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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역
남사면- 아곡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김홍희 (71,여) 도깨비를 만난 사람-------------------340
(2) 유혜순 (85,여) 늑대가 유씨를 잡아먹지 않은 이유-------341
(3) 유혜순 (85,여) 가죽을 짤라준 호랑이-------------------344
(4) 유혜순 (85,여) 도깨비 일화----------------------------346
(5) 제보자1 (?,여) 늑대와 함께 다닌 아버지----------------350
(6) 권영주 (78,남) 개심한 불효자--------------------------351
(7) 이상묵 (40대,남) 처인성 일화--------------------------352
(8) 이상묵 (40대,남) 처인성 일어난 일화-------------------353
(9) 이상묵 (40대,남) 소를 끌어 올려라---------------------354
(10) 이상묵 (40대,남) 호랑이에게 새끼를 빼앗긴 소---------356
(11) 권영주 (78,남) 어른 말을 잘등어야 가정이 화목--------357
(12) 이상묵 (40대,남) 순조 임금의 지혜--------------------358

4. 아곡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김영학, 이홍주, 이승훈, 김은미, 김혜진, 김은숙 조사(1995. 11. 4., 1996. 5. 24.)

아곡리는 용인터미날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걸리는 곳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이동면의 여러 마을을 지난 남사면에 들어서 두번째 마을이다. 마을의 교통편은 용인에서 남사면을 통과하여 오산, 평택, 안성으로 가는 버스들이 지나고 있으나 서지 않고, 완행버스만 정차하여 좋은 편이 아니다.
아곡리는 원래 고려시대 몽고의 장수 살리타를 죽인 처인성 있던 처인현의 치소였다. 이곳은 수원에 딸린 처인부곡의 마을이었으나, 조선 초기에 현으로 승격되었다. 그 이후에 이곳은 처인현의 관아가 있었으므로 처인골, 관아골, 아골, 아동, 아곡 등이라고 칭하여 왔다. 1914년에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이웃의 남산동과 합하여 아곡리라 칭하여 남사면에 편입되었다.
남산동이란 북쪽에 있는 아곡에 처인현 치소가 있을 때, 남쪽에 있는 동네라고 하여 남곡, 남산, 남산너머, 남산동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곡과 남산 사이에는 작은 산이 놓여 있는데, 이 산을 남산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생기기도 하였다. 그런데 과거에는 아곡마을이 중심이 되었으나, 현재는 교통의 요지가 된 남산마을이 중심점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마을은 70년대까지 낙후된 마을로 차가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소로길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을의 한 지도자가 나타나 찻길을 닦아 오늘날의 번영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91년 어느 일요일에 큰 비가 내려 위에 있던 저수지가 터져 마을이 절단이 났는데, 그 이후에 마을은 신앙심이 돈독한 지역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아곡리는 북쪽으로 완장리로 들어가고, 서쪽은 공장지대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남쪽은 면소재지인 봉무리로 가는 4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동쪽에는 완장천이 흐르고 있으나 넓은 평야를 형성하지 못하였다.   


2) 설화
󰊱 도깨비를 만난 사람
김홍희(71, 여)/아곡리T 1앞
[아곡2리]박종수, 강현모, 김영학, 이홍주, 이승훈 조사(1995. 11. 4.)

조사자들이 제보자를 만나 처음 들은 이야기는 시집살이 관한 이야기였다. 고향이 충주인 제보자는 조사자 중에 충주 사람이 있어 더욱 친근하게 접근할 수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도깨비에 관해 묻자 구술하여 준 것이다.

[조사자 : 할머니! 어렸을 때 듣던 도깨비 얘기같은 것도, 잠깐 짤막하게 해 주셔도 되는 데요.] 도깨비 누가 봤어, 나는 못 봤는데.
어떤 우리 집에 할아버지 하나, 일 해는 할아버지 하나 뒀는데, 저기 나무해 가지고 오시다가 저물게 오는데, 도깨비 홀려가지고 밤새도록 끌려다니다가 새벽에 들어오시더라고. [조사자 : 그때 끌려 다닐 때, 어떻게 끌려 다니셨는 데요?] 그냥 불이 훤해서 가면 아니고 아니고 그렇더랴. 그래 아침에 오셨는데 그냥, 아주 그냥 기운이 하나도 읎어가지고 오셨더라고. 그래,
“왜 그렇게 댕겨 오셨냐?”니까,
“자주 집같은 데를 가서 가면 아니고 아니고.”
그래서 자꾸 갔디야 그냥, 한정읎이. 그래 아침에 정신 차려가지고 오셨더라고.

󰊲 늑대가 유씨를 잡아먹지 않는 이유
유혜순(85, 여)/아곡리T 1앞뒤
[아곡2리]박종수, 강현모, 김영학, 이홍주, 이승훈 조사(1995. 11. 4.)

조사자는 김홍희씨의 권유와 전도사님이 소개해 주신 제보자를 찾아갔다. 제보자는 이가 많이 빠져 있으나 발음을 알아듣기 충분하였다. 조사자들은 조사나온 목적을 말하고 전도사님이 보충 설명하여 주어 접근하기가 좀 수월하였다. 조사자가 손자에게 해 주시던 이야기를 묻자 다 잊어버렸다고 하였다. 그래서 호랑이 이야기도 좋으니 해달라고 하자 옛날 자신의 집안에서 경험하신 이야기라며 구술하여 주었다.

