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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역
이동면- 서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이정학 (70,남) 태종대왕 외손주 묘의 선몽------------236
(2) 김용덕 (82,남) 안동권씨와 세종대왕 외손주의 묘--------237
(3) 최갑규 (82,여) 이무기 바위----------------------------238
(4) 김용덕 (82,남) 범티 고개------------------------------240
(5) 김용덕 (82,남) 멱조현 고개----------------------------245
(6) 조현기 (74,남) 유서방네 묘----------------------------245
(7) 조현기 (74,남) 권도령이 묻힌 묘-----------------------246
(8) 이윤희 (68,남) 삼정승 묘자리가 있다는 서리------------247
(9) 이윤희 (68,남) 고사 지내고 옮겨야 할 삼정승 묘지골----248
(10) 이윤희 (68,남)도깨비 흘린 사람-----------------------249
(11) 이윤희 (68,남) 운좋게 살아난 느티나무----------------250
(12) 이윤희 (68,남) 아버지와 삼형제-----------------------251
 
  3) 민요
  (1) 조현기 (74,남) 노동요-------------------------------254
(2) 조현기 (74,남) 모심기 노래----------------------------255
(3) 이윤희 (68,남) 모심기 노래----------------------------255

9. 서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옛부터 수도(서울)와 인접한 수도권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전해 내려오는 민속문화, 구비문학이 타지역보다 현격하게 부족함을 인식하고 사라져 가는 전통의식과 재담 등 이야기와 전설을 발췌 수록하고자 이 지역을 택하였다.
이 마을에는 주로 박氏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농촌 치고는 공단이 많이 들어선 것이 특징이다. 80년대 중반 정도에 공장들이 입주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꽤 많은 공업단지가 조성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공업단지가 들어서자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매연과 수질오염 등 피해가 많이 발생해 고통을 받고 있다. 마을의 거주자들은 50대 미만이 희박하고 대부분 그 이상이라 한다. 처음에 평양조씨가 먼저 이주해 들어와 9대째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서리는 상골, 중골, 하골의 세 단위로 나뉘는데 가구수는 약 20~30 가구씩 옹기종기 모여 있고 마을마다 꽤 떨어져 있는 것이 특색이다. 주위는 산으로 둘러 싸여 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옛날에 절터골이라 하여 불당곡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서쪽에 있다 하여 서리라 불리운다고 한다. 상골, 중골, 하골에 걸쳐 계곡이 형성되어, 그곳으로 개울이 흐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2) 설화
󰊱 태종대왕 외손주 묘의 선몽
이정학(70, 남)/서리T 1앞
[서리 중골 자택]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조사자들이 직접 자택에 찾아가 조사 목적을 설명하니 쾌히 제보해 주셨다. 손자를 돌보고 계시는 중이라서 그런지 약간 산만함을 느꼈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말씀해 주셨다. 본 설화를 제공한 이정학옹께서는 웟어른에게 들은 이야기라 하셨다. 이야기의 중심인 묘를 직접 관리하신 분이 제보자였다. 이 이야기 후에 다른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지만, 설화와 직접적 관련이 없기에 수록하지 않았다.

그 묘가 옛날에, 그 자손들이 그 묘를 잃어버렸어요. 실전했다고. 그래 가지고 이젠, 그 묘가 그 자손들 그 묘가, 조상들 묘가 있는 줄 모르고 있다가, 그 후손에서 그 묘를 찾으러 나섰다고.
그래서 나섰는데 옛날에는 교통두 없고 그리니까는 걸어서 나선 거지. 이젠 찾을라구. 물어가며 나섰는데, 대니다가 요 아래, 천리라는 동네가 있어. 천리 이 동네 천리. 여기서 한 4Km 정도 아니 2Km정도 돼지. 거기를 자게 되였드란 말이여.
아 거기서 자는데, 꿈에 선몽을 해 버려요. 근데 뭐라고 하느냐면,
“자고 일어나면은 눈이 왔는데, 올 테니까 눈 위에 지팡이 끌은 자국이 있을 거다. 그럼 그 지팡이 끌은 자국을 쫓아가거라.”
그래서 인자 자고서 일찍 일어나 본께 정말 눈이 왔드라요. 그래 인자 나가 보니까는 있드랴, 그 자국이. 그래서 그 자국을 쫓아 나가니께 거기 있드랴. [조사자 : 그곳이 요기서 먼 동네예요?] 응. 요기 얼마 안 돼. 근데 그 묘를, 그 묘가 누구냐 하면은, 잉 태종대왕의 외손주 묘라고, 근데 그거를 요, 요 며칠 전에 이장을 했어. 여주로.
[조사자 : 여주로요?] 응. 여주로다. [조사자 : 조선시대 태종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 안동 권씨와 세종대왕 외손주의 묘
김용덕(82, 남)/서리T 1앞
[서리 중골 자택]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이전에 이정학옹께서 들려주신 설화이지만 내용이 약간 다르고 김용덕옹의 말씀이 더 정확한 것 같아 재기술을 하였다.

