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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역
남사면- 통삼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구자욱 (72,남) 원포의 유래-------------------410
(2) 구자욱 (72,남) 유명한 지관인 목없는 할아버지---411 
(3) 구자욱 (72,남) 개심한 외아들-------------------413
(4) 이규식 (77,남) 구대정승 지지의 산소------------415
(5) 이규식 (77,남) 와우형의 마을-------------------416
(6) 양진숙 (50,여) 도깨비 홀린사람(1)--------------417
  ①도깨비를 만났다는 물감장사 
  ②도깨비 행세를 한 도둑
 
(7) 양진숙 (50,여) 도깨비 홀린사람 (2)-------------419
(8) 양진숙 (50,여) 도깨비 홀린사람 (3)-------------420
(9) 양진숙 (50,여) 호랑이와 곶감-------------------421
(10)양진숙 (50,여) 노름에 딸 팔아먹은 사람---------424
(11)윤정숙 (50,여) 도깨비의 장난-------------------426
(12)구진회 (69,남) 비오는 날을 알리는 느티나무-----427
(13)구진회 (69,남) 도깨비 홀린사람(4)--------------427
  ① 자신이 만난 도깨비 
  ② 친구집에 갔다가 도깨비에 홀린 사람

7. 통삼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4., 11. 11.)

통삼리는 용인터미널에서 북리행 버스를 타고 북리를 지나 봉명리 쪽으로 5분 정도 가면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도 용인시내에서 들어오기보다는 오산시에서 들어오는 것이 교통편이 편하다고 마을 사람들은 말을 하고 있다.
통삼리는 원래 용인군 서촌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동막동, 원포동, 북정동, 통곡동을 합하여 통곡과 3마을이 합하였다고 하여 통삼리라 칭하고, 남사면에 편입시켰다. 마을을 이루고 있는 작은 마을들을 보면, 통골 또는 통곡은 가장 전통이 있고 중심이었다는 뜻에서 통골이라 칭하였다고 하고, 마을의 형국이 소죽통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는 마을의 뒷산이 소가 누운 형상이므로 죽통에 비유하여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네 마을 중에 가장 낙후되고 활발하지 못한 마을 분위기였다. 원포는 먼개, 멍개라고 하는데, 저수지와 가까운 곳이어서 배가 드나드는 나룻터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즉 이름은 먼개를 한자어로 고쳐 써 원포라 하였으나, 현제는 나룻터의 흔적도 없고 저수지와도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동막은 옛날에 그릇을 굽던 마을로 ‘사금막’이라고도 불리다가 현재는 동막이라고도 하고, 평택군 진위면 통천리 근처에 장군묘터에 막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동막은 통삼리에서 교통이 가장 불편한 오지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주민과 가구수는 가장 많다. 북정은 북우물이라고 한다. 원포 북쪽에 마을인데, 마을의 큰 우물이 있었으므로 생겨난 이름이다.
이 마을은 총 가구수가 162호에 주민이 648명이라고 한다. 즉 통골 40호 원포 24호, 북정 42호, 동막 60호로 나타나 있다.
통삼리 전체는 능성 구씨들로 이루어진 씨족 사회로서 4개 부락 거의 다 영세한 농업 부락이며, 요즘 인접지역에 들어선 공장이나 골프장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 이외 사람들은 전통적인 벼농사가 중심 소득원이었다. 그런데 농사를 하는 대부분의 노동력은 60대 초반에서 70대 후반들의 고령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 농기계가 현대화 되어 있기도 하였다. 종교적인 특징은 마을에 당제를 지내는 당이 있고, 해마다 느티나무에 고사를 지내는 등 전통적인 관습이 많이 존재해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기독교, 천주교 신자들도 많았다.


2) 설화
󰊱 원포의 유래
구자욱(72, 남)/통삼리T 1뒤
[통삼리 원포]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4.)

일제 때 통신 학원을 나와 우체국장직을 30년 정도 하다가 정년 퇴임한 사람으로서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며 비교적 정확한 발음과 말하는 것도 논리정연 하였다.