[조사자 : 호랑이가, 나무꾼이 도망갔다는 뭐, 그딴 얘기 아직도 기억이 안 나세요?] 내가, 우리가 내가 유서방넨데, 그게 옛날 얘기지 뭐. 우리가 유서방년데, 늑대가 그러니까, 그때는 큰어머니도 있고, 징(증)조 할아버지도 있었어요.
그런데 늑대가, 나물을 갔는데, 늑대가 그냥 죽자 살자고, 내 친구 셋이 갔다가. 아 새끼가 이쁘잖어 그냥. 그래 늑대 새끼가 이쁘지, 그땐 늑대 새낀 줄도 모르구, 인자 강아지가 거기 많다고 이렇게 하는데,
“아유! 강아지 그냥 이쁘다.”
고. 쓰다듬어 주구 하는데, 아이구 뭐가 그냥 검은 게 툭툭 털고, ‘허허흥’ 그러는데, 아이구 뭐가 보구니 들고 올 수 있었어유. 뭐시 시 지지배(여자)가, 그냥 열 세 살 됬나, 여남은 살 째금 넘었어유 아마. 뭐 열시 살인지 열두 살인지 그렇게 얼추 됐어요. 그래서 그렇게 내려 왔는데, 인자 그래 그 해, 그 해에 잉 가을에, 가을인가, 아이라 사월이지. 인제 나물을 갔으니까. 나물을 갔는데, 늑대가 아가리를 벌리고,
“아흥! 아흥!”
하고 그래서, 잡아먹는 줄 알고 내려와서, 우리 큰어머니, 할머니 보고.
“아이구! 여기 늑대가 악아리(아가리)를 벌리고 ‘아흥 아흥’ 하고 그래서 우리가 무서워서 그냥 왔다.”
고 그러니까. 참 그말로,
“참 그럼, 어떡 하느냐?”
고. 그 저기라고 해서, 어떤 사람을 잡아 먹고는 비나가 거기 걸렸대요, 늑대가 악아리가. 그래서 인저 할아버지하고, 인제 큰엄니네 큰아버지허고, 할머니하고 이렇게 가서,
“그 저 아마 저게 뭐 빼내라고 그러는 것을, 저것들이 그냥 왔나 보다구. 우리 가 보자.”
구. 그래서 그, 저 안성, 여기 안성에, [조사자 : 안성군요!] 친정이 안성인데, 안성 미득에라고,(살아온 내력 생략) 거기 산이 거(巨)해요. 그래서 그전에 가 보러 갔는 데도, ‘아흥!’ 아! 허드래요. 그래서 인제 그 아버지가,
“아이구! 왜 그래? 왜? 왜 우리 강아지 왜 그랴? 왜 목에 걸렸어. 왜 그랴?”
이렇게 할아버지가, 우리 집, 가면서 그랬데요.
“아이구 왜 그랴. 뭐 아가리에 걸렸어?”
걸렸은 게, 그래야 그 악아리를 벌리고 있는 거는 뭐가 백여서 그러는 거여. 가 보니까 비나가 걸렸대요. 사람을 잡아 먹었는지. [조사자 : 비나요?] 비나. 옛날 비나. 이것, 이게 비나여. [청중 : 비니여.] 비나여. 이런 거 비나, 이런 비나가 이것만 하잖아요. 옛날에는 이만이만 해여. 이만 혀. 인자 그래서 그저,
“왜 그러냐구? 왜 그러냐?”
그러니까. 점점 악아(아가)리를 이렇게 벌리더래여. 그래서 그래 인제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버지가 인자 이렇게 바틈바틈 가서, 그래 인제 뒤에 가서, 인제 머리를 이렇게 쓰다듬고 벌리고 보고,
“벌려라.”
고. 허고 이렇게 보니까, 이만한 비나지 뭐. 대가리만 하고. 그런게 이렇게 걸렸더래요. 그런게 이렇게 가로 안 걸리고, 이렇게 그냥 잡아먹은 채로. 그래 인제 뭔지 알고 생켰는지 이렇게 걸렸드래요. 그래 그것, 그것 내 잊어뻐리지도 않어. 그때 아마 열네 살이나 열서너 살 됐나 봐, 아마. 그랬는데 걸려서 그것 빼, 그걸 빼 냈대요. 그래 이 아가리, 손으로 할래니까 무서워서, 막대로 해가지고 이렇게 걸거 잡아 당겼디야.
[조사자 : 할머니 잠깐만요?](Tape1 뒷면에 계속) 그래가지고 이렇게 손으로 꺼낼려니, [조사자 : 비녀를 걸린 거를 꺼내는 거예요, 지금?] 꺼내야지. 꺼낼려고 이렇게 해니까, 아이구 이제 손을 들이대니, 막대를 어디서 줘서다 주드래요, 그래 막대를 잡아 댕기니까, 여기 비나가 이렇게 걸려가지고 나오더래여. 나와, 이런게.
“아가. 이것 이게 백였구나! 아이구 이런 짓 해지 말라.”
구. 그런게 사람 잡아 먹지 말라는 소리지.
“이것 이런 짓 하지 말고 저 좋게 지내야지. 이제 애들이 나무를 하러 와도, 니 아들 딸을 만지도 가만 두구. 가문 두구 물구 그렇게 말어. 가만 둬. 귀해서 그러니까 가만 둬.”
그래 가매, 자주 달래며 이렇게 끄내 주니까, 그냥 꽁지루 그냥 투덕투덕 해 주더래여. 거기 할아버지. 큰아버지를 뚜덕뚜덕 해 줘. 그래서 우리는, 그래서 장 그러지.
“이 유서방네는 늑대가 안 잡아 먹는다구. 비나를 꺼내 줘 살려 줘서, 그래 유서방네는 늑대가 안 잡아 먹는다.”
고. 내리 말이 나온 거여. 옛말이지 그게. 숙녀들이, 지금도 큰 비나 있잖어, 테레비 보면 이렇게 왜. [조사자 : 녜!] 큰 비나 이런 거. 그게 걸려서 그랬는데, 참 늑대를 봐도 그렇게 무서운 줄 모르구. 큰아버지 할아버지 뭐 산엘 가면, 그 높은 산인데, 거길 가 가지고, 거긴 산이 거(巨) 해니까 노박(항상) 있지요. 지금이 귀해지. 그래 그래서 보아두 무섭두 안 해더래유. 그래서 그래가지고 인저 장덜(매번) 그러지요. 부모네도 그렇고.
“유서방네는 산에 어둔데 가두, 산에 늑대는 안 물어 간다.”
고 그래.(웃음) 그러군 인제 아무리 투덜거리고 그러더래여. 그래고 인제 그 나물 까서, 나물 가서 보구니 이렇게 놓구 그런 거를 그냥 그거 갖다 집집이 놨잖요. 그게 거짓말이 아니유. 잇(옛)말에 있잖어유. 왜 나물 까면, 그런데 놓면 안 되지. 나물 까서 그런 것두, 나무 까서 보구니 내삘구 나만 살려고 뛰온게 그게 집집마다 어떻게 알어유. 집집마다 갖다 놨어유. 그래서 그런 경험을 한 거라구. 그때는 열 살 안에 나물 깠나 봐요.
그랬는데 그렇게, 그러니 그 늑대유. 그 늑대가 사람을 잡아 먹었지유. 그래가지고 지금은 뭐 창사구(창자)만 잡, 꺼내 먹는다지만, 전에는 내리 깨물어 먹었대유, 늑대가. 그래서 비나가 목, 악아리가 걸렸지유. 그랬다구 해서 그게 잇말에 애들 데리구 그런 말은 했지유. 그런 얘기를. 아이고 다른 얘기 하는 거야 뭐. 그래도 그런게 그때 기억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고.