권도령이라고 이 묘지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게 둘이 그러니께, 옛날에 따지면 왕의 사위 아녀. 우리에 듣기에. 거기 산소를 잊어버렸다가 찾았다는 저기가 있드라고. 안동 권씨네 산손데, 권도령이라고. 산소를 자손이 잊어버렸디야. 그래 가지고 뭐, 그 자는데 선몽을 해 가지고, 그 노인네가,
“지팽이를 끌고, 그 지팽이 자국을 쫓아 와라.”
그래 가지고. 꿈에 선몽을 했기 때문에 인자 그것을 밟아가지고 그걸 찾았다고 허드라고, 그 사람들이.
이제 이 지방에 무슨 내려오는 역사는 별로 없구. 우리가 듣기로는 여기서 쪼끔 내려가면 큰 산소가 있어요. 모이가. 거기가 그랬는데 안동권씨네 산손데 안동권씨네 산소데.
그게 부마라는 게 있는데, 부마라는 건 임금의 사위 갖다가 부마라고 그러지. 나라의 왕의 사위 갖다가. 왕의 사위에 묘가 여기에 있었어. 그런데 그게 세종, 세종대왕의 사위라는 말이 있더구만. 그래서 그 비석을 굉장히 잘 해 세웠다고요.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고기 상석덜 해 놓은 것 보며는. 거기 상석을.
그래 그 중간에 어떻게 됐는지, 자손이 실상을 했어. 묘를 잃어버렸어. 묘를 잃어버렸다고. 그렇게 잘 쓴 산소의 자손들이 어떻게 무슨 일인지 몰라도 중간에 실상을 했는데, 그 자손들이 언제든지 우리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아야겠다는 그런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차, 그 안동권씨 한 사람이 저 샘골이라고 이 아래 천리라는 동네가 있어요. 천리 동네에 주막이 있는데, 거기서 잠을 자니까 저녁에 현몽을 했대.
“네 조상 산소, 몇 대조 산소를 찾으라면 내일 아침에, 오늘 저녁에 눈이 올테니, 눈에다가 이것 지팽이 구멍을 뚫어 놀테니 거길 찾아가면 네 조상을 찾을 수 있다.”
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참 눈이 왔더래. 그래 눈을, 저 나와, 집에서 나와서 저 지팽이 구멍 난데로 가 저렇게 차츰차츰 온 것이 여기 산소에까정 도착을 했어.
그래서 인제 거기에 그 비문 같은 것도 보고, 또 그 옛날에 에 저 묘를 쓸려면은 그걸 잃어버릴 염려가 있을 때에는 나중에 자손이 찾기 위해서 지석이라고 있어요. 지석이라는 것을 묻었어. 그래서 지석을 이렇게 캐 보니까, 자기 몇 대조 할아버지 산소가 분명하다고 해서.(이웃에서 손님이 와, 잠시 이야기를 중단) 찾았는데. 그 자손들이 찾아서 매월 10월 초하룻날 시앙(시향)을 지내려 왔다구, 그 자손들이. 어디 사는고 하니 충남 조치원이라고 있어, 조치원. 사는 자손들이 와서 매년 초하루 날이면 와서 시앙을 지내고, 여기 전답도 장만하고 해서.
또 이 자손들이 어떻게 된 건지 작년까지 그걸 파 갔다고, 그 묘지를. 묘지를 팔고, 자기네 여기 있는 산소를 파헤치고선 여주에다가 자기 조상들 묘에다 합장을 할라고, 그런 말이 있는데, 아직 파갔든 않고 그저 여기 남아 있어. 그런 전설은 있지, 여기. [청중 : 파 갔어. 갔잖아요.] 파갔을 거여, 아마.


󰊳 이무기 바위
최갑규(82, 여)/서리T 1앞
[서리 중골 자택]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최갑규 할머니께서는 김용덕옹의 부인으로서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계시다가 생각나는 게 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옛날에는 누에를 치면, 누에는 저렇게 치는게 아니라 조금씩 줘서 누에를 치는데. 뽕이 안 실을 땐 뽕이 없대. 그래 산골에 가면 요러 밭을 보면, 요만한 조선 뽕이 있거든. 그래도 그걸 주워 다니느라고, 인제 남자, 여자 해서 여럿이 갔지 뭐. 뽕을 따러 저 산골짜기로.
그래 갔는데, 얼른 가서 인제 뽕을 따서 한 자루씩 이렇게 해서 지고, 이제 더우니까 쉬러 갈라고 앉아 있으니까, 시커먼 바위가 요렇게 길다란게 있더래. 그래 거기 앉아서 이래 실컷 쉬고, 담배를, 옛날에 긴 담배 아니여. 지금은 골련이 읎거든. 옛날에 잎담배 집에서 심어가지고 그거 둘둘 말아 먹고, 그러려면 담뱃대 기다란 데다가 해서 먹지. 그래 그걸 먹으니까 담배를 한 대 긴 것 다 먹고 재 떨 때는, 재가 다 타서 재 떨 때는 그게 오래도록 먹은 거 아녀? 이 권련마냥 금방 피우는게 아니고. 그러니까 이제 그 대꼭지가 쇠 아녀? 쇠. 이제 다 넣지 한 대 다 달아가지고 다 넣었어.
그걸 바위에다 그걸, 대꼭지를 탁탁 떠니께 피가 술술 나오더래. 그래서 이게 바위가 아니여. 이제 그게 이무기여. 이무기가 옛날에 용이 올라가서 뭐, 어린네 뱀이가 쳐다보면 떨어진다. 이무기가 못에서 천 년, 산에서 천 년, 이 집에서 천 년, 삼천 년을 묵어야 용이 올라간디야. 용 올라가는 것 어린네, 뱀이나 무슨 이런 뱀이 올라가는 걸 쳐다보면 떨어진다고 이젠. 그럼 그게 이무기가 된데.
이무기가 되서 산에 있는데, 아 그걸 그걸. 어떻해. 대갈박으로 가야 살지, 꽁지 버둥대고, 아유 꽁지를 이렇게 쉴쉴 감으면 죽는데, 다 사람이. 그래서 어디가 꽁지 쪽인가 알어, 그렇게 큰 뱀을. 점점 더 굵은 데가 대갈박이것지.
그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인제 여럿이 갔다 바위가 더 굵더래, 이짝으로 아주 그냥 이런 나무하고 똑같이, 그냥 이런 비늘이 적지가 나고 아주 그렇지 뭐. 그런 놈인께 저기서 왔을 때, 사람내 맡고 꽁지 오무려 들이더랴, 잡아 먹을랴고. 이렇게 꽁지를 오무려 들이니까 나무가 부러지느라고,
“우지끝 뚝딱! 우지끈 뚝딱!”
거리더래. [청중 : 쓸데없는 소리.] 그래 그걸 보고서는, 꽁지가, 나 옛날 얘기여. 이것 옛날에 들은 얘기. 그래 저, 그래 들어오니께, 그 아가리, 대가리 땀으로 가니께. 그냥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톱으로 베어제끼는 것 같이 그냥 ‘우지끈 뚝딱’ 그러드래. 그래 그리고 자꾸 가니까, 나중에 꽁지로 확 찍더래. 그랬는데 그래서 살았대, 대갈박으로 가서. 그 옛날에 그런 나무가 있데.
그러고 안전 소나무, (이야기하는 도중에 김용덕 옹의 호통에 이야기는 그치고 조사자는 할머니와 비밀 면담을 통하여 끝까지 들었으나 녹음하지는 못함.) 부러진 나무에 송진이 나와서 불이 난 거여. 그래 이제 이무기가 그 불에 타 죽자, 그 지방에 있던 머슴이 탄 이무기를 내버리고 나니, 그 곳에서 쌀이 나오더랴.
그래 이제 쌀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장가를 가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잘 살았다는 그런 얘기여.


