¾ÆAIμð
비밀번호
로그인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사이트맵
찾아오시는 길
이메일보내기
문화원달력
조직도
홈 >향토문화자료관>구비전승민담


남부지역
이동면- 덕성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박순예 (76,여) 주인을 속인 도둑놈의계락-------158
(2) 소진혁 (86,남) 덕성리 유래----------------------159
(3) 소진혁 (86,남) 쇠경보의 지명 유래---------------161
(4) 소진혁 (86,남) 형설지공-------------------------162
(5) 소진혁 (86,남) 도깨비 방망이--------------------163
 
  3) 민요
  (1) 제보자 (60대,여) 새야새야 파랑새야------------163
(2) 경주김씨 (80대,여) 모심기 소리------------------164
(3) 경주김씨 (80대,여) 방아타령---------------------165
(4) 경주김씨 (80대,여) 자장가-----------------------165
(5) 박순예 (76,여) 이순일과 심순애------------------166
(6) 박순예 (76,여) 만주 아가씨----------------------166
(7) 박정희 (68,여) 두메 산골 내 고향----------------167
(8) 이재영 (72,여) 아리랑(1)------------------------167
(9) 박순예 (76,여) 방아타령-------------------------168
(10)박순예 (76,여) 우리 낭군은----------------------168
(11)박순예 (76,여) 연밥 따는 처녀-------------------169
(12)박순예 (76,여) 물레방아-------------------------169
(13)박순예 (76,여) 강남 갔던 제비-------------------170
(14)할머니들 아리랑(2)------------------------------170
(15)소진혁 (86,남) 백발 한탄가----------------------170

6. 덕성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이지옥, 진미옥, 최경미, 조사
(1995. 11. 4., 1996. 5. 24.)

덕성리는 용인터미날에서 버스를 타고 8정도의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 역시 동쪽과 서쪽에 산이 형성되어 있고, 마을의 중앙에 국도가 놓여 있다. 원덕성리는 국도 서쪽인 들판 건너에 형성되어 있고, 나머지 마을들은 국도 동쪽에 위치하여 있다. 
덕성리는 용인군 상동촌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덕성골 또는 덕성동에 묵동의 일부를 합쳐 덕성리라고 하여 이동면에 편입시켰다. 덕성리가 생긴 유래를 보면, 옛날에 이 마을에 소씨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이 선덕을 많이 베풀어 마을을 크게 이루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덕성리를 이루고 있는 작은 마을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원덕성리는 덕성리의 본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국도와 하천의 서쪽에 위치하여 있다. 금현은 일명 쇠재라고 하는데, 철과 관련된 지명이 아니라 마을 뒤에 있는 쇠재고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쇠재가 있는 산의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고 하는 데서 유래되었는데, 뒤에 한자어로 소를 가르키는 쇠를 철의 의미하는 쇠로 받아들여 금현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새터말은 금현과 원덕성리는 중간의 국도변에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불려진 이름인데 한자어로 신기라고 한다. 삼배울은 한자어로 삼파라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이 아주 잘 생긴 길지라며 절을 세 번 하고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창은 사챙이라고 하는데, 옛날에 이곳에 사창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뒤에 새롭게 사창을 지었다고 신창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2) 설화
󰊱 주인을 속인 도둑놈의 계략
박순예(76, 여)/덕성리T 1뒤
[덕성리 교회]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앞의 노래를 마치고 할머니들 사이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심순애의 이야기가 나오자 노래로 불러준 뒷에 일제시대의 정신대에 대해 말씀하였다. 조사자가 자장가나 귀신 이야기를 부탁하자 부탁하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옛날에 말이여, 응 옛날에 산골 두메에 산골 두메에가 딱 두 집이만 살았어. 두 집만 사는데 한 집이서 부인이 죽었어.
죽었는데 인자 그 죽은 부인 시체를, 여기 저 뒤에다, 방 밑에다 놓고서는 병풍을 쳐 놓고 있는데, 두 집 식구니까 두 집 식구만 모였는데, 저 집 내외하고 이 집이 남자 하나 허고 싯밲에 더 있겠어.
그런데 그 밤중에, 겨울경 추운 겨울긴데, 밤중에 이쪽에 그 마누라에, 마누라 죽은 그 남자,
“아버지가 돌아갔다.”
구. 그 눈구석에 또 기별이 왔어. 밤중에. 그러니 어떻게 마누라 죽었으니께, 그냥 두고 갔다 말이여. 가니까, 갔는데, 이웃집 남자 혼자만 있는 것여. 그 부인은 또 집이도 가 봐야 되고. 그래서 혼자 있는데, 얼마를 있는데 그냥 서먹서먹 해지. 뭐 남의 아내 죽은 여자, 죽은 여자만 평풍 뒤에 두고서 빈 집에 그렇게 있는데.
별안간 그냥 얼마 있더니, 이게 흔들흔들 하더라, 평풍이. 아 그러더니 손이 이렇게 나오는데, 하얀 손을 내밀면서 이렇게 하더래. 그러니까 얼마나 무서워. 이 남자가 그냥 기절 했어. 그냥 나동그라졌었단 말이여.
그랬더니 그것이 알고 보니까, 아버지는 돌아가질 않았는데, 잉 도둑놈이 그래거 해가지고 두메 산골에 와서 훔쳐갈라고. 오 도둑놈이 계획을 해 가져고, 짜고서는 와가지고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서’ 주인네 가게 하고, 그러니까 와서 시체를 일으켜서 놀래게 해고, 또 그 사람을. 찌리케 해서. 그렇게 해고서는 훔쳐 갔대. 그렇게 도둑놈 계획이.
옛날에 그런 말이 있었다구. 돼요. 다 잊어 먹었어.


