응 방아는 뭐냐면 물로 해는 거기 때문에 이 피대가 이렇게 걸어서 허는 건데, 이 피대가 자꾸 벗겨져요. 동력하고 정미기하고 연결되는 그 피대가 있거든. 그러면 그 피대가 자꾸 벗겨진다 말이여. 그것을 안하면.
그래 그것은 도깨비가 벗겨놓는 것이란 말이여. 도깨비. 그것 허면은 괜찮다. 또 실질적으로 그래.(뒤부분 생략) 하야간 그래가지고 도깨비 온다고 그래가지고, 소위 달걀 도깨비는 방앗간에 아주 상주하는 도깨비라고 그렇게 얘기는 했지.


3. 호랑이 태몽으로 얻은 아들

 김남이(63, 여)/송문리T 2앞
[2리 복지회관] 박종수, 강현모, 김보경, 원지현, 정화영 조사 (2000. 5. 14.)

조사자들이 송문리를 돌아다녔지만, 송문 2리 복지회관에만 할머니들이 모여 있어 이곳에 조사를 시작하였다. 조사자들의 찾아온 목적을 말하고 꿈에 대해 묻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제보자가 실제로 꿈을 꾼 이야기라 하겠다. 제보자는 성격이 매우 쾌활한 편이셨으며 마을회관에 계셨던 분들 중 제일 멋쟁이로 매우 진지하게 말씀해 주었다. 청중은 모두 3명이었는데, 모두 진지하게 제보자의 얘기를 들었다.

밤 따러 가서 범을 만나, 범을(이상은 녹취하지 못함) 만나 갖구 무서워서 인제 막- 도망을 치니깐. 이 범이 먼저 앞질러 가서 섯구 섯구 해는 거여. 그래 밤두 못 따고 집으로 쫓겨와서 보니깐 집에 와서 있어.
그래서 인제 무서워서 방에 들어가면 안 올 줄 알고 방에 뛰어 들어 갔더니, 방에 그 다락에 가서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드라구.
그러니깐 인제 그걸, 옛날엔 그래도 그 할머니가 아는 소리 좀 핸 데는 할머니야, 그 창선 엄마가. 그래서 그 할머니보고 물어 보니깐 그러더라구.
“태몽 꿈이라고. 그 범을 잘- 위해야 된다.”
고. 그래 꿈을 깨보고 보니깐, 어휴 진짜 무섭더라고 그 다락에 앉았었다는 생각만 해도. 그래 그렇게 꾸고 나서 인제, 그러구서 진짜 태몽 꿈이라고 하는데 바로 애가 있더라고. 그래서 그거 낳는데 그게 우리 아들인데


4. 죽은 용꿈으로 얻은 딸

 김남이(63, 여)/송문리T 2앞
[2리 복지회관] 박종수, 강현모, 김보경, 원지현, 정화영 조사 (2000. 5. 14.)

앞의 이야기를 같은 소재의 용꿈에다가 실제로 꾼 꿈이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인제 우리, 바로 그러구 나서 인제 친정에를 갔는데, 사람들이 그래,
“비가 오는데 빨-리 나오라.”
고. 바깥에서 소리들을 질러. 그래.
“왜 그러냐?”
고. 그러니깐.
“저기서, 용이 하늘에서 내려온 데. 그랬는데 빨리 가서 받는 사람이 모(뭐) 재수가 있데나 복이 많다나.”
그래서 나가 보니깐, 아호 진짜 저-기서 내려오는데, 발 네 개 다 달리고 머리도 이렇게 있고(손을 머리에 가져가서 큰 원을 그리는 모션을 취해 주심) 꼬리도 달리고 그런게 진짜 막 흔들고 내려오더라고. 그런게 옛날에 그 광목 행주치마들 많이 입었잖아.
근데 또 꿈에 왠 행주치마를 다 쳤는지. 행주치마를 벌리고 이렇게 막 나도, 그냥 사람들이 뛰길래 나도 막 뛰었는데, 어머 이게 내 행주치마에 와서 똑 떨어지는 거야! 그래갖구 이렇게 안고 와 보니까는 죽었어, 용이 살지 않고. 그랴 그게 살아야 되는데 죽었더라고. 그래서,
“어머나! 이거 죽은 걸 뭐하지?”
그랬더니.
“그래도 갖고 들어가래.”
사람들이. 그래서 방에 갔다 놨는데, 근데 누가 그러더라고.
“그게 죽었으니깐 딸이라.”
고. [청중 : 죽은 것이?] 그러고 화순이를 낳은 거야. 그게 꿈덜은 다 영, 대게 그냥 낳는데.