󰊴 범티 고개
김용덕(82, 남)/서리T 1뒤
[서리 중골 자택]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제보자는 아내가 이무기 바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호통을 해서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서리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할 꺼리가 없고, 옛날 얘기 한 마디 하라면 내가 한 마디 하지.’ 하면서 구술하여 주었다.

그렇게 고려, 고려 말 아- 이성계의 태조대왕. 왕씨가 망하고는 이씨가 조선을 맨든 것 아녀? 그렇지. 근데 고려조 말기에, 그런께 이성계 그 양반이 등극하기 전, 고려 말기에 무월(물음) 문자, 외자 이름 가진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승은 김씨구.
그 냥반이 열일곱 살 되던 해에 돌아갔어. 사망하셨어. 그 벼슬은 그때 벼슬로 감찰이라는 벼슬을 하셨는데, 그 냥반이 돌아가니까 그 부인이 과부가 됐을 것 아녀? 그 과부의 성씨가 양천 허씨여. 양천 허씨.
양천 허씬데 그 열일곱 살에 상부를 했으니, 남편이 돌아가서 과부가 됬으니, 지금 세상 같으면 우리네 아무 뭐 100번 천번이라도 재가 해도 무방하지만, 그때 시절에는 재가하면 그것을 집안이 큰 망신거리로 생각했었어. 그런게 불사이군이구 두 임금을 섬겨서도 안 되고, 또 여필종부라고 여자는 반드시 남편을 따르야 한다는 그런 엄격한 그 법규가 있어 가지고. 그걸 지켜야만 사람 노릇을 한다고 여겼어, 옛날에는.
그래 일단 과부가 되면은 평생을 과부로 살아야 망정이지, 만일 후가를 가면 그 집안의 명예가 손상되고, 자기가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을 받았더라도 그게 여러 사람의 웃음거리 밲에 안 된다구. 그래서 그 여자는 절개라구. 여자는 정절을 지켜야만 반드시 사람 노릇을 하는 거라구.
그래 이제 자기 남편이 죽구, 자기 시아버지는 충청도 관찰사라는 벼슬에 있었어. 충청도 관찰사. 관찰사는 지금 말로 따지면 도지사여. 충청도지사. 지금은 충청남도 북도가 있지만, 예전에는 그냥 충청도 그랬어. 응. 남․북이 없고 그냥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이렇게. 지금은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로 해서 각 도마다 지사가 있지만, 그때는 충청도 하면은 남․북도 합해서 도지사가 하나여. 그래 도지사에 그 때의 벼슬을 하면 관찰사여.
그러니께 시아버지가 인저 충청남도 관찰사니까, 아마 공주겠지? 아마 공주 거기서 계셨고, 자기는. 개성이 도읍이니까, 개성에 왕씨에 그 도읍이니까. 그 개성에서 남편하고 같이 살다 남편이 죽으니까, 이 여자가 할 수 없이 친정으로 갔어, 인저. 그래 애를 하나, 유복자, 유복자란 말도 있고. 또 애기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고 한데.
하였든 유복자 아니면 아주 어린애, 열일곱 살이니까 첫 애 아녀? 첫 애니까 아주. 그래 친정을 가니까 친정 아버지가,
“꽃같은 열일곱 살 나이에 혼자 과부가 되서, 그 앞으로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지내야 하느냐?”
그 딸에게 얘기해서 다른 데로 재가를 시킬려고 했거던. 다른 데로 시집을 가도록 이렇게 했는데. 그 여자가, 남편 잃은 양천허씨 부인이 그 자기 아버지, 친정 아버지가 그 자기를 다른 데로 그 시집 보낼려고 하는 그런 소문을 듣고, 그날 저녁으로 그냥 내 나갔어.
그냥 어린애지, 아주. 젖맥이 어린 앨 데리고 밤으로 나갔는데. 지금은 교통이 좋고 여자가 길을 가도 흠이 읎지만, 옛날에는 낮에도 못 댕겨, 여자가. 혼자 못 댕기고. 그 혼자 댕기면은 반드시 봉변을 당하는 일이 있어. 그래서 낮에는 그냥 산에 가서 숨고, 밤으로만 이렇게 자기 시아버지한테로 가는 거여. 인저 충청도로다가, 개성에서 충청도로 가는 거여. 그러니 개성서 지금 충청도가 몇 백 리여? 한 오륙백 리도 넘지 않어? 그거를 여자가 간약한 몸으로 낮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밤에 그냥 길을 길을 찾아서 가니 그것 며칠을 가야될 것 아녀?
그런데 하루는, 이렇게 내외가, 그 가는 길에, 하루는 가다가 호랭이를 만났다는 거지. 호랭이가 이렇게 길을 가로 막았어. 못 가게 길을 막았으니 갈 수가 있나. 그런데 호랭이가 왜 잡아 먹을려고 하지도 않고, 덮어놓고 이렇게 그냥 앉아 있는 겨. 그래 이게 그 거짓말 같으지만, 그때 호랑이도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손짓으로 서로 의사가 통했는지 그건 몰러도,