󰊲 덕성리 유래
소진혁(86, 남)/덕성리T 3뒤
[덕성 1리 덕성골]박종수, 강현모, 이지옥, 진미옥, 최경미 조사(1996. 5. 24.)

앞의 노래를 마치고 조사자가 이곳 덕성리의 유래에 대해 묻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것은 덕성리에 생긴 유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때에 우리가 할아버님이 여기를 갖다 뭐냐 허면은, 일본군이 부산에 침략해가지고서 서울로 쳐들어 올 적에, 전라 충청, 그러니께 지금은 경상남북, 전라남북 이랬는데, 옛날에는 전라 충청 경상하면 삼, 삼남이라 하지 않았어? 그 인제 연합군이 모다 올라오는, 쳐들어 오는 왜병을 막기 위해서, 인저 그때 지금 얘기하자면 신립장군이니 권율장군이니 하는 얘기 있잖여?
그 신립장군이 그 당시에 충청병사하고 권율장군 뭐 이런 이들 같이, 그 양반이 그때 싸울 때이거든. 그래서 여기에 이 문수산 전투라고 있어, 용인에. 이 전투에 당시에, 그 이 양반이 인제 참전을 해가지고, 용인 전투엔 이 우리 아군이 패했어요. 그래가지고 수원 독산동이라고 하는 데, 수원 가서는 지금 승리를 했었거든.
그래가지고 그 후로는 약 오늘날까지 여기에서 400여 년 이 자리에서 살고 있는 거야. 그래가지고서 여기가, 이 뒷산 저 앞에 보이는 산이 옛날에는 어떻게 됐냐 하면, 그 저 뭐 왕조시대인만큼 그저 거기서 하사해 내면, 이건 내꺼다 하고 이렇게 다 받은 거야, 우리가. 그래가지고서 여기 이름이 덕성군이, 여기가 덕성군이라고 하지. 이 덕성군이라는 지명도 으째 지명이 났느냐 하면은, 가만 있어. 내가 그 책을 가져올까.(이곳에 대한 책을 가져오기 중단.) 내가 지명을 가지고 올게.
그래가지고 여기서 우리가 한 130년 간을 갔다가 그렇게 이걸 전부 다 했으니께, 참 우리 할아버님들이 인저 이런 걸 받아가지고서는 어떻게 짓을 했느냐 하면. 아주 적선적덕을 많이 핸 분이라 말이여. 응. 자기가 그러니께 이 여기 보이는 산, 들이 이게 점령한 곳이니께, 그래가지고서 적선적덕을 많이 하고, 또 저기 저 동네 있잖아. 이 동네가 사위거든. 그래 저 동네 있는 사위도 전부 산하고, 논하고를 노나 줘서. 전부 저기하고 저작에도. 그래 이 삼개 부락이라는 것은 사천 옥씨하고, 요기 저 부락에. 여기는 연안 이씨하고, 또 이동에는 진주 소씨하고, 이 삼개 부락이 집성촌이 된 데가 덕성군이야, 여기가.
그래서 예날에는 서울에 다니게 되자며 어떻게 되냐 하면, 그 청혼의 꿈을 품은 선비들이, 요 앞이 삼남대로였어. 옛날에 과거를 보러 가자면, 왜 이리 올르지 않았어, 흔히. 그래가지고서 이길 지나다가 여기, 여기 우리가, 여기가 서창골이라고 그러거든. 여그. 저 위는 서 서당, 여긴 서장, 저긴 서창골. 그러니께 그 생활 규모만 보더라도 서적 창고가 있었고, 서당이 있었고. 이렇게 해니껜 인저 이때나 그때나, 왜 지금 아마 학생들은 그것 모를 꺼여. 옛날엔 집안에 못한 사람이면, 관청에서 어디 가야 하면, 흔히 그 집에 가서 많이 피해를 끼치고 다녔거든. 지금은 그런 예가 별로 없지만은. 요 불과 20~30년 전, 요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전부 동네 이장이라든지, 또 동네에서 잘 사는 사람은, 공직 생활하는 사람이 가다가 점심을 그 집에 가 먹을 예정을 허고 전부 이랬거든, 예전에.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그랬어. 20년 전만 해도.
그래서 그때 우리 할아버지 직은 뭐냐 하면, 삼남에서 서울로 과거보러 다니는 사람들, 또 중앙 관속들이 뭐 지방에 출장가고 이러는 데는 여기 들려서 꼭 유해시고 가고.
용인이 뭐냐 하면은, 옛날에 봉화대라는 거 알지? [조사자 : 예. 알지요.] 지금으로 말하면 나라에 무슨 불상사가 생길 때는, 불을 둘 든다든지 하날 든다든지. 이러면 무슨 일이 있다 했겠지. 여기 용인에 봉화가 있어. 성산 봉화대가. 그러고 역말이라는 것, 우리 동네에 있었지. 역말. 역. [조사자 : 역말요?] 역. 역말이라 있지. 그 위치가 오늘로 말하면 정거장이지. 그러니께 역말이 동네에, 아마 한 70~80리 사이에 역말이 전국적으로 없는 데가 없었어. 역말인 데가.
왜 없느냐, 옛날에 관속들이나 뭐 지방에서 여기서 드나드는, 충청 말 타고 가다 보면, 하루에 70~80리 가다 보면 자야 될 거 아니여. 그러면 어디 가서 자고, 말은 거기다 말 먹이간에 자고. 거기서 관 인자 관원이라고 있거든. 뭐냐 하면 국가에서 지정해 놓은 여관 같은 데가 있었어. 그래게서 쉬고 유숙하게 됐었거든. 그때에 인저 이 할아버님이 많은 저기를 허고서, 이 동네 이름을 어떻게 졌느냐 허면은 덕성골이라는 이름이, 아마 덕을 많이 베푸는 곳이다. 그러니께 이걸 덕성고을이라고 그때부터 이름이, 그래서 이 덕성리가 된 거야.