5. 뱀 꿈으로 얻은 아들

 이양자(67, 여)/송문리T 2앞
[2리 복지회관] 박종수, 강현모, 김보경, 원지현, 정화영 조사 (2000. 5. 14.)

앞의 제보자가 이야기를 마치자 같은 소재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약간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신 분 같고, 매부리코를 가지셨으며, 동작이 매우 큰 모션까지 취해 주시며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고, 3명의 청중들도 진지한 태도로 제보자의 얘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도 제보자 자신이 꾼 꿈이라 한다.
 
내 꿈 얘기해 봐? 나는 한성 아범 있을 적에, 내가 숯골 가신 거여. 거기 갔더니 큰 뱀이, 뱀 꿈을 꾸고 났어. 귀가 이렇게 달렸어. 이렇게 달려서 뱀이래는데, [청중 : 용이지 뭐.] 엄청 큰 뱀.
아 그게 그냥 내가 가다 돌려다 보면 또 쫓아오고, 가다 돌아보면. 그래서 인자 집에까지 왔어. 그래서 인제,
“집에다 두면 안 된다고. 이걸 구경을 시켜야 한다.”
고. 이 큰-박스에 담아 가주구(웃음) ‘그걸 들고서 구경시켜야 한다’고. 그러구 구경을 시켰어. 그래,
“이것 뱀 좀 보라고. 이런 뱀 봤느냐고. 귀가 이렇게(양손을 귀에 얹은 흉내를 내며) 진짜 달렸다.”
고. 그러고 깼어. 그래 가주구, 그래 가지구.


6. 돼지 꿈을 꾸고 얻은 아들

 김남이(63, 여)/송문리T 2앞
[2리 복지회관] 박종수, 강현모, 김보경, 원지현, 정화영 조사 (2000. 5. 14.)

앞의 이야기와 같은 소재라 생각이 났는지, 앞의 제보자가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이 이야기도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라 한다.
 우리 규영이 쩍에도 장마가 막-져 갖고서 무슨 뒤엄불이 막 내려오는데, 돼지가 엄청 떠내려 온데. 그래 다구 우리 여 송문리 사람들이 돼지를 몰러 나두재. 그래서 나두 그 저 원근네 앞에 나그니까, 아주 시꺼-먼 돼지가 이거만한 게 그냥 한(큰)길로 쭐렁쭐렁 오더라고.
그래서 가서 막대기로 이렇게이렇게 몰아갖고 우리 집 있는 데로 데리고 들어 왔는데, 데리고 와서 내가 싸리문을 활짝 열어놓고 돼지를 몰았는데, 큰- 돼지가 우리 마당에 와서 벌렁 자빠지더니 새끼가 7마리가 들이 댕기면서 젖을 먹는 거야, 그냥. 그 어미 씨러진 데 가서.
그리고 나서 우리 규영이 있어서 낳거던. 그래 우리 규영이는 아들도 많이 날꺼고, 돼지꿈을 꿔서 잘 될 꺼라는데, 언제 잘 돼. 아직 나이가 있고, 그래서 진짜 꿈덜은 다 아주 현명하게 잘 꾸는데, 시방 애들이 그러는 거여.
“태몽 꿈 좀 엄마가 잘- 꿔서 주래.”
근데 남의 태몽 꿈은 못 꿔주네.


7. 무 꿈으로 얻은 손자

 김남이(63, 여)/송문리T 2앞
[2리 복지회관] 박종수, 강현모, 김보경, 원지현, 정화영 조사 (2000. 5. 1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같은 소재의 태몽에다가 실제로 꾼 꿈이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이야기는 손자를 얻게 된 태몽담이다.