“나를 니가 잡아 먹을려고 할려거든 잡아먹고, 잡아먹지 않을려고 하거든 길을 비켜라.”
그러니까. 그런게 손짓으로 이렇게 서로 통하는 거지. 그러니까 호랭이가 잡아 먹지 않는다는 거여. 잡아 먹으래라냐고, 고개를 흔들흔들.
“그럼 나를 인도해 줄래느냐?”
하니까. 이렇게 고개를 끄떡 거려. 그래 호랑이를 다가가니까 아가리를 딱 벌린데 보니까 거기 비녀가 하나, 비녀라고 여자들이, 지금은 쪽을 안 찌지만 옛날에는 이렇게 쪽을 쪄서 그 사뭇 각을 이렇게 지르는 그거 있잖아. 그걸 비녀라고 하는데. 그거 비녀가, 이놈이 여기 걸려가지고, 뭘 먹지도 못하고 그냥 걸려서 이놈이 신음을 하고 있는 거여. 그래서 그 걸린 거를 아마 빼달라는 시늉을 했겄지? 호랭이가. 시늉을 하니까, 이 허씨 할머니란 양반이 그것 손을 넣어가지고 뽑아 냈어.
그래 그 호랭이가 너무도 고마워서 ‘내 등을 타라’ 는 시늉을 했어 그 다음에 허씨 할머니가 호랭이 등을 올라와 앉으니까, 그냥 순식간에 자기가 얘기도 안 했는데, 그 시아버지 사시는 관찰사 본부까지, 그때는 공주가 아니고 연산여, 연산. 충청남도 연산이라고 있어요. 논산군 연산면이란 데가 있어. 그래 거기까지 가서 내려 놓는데, 그 고개 이름이 범티 고개여. 범이 허씨 할머니를 내려줬다는 걸로, 그게 그때부텀 범티 고개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어요. 어이.
그래서 그 아들이 차차 자라 가지고, 차차 자라가지고서, 그 인저 허씨 할머니는 거기 가서 기거하고 있는 동안 평생을 통 시집가지 않고, 시집가지 않고 절개를 지키고서 고 뒷동산에 암자를 하나 맨들어 갖고, 거기서 날마두 기도 하는 것이,
“우리 자손들, 대대손손이 천 년, 만 년 참 무성하고 잘 되 달라.”
는 기도를 날마두 그 산에 가서 올렸다는 얘기지. 그래 그런 정성이 지극해서 그런지, 그 데리고 온 갓난 애기가 차차 자라가지고, 참 등과해서 급제를 해서 벼실까지 오르고. 인자 그때 그 이태조 그 양반이 등극을 해서 조선, 이씨 조선이 됬는데, 그 손자가 나라 국자 빛 광자 국광이라는 양반이, 허씨 할머니의 손자가 좌의정까지 했어. 좌의정이면 지금 국무총리 다음에 가는 게, 부총리 경제 기획총리니 통일장관, 그 부총리이지 그러지 않어? 부총리격인 좌의정일 거여. 그리고 그 후손들이 참 잘 되서, 참 사계라든지 사계 선생에는 7대 조모가 되고, 사계 아들 심독재라는 양반에게는 8대조 조모할머니가 되는데. 그 사계라는 양반과 사계 아들 심독재라는 양반은 문묘배향이라고 있지. 각 군마다 향교라는 게 있지. 지금도 다 있어.(향교 문제 생략)
그래 그 양반 허씨 할머니가, 이 나라에서 참 갸륵한 여자라고, 참 타의 모범이 될만한 덕행을 가진 여자라고 해서 나라에서 정경부인, 여자로서는 최고 벼슬이지, 정경부인이란게. 저 정경부인이라는 벼슬을 내려 줬어. 그, 그 허씨 할머니에게 정경부인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유허비이라는 것, 유허비라는 조그맣게 정각을 맨들어서 놓고, 거기다가 허씨 할머니의 그 사적을 거기다가 이렇게 쓴데 있어요. 그것이 지금도 가 보면, 논산군 연산면 고정리에 가 보면, 그 정녀문이 지금도 있어. 지금도 있고.
지금 산소가 연산면 고정리에, 지금도 허씨 할머니의 산소가 있는데, 그 산소 시앙이 10月 5日, 10月 5日인데 광산 김가들이 그날은 굉장히 많이 모여서, 지금도 수백 명 그 날은 모여 가지고 허씨 할머니의 고마운 은덕을 생각하고, 광산 김가 어느 시양보다도 허씨 할머니의 시양을 제일 융숭하고 정성껏 차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유래가 있어. 나는 그것 얘기는 그것 뿐이여.
그래 옛날에는, 지금은 그 여자라는 게 정조라는 게 없어져서, 한 번 시집 가거나 두 번 시집 가거나, 시 번을 시집을 가도 흉이 읎지만, 옛날에 그게 여러 사람들이 세상에 아주 수치거리고 살았어. 그러게 옛날에 법으로는 부모가 돌아가면 거상을 3년을 입지만, 거상을 3년을 입지만. 옛날에 남편이 돌아가면 그건 평생을 입어야 혀. 평생을 입었다고, 그건. 지금도 뭐 옷도 안 입고 그냥 뭐, 죽으면 빨간 치마도 입고 흰 치마도 마음대로 하지만, 옛날 법은 그렇게.
며느리 부자 손님이고, 지애비 부자는 부군이라고 그러지 않어. 지애비 부자는 이 하늘 천에다가 이것 하나 더 이렇게 이렇게 한게 지애비 부자고. 부군이라는 남편이란 말이여. 하늘보다 높다 그 얘기여. 남편은 하늘보다 높다. 그렇게 남편을 여자들이 존중하게 여겼지.