󰊳 가죽을 짤라준 호랑이
유혜순(85, 여)/아곡리T 1뒤
[아곡2리]박종수, 강현모, 김영학, 이홍주, 이승훈 조사(1995. 11. 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늑대가 유씨를 잡아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 중구난방식으로 계속하여 주었다. 그래서 조사자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부탁하자, 다 잊어버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하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이것은 제보자가 실제로 보았던 일이라고 한다.

근데 호랑이는 늑대 가죽인지 호랑이 가죽인지 모르는데, 여기서 동박골이라고, 우리가 거기를 논을 하고, 동박굴 절인데, 지금은 절도 없앴지만. 그 절에서, 그 절에서 사는 여편네가 호랑이 가죽이라고 그냥 이만하게. 이만하게 겨울이면 불 때면 와 있다고 그래서,
“그걸 약에 쓴다고. 그러면 짤러 달라. 짤러 달라.”
고 하면. 짤르라고 가만히 들고 있데요. 이만한 호랭이 가죽, 한 번은 가져오는 거 봤어유. 전에는 안 봌(부엌)에서 불 때구 그럴 적에. 그래 몇 십 년 됐지. 인제 절도 없앴는지, 댓 년 넘었을 꺼여. 그러면서 호랑가죽이라 그랬는데, 여즘 참 털, 털하고 여전 호랑이여, 지금 얘기해 보면, 예전 그 때 그 털이여. 그리고 호랑이 못 봤지. [조사자 : 그 가죽을 어떻게 얻었는 데요?] 가죽은 불 때는 데 노박 와데요. 와 있데요.
[조사자 : 호랑이가요?] 말은 호랑인데. 늑대지 뭐, 호랑이겠어유. 불 때는 데 와 있으면, 인저 이렇게 쓰다듬어 주구. 그래서 같이 불을 때고 그러면,
“이 가죽을 벗겨다구. 약을 쓴다. 약을 쓴다. 사람 살린다.”
고 허면 그랬다구. 그때 내가 뼉대구만 남아서 아팠어유. 그런데 그 절에 다니는 이 보고 그랬지유.
“호랭이, 늑대 가죽을 살, 털을 삶아 먹으면, 그거 삶아가지구 그냥 물하고 마신다구. 그러면 그게 좋대는데, 그것 좀 읃어 달라.”
고 그랬지. 이듬해 누구나 그것을, 털을 짤라 가지구 줬다구 그래더래, 그래,
“나도 그것 좀 읃어 달라.”
고 그러니까. 그 여편네 어디로 갔는지 몰르것네. 죽었는지 살았는지, 죽었지 뭐. 그런데 한 이만치 짤라 왔어. 아주 금방 짜른 거 같은게, 그냥 피가 있으니께. 그랬는데 짤러 왔는데, 그걸 그냥 태워가지구, 가죽두 태우고 털도 태우구 다 태워가지구 해 먹구 난지 어쩐지 몰러. 그래 여태 살었으니까 난거지. 그래구 보기도 했을라구.
[조사자 : 그 호랑이는요, 가죽 짤라도 가만 있어요?] 모르지 인저. 참 불 때는 데, 노박 저녁이면 불 때면, 식전에 불 때면, 지끔은 지금들은 불을 안 때지만, 그때는 불을 땠지유. 불 때는 집이 많지유. 우리 집은 지금두 때기는 하지만.
그러면서 저기 동박굴이라고 합곡에 가서, 절에서 짓고 사는데, 여기 아침에 불 때면, 식전이면 이렇게 온 완대유, 앞에. 오면 개같이 한대. 개같이 굴른데 그냥. 밥도 주면 먹고 가구. 그 뭐 생선 같은 거 주면 씻어서 놓으면 먹고 이런다는 데. 그랬는데 이렇게 ‘약하게 달라’고 그러면 디민 대여, 짤라 가라구. [조사자 : 호랑이가요?] 그랬다구 그래여. 그래 내 그건 안 잊어버려요. 내가 먹고 약을 찾으니까. 그런 일도 있었어. 이제 오래 사니까 그런 일도 다.
아유 그렇게 그런 것도 약을 해 먹어서 그런지 이렇게 오래 살어. [조사자 : 오래 살면 좋죠?] 오래만 살면 뭘 하우. 지금들은 어디 오래 살게 두간. 어따 갖다 집어던지구 고려장 허고, 그런 그런 자식, 오래 살고 그러면 그럴까 무섭지. 그런 거 아 무서워. 그런 게 무섭지.