근데여, 우리 시방 규영댁이 이 아들 날 적에는,
“그 친정 집이 김장을 많이 들여왔다고 친정 집에 김장을 해 주러 가래.”
날보고. 그래,
“아휴! 사둔집 김장까지 해러 가냐?”
이러니까.
“엄마! 좀 가 거들어 줘요.”
그래서 갔어, 그 집이를. 그 집이 김장을 해주러 갔는데, 무를 경운기에 그냥 하-나 실고 와서 진짜 부리는데, 아주 무가 이 만큼씩 한게 어떻게 이쁘지 턱(떡) 든게 잘 생겼어. 그래서 내가 그걸 니리면서, 거기서 제일 크고 좋은 걸로 하나를 감췄어.
‘아휴 갖다가 국 끓여 먹으라고 줘야지’ 그랬더니, 어머 사둔 마누라가 그걸 보더니 그걸 도로 가져가고, 젤 못 생긴 무를 하나 준다, 나를. 그래서 내가,
“어휴, 내가 이거 안 가져갈래요. 차라리 장에 가서 사다 먹지, 나는 좋은 걸루 골라 놨는데 어디서 이런 걸 주느냐?”
구. 그러구 나두 오기가 있지. 내가 그걸 가져 올 거 같애! 그래서,
“아휴, 싫다고, 안 가져간다고. 그냥 다 하시라.”
고. 그러구는 그냥 ‘장에 와서 사다 먹는다’고 그러고는 안 갖고 왔어. 그래 내가 감춰 논 무는, 그것두 못 갖구 오구. 그랬는데, 그래두 거기서 우리 아들을 낳고, 손자를 난 거거든
그래서 내가 가만히 걔를 볼 적마다 그래. ‘어휴 내가 허연 무를 태몽 꿈을 꿔서 니 얼굴은 끌지두 않고 이렇게 허연가 보다, 이눔 자식!’ 그래 걔는 볕에 나가도 끌지를 않아. [청중 : 원낙 희잖아!] 응.
그래서 무꿈은 확실히 아들인 걸 알고. 막걸리 좋아하믄 아들이구. 밤, 밤두, 아람밤두 시커먼 아람 밤은 아들이고 뻘건 아람은 딸이야.


8. 반정의 유래

 류봉수(71, 남)/송문리T 2앞
[2리 논가] 박종수, 강현모, 김보경, 원지현, 정화영 조사 (2000. 5. 14.)
복지회관을 나온 조사자들은 논에서 일을 하다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제보자를 만나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제보자 약간 부정적이며 사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였지만, 말씀을 할 땐 한자까지 손수 써 주는 적극성도 보였다. 말씀하는 중간중간 담배를 피웠으며, 처음엔 좀 거칠게 말씀하다가 뒤로 갈수록 차분히 구술하여 주었다. 청중은 며느리 두 분이 있었는데, 각자의 일에 정신이 없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제보자는 도제단의 이사, 그리고 마을 이장으로 활동하신 분이라고 한다.

유래가, 왜 으 무슨 부락이 됐데는 거, [조사자 : 안 그래두 제가 아래서 여쭤봤어요. ‘왜 송문리에요’ 그랬더니 모르신 데요. 해서.] 아는 사람이 읍지, 여기.
이 부락이, 여기가 송문 3리라구, 시방 행정구역 단위로는 송문 3리라고 그러는대. 이 부락이 반정이여. 반정이라고 반자가 무슨 반자냐? 소반 반자야. 소반 반자. 이거 저 배라고 하는 거에다가 이렇게 쓰는, 소반 반자야 이게. 소반 반자에다 정자 정자. 정자 정자해서 반정인데,(한자까지 써 주며)
이 부락이 왜 반정이냐 하면, 이 집두 왜 저 참낭구 이렇게 수푹하게 낳구 있는 거 있지. 그 산이 그것이라 금반향이라고 해 가지구 금소반, 두레소반, 둥근 이 저 소반. 두레상 있지, 두레상 시방. 두레상 몬양 둥글게 되 가주구, 금반향이라고 해 가지구설람, 풍수지리상 금반향이라구 해 가지고, 이 반자를 딴 거여.
그래 그 산이 그게 명산이지, 그게. 그래서 그 반자를 따고, 정자 정자는 왜 정자가 정자 정자를 썼냐 하믄, 여기 보며는 여기 이 저 숲이 우거진데, 숲 우거진데 그 위에 거기 가면 은행나무가, 45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조사자 : 하 450년이요?] 음. 은행나무가. 그래 그거를 정자로 삼구 해 가지구설랑 응 반정이라고 하는 거여, 이 부락 이름을. 반정이구.