󰊵 멱조현 고개
김용덕(82, 남)/서리T 1뒤
[서리 중골 자택]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세시풍속에 관련된 이야기와 조광조, 정포은 등에 관한 사실적인 말씀을 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준 것이다.

남사면 마치 부자 허고 아래 화자 허고 부화산이라는 산이 있고. 그리고 인자 그 부화산 거기에 멱조현이라는 고개가 있어요. 멱조현. 이 찾을 멱자가 안동변 고자한 자. 찾을 멱, 할아버지 조자, 멱조현이라는 건 고개. 멱조현이라는 동네가 있어. 거기.
그래서 그 부화산 그 밑에는, 응 천하명당이란게 있다고 해서, 서로 명당이,
“내가 명당을 찾았다고 해서, 그 산 속에 써서.”
그런 속설은 있지. 아버지가 아이를 지고서 할아버지를 찾는 형국이라구. 그런 산소 자리가 저 부화산에 있다고 해서, 그래 부화산도 있고 멱조현도 있고 그래요. 내가 그 밑에다 전부 그 풍수각들이, 지관들이 댕기면서,
“여기가 그 자리라.”
고. 해가지고서. [청취불능] 서씨든지 남씨든지, 거기서 자꾸 묘이를 쓰고 있는데, 과연 그런 명당을 찾아서 썼는지는 모르겠구.


󰊶 유서방네 묘
조현기(74, 남)/서리T 2앞
[서리 중골 밭]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앞에서 민요를 마치고 조사자가 귀신이나 묘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부탁하자 좀 생각에 잠기었다가 구술하여 준 것이다.

[조사자 : 저 위에 저기 뭐야, 이래 나무 해 놓고 위에다 묘같은 게 하나 있는게, 그게 왕, 왕묜가 그거요?] 아니지. 왕묘의 묘가 어디 있어. 정승의 묘도 읎, 정승은 연안 이서방네라고, 여기 산 너머, 거긴 삼정승이 묻혔데는 거여. 이서방네 하고, 유정승이라는 그, 정승이 인제 그 너머는 묻혔다는 그런 거지.
[조사자 : 삼정승이 묻힌데, 뭐 거기에 대해서 쪼금만 더 자세하게 얘기해 주세요?] 그걸 아나. 정승이, 연안 이서방네가 둘 묻히고. 유정승이라고, 예전에도 맨 처음에는 유정승이라고 와 묻혔다고 하더만. 그게겠지만 뭐. 그런 걸 뭐 아남. 그걸 또 말 해.


󰊷 권도령이 묻힌 묘
조현기(74, 남)/서리T 2앞
[서리 중골 밭]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앞의 묘자리 이야기를 마치고 같은 유형이라 생각이 났는지 스스로 구술하여 주었다.

또 저기 불려오기는 권도령 묘라고 있었어. 이 너머 그저 있지만. 그런데 그런데 수십 년을 묵었데는 거지. 그런데 예전 말씀이니까 누가 알어.
그 묵었었는데, 그 자손이 권 뭐라더라. 그 사람이 이 천리라는 데 여길 말 타고 지나가는데, 반짝 눈이 왔는데,
“늬의 조상이, 위대 처음 조상이 여기 묻혔는데, 요 말 가는대로 가서, 그 말 그치는데 가면 늬 조상이 있을 거다.”
그 하난 전설이 내려와 있는 거여.