󰊴 도깨비 일화
유혜순(85, 여)/아곡리T 1뒤
[아곡2리]박종수, 강현모, 김영학, 이홍주, 이승훈 조사(1995. 11. 4.)

조사자들은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제보자에게 고려장에 대한 것과 옹기장수에 대해 물었지만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시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구술하여 준 것으로, 자신이 경험하였던 일이라 한다.

[조사자 : 할머니! 도깨비 나타났다는 얘기 못 들어 보셨어요?] 도깨비는 말도 못해. 나는 도깨비 홀려서, 밤도 새우고 그랬는데. [조사자 : 그것도 얘기해 주세요.] [조사자2 : 언제요?] 우리 넷째 아들을, 두 살인지 시 살인지 어떻게 먹었는지.
그러카구 여기 판장로네, 판장로가, 부인이 우리 딸여. 개를, 걔하고 이렇게 안성에 가다가, 안성 미륵에라고 가다가 인자 삼십리여. 삼십리. 지금은 저 차로 가니까 가깝지만. 가까워두 그 질이지 뭐. 여기서 가는 질은 다 고삼차 타고 가면 안성 미륵에라고. 그러구 가면 권말 한내, 한내라구 있으유. 그런 2월 스무엿세 날인지 닷새 날인지, 우리 사촌 동생이 여기서 장가를 들어가는데, 그 가마를 쫓아서 가며는 그냥 고개를 넘챙이고, 나는 이 미륵에를 요기 고개 넘어가야 잔치 집을 넘어가는 건데, 이 미륵에를 친정 동네인데, 친정 동상네 사는데.
거기를, 그리 가느라고 가는게, 쳐져서 그냥 한내를 건너 가는데, 그 사람들 하고 같이 건너 가는데 복도랑이 있었어유. 그래서 아이 어두웠서 그냥, 2월이면 달 있어유? 어둡지. 밤중이나 뜨는 거지. 그랬는데, 그 딸하고 인자 저 우리 오남이 제를 업고 딸하고 싯이 한내를 건너가지고, 복또랑이 가서 아이구 개명했던 걸 누가 알았어유.
전에 그 복또랑으로 근너 가면 가깝구, 이리 행길로 남성 가는 행길로 가면은 한참 돌아가구 그러기 때문에, 지내가느라고 그냥 그 복또랑을 근너 갔더니, 그래 질이 어떤 건지 몰라유, 그 잊어뿌렸어유. 깜깜해서 오도 가도 못하구, 완장이라구, 거기 완장이 지끔도 완장이지만, 그 완장이서만 한 집이만 불이 빤짝빤짝해유. 새루 두 시, 시 시가 되 놓은게.
그래 거기서만 새는데, 도깨비불은 그냥 한내 질로 그냥, 덤불로 막 벌덕지에 가서 그냥 싯이 그냥 옹그리고 앉어 있는데, 도깨비 불이 왔다갔다 하고 그러는데, 참 그냥 아이구 솜저고리가 거죽꺼장 다 젖었어유, 땀 때문에. 애들 다 죽이는 것 같애서. 그래 업고 있구, 옆에 이 학, 학쟁이라고 걔는, 지금 왔다간 걔 엄마유.(웃음) 그래 걔 참 제, 개 엄마 옆에 앉었는데, 그년은 앉어서,
“허코, 허코.”
코를 골구 자구. 시상이 잠이 와야지. 어디야 늑대는, 도깨비는 홀려가면 어떡 하나 하고, 늑대는 물어가면 어떡하나 하고. 이렇게 늑대는 ‘앵앵’거리구 울어대고. 늑대는 참 겁이 안나지. 그랬는 데두 늑대는, 그 아주 완장이 왜 그(크다) 해요, 아주. 저 미륵에서 그 전에 그 넘어갈려면 아니 얼마나 거했진 몰라유. 산이 이렇게 해서 가운데 질인데, 그냥 거기 그래서, 아이유 늑대 있다는 것은 알았어두, 우리 늑대 죄 타구 대니는데, 여기 오니까 가만히 앉어 있어. 그러나 애들 죄 늑대 업어 가는 것 같애유. 아 그런게 그게 도깨비 홀린 거지 뭐.
어둡긴 한데 이편짝 질로 가지, 왜 가마 뒤로 쫓아가면 뛰어서 질러 가느냐구. 그리가가지고, 질이 그 복또랑을 이렇게 가로 막구는 딴 데로 북또랑을 냈어유. 그 후에 보니까, 그랬는데 거가 복도랑 건너 댕기던 걸 찾으러 왔다 갔다 하다가, 그냥 깜깜하니까 그냥 새웠지 뭐유. 거기서 애를 업고는. 애를 업고 디리고. 그 여섯 살인가 그렇게 먹었어. 아 그랬는데 천상 도깨비불은 왔다갔다 하구. 그래도 혹시 마중 오나 하구,