9. 송문리의 유래

 류봉수(71, 남)/송문리T 2앞
[2리 논가] 박종수, 강현모, 김보경, 원지현, 정화영 조사 (2000. 5. 14.)

앞의 이야기에 이어서 이곳의 지명이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송문리는 왜 송문리가 됐느냐? 이 안 꼴짜기에 들어가면 도지당꼴이라서 있어. 도, 돼지 도자. [조사자 : 돼지 도요?] 돼지 도자, 도치. 기른다는 치. 치자 해서 도치당꼴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내 12대조 여기 정문이 있어요, 여기에 충열문이.
[조사자 : 아 충열문이요?] 충열문이 요 아랫 동네에 있어, 요기. 문화재로 지정된 에 충열문이 있는데, 그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그 정문이 누가한테서 정문이가 하믄, 내가 12대조 할아버진데, 그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당시에 진주성에서 돌아 가셨단 말이야.
그러니깐 그 할, 어머니가 외아드님을 데리고설랑 이루 낙향을 해 내려오신 거야. [조사자 : 아 낙향해 왔었요?] 예. 이 골짜기로다. 도치당꼴이라는 데로다가 낙향을 해 내려 오셔 가주구, 돼지를 메기구 짐승을 메기면서 일생을 냉기셨단 말이야, 여기서.
그때 어떻게 부(부유)했는지, 정부에서 그러니깐 하사를 내린 그 땅이 많구 그래 가주구, 많아 가지구설랑은 하두 부자란 소리가 나 가지구, 나 가지구설랑, 여기가 양지지. 양지 현감이, 양지 현감이, ‘반정에 유 아무개네가 부자라 소리가 있으니’ 조곡이라고 있어. 예전에 조곡이라고 할 거 같으면, 시방으로 말하며는 응 세금 내는 거야. 세금을 갖다가 인자 곡석으로 받는 거여.
“조곡을, 참깨를 300석을 내라.”
구. 그랬다구. [조사자 : 300석이요?] 어. 그래 와서 애기를 하니까, 참깨 300석을 두말 않고 내주셨다 그 말이여, 할머니가. 참깨 300석을 내주구 하인들더러,
“창고에 얼마나 남았냐?”
니깐. ‘아직도 몇 백 석 남았다.’ 이 말이여. 그렇게 부자로 사셨다 그 말이여. 그 당시에 여기서부터 이리루다가 쭉 나오면서 소슬대문이라고 있지. 소슬대문이라고 시방 문화재, 저기 민속촌 같은데 가면 이렇게 개화(기와)집 이렇게 넙따랗게 이렇게 저기하구, 대문 이렇게 허구 허는, 이렇게 또 집 짓고 이런 저기가 있지. 이게 수술(소슬)대문인데, 여기까지 쭉 이리로 나가면서 12대문을, 문을 열 둘을 해닫구 사람이 살았다는 거여.
그러구는 이 신작로께 여기다가 솔문이라고 있어, 솔문. 이렇게 문을 해 세우구, 이걸 소나무 저런 소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전부 이것 소나무다가 이렇게 잎파리를 이렇게 꽂아서, 소나무로만 잎파리를 꽂아가지고서 문을 해닫는 거여. 그게 솔문이라고 그러는데, 소나무 송자 문 문자. 송문을 해 세우구, 요 아래 내려갈 것 같으믄 용인하고 양지하고 경계가 있어. 요 커브 도는 데지, 국도 커브 도는데.
거기가 장승배긴데, 거기다 장을 세웠단 이 말이야. 그전에 5일장이나 이런 장을 세워서 세우구, 송문을 해 닫구서는 장을 해서 세우구. 그래서 소나무 송자, 문 문자 해서 여기가 송문리가 된 거여. 이 바깥으루가 이게 송문리가 된 거여.그래서 송문리구.
그리고 여기는 원은 반정이여, 반정이구. 그렇게 되서 유래가 여기는 반정이요, 송문리는 소나무 문을, 솔문을 12솔문을 해 세웠기 때문에 송문이다 이렇게 되 있는 거구.