󰊸 삼정승 묘자리가 있다는 서리
이윤희(68, 남)/서리T 2앞
[서리 하골 자택]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조사자들은 조현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아래마을로 이동하였다. 아래마을로 내려와서 돌아다니다가 제보자를 만나게 되었다. 조사자들이 옛날 이야기를 부탁하자 스스로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여기가 배밭인데, 저 건너 개울이 그전에 이 서리 길이 저기 저 건너로 났었어요. 저기가 서해 못여. 서해 못이라고 그러는데. 그에 아주 거기가 옛날에는 짐승 길목여. 짐승 길목여. 아주 저 위에 와설라나 돼지나 노루 퉁기며는 우선 길 묻는 데로 와설라나 여기서 목잡던 데여.
그라고 인저 요 아래가, 내가 요 아래 살다 나왔는데. ‘불당거리’라고 그러는데, 거기 옛날엔 여덟 집이 살았는데, 지금은 네 집이 살구서. 거기 연안 이씨에  그 중종 땅인데. [조사자 : 비타귀골요.] 불당, 불당곡이지. 불당곡. 그래 인제 거기 그 아래 정승묘가 셋여. 삼 정승, 삼 정승이 거기 묻힌 자리여, 그 안에.
그래설라나 옛날에 거 우리 뭐, 우리가 삼십 시절만 해도 노루 같은 것 상당히 많았지. 많았는데 그 이곳 아니라, 여기 한 척 정도 되는데, 뺑둘러 멕힌 데야. 아주 뺑둘러 쪼금만데야. 요기 요 산 끝에서부터, 요기 산 끝에서부텀 개인 소유가 하나도 읎어요. 그 안에 뭐 다 연안 이서방네 그 사패지, 옛날에 사패지지. 그 거시기란 사람들.
사패지진데, 그해 해방 후만 하더라고 노루 같은 것, 돼지 같은 것 많았었는데. 푀(포)수들이 그 골짜기에 들어와선 전혀 짐승을 못 잡았어요. 거기서 퉁겨 가지고서 산 넘어가서만 잡았어도, 거기서는 못 잡았다구. 그래 그 삼정승 묻힌 자리, 묻힌 골짜구리나, 그 뭐여 짐승을 그러니께 못 잡는다 그런 그런 전설이 있구.
그 안에 뭐여. 옛날 삼정승이 묻혔다면은 그 보통 뭐 무슨 자리가 아니거든. 이게 옛날 삼정승 아녀? 삼정육판이라 그랬는데.
그 거기 전설로 말하자면, 거기 그 동네 뒤에, 그 큰 배나무가 있었어. 큰 배나무가. 옛날 아주 배나무가, 우리 지금 한발 반은 되여, 한발 반은. 그렇게 큰 배나무가 있었어.
그러니까 나이가 고목이 됐으니까, 인제 그 놈이 인자 뭐여, 뭐여, 죽이 뭐여, 죽게 됐다 말이여. 그러니까 그 옛날 어른들이, 나는 모르지만 으른들 말씀이, 그거를 팔았대요. 그거 옛날에야 그 가구, 배나무 가구 맨드는데 아주 좋거든. 그래 팔았는데, 그날 저녁에. 그 호랭이가 뒷산에 가서 울었대는 거여. 그래서 그거를 도루 해약을 했데요. 그래 고기에 그런, 고기에 그런 전설이 있구.


󰊹 고사 지내고 옮겨야 할 삼정승 묘지골
이윤희(68, 남)/서리T 2앞
[서리 하골 자택]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계속하여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존 인물이 직접 경험한 것이라 하셨는데, 아무래도 전설쪽에 더 가까와 기술하였다.

여기 저 이 골짜기에, 서리가 살다가 그 절루(저기루) 간 뭐여, 천리루다가 간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이 목수여. 그 사람이 집을 질라구 옛날에 그, 저 나무 목재 이런 걸 장보 얻는다고 그러지. 장보. 장보얻는 집이면 그것 잘 짓는 집이지.
장보(대들보)감을 거기서 샀는데, 장보감을 샀는데 그걸 가져 가야 할텐데, 옛날에야 천상 인력이 아니면 뭐 소 이용하는 방밥 밖에 읎는 거거덩.
그래 산에서 끌어 내리는데, 거 흑성리에 아주 그 채칠령씨라구. 그분이 굉장히 억셔. 그래서 소를 멕여도 꼭 받는 소만 멕여. 그렇게 억신 분인데, 그분을 하고 그걸 끌어 내리는데, 아 이눔이 중간에 오다가는 비알(비탈)도 비알, 비알인데, 편편한 데도 아닌데 소가 딱 서.
서가지구선 움직이지 않아요, 소가. 소가 움직이지 않아구설라나, 가진 소를 패고 뭐 그래도 그게 움직이지 않어. 그래서 그래 그 목수라는 사람이, 아니 그 채칠령씨라는 분이,
“이거 나무 빌 때 고사를 했느냐?”
그래드랴. 그래서,
“안 했다.”
고. 그러니까.
“어이 그러면 알았다.”
고. 그러고서 소를 뗘 가지고서 그냥, 그냥 집으로 간 거여. 그냥 이저 이렇게 끌어 내리다가, 이제 멍에 벗겨 가지구설라나 집을 가구 설라나.
“그 고사를 가서 해라.”
구. 그래설라나. 그 이튿날 와서, 나는 고사 뭐 옛날엔 북어하고 그저 포나 하고 해서, 잔하고 해서라나 갖다 해서 고사해구설라나. 그 이튿날 가서 끄니까, 소가 힘없이 그냥 내려와. 힘 안 들이고 내려와. 그래 고런 전설이야. 그려.
그래서 채칠령씨 그 분 얘기가, ‘거기 삼정승이 묻힌 자린데, 그 고사도 안 해구서 그냥 길쌈 불리냐.’ 인자 이런 전설이 있어.


