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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역
이동면- 시미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영동상회주인(50대, 남) 쌍궤의 유례-----------148
(2) 이형순 (69,남) 마을의 지명 유래----------------148
  ① 빈영 
  ② 시미곡 
  ③ 쌍궤정 
  ④ 남짓말 
 
(3) 이형순 (69,남) 전주 이시 효부정문---------------151
(4) 이형순 (69,남) 시미리에 묻힌 하정승-------------152
(5) 이형순 (69,남) 고시레의 유래--------------------153
(6) 이형순 (69,남) 성묘하면 죽는 호랑이 혈의묘지----154
(7) 이형순 (69,남) 호랑이가 태워 준 사람------------155

5. 시미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문경욱, 박주경 조사(1998. 5. 22.)

시미리는 용인터미날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안성이나 오산 평택으로 나가는 국도가 서쪽에 있다.
시미리는 용인군 하동촌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세때배기, 쌍궤정, 비룡동(빈영점)을 합쳐 시미리라 칭하고 이동면에 편입시켰다. 이 시미리는 시묘골, 시묘동 등으로 불리다가 시골, 시미동, 시미곡이 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유래는 주산이 삼봉산에 큰 산소들이 많은데, 옛날에 시묘를 살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기도 하고, 연산군 때 어느 효자가 3년간 시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시미리를 이루는 작은 마을의 유래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쌍궤정은 시미곡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진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남진말의 서쪽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고, 그 나무 밑에 정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남진말은 남쪽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벼락은 개간하였을 때 매우 질어서 진말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비룡동은 쌍궤정 서쪽에 있는 마을로, 비냥이 또는 빈양점이라고 한다. 이곳의 유래는 주위의 산세가 용이 날아오르는 형국이라고 해서 비룡동이라고도 하였고, 옛날에 빈양점이란 주막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비냥이라고 불르던 것이 한자어로 빈양점이라고 표기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세때배기는 시미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청해 이씨 문중에 효부가 있어 효대를 세우고 효대박이라는 부르던 것이 차츰 변음이 되었다고도 하고, 솟대가 박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후자가 더욱 신빙성이 높다 하겠다.
이 마을는 동쪽에 삼봉산이 있고, 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하천과 함께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그 들판은 넓게 형성하지 못하고 다시 서쪽에 산록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마을은 최근에 여러가지 공장들이 들어서 주민들 중에 일부는 공장을 다니는 것으로 주 수입원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논농사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2) 설화
󰊱 쌍궤의 유례
영동상회 주인(50대, 남)/시미리T 1앞
[남짓말 영동상회]박종수, 강현모, 문경욱, 박주경 조사(1998. 5. 22.)

조사자 일행은 오후 수업을 끝내고 박종수교수의 차를 타고 시미리를 찾아가 남짓말 영동상회 앞의 공터에서 조사자를 물색하였다. 그리고 제보자를 찾기 위하여 상회에 들어가서 주인에게 이것 저것을 묻는 도중에 이 마을의 유래에게 대해서 듣게 되었다.

어른들 말씀은 저쪽 초입에요 느티나무쪽에가, 정자가 두 개가 있어가지고서, [조사자1 : 느티나무요?] 느티나무요. [조사자2 : 마을 입구가 여기가 아니고 저긴가 보지요?] 아이 이쪽이 큰 길이고요. 그쪽이 소롯길이었는데, 옛날부터 나무가 커요. 그렇게 부르는 거 같아요.


󰊲 마을의 지명 유래
이형순(69, 남)/시미리T 1앞
[남짓말 영동상회]박종수, 강현모, 문경욱, 박주경 조사(1998. 5. 22.)

영동상회에서 주인에게 이것 저것을 묻자 그에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 한 분이 왔는데, 그 분이 바로 제보자이다. 제보자는 이곳에 태어난 분으로 젊었을 때에는 마사회가 뚝섬에 있을 때 7~8년간 근무를 하였다고 한다. 제보자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보았을 때 유식한 마을의 상층계층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민담을 많이 알고 있으나 조사 상황이 제대로 되지 못하여 채록할 수 없었다. 따라서 들은 것은 이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이었다. 제보자는 조사를 마쳤을 때 뒤에 만나 이야기를 많이 하여보자고 제의하였다.