양지가, 양지현이로 있다가, 양지군이로다가 되면서, 일본놈들이 나오면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양지면을 없애구설랑은, 그전에는 양지군에 주내면, 주동, 주서, 주북, 주동면 4개 면을 있었단 그 말이여.
그래서 여기 시방, 여기 송문가든이라고 시방 뭐 들꽃향기 집인가, [조사자 : 녜 들꽃향기요?] 거기에, 거기에 저기가 있었어, 주서면 사무소가. 주서면 관내가 여기 어디라 할 것 같으면, 요기 저 너머 운학리라는데, 운학리, 마평리, 신평리 이리루다가 전부가 주서면이야. 용인 일대까지도 주서면이여, 주서면에 속했었지.
그래서 4개 면을 일본애들이 나오면서 합쳐가지구 내사라고 한 거여, 내사. 안 내자 넉 사자 내사면으로다가 행정구역 단위로 맨들어서 용인군으로다가 합쳐되면서, 그래서 내사면이 4개 면을 합쳐서 내사면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양지라는 존재가 읎어졌기 때문에 이 시로 승격되면서 우리가 양지래는 그 고유에, 그 예전 지명을 찾아야 되겠다 해가지구서는 양지면으로다가 도루, 예전 명으루다가 복귀한 거지, 인자 환원한 거지. 도루 양지면으루다가.
그렇게 유래가, 여기 유래가(잠시 다른 대화 생략), 양지의 면하구 여기의 유래가 그렇게 돼서 여기가 반정, 송문이라는 것이가 그래서 송문리가 여기가 된 거여. 여기 송문리 유래하는 사람 읎지?


10. 잔치에 채일을 치는 유래

 류봉수(71, 남)/송문리T 2앞
[2리 논가] 박종수, 강현모, 김보경, 원지현, 정화영 조사 (2000. 5. 14.)

앞에 이곳 지명인 송문리에 대한 유래를 마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용에 대해 묻자, 사실적인 내용에 대해 구술하여 주었다. 그래서 조사자가 용이 승천하는 것에 대해 묻자 이 이야기를 구술하여 주었다.

[조사자 : 옛날에 보면요 용이라는 게 구렁인가 뭐가 이렇게 올라가서.] 용이래는 것이가 뭐이냐 허며는 용이래는 것이가 뭐를 가지고 용이라고 하면은, 용을 본 사람은 없다는 거지. 근데 뱀이, 뱀이, 이런 것 배암, 배암이 삼천 년을 묵으면은 이미기(이무기)가 된다는 거야. [조사자 : 이무기요?] 엥. [조사자 : 이무기 들었어요?]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삼천 년을 묵으면 용이 된다는 거여.
[조사자 : 그러니깐 뱀이 육천 년이 되야 용이 되네요?] 그러니깐 그 뭐 용이 되는 것을 누가 봤다든지.

그래서 이무기가, 이미기가 지나가면, 그 저 뭐여 잔치 때 같은데, 장사 때 뭐 음식 먹을 이런데 차일들 치지. 텐트, 시방 텐트들 흔히 많이 치지. [조사자 : 장막이요?] 응 텐트. 뭐 이렇게 텐트를, 갑바나 이런 것들 많이 치잖아. 하늘을 가리잖아. 그 원인이 왜냐?
이무기가 지나가는 그 그늘, 이무기가 그것이가, 엉 이무기가 삼천 년을 묵으며는 또 진이새가 된다는 거여. [조사자 : 진이새요?] 배암이 삼천 년을 묵으며는 이무기가 되고, 이미기가 삼천 년을 묵으며는 진이새가 된다는 거여. 새가 용이 된 데는 거여. 새루 변하는 거여. [조사자 : 새요?] 응.
그래 그 차일 치는 원인이, 그 육천 년 묵은 그 진이새라는 것이가 날라 가는 그 그늘, 그 그늘만 쏘여도 그 음식을 먹어도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야. 그렇게 독하다는 것이지. [조사자 : 그럼 그 얘기가 있겠네요. 그래서 죽은 사람이.] 그래서, 그래서 ‘그 이무기, 저 진이새 그늘을 막기 위해서 음식을 차려놓고 먹고 하는 데는 반드시 하늘을 가린다.’ 그런 뜻이로다가 이전부터 그 차일을 친다는 거지.
[조사자 : 그럼 그렇게 해서 죽은 사람도 있어요?] 그걸 누가 봤나? 전설이지. 그거는 전설로 내려오는 얘기가 그렇다는 얘기지. [조사자 : 전설로요?] 전설로 내려오는 얘기가 ‘진이새 그늘을 막기 위해서 채일을 친다. 이 텐트 같은 것을 친다’ 그러는 거지.