“아무 거나? 아무 거나?”
해두. 그냥 또 불을 갔다가 금방 꺼지고 또 갔다가 꺼지고.
“아유 저거 도깨비불이다.”
그러구 쟤는 대여섯 살 됐는데, 그 소리 할 수 있어유. 또, 도깨비 전에도 도깨비 있었지만, 여기도 홀리구, 그래두 아이구 그래가지구 죽을 뻔해서 도깨비 불에도 홀리구. 우리 아버님도 여기서 이 밭이유. 이 밭에 여가 앞이 높았어유. 가시 덩굴이구. 도깨비 홀려서 그냥 밤새도록 해매다 오시구 그랬는데. 다 알었슈 그런 거.[청취불능]
아 그래서 인저, 저 완장이라고 저 한내를 건너가지고 그 벌판에 가서 인자, 한내 건내서 한참 가가지구 벌판에서 밤을 새우는데, 아 그냥 큰 고 집 하나만, 그 완쟁이 사랑 고기 한 집만 불이 빤짝거리고, 불러도 읎고 그러더니, 새로 두 시가 되는데, 그 종, 그 시계치는 소리가 나유. 그런게 달이 이만큼 떴시유. 그랬는데 그냥 인저 그림자를 두고 갔지 인제. 달이 떴으니까 인제 환하겠지 허고. 조금 있으면 달이 있는다고 허고, 인제 그때 한심 잤나 봐요, 딸이.
“인자 쪼끔만 더 참자.”
그런게 동이 트면 찾아가도 되니께. 동이 트며 찾아다니다가 그 불이 있는 집에 간 거여 그냥. 불이 있는 집이를 갔더니 노름들 해유. 그런데 그때는 이놈의 시루떡을 해가지고 이만치 쌓고, 그래가지구 갔는데, 아이 그 집에 들어가니까 노름을 하는데,
“아유! 여기 좀 잠깐 쪼끔만 여기.”
거기 가서 여기 해타리 고개, 갈라면 또 그냥 그짝이 소낭구 잔뜩 있어서 무서워요.
“에- 거길 못 가니까, 있다 좀 밝거든 가게, 좀 여기 좀 들어 앉을께, 방 좀 빌려 주시유?”
그래니까,
“예!”
노름하다가 건너방에서 자는데,
“좌우간 안방에 좀 가시유!”
그랴. 안방으로 가니까, 그 여편네가 코만 골지 ‘어짠 사람이 왔느냐?’는 소리두 안허구. 그러니까 이 영감이 오더니, 막걸리 이런 사발로, 이만한 사발로 하나 허고, 지짐이 한 대접허고 퍼다 줘유. 아이 그걸 먹었으면 원래,
“갖어 왔으니까 국이나 추우니까 좀 먹어야겠으유.”
그러고는 술은 도루 가져 가구. 국, 국하고 인자 나하고 언년하고 인자 이렇게 둘이 떠 먹으니까, 한길 들 떨려유. 국 한 대접을 먹으니까. 그래가지구 밝으며 인저 친정에 못가구, 인저 친정에 갈려면 소나무 건너가야 할테니까 못 가지. 그래가지구 그날 인자 전해를 간 거유. 도깨비 홀려서 그리 고상을 한 거유. 고상을 한 거지.
[조사자 : 직접 도깨비는 못 보시구요. 불만 봤어요?] 불만 봤지유. 그럼 도깨비 불만유. [조사자 : 이만한 불이 왔다 갔다 해요?] 그럼요. 이냥 주루룩 갔다가 주루룩 푹 꺼지고, 주루룩 갔다가 푹 꺼지구 그랬지유. 도깨비 불이 아주 환, 아주 환한게, [조사자 : 공중에서요?] 그냥 그 질이에요. 이 덤불이니까 지끔은 허허 바닥에 좋게 해서, 해서 좋지만. 그때는 가시덤풀이구 그냥 덤불이지 뭐. 달이 둥그러니까 덤불이지 뭐. 달이 둥그러니가 덤불이지 뭐. 산이니까 산에. [조사자 : 덤풀 사이로 도깨비가 왔다갔다 한다고요?] 그렇지요. 그렇게 이냥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데, 대포(배포) 놓으면 홀려 가거든.(웃음)
아이구, 그런 거 생각하면 아득해요. 그냥 지금두 죽지 않고 살았으니까. 아들 딸 다 잘 사니까 다 잊히는 거지요. 아유 그것도 하나 잃어버릴까 무섭고. 빼갈까 무섭고. 그러나 저러나 그때는 말하기는 좋게, 남은 도깨비 홀려서 그렇다고 그랬는데, 도깨비가 홀린 게 아니라, 어두워서 못 봐서 못 가지. 어디가 질을 못 찾아서 그냥, 그냥 깜깜해, 이월이. 이월 그믐껜데 얼마나 깜깜해유. 달이 있나 뭐가 있냐. 밤중에 그렇게 헤매고 고생하고. 가끔 그 얘긴 하지, 지들 몰으면.