󰊳 쇠경보의 지명 유래
소진혁(86, 남)/덕성리T 3뒤
[덕성 1리 덕성골]박종수, 강현모, 이지옥, 진미옥, 최경미 조사(1996. 5. 2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상의 향기가 있는 곳에 대해 말씀을 하시다가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요 앞에 보 막은 거 있는데, 이 보 아나, 저수지 같은 거. 지금 개울을 막아서 물을 관계수로 이렇게 하는 거 있잖아. 그런데 설화 같은 것도 요 앞에 보는 이 보는 이름이 쇠경보라 그러거든.
왜 쇠경보냐 하면은 여기가 좀 깊어요. 그런데 이렇게 보를 막는데, 그전에는 여기가 인저 남짓말보라 그랬는데, 쇠경보로 된 것은 왜 그러냐 허면, 쇠경이 그만 지나가다가 여기에 빠져 죽었으니께 쇠경보라 그런 지명같은 것, 그 모든 것, 그런게 많이 나오는 거거든.


󰊴 형설지공
소진혁(86, 남)/덕성리T 3뒤
[덕성 1리 덕성골]박종수, 강현모, 이지옥, 진미옥, 최경미 조사(1996. 5. 24.)

이 동네에 사금이 많이 나왔다는 것에 대해 말씀을 하시었다. 그래서 조사자가 동네의 무서운 이야기에 대해 묻자 오히려 옛날에 경험하였던 이야기라며 구술하여 주었다.

무서운 얘기? 있지. 너 그거 있지. 옛날에 그게 우리 어려서두 그러거든. 우리 어려서도 이렇게 개울을 보면 불이 쭉 이거든, 무섭거든. 개똥벌레 봤나? [조사자 : 전 봤어요. 불이 반짝반짝 빛나는 거요?]
영(형)설에공이라고 그러잖애. 왜 그게 불을, 공부하는 것을 갖다가. 자네들은 그, 옛날에는 그 왜 영설에공이라고 했느냐 하면은, 불이 읎고, 잉 할 때 공부는 해야 할텐데 이걸 갖다가, 밤에도 공부해야 할틴데, 깜깜한 데서 공부할 재간이 읎잖아. 불을 켜야 할텐데, 석유나 기름이 읎잖아.
그렇게 되면 그 개똥벌레라는 것 있어. 벌레를 잡으면 그 놈의 벌레는 반사가 일어나서 환해지거든. 그래서 글씨를 이렇게 대고 읽어다는 거여. 벌레를 가지고. 잉.
그걸 갖다가 영설에공이라고 그러지. 왜 개똥벌레로.