① 빈영

저기를 시미곡, 여기를 남진말, 요 앞이는 빈영이라고 원, [조사자 : 빈영?] 빈영. 빈영이. [조사자 : 빈영.] 빈영. 빈영동이라고. [조사자 : 빈영요?] 예. 빈영동이라고 그런다고.
그 그런데 그 뜻이 뭐냐면 이 빈영이는, 옛날에 이 앞에다가 이 저 서울로 올라가는 이 대로가 있었어요. 일로(이곳으로) [조사자 : 이 길이요?] 예. 요 앞에 한 길짜리 고 넘어가며는. [조사자 : 삼거리에서 올라오며는, 천안 삼거리에서 올러오는 길이예요?] 그렇지. 그렇게도 올라오지, 이게.
그리고 이게 과거보러 가고 그러는, 가는 길이에요. 경상도서 올라오는. 그런데 그 이 빈영이는 어, 오다가 중간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그 저 주막이 많았다구. 그 때는 말두 멕이구 사람두 자구 하는.
그래서 빈영이가 손 빈자 맞을 영자를, [조사자 : 빈영.] 응. 빈영점이라고 빈영점. 원 이름이.

② 시미곡

그러구 저 넘어 저 시미곡이라구 있는데 거기는 시미골이라구 그래요. 시미골이라구. 시미골. 시미골은 거기가 연안이씨 아주 집성촌이며, 거기가. [조사자 : 시미골이.] 시미골이.
그래갖고 저 산에 삼봉산이라고. 삼봉산이 연안이씨네 종산인데. 거기를 가면은 이 저 큰 산소들이 많아요. 그래서 옛날서부터 그 이조 때니까 세묘살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거여. 그 골로. 그래서 원 세묘골인데, 그게 저 말이 자꾸 변, 변해가꾸서 지끔 시미골이라고 그런거구 시미골. 그 동네를.

③ 쌍궤정

그리구 우리 동네는 여기 남진말이라구 해고, 여기를 남진말. 저기 저 간판들 보시지만. 남진말이고, 여기 시미리 남진말. 그렇지 않으면 쌍궤정. 쌍궤정. 옛날에는 쌍궤정이라구 했어. 어 쌍자 이거에다 이 저 느티나무 궤자를 쓰고 정자 정자를 썼어요, 우리 동네를. 쌍궤정.
이게 왜정 때는 계속 그렇게 불렀어요. 쌍궤정. 시미리 쌍궤정이, 시미리 시미곡, 시미리 빈영정. 이렇게 세 그렇게 이름을 불렀어요. 그런데 여기가 쌍궤정은 우리 동네가, 이 동네 지금 있는 동네는 없었구, 옛날에는. 한 백이십 년 전 되면 여기 집이 없었어요. 하나두 없었어요.
그렇구 저 산에서 내려오면서, 이 저 벌판으로 이저 진폴다 참나무가 이런 것들이 여기 그냥 죽 있던 데라구요. 그래가구선 이저 원동네는 저 안터라구 있구. 요기 여기는 안터. 동네 이름이 있어요. 일루 저 방죽 있는데루 절루 들어가면 아낙골, 고 넘어 골짜기루 들어가면 작은 아낙골, 그러구 고 넘어가며는 상진말, 그러구 그 넘어가면 영선골. 이렇게 돼 있는데.
예전에는 사람들이 집을 살아도 이렇게 벌판에 살지 않구, 전부 골짜기를 찾아 들어가서 살았다구. 그래가구선 여기나 여기쯤 될 꺼야. 여기나 이 길이 그후 요새 근자에 난거지 뭐, 옛날에는 없었으니까.
근데 여기서부터 연속 들이댔으니까, 아마 여기 여기쯤 됐을꺼야, 여기. 여기 느티나무가 큰게 두 개가 있어갖구 있구, 여기 정자를 지어논 게 있었어요, 정자를 지어서.
여기 우리 동네 사람들이 옛날에는 전부 오산장들을 봤는데, 용인이 용인에 읎구 용인은. 인제 저기 저 구성면에 가면 거기도 그 옛날 그 구읍이라고 있지. 거기로 약간 댕기구, 주로 아마 오산에 가서 소금이구 아마 그런 걸 사왔던 모양이여. 거기만 해도 바다가 가까우니까. 그래서 옛날에는 장에 간다면 주로 소금들을 사온 모양이여, 소금들을. 그래가구선 이 사람들이 장에 갔다 와가구는, 여기 정자에 쉬어가면서 그래서 얘기하면서 헤어진 것이가 각 골짜기로 들어가서 살았던 인자 살았던 몬양이여.
그래선 여기 여기가 쌍궤정이라구. 그래서 여기가 동네가 들어섰거든. 그래서 쌍궤정으로 이름이 돼 있다구. 여기가 말하자면.