󰊵 늑대와 함께 다닌 아버지
제보자1(?, 여)/아곡리T 2앞
[아곡2리]박종수, 강현모, 김영학, 이홍주, 이승훈 조사(1995. 11. 4.)

조사자들은 유혜순할머니 집에서 나와, 아곡2리로 장소를 옮겨 조사를 시작하였다. 제보자에게 이야기를 묻자 아버지가 경험하였던 사실이라며 구술하여 주었다. 도깨비불에 관해 말씀하시다가 구술해 준 것이다.

그러구 또 늑대가 저 대두미장 장에 갔다가 오시다가 저물었는데, 늑대가 뒤에 쫓아와서 쫓아 오더래요. 그래서 완댕이라고, 요 너머 완댕겨. 그러니께 힌난장에 갔다 오다가 완전히 길로 왔지. 지금 길이 있는데 좋잖어. 아니면 산길로 댕겨지고. 그러다 완쟁이 와서,
“밥 얻어다 준다, 밥 얻어다 준다.”
그랬대요. 어, 쪼끔만 더 가서 ‘밥 얻어 줄게, 밥 얻어 줄게.’ 이래. 그러면서 저 늑대 쫓아오는 걸 데려서, 저 완쟁이다 와서 개가 짖으니깐 그냥 떨어졌대요, 늑대가. 우리 아버님 오셨다는데, 그냥 늑대, 늑대하고도 말을 했대요.
“쪼끔만 더 와. 밥 얻어 줄게.”
아 무서워서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쫓아오더래요 글세. 그래 잡아 먹을까 봐 무섭다구. ‘쪼끔만 더 와, 내 밥 얻어다 줄게.’ 그랬대요. 몇 번 그냥 그러더니 고개를 닫쳐가지고, 그 완쟁이 고개 이 험헌디 거기 와서 개 한 마리가 그냥 참 짖으며 쫓아 오더래요. 그래 그래, 저 잡아갔드라. 그 이튿날 들어보니깐 개를, 그 늑대가 잡아 갔지 뭐.
그 잡아가서는 업고 가서 창새를 빼 먹고는 그런데요, 개를. 사람도 그렇고. 지금은 그렇게 사람 창새구를 빼 먹고 그러지. 전에는 마그리 막, 막 먹었대요. 다른 얘기는 정신이 없어서.


󰊶 개심한 불효자
권영주(78, 남)/아곡리T 4앞
[아곡리 권영주씨댁]박종수, 강현모, 김은미, 김혜진, 김은숙 조사(1996. 5. 24.)

조사자가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을 묻자, 이분을 소개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천수답을 옥토로 바꾸는 등 마을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조사자가 제보자에게 이야기를 부탁하자 곧바로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준 것이다.

그래서만 어디 가서 저 동네에서 괴기만 잡으러 가서, 늦게 와서 마중만 안 와도 즤어머니한테 마구 패고 그러는데, 한날 괴기를 팔러가서 이렇게 인제 벌려 놓고 있는데, 점잖은 갓 쓰고온 선비가 와서 고기를 큰 걸 몇 마리 사면서,
“너 괴기를 살테니, 우리 집이까지 이거를 배달해서 지고 가야 된다.”
팔아먹을 욕심으로 이놈이,
“예, 져다 드리지요.”
그래 가는데 집이 멀어. 이게 아마 몇 킬로 되는 몬양여. 그래 인제 갔는데, 저물어.
“여그 너! 오늘 니네 집이 못 갈 거여. 그러니까 사랑에서 자라. 자라고 해서, 재워 줄테니 자고 가라.”
구. 해서 자는데, 그 저녁을 먹는데, 그 갓을 쓴 이가, 감투를 있으니까, 갓을 벗어놓고 감투를 쓰고, 관을 쓰고 앉어서, 그 어머니, 노인네 안 노인네한테 밥을, 저녁을 먹는데, 무릎을 꿇고서 앉아서 그 사가지고 간 생선을 저녁에 양념을 해서 인제 이렇게 해서 젓갈을 이렇게 밥숫갈에다 놔주면서,
“어머니! 이것 많이 잡수시오. 생선 이것 무슨 생선이고, 이건 무슨 생선이고 설명해 가면서 아무튼, 많이 좀 자시라.”
고. 부모노릇 해가면서 자꾸 젓갈 떼서 그 밥숫갈에다 생선을 놔 주고 이러거든. 그래 이놈이 가만히 보니까, 저는 밤낮 즤어매 패기만 했는데, 저 이는 무릎을 꿇고 즤어매한테서 그 생선을 떼워주며 ‘많이 잡수시라’고 저러니. 하이 이상해서 저녁에 물어봐야겠다고.
“그래, 아 선생님! 그 저 노인한테다 그냥. 그 노인네 손이 없나요? 왜 그렇게 저 반찬을 떼서 밥숫갈에다 놔 줘요? 나 그런 것 처음 봐요.”
“예. 이놈! 노인네는 저 저 손이 읎는게 아니라. 자식이 아 부모를 많이 잡수도록, 맛나게 잡수도록, 배부르게 잡수도록 권유를 해야 그게 자식의 도리고, 무엇이든 맛있는 것이며 무엇인들 자꾸 해 드려야 되지.”
“아. 나는.”
그재사 이놈이,
“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패기만 했는 데요. 아 어려서부터 자꾸 패래요. ‘어머니 패라’ ‘아버지 패라’ 그러고 둘이 가르쳤어요.”
“너희 어머니 아버지가 너를 귀엽다고……”(뒷부분이 짤렸음)


󰊷 처인성 일화
이상묵(40대 후반, 남)/아곡리T 4앞
[아곡리 권영주씨댁]박종수, 강현모, 김은미, 김혜진, 김은숙 조사(1996. 5. 24.)

앞의 노래를 부른 뒤에 처인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목사님께서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 처인성 이게 이 한국에 이게 둘밖에 없데요. 이 토성이. [조사자 : 처인성이라는 것이 왜 이름에 붙었어요?] 처인성.
이게 몽고에서 몽고 그 대장이 여기 와서 이틀 저녁을 자구서, 군인들이 하루 저녁에, 이 처인이 산 있는데, 그 사람들이 성흘 개봉으로 똑 같았데요. 똑 같았었는데, 그 군인들이 그걸 그냥 똑 까뭉게 가지고 성을 만들어 가지구. 그 네 구간이 입구자로 되어 있잖아. 그것 들어오다가 봤지? 그래 그 성인데, 군인들이 그 이틀을 작업을 해서 군인들이 한 이틀 밤을 자구, 잤는데 거야, 거기서.


󰊸 처인성 일어난 일화
이상묵(40대 후반, 남)/아곡리T 4앞
[아곡리 권영주씨댁]박종수, 강현모, 김은미, 김혜진, 김은숙 조사(1996. 5. 2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처인성에 관련된 이야기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구술하여 주었다. 일화를 조사하기에 앞서 제보자에 대한 조사를 하였다.