󰊲 도깨비 홀린 사람
이윤희(68, 남)/서리T 2앞
[서리 하골 자택]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앞에서 노래의 후렴만 부른 뒤에 조사자가 귀신 도깨비 이야기를 부탁하자 계속하여 구술하여 준 것이다.

 요 동네, 요 동네 아닌 얘기는 그게 그 동네 가서 얘기 해야지. [조사자 : 상관 없습니다.] 상관 없어요. 요, 요 천리에 최정식이란 사람이, 우리 나보다 몇 살 더 먹었어. 그 사람이 그 도깨비 홀렸다고 하지.
도깨비 홀린 얘기인데, 아이 밤에 어디를, 골짜구니를 갔는데, 안 와설라나, 안 와설라나 그래 동네 사람이 찾아갔는데, 저 덤불 밑에 가서 있어. 그래,
“왜 거기 가 있느냐?”
고. 그러니까 허는 얘기가 그러드랴.
“너 임마! 김가의 자식 아니냐?”
고 그러드랴. 그래 도깨비에 홀려서 그렇다고들, 그래 그런 얘기를 해요. 그 나보다 세 살인가 위 되는 사람인데,
“아이 사람하고 같으냐. 같은 게, 얘기하는 데 사람 같으댜. 같은데, 따라가다 보니까 그랬다.”
그러더랴. 따라가다 보니까 덤불 밑, 그래 덤불 밑이 이렇게 보이는게 아니라, 이런 저 집같이 보이더랴 이거여.


󰊲 운 좋게 살아난 느티나무
이윤희(68, 남)/서리T 2앞
[서리 하골 자택]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생각이 났는지 스스로 구술하여 준 것이다.

요 부근에, 요 아래 골짜구니 살았기 때문에 다른 데보다 눈치가 어두었는데, 그 동네 참 느티나무 얘기를 하나 해야겠네. 느티나무, 왜정 때에 뭐 느티나무 좋은 거는 일본 사람들이 그 배 만든다고 그냥 뭐 몰수 해 가는 거지. 뭐 강제로 그냥 해 가는 베어 가는 건데.
그 때에, 그런게 왜절 말엽이지. 그 때 대동아 전쟁 땐데, 그 인자 책임자들이 비타[청취불능]바 있어 가며, 동네 다니며 봐가지구서 좋은 건, 뭐 못 쓸 건 안하고 좋은 거는 정말 찍어 놓고 가는 겨. 그런게 저게 정말 찍혔어. 그래가지고설라나 이것 사람을 보낸 거야.
“이걸 비라고. 어느 골짜구니 가서 비라.”
구.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비는 사람이 딴 소리, 딴 데, 딴 골짜구니를 들어갔어. 그래 거기를 안 가고. 그리구 그러구서 10일 있다가 해방 됐어.
그래서 그 느티나무가 굉장히, 그게 참 그 지금 보호수로 되어 있는데, 보호수로 되어 있으니까 인자 손을 못 대는데, 그 때 비는 사람이 올바루 왔으면 그 나무가 베어지는 건데. 골짜구니 잘못 들어가가지고 딴 나무를 비는 바람에 그 나무가 살았어. 지금 보호수로 되어 있어.


󰊲 아버지와 삼 형제
이윤희(68, 남)/서리T 2뒤
[서리 하골 자택]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사랑방에서 하시던 이야기를 부탁하자 스스로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준 것이다.