󰊵 도깨비 방망이
소진혁(86, 남)/덕성리T 3뒤
[덕성 1리 덕성골]박종수, 강현모, 이지옥, 진미옥, 최경미 조사(1996. 5. 2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도깨비에 대해 묻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여기에는 물레방아 두 개가 있었어. 이 동리에 물레방아 같은데 가면 도깨비가 있다. 그래서 저녁에 보면 사람이 왔다 갔다 그랬었지. 하지만 지금은 없어졌지만 얘기하면 전기가 타 없어져서 그랬을 수도 있지 뭐. 허허허. [조사자 : 도깨비들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나요?]
어. 도깨비 때문에, 도깨비에 죽은 건 별로 읎어. 누구든지 도깨비란 건 옛날에 어쩌거나 잘 친해면은 부자 된다는 얘기가 있잖아. 왜 도깨비 방망이라고, 뭐 뭐해서,
“뭐 나와라!”
하면. 그게 다. 도깨비라는 것이, 그 생기긴 숭상맞게 생겼어도, 그게 아마 그 사람에게 해치는 적이는 아닌 거 같어.


3) 민요
󰊱 새야새야 파랑새야
제보자1(60대, 여)/덕성리T 1앞
[덕성리 개인집]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조사자들이 이재순할머니댁에서 조사를 마치고, 그 뒷집인 제보자 집으로 이동하였다. 제보자댁에서 여러 가지 생활에 관한 것과, 옛날 이야기나 노래에 대해 묻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제보자는 이 마을에 몇 년 전에 이사를 와서 잘 모르겠다며 구술하지 않으려다가 조사자의 유도에 의해서 구술하게 된 것이다. 제보자는 청포장수를 잊어버려 무슨 장수라고 하였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무슨 장수 울고 간다.
󰊲 모심기 소리
경주김씨(80대, 여)/덕성리T 1앞
[덕성리 개인집]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제보자는 이곳으로 14살에 시집을 와서 평생 살아왔다고 한다. 여러 가지 생활, 특히 시집살이에 대해 물으면서 민요를 해달고 하자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모를 심으면서 부르던 노래가 없느냐’고 하자 불러주신 것이다. 가사는 연속으로 불러 주신 것이 아니지만,  가사만 정리하여 붙여 놓았다.

여기 여기도 심었네
거기 거기도 심었네

여기 여기도 꽂었네
거기 거기도 꽂었나

󰊳 방아타령
경주김씨(80대, 여)/덕성리T 1앞
[덕성리 개인집]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앞의 모심기 소리를 마치고 보리나 벼를 수확하고 절구질할 때 부르던 노래가 없느냐고 묻자 해주신 것이다. 조사자 방아타령은 ‘쿵쿵, 방아 소리 쿵쿵’ 하는 것이라고 하자 노래하였다.  

달가닥 달가닥 찧는 방아
금년에 찧고서 이제 가나

달가닥 달가닥 찧는 방아
언제나 찧고서 일어나나


󰊴 자장가
경주김씨(80대, 여)/덕성리T 1뒤
[덕성리 개인집]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제보자의 일생에 대해 묻고서 어릴 때, 또는 아기를 키울 때 아이들에게 불러주었던 노래를 해달라고 하자 불러 주었다. 제보자는 충남 홍성에서 시집을 왔으며,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자장 자장 우리 애기
잘도 잔다


󰊵 이순일과 심순애
박순예(76, 여)/덕성리T 1뒤
[덕성리 교회]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조사자들은 개인집에서 조사를 마치고 할머니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교회롤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조사자들이 찾아온 목적을 말하자 할머니들 사이에 이런 저런 말씀을 하다가 심순애의 이야기가 나오자 노래로 불러준 것이다. 이 노래는 창가조로 불러진 것으로, 일본놈의 것이라서 불러서 안 된다고 하였다.