아, 이 처인성이 아마 지금으로부터, 아- 한 350년 전 얘기예요. 여기가 아곡이라는, 그 ‘아’자는 보통 사전에서, 어 당나라 태조, 그 왕자가 머무는 디를 아전, 어전 이렇게 했어요. 그런게 여기가 상당히 지명으로 보면, 여기가 아주 옛날에는 상당히 높은 분이 취리하고 있는 장소이었어요.
그래 지금 용인이거든요? 용인이라고 하는 것이 저, 지금 현재 김량장 장이 그 용인에 조그만한 성이 하나 있었어요. 거기 있는 성 이름하고 여기 처인성 하는 ‘인’자 하고 두 개를 합쳐가지고 용인이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용인이 생기게 된 동기가, 그 용인에 있는 성 하나 하고, 여기 있는 처인성을 합해가지고 용인. 그래 지금 용인시로 됐죠?
그런데, 그 몽고 대장 살리타이가 옛날에 한양성을 점령했어요. 그러니까 개선장군이 됐죠? 그래가지고 인제 수원성으로 내려와서 초소 순시를 했어요. 그런 다음에 여기 인제 처인성이 있다고 그러니까, 한 번 여기를 아, ‘방문해 보자.’ 하고 여기를 왔어요.
왔는데 그때 당시에 이제 이 처인성 밖에 있던, 그 김후직이라는 사람이, 말하자면 에- 민병을 일으킨거요. 응? 민병을 일으켜가지고 할(활)루다가 그 살리타이를 쏴 죽였어요. 그래 여기서 장수가 죽은 거예요. 그래 지금 현재 저 건너편에는 ‘사장터’라고 하는, 장수가 죽었다고 하는 사장터가 있고.
그 뒤로 인제 그 김후직이는 뭐 인제 충북에 가서 벼슬도 하고, 이래가지고 상당히 이름이 났고. 이 성 밖에 있는 이 순수한 민병이 말이죠. 응 구테타를 일으켜 가지고 몽고대장군 원수를 죽였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옛날의 전봉준이나 이런 사람들처럼 유명한 거지요.
그래두 한양성을 먹고 지배했던 대장이 바로 이 쪼그만한 처인성에 와서 죽었다고 하는 것. 상당히 그래서 여기가 옛날부터 이름있는 고을이고, 에 내가 듣기로는 이 마을 전체가 다 옛날에는 하나의 거 고을 원님이 치리하는 아주 그 장소였는데, 지금은 전부 폐허 되가지고 땅 속에 다 묻혀서, 흔적이 땅 속을 파 보면 기왓장 같은 것이 나와요. 지끔은 폐허가 되고 처인성도 저렇게 방치되 있고, 그래서 여기가 상당히 폐쇄되가지고 가난한 지역이었어요.


󰊹 소를 끌어 올려라
이상묵(40대 후반, 남)/아곡리T 4뒤
[아곡리 권영주씨댁]박종수, 강현모, 김은미, 김혜진, 김은숙 조사(1996. 5. 24.)

앞에서 계속 권영주할아버지의 개인 경험담이나 시사 문제를 듣다가 이야기를 청하자, 옆에 있던 목사님인 제보자가 생각이 나셨는지 스스로 구술하여 주었다. 이것은 제보자의 아버지한테 옛날에 들었다고 한다.

옛날에 들은 얘기가 있어. 우리 아버님한테 들은 얘기인데, 그 아주 친한 친구 두 분이 있었어요. 그 잘 사는 문제 때문에, 서로 이제,
“너희가 잘 산다.”
“우리가 잘 산다.”
서로 인제 항상 만나면은 그 얘기를 했는데, 그 이제 오늘은 이쪽 집이, 인제 친구네를 가 본 거야. 가서 그 친구네를 인제 방문했는데, 친구 보는 앞에서 아들들을 오형제를 다 불렀어요.
“얘야! 오늘은 내 가장 가까운 친구가 왔으니까, 저 송아지를 지붕 위에다 좀 끌어 올려놔라.”
그러니까,
“아버지가 노망하셨습니까? 응! 아 지금이 백주 대낮에 무슨 송아지를 지붕 위다 끌어 올리느냐?”구.
“이거 보라구. 그래서 우리는 가정이 불화한다. 잘 살지를 못한다.”
이말이여.
“그럼 다음에는 자네네 집이 한 번 가 보세.”
또 바꿔가지고 그 집이를 갔어요. 갔더니 그 집이 가서,
“얘야! 내 가장 가까운 친구가 왔는데, 오늘 송아지를 좀 저 지붕 위이다가 아래 지붕이다가 좀 끌어 올려야 되겠다.”
“예!”
멍석을 갖다가 피고, 사다리를 놓고 송아지를 막 끌어 올리드라는 거예요. 그런 데서 아버지 말씀을 순종하고 형제들이 화해를 하니까 잘 사는 가정이 되었고, 이 쪽에는 못 사는 가정이 되었더라 하는 얘기요. 옛날에 그런 얘기가 또 있어요.


󰊵 호랑이에게 새끼를 빼앗긴 소
이상묵(40대 후반, 남)/아곡리T 4뒤
[아곡리 권영주씨댁]박종수, 강현모, 김은미, 김혜진, 김은숙 조사(1996. 5. 2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스스로 구술하여 준 것이다. 