④ 남짓말

그런데 여기를 남진말이라구두 하구 그러는데, 남진말은 이 진포를, 진포를 개간해가지구 동네가 서가지구, 그냥 거기를 아주 진말이라구. 아주 옛날에는 엄청 질었, 질었을 거에요, 여기. 산벼락을 개간했으니 여간 질을 거에요, 동네가. 그래서 진말이라구 그래서 동네가 진말이 됐구.


󰊳 전주 이씨 효부 정문
이형순(69, 남)/시미리T 1앞
[남짓말 영동상회]박종수, 강현모, 문경욱, 박주경 조사(1998. 5. 22.)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호랑이나 효부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 있었던 사실이라며 말씀을 하였는데 설화적 구성을 이루지 못하여 기록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이 마을에 있었던 사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말씀을 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효부가 있었지, 효부. [조사자 : 효부 정문?] 응. [조사자 : 그럼 그 효부가 어떻게 해서 정문까지 세우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집안 구석이가 나무데기가 우리 어려서까지 다 있었는데 다 없어졌어요 인저.
여기 요기 가면 집이 큰 집이 거기 있어요. 그 전주 이씨가 전에 살던 집인데, 그때 그 전주 이씨네 며느리에, 며느리 그 양반에 정문인데, 응 남편이 그냥 앓다가 돌아간 거 같애요. 앓다가 돌아갔는데. 앓는데 그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그 인고기가 좋대니까 그 자기 넙적다리를 칼로 자기가 그냥 그었대요. 그냥 자기가 그냥, 그래가지고 그걸 맥였는데두 그 남편이 돌아갔다고. 그 사람들이 여기 뭐 쥔하고도 뭣 되는 사람들이여. 그런데 그러고나도, 그래도 남편이 낳질 않아서, 그냥 심애를 하다가 단식을 했어요. 계속 단식. 거 우리 거기가, 그 집이 현재 있고, 우리 사촌이 그 집에서 사는데.
그 건너방에서, 옛날 지적(거적?)을 깔았대요, 자리. 자리 깔구 자는데, 그 여자가 더군다나 다리를 짤랐으니 뭐, 이렇게 고기를 띠었으니 뭐, 그 때 무슨 약이 제대로 있었겠어요. 근데 그 얘기가 크게 오래 된 것도 아니에요. 이조 말엽 그때 얘기에요. 그래가구선 밥을 상에다 바쳐다가 그 뭐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종이 종들이 이렇게 갖다 바치면 밤낮 빈그릇이 나와, 나왔대는 거여. 밤낮 빈그릇의 밥이.
그래서, 그래두 밥은 억지로라두 자시는가 보다 했더니, 나중에 이 양반이 죽을 때가 됐는데. 들어가서 방을 이렇게 뒤져보니까, 자리 밑에다가 밥을 한없이 죄 쏟아부었더래, 한없이. 그리고 단식을 해갖구 죽었어요 노인, 그 마나님이. 그래서 효부, 효부 정문이 여기 하나 있어요.


󰊴 시미리에 묻힌 하정승
이형순(69, 남)/시미리T 1앞
[남짓말 영동상회]박종수, 강현모, 문경욱, 박주경 조사(1998. 5. 22.)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이곳에 전해오는 명당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 해 주신 것이다. 이 이야기도 완전한 서사구조를 갖추지 못하였지만, 지명전설로 가능성 때문에 이곳에 실었다.

그러구 저기, 여기서 쪼금 들어가면 골짜기가 하나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하정승 묘라구 그렇게 구전되어 내려온 데가 있어. 하정승. [조사자 : 화정승?] 하! 하.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지금도 그래요. 이 저 전고대방이나 뭐 이런 책을 보면, 이조 때 정승 해먹은 하륜이 빽에 읎어요. 그래서 ‘하륜이 묘가 아니냐’ 이런 얘기들두 하구 있다구. 그런데 그게 확인이 안 되구 있지.


󰊵 고시레의 유래
이형순(69, 남)/시미리T 1앞
[남짓말 영동상회]박종수, 강현모, 문경욱, 박주경 조사(1998. 5. 22.)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논에서 밥을 먹고 첫숟갈을 버리면서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고시레의 유래에 대해 묻자 해주신 이야기이다.