그래서 진이새가 또 삼천 년을 묵으면 용이 된다는 건대. 용이 된 용을 봤다는 사람은 읎데는 거 아니여. 다 중국 같은데 가봐도 용 봤다는 사람은 읎고. 용에 형상이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라는 것만 추측이지.
중국에 저 공자님 사당에를 가면은, 기둥이 전부 용으로 되 있어. 용이 이렇게 상천해서 올라가는, 비비틀어서 이렇게, [조사자 : 공자님?] 공자님 사당 기둥이. 그 공자님 사당의 용이 삼천 수(마리)요, 공자임 마나님 사당에는 이를테면 공자님 사당 위에 있는데, 거기는 봉황이 삼천 수요. [조사자 : 봉황이요?] 응. 그렇게 해 놨는데, 용이래는 것을 봤다는 사람은 들어보질 못 했어. [조사자 : 봉황도 본 사람 없죠?] 봉황도 그렇고. [조사자 : 그럼 둘 다 신비의 동물이네요?]
왜 용이라는 것이가 참 다리도 있고 뭐, 수염도 있고 사람 형상으로 생겼다고 허지마는 그게 어떻게 된 거인지 시방 과학자들이 원, 다른 건 다 여길 하면서, 어떻게 용같은 거는 그런 저기는 여기를 못 하는지. 전자에 그게 뭐여. 그게 뭐, 그게 뭐여. 왜 그, [조사자 : 반도체요?] 아니. 그게 뭐인가 뭐 그 사람도 에 저기 허고, 공룡. [조사자 : 공룡요?] 공룡같은 건 저기 하면서, 어떻게 용같은 저기를 못 허는지 모르겠어. 근께 용의 형상이라는 게 어디에 읎는 모양이지? 공룡이나 이런 건 뼈라는 게 있고, 뭐 그런 걸 발견을 헐망정, 용에 그런 저기는 읎는 모양이지?


11. 송문 3리에 있는 정려의 유래

 유한종씨 모친(70, 여)/송문리T 2앞
[3리 자택] 박종수, 강현모, 김보경, 원지현, 정화영 조사 (2000. 5. 14.)

앞의 제보자에게 송문 2리에서 지내는 산제사에 대해 듣고, 장소를 송문 3리로 옮겼다. 송문리에서 대대로 시제를 주관하시는 분이 있다고 하여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당사자는 없고, 그의 어머니가 계tu 이것저것을 묻는 도중에 이 분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저 할아버지께서는, 저기 옛날에 임진왜란 때 그 저 진주항에서 돌아 가셨대. 물에서 그냥 돌아가셨대. 이순신 장군하고 같이 싸우시다가, 이 저 장군이셨대. 인제 유복님, 아이 유복림 할아버지시라고 그러는데, 거기서 인제 물에서 빠져 돌아가셔 가지고, 이 투구하고 이래 인제 그냥 옷만 건저서 딱 다른 데다 모시고, 또 그냥 그래서 인제 하사, 임금님이 하사 하셔 가지고 벼슬을 많이 얻으셨어.
그래가지고 인자 집안에서 참 크게 저 공로를 하셨다고 그래가지고, 저렇게 정문을 세워드리고. 각처에 많어. 저 양지도 있고, 뭐 저 아래도 있고 뭐 그런데. 모셔 가지고 거기에 하사 무슨, 거기다 써 붙인게 있는데, 다 잊어 버렸어. 그런 저 할아버지를 모신 데고.
그 옆에는 또 인제 효부, 옛날에 유씨 댁에, 전주 유씨 댁에 인제 효부가 나셨데요. 그래서 또 한편 한 분 모시고. 그래 이짝에는 또 유명한 인저 또 인저 저기한 사람이 나오면 거기다 모실려고 한 칸을 더 해놨데. 세 칸이여 거기가. [조사자 : 안 그래도 들어오는 길에요, 송문리라는 첫 비석이 있는데 그게 전주 유씨 이렇게 써 있더라구요.]
유씨는 저 진주 유씨, 전주 유씨, 문화 유씨 이렇게 있으시고. 유씨는 왕씨하고는 결혼을 안 해. 왕씨하고 같이 있어 가지고 갈라져서, 옛날에는 같은 손이신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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