그래 또 한 가지는 시골에서 나온 얘기인데, 이제 소를 송아지 딸린 소를 산골 깊이이다가 매었어요. 이 저녁 때 가 보니, 주인이 가 보니까 싸움이 벌어진 거야. 호랭이하고. 깊은 산 속이서.
그런디 주인이 딱 보니까 호랭이하고 막 그 소 어미하고 말이야 막 싸우니까 무서워서 어, 숲바닥 밑에 가서 바작 숨었잖아. 근데 가만이 이렇게 보니까, 소는 곁눈질해 가면서 말이야. 혹시 주인이 오지 않는가 곁눈질 해가믄선 크 죽을 힘을 다해서 새끼를 안 뺏길려고 싸우는데. 결국에는 고만 새끼를 뺏기고 말았어. 그 주인이 빨리 와가지고,
“이거 큰일 났다.”
해서 새끼를 뺏겼으면 분명히 저 소가 가만히 안 있을 것이다. 이래가지고 집에 와가지고 앞에 싸리문 앞에 바윗돌 있는 데다가, 자기 입던 옷을 쫙해서 허수아비를 잘 만들어 놨어요. 만들어 놓고 피하고 있는 거야. 아닌가도 아니라 새끼 뺏긴 소가 말이야, 막 그냥 미친 듯이 달려와 가지고,
“왜 내가 싸울 때, 주인이 와서 말이야 ‘잘 한다’고 소리만 쳐도 어 새낄 안 뺏기고 이길 건데, 그게 아니라 무서워가지고 숨으니까 할 수 없이 새끼를 뺏겼단 말이지. 그러니깐 이번엔 주인을 죽여야 되겠다.”
하구서 이 소가 달려와 가지고 보니까, 주인이 싸리문 앞에 닥 버티고 있거든. 그니깐 막 머리로 받아 치니까, 그게 주인이 아니라 바위였어요. 그 바람에 암소가 거기서 죽었죠. 그렇지 않았으면 주인이 죽는 거죠.


󰊵 어른 말을 잘 들어야 가정이 화목   
권영주(78, 남)/아곡리T 4뒤
[아곡리 권영주씨댁]박종수, 강현모, 김은미, 김혜진, 김은숙 조사(1996. 5. 24.)

앞의 목사님 이야기를 마치자 마자 곧바로 받아서 제보자가 구술하여 준 것이다. 이것은 인화단결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 그 목사님 얘기와 비슷한 내용인데, 수단을 될라면 으른네 말을 들어야 되는 거여. 전에 한 사람이 앞뒷 집에 사는데, 앞집의 사람은 잘 사는데, 뒷집의 사람은 잘 못 살아. 그래 뒷집 사람이 친구간인데,
“자넨 어떻게 그렇게 잘 사나, 매사 하는 일이 잘 되고 허니께. 자네, 나 자네하고, 자네 가도를 내가 좀, 내가 좀 가봐야 겠네,”
그래 가서나
“나 시기는대로 자네가 아들을 시겨 보게.”
“그럼 어떻게 시기나?”
가서,
“자네 아들보고, 자네 마당을 좀 쓸으라 그러게네. 씰으라고 그러게.”
“너, 이 마당 좀 쓸어라,”
그러니까는. 한 번은 이렇게 씬단 말이야.
“한 번 더 씰어라.”
“아 한 번 쓸었음 그만이지. 쓸으라고 해서 한 번 쓸었으면 그만이지, 왜 또 쓸라는 거요. 아버지는 참 괜히 참, 별 걱정을 다 하시네요.”
그리고 투덜대고 안 쓰는 거야.
“그럼, 우리 집으로 가 보세.”
그래 앞집 사람이 와서 그 아들을 불러가지고,
“너! 이 마당 좀 쓸어라.”
그러니께, 참 깨끗히 쓸어 놓는단 말이야.
“한 번 더 쓸어라.”
“아이! 더 쓸라면 더 쓸지요.”
“또 씰어라.”
그래 두 번을 쓸어.
“한 번 더 쓸어라.”
세 번을 쓸거든.
“이 정도는 되야, 되야지 가정이. 자네 아들은 한 번 쓸고는 안 쓸어. 자네 말을, 아비의 말을 안 들어. 그러니까 집안이 되것나.”
그래 그런 정도는 가정이 통일이 되야 집안이 된다는, 지금도 그래. 지금도, 애미 애비 말 잘 듣는 집은 집안이 되고.


󰊵 순조 임금의 지혜
이상묵(40대 후반, 남)/아곡리T 4뒤
[아곡리 권영주씨댁]박종수, 강현모, 김은미, 김혜진, 김은숙 조사(1996. 5. 24.)

앞 이야기를 마치자 생각이 나는지 스스로 생각해서 구술한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고도 이야기 할려면 한이 없다며 말씀하였다.

그 전에 그 순조 임금이 대신들을 전부 불러가지고.
“저 우물물을 좀 퍼라. 그래 독에다가 좀 채워라.”
그랬는데. 임금님이 시켰지만은 물을 독에다가 부니깐, 이 독의 물이, 인저 저 독의 밑구녕을 뺀거야. 그래 허다가 다들 오전에 작업하고서는 오후엔 다 나가 떨어졌는데, 대신 하나는 그냥 저녁 때까지 또 푸고 푸고 또 퍼서, 결국에는 그 우물물을 말렸어요. 우물물을 다 푼거야.
다 푸고 났는데 보니깐, 이상하게 그 바닥에서 뻔득뻔득 빛이 나거든. 그래 임금님한테 가서 ‘이 물을 다 펐다’고 하기 전에 일단 한 번 그 속을 들어가서 확인을 해 봐야 되겠다 싶어가지고, 물 나는 족족 다 풀나고 들어가 보니까 금덩어리가 하나 있거든. 그러니깐 그 순조 임금님한테 가서,
“임금님! 우물을 제가 펐더니 금덩어리가 하나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임금님이 껄껄 웃으면서.
“그것은 응 순종을 잘 하는 자에게 줄려고 내가 갖다가 넣어 놓은 거다. 이건 네 몫이니까 네가 가져라.”
그래서 그 임금이, 그 신하들의 충성심을 저울질도 해 봤고. 또 열심히 한 자에게는 또 포상도 되었고. 그때부터 조정 대신들이 순종을 잘 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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