[조사자 : 그러면 아까 저 아저씨한테 물어왔는데, 고시레한다는 것은 왜 고시레 한다는 것인지 혹시 들어본 적이 있어요?] 응 고시레. [조사자 : 고시레 허지요?]
고시레가 그게 도선이 어머니레. 고씨가. 고시, ‘고씨네’ 그러는 거지 ‘고시레’가 아니래. 응. 그래서 그 도선이 어머니가, 그렇게 도선이가 돈을(지리의 잘못인 듯) 저기 저 용허고 뭐 중으로서 용허고 그렇게 살었어도, 그 어머니 하나를 제대로 봉양을 못했드라구, 도선이가.
그래서 어머니, 그러구 하야튼 증말들 가난허고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그 동네가, 그 그 후서부터 그렇게 동네가 비도 안 오고 그래갖구선 그래,
“고씨네!”
하구선, 그 밥을 퍼서 먼저 그 집어던졌더니, 그 다음서부터 좀 나아졌다는 이런 얘기를 그 구전으로 내려오드라구. 그래 그것도 글을 아는, 알는 노인네들한테 들어야 그게,


󰊶 성묘하면 죽는 호랑이 혈의 묘지
이형순(69, 남)/시미리T 1앞
[남짓말 영동상회]박종수, 강현모, 문경욱, 박주경 조사(1998. 5. 22.)

앞의 고시레에 관한 말을 마치고 조사자가 이것저것 유도를 하다가, 용인시에서 들었던 호랑이 혈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 해 주신 것이다.

[조사자 : 요 위에 가면, 호랑이 혈에 무덤이 있다는데 그건 못 들으셨어요?] 조기 저기 위에 가야 호랑이 혈이라고 허지. 그런게 그 산에 지금 큰 산소가 써 있다구요, 지금 거기. 그 분들 성이 뭐라구 그러드라. 뭐 당췌 한 사람두 안 와요. 안 오는데 여기 와서 성묘만 해고 가면 죽는 데요, 하여튼.
[조사자 : 그런 묘에다?] 녜. 그 놈의 호랭이 혈이래는데, 거기다. [조사자 : 그럼, 그 묘의 형태는 그냥 있어요. 그대로?] 그대로. 그렇죠. 그냥 있어요.
원래 크게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다 있어요. [조사자 : 그게 누구의 묘라는 것도 모르고?] 그게. 고씨네라구 그러는가 박씨네라구 그러는가. 그렇게 나와요. [조사자 : 성묘를 하면 죽어요?] 녜. [조사자 : 그것 참 희안하네.] 아니 그래두, 글세 거기 자손은 오지 못하게 돼 있는 묘라구. 그래 오기만 하면 죽는데, 거기는 아주 성묘만 하면 죽는데.


󰊷 호랑이가 태워 준 사람
이형순(69, 남)/시미리T 1앞
[남짓말 영동상회]박종수, 강현모, 문경욱, 박주경 조사(1998. 5. 22.)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같은 용인시내에 있는 김량장유래에 관해 묻자, ‘그것은 그 사람한테 물어봐.’하면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호랑이에 말씀을 많이하였던 점에서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묻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그게 무슨 장난이냐?”
구. 그러면 여기 가랭이루 들어왔다든데, 호랭이가. 그래갖고서 태워갖구 갔데, 그 처가댁까지. [조사자 : 호랭이가 태워 갔데요?] 엉. 그래갖고 가구선 그 그냥 보내면 호랭이가 해꼬질 한대요. 그래서, 근데 그 호랭이가 여간 대문 안에는 안 들어온데요. 절대 습격은 안 한대요.
근데 가면은 그 처가댁에 가서,
“손님 왔다.”
그러면, 손님 왔데는 걸, 그걸 왔대라고, 호랭이가 데려왔다는 얘기를, 그걸 암호로 했기 때문에, 그러면 쪼금 대문에서 쪼금 더 나가서 울타리 있는데 가가꾸는, 옛날 오줌똥(오줌통)이나 말야, 그렇지 않으며 무슨 자백이나 뭐 이런 그릇을 하나 담 울넘어 콱 집어 던지면,
“팍깍!”
하는 소리가 나면, 호랭이가 그쪽으로 간대는구만 그려. 그러면 대문을 열고 들어가구 그랬다고. 그런 얘길 하시더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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