옛날에 그 한 동네에서 두 친구들이, 친구가 있었는데 같이 이렇게 공부 했는데, 이저 공부를 하고 나서 한 사람은 돈버는 거에만 그냥 뇌를 쓰고 그래하고, 한 사람은 그저 마누라 얻어가지고 자식 낳는 것만 힘을 쓰는 거여.
그래 한 사람은 뭐여, 그 어떤 돈 벌러, 돈 버는 사람이 삼 형제를 두었는데, 삼형제를 뒀는데. 그 돈을 어느 정도, 돈을 긍께 많이 벌었어. 그래 인제 돈을 많이 벌어가지구선, 이제 벌만큼 어느 정도 벌어 놓구선 그 다음부터는 쓰기만 해여. 벌진 않고 쓰기만 하는 거여.
그래 아들은 삼형제를 뒀는데, 그 둘째 아들이 외국에 나가가지고설라나 살인을 혔어. 살인. 그 옛날에는 살인자는 살하고, 살인한 사람은 그 죽였거든. 그래 그러니까 돈을 쓰기만 하니까 친구들이 많이, 많이 와설라나 그냥 놀고 또 놀고. 참 옛날엔 사랑방에설라나 그냥 그렇게 해서 뭐 음식 대접하고 그래설라나 노는데, 아이 이 ‘살인을 했다.’고 그러는데, 그냥 아무 변색이 없어. 살인했다구 해도. 그랬더니 작은 아들이, 그 막내 아들이 아 들어오더니, 지 아부지한테 하는 얘기가,
“아부지! 형이 외국에 가서 살인을 했느니까. 천상 돈으로 가서 빼오는 방법밖에 없지 않느냐”
고 그러니까.
“아! 그렇게 하라구. 그럼 니가, 니가 그럼 갔다 와라.”
‘니가 갔다 와라.’ 그러드랴. 이젠 조끔 있으니까 큰 아들이 들어 오더니, 하는 얘기가,
“아이구. 그 막내 애기를 보내느니 지가 가설라나 거시기 데려 오겠다.”
고 말이지. 그러니까 태도가 그냥 확 변해. 뭐 아 못마땅한 태도가 얼굴색이 확 변해. 그래 그냥 뭐 ‘갔다 와라 마라’도 안 하고, 그냥 끄떡끄떡 하고 그러거던. 그래 큰 아들이 나간 다음에 그 친구들이 물었어.
“왜, 막내, 막내 아들이 와서라나, 막내 아들이 와서 그럴 때는 기분좋게 그러더니, 왜 큰 아들이 간다니까 그렇게 안색이 변하느냐?”
하니까.
“그럴 이유가 있다.”
그러드랴.
“그래, 그럴 이유가 뭐냐?”
그러니까,
“큰 아들은 내가 돈 벌, 벌적에, 돈 벌적에 돈 버는 것만 보고 자랐다. 이 막내 아들은 돈 쓰는 것만 보고 자랐다. 그러니까 외국에 가서 살인을 했으며는 빼올려면 돈을 써야 되는데, 큰 아들은 돈, 뭐여 버는 것만 알기 때문에 돈을 안 쓸거다. 그렇게 하면 죽는 거다”
그래 이 친구들이.
“아이, 그 사람 살리는데, 그 동생이 죽고 사는데 돈을 안 쓰겠냐?”
그러니까,
“그래두 그렇지 않다”
그러드랴. 그래 그 큰 아들이 돈을 한 보따리 가지고서 참 외국엘 갔어. 가 가지고 지끔으로 말하면. [조사자 : 가기는 큰 아들이 갔었요?] 응. 큰 아들이. 그러니 아 가 가지고서 인저 참 고위직, 지금으로 말하면 검사나 판사한테 가서 뭉텡이로 돈을 준 거여. 아 그러니까 그냥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냥 뭐, 그냥 이튿날 석방이 되었어.
근데 그 이튿날 석방이 되는데 보니까, 지 동상만 나오는게 아니라 수십 명이, 그 여러 사람이 나와, 그 감옥에서. 옛날이나 그 지금으로 말하면 감옥이지. 그래 여럿이 나와설라나, 아 어떻게 된 것인가 알아 보니까, 국가에 경사가 있어 가지구설라나 그래 석방되는 거여. 그 감옥에 경범들.
아 이거 하루만, 조끔만 참었으면 돈을 안 써도, 안 써도 나올 놈으 거, 그냥 이 돈을, 돈을 썼거던. 아 이놈의 돈이 아깝지 뭐여. 아 그러니까 가설라나 그 얘기를 한 거여.
“돈을 도로 달라.”
고. 그리 안 해도 나올건데. 그러니까 그 군말 않고 줘. 그라구설라나 지금으로 말하면 그 뭐 검사랄까, 판사가 아 다시 가설라나, 뭐 그 서류를 이렇게 들춰 보더니,
“외국인이 들어와설라나 살인한 것은, 이것은 석방할 수 없다. 그런게 다시 잡아 들여라.”
그래 잡아들여서 이냥 사형을 시켰어. 그래 아이 시켜가지구서 그러니 이 큰 아들이 그걸, 그 시체를 가지구설라나 즤 집으로 온 거여. 그래 그 친구들, 친구들한데 인자 그러는 거여.
“벌, 버는 것만 보고 자란 놈은 버는 것만 알지 쓸 줄 모른다. 막내 아들이 갔으면은 그놈은 쓰는 것만 알기 때문에, 그냥 돈 안 써도 나올 거래도 그 놈은 그냥 그 돈을 안 찾아가지고 왔을 거다.”
그러니까 이 저 뭐여, 부모들한테 이 부모 교육이 그만큼 소중한 거다 그런 얘기여. [조사자 :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중요하다 이 말씀이군요?] 그렇지.


3) 민요
󰊱 노동요
조현기(74, 남)/서리T 2앞     
[서리 중골 밭]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조사자는 김용덕옹의 댁을 나와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나섰다. 이때 농업을 생계수단으로 하는 제보자가 뒷밭에서 낙엽을 긁어 모으고 있을 때 만났다. 그래서 조사자들이 찾아온 이유를 말하고 민요 한 가락을 부탁드렸는데, 완전히 기억을 못하시어 일부분 밖에 수록을 하지 못하였다. 노래는 음영조로 구술하여 주었다.

저 건너 감리봉 농부들아
우장 입고 나오너라
저 건너 가리봉아
비가 서려 들어 온다
우장 입고 논에 나가
논일 하세.

󰊲 모심기 노래
조현기(74, 남)/서리T 2앞
[서리 중골 밭]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앞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농사지을 때 부르던 노래를 부탁하자, 음영조로 불러 주신 것이다.

얼얼 상사디
서마지 논 뱀이가
반달만큼 남았네
에라 농부들
어미 매고 술을 먹자

󰊳 모심기 노래
이윤희(68, 남)/서리T 2앞
[서리 하골 자택]박종수, 강현모, 윤석범, 임종오, 주정식 조사(1995. 11. 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농사지을 때 부르던 노래를 부탁하자, 구술하여 주었는데, 후렴조만 해 주었다.

<후렴>  에어~라 방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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