대동강변 도로변에 삼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이로다
약수건정하는 것도 오늘 뿐이요
도보행진하는 것도 오늘 뿐이다.
서인선애야 내일…

<음영조>
여자의 절개가 제일이다.
순애야 내년에 저기 몇 월 몇 일
그거 수유리가 피눈물을 보여준다고
김중…
당신을 믿으며 기드려 하면
부모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하요
김중배의 가정으로 시집을 가요
󰊶 만주 아가씨
박순예(76, 여)/덕성리T 1뒤
[덕성리 교회]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앞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여러가지 민속이나 생활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제보자는 이 노래가 일본어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말로 번역하여 부르는 것이라며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나는 17살  만주 아가씨
꽃피는 3월이 돌아오면은
󰊷 두메 산골 내 고향
박정희(68, 여)/덕성리T 1뒤
[덕성리 교회]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앞의 제보자가 노래를 마치고 여러가지 대해 말을 하는 동안에 생각이 났는지, 제보자가 자청하여 불러주었다. 신식노래 형태를 띠고 있다.

가을이 온다 떠나려 한다
어린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 산골 내 고향에
못 살아도 나는 좋아


󰊸 아리랑(1)
이재영(72, 여)/덕성리T 1뒤
[덕성리 교회]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이 노래는 앞의 노래를 마치고 여러가지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도중에 생각이 났는지 불러준 것이다. 이 노래는 창가조로 불렀다.

첫 이월은 다가고 3월이라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아리랑 아리랑
강남은 어서나 가세


󰊹 방아타령
박순예(76, 여)/덕성리T 1뒤
[덕성리 교회]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앞의 노래를 마치고, 조사자들이 식사하지 않은 것을 알고 할머니들이 음식을 차려 먹게 하였다. 그리고 할머니들 사이에 이야기를 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였다.

떨끄덩 떨끄덩 찍는 방아
원제나 다 찌고 밤마실 가나


󰊹 우리 낭군은
박순예(76, 여)/덕성리T 2앞
[덕성리 교회]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방아타령을 요구하였는데 제보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노래가 이런 것이라며 구술하여 주었다.

남의 낭군은 신식 생활하는데
우리 집 저 멍텅구리는(웃음)
콩박골만 지키나

󰊹 연밥 따는 처녀
박순예(76, 여)/덕성리T 2앞
[덕성리 교회]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앞의 노래를 마치고 다른 노래를 요구하자 곧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상주 한밭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 애기
내 품에 잠을 자오
연분없이 잠을 자나
연분이 따로 있나
자고 나면 연분이지.


󰊹 물레방아
박순예(76, 여)/덕성리T 2앞
[덕성리 교회]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앞의 노래를 마치고 다른 노래와 이야기를 요구하였다. 조사자가 옹기장수나 물레방아를 묻자 물레방아와 관련된 소리가 있다면서 불러주신 것이다.

물레방아는 물만 안고
밤낮없이 도는데
우리 님 나를 안고
돌 줄 왜 몰라나

 

󰊹 강남 갔던 제비
박순예(76, 여)/덕성리T 2앞
[덕성리 교회]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앞의 노래를 마치고 따른 노래와 이야기를 요구하였다. 조사자가 ‘강남이 어쩌고 제비가 어쩌고 하던’ 노래라고 하자 곧바로 불러 주었다. 낭송조로 노래하여 주었다.

강남 갔던 제비가 즉어도 강남 가고
참새가 즉어도 알은 낳내


󰊹 아리랑(2)
할머니들/덕성리T 2앞
[덕성리 교회]박종수, 강현모, 양여정, 장미화, 허일경 조사(1995. 11. 4.)

조사자가 ‘할머니들이 이제 노래 한번 해 보시지요’ 하자 여러 할머니들이 함께 불러주신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 백발 한탄가
소진혁(86, 남)/덕성리T 3앞
[덕성1리 덕성골]박종수, 강현모, 이지옥, 진미옥, 최경미 조사(1996. 5. 24.)

앞의 노래를 마치고 또다른 이야기나 노래를 부탁하자 음영조로 구술하여 준 것이다.

조석상대  정든친구    구름같이  흩어지고
평생지교  맺었으니    유수같이  흘러갔네
천지일월  불변하나    인생백년  가련하다
하루천리  걷든거름    상투끝이  머저가고
살때같이  곧은허리    길마가지  방불하며
백옥같이  히든허리    금버섯이  절로나고
명월같이  밝은눈은    반판수가  되었으며
청산유수  같은말은    반벙어리  되었으며
전 날의   밝든귀는    동문서답  일수이고
박씨같은  치아속은    목탁속이  되었으며
하든직업  도망치고    맑은총명  간데없는
묵묵무언  앉어쓰니    불도하는  노승인가
장만한건  늙은몸요    마련된건  백발이리
자식보고  공갈하면    구석구석  웃음이요
옳은말로  훈계하면    대접하여  망령이라
지각나자  늙었으니    후회막급  한이없네
일생일장  춘몽이란    진담중의  진담이라

    목록
주소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