용인군 남사면 통삼리 원포 부락이거든. 그래 원포란 것이 인제 뭔 유래가 어떻게 되느냐 허면, 멀 원 개포 포자 해서 원포여. 여기 마을 요기 앞에 그 옛날에 배 타던 그러던 자리가 있었요. 그 지금도 보면, 육안으로 보면 모르지만, 이렇게 뚝 떨어진 데가 있고, 그 배 타던 자리가 있고 그런데.
그 옛날에 한국, 전에 보면 미인개라고 그랬다고, 미인개. 미인개. 그런게 개가 미어(메워) 졌다 이렇게 해서 미인개라고.
일부에는 미인개라고 불렀는데, 그 후에는 발음이 바꿔가지고 인제 멍(먼)개라고 불르고, 멍개라고 한참 불렀다고. 미인개가 멍개로 되고. 그랬더니 그게 차츰차츰 인제 사람이 달라져 가지고, 그 후로 먼개로 됐다구. 먼개. 그래서 멀 원자, 개포 포자 이렇게 해서 원포라고 지어졌고.
여기에 굴 따던, 그래도 뭘 원자 개포 포자 원포라고 이렇게 옛날부터 부락 유래가 이렇게 전해져 온다.


󰊲 유명한 지관인 목 없는 할아버지
구자욱(72, 남)/통삼리T 1뒤
[통삼리 원포]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4.)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자신의 조상의 일이라 기억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이야기를 구술하여 주었다.

옛날에 우리 웃대 조상 할아버지가, 뭐 유명한 그 지관이 계셨다는데. 내가 어른한테 들은 얘기인데. 확실히는 몰러도 그 분이 얘기 허기를,
“여기가 지끔 뭐 구정지향 옥명지향 뭐 어떻게 어디 어디 쯤 해서 9대 정승 지지가 있데는 거야. 고기다 산소를 쓰며는 9대를 정승을 해 먹는다.”
이거야. 그래 우리는 여기 능성 구씨거든. 근데 그 할아버지가 구씨데, 우리 구씨네한테는 운이 안 다(닿)아요. 최씨 아니면 이씨, 고 두 사람한테만 운이 닿지. 우리 구씨는 거기다 써 봤자 효과가 없다구. 그래서 이 냥반이 영 그걸 누구한테도 안 알렸어요. 안 알리고, 워낙 그 유명한 양반이라서 그 뭐 도선 앉히고 이런 양반인데.
그 냥반은 경복궁인가 뭐뭐 건설인가의 궁터 잡을 적에, 그 냥반은 대궐에서 불렀어요. 그래 불렀는데, 그 냥반이 결국엔 안 갔지. 그 안 간 이유는 자기가 가서 잡아줘 봤댔자 당대는 괜찮지만, 몇 대 안 가면 반란, 변란이 일어나가지고 나라가 그 어떻게 잘못되는 경우도 생기고 그래서, 그래 그때 당시에 가머는 잘 하면 충신이지만, 잘못 하면 역적이로 몰리거든.
“그 후대에 가서 내가 역적으로 몰려서 죽을 바 싶어서 내가 안 간다.”
이 양반이 안 갔어. 그래 안 가서 결국은 인저 왕명을 거역했다고 해가지고, 뭔가 그, 응 그 금부도사가 뭔가 와가지고 인자 머리를 비어 갔는데. 그런데 그 양반이 지금, ‘목이 없는 할아버지’라고 별명이 지어져가지고, 그 양반 산소도 지금 저 위에 모시고 그러구. 그 유명한 때야 아주 그 양반.
그 양반이 어따 누구 묘 써 주며는, 그 집이 잘 될 수도 있구 못 될 수도 있고. 그래 인자 한 가지 못 된 일이 내려와 있는데, 아주 옛날에 그 선비라는 거는 인자 가난하고, 인저 고지식 하쟎여. 옛날 지나가다가 들에서,
“밥을 먹어라.”
그래두,
“애 이, 이 양반이 들에서 무슨 밥을 먹느냐.”
고. 그냥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도, 이걸 안 먹고, 그냥 양반치레로 이렇게 갓만 쓰고 도포 입고 이러고 막 지나가고 이랬는데.
그 냥반 친구 한 사람이 아주 그 갑부가 있었어. 갑부가 있고 종도 수십 명씩 거느리고 그랬거든. 옛날에는, 지금에는 백만장자라고 그랬지만, 옛날에는 천석군, 만석군 그랬지요. 그렇게 부자가 있었는데, 이 냥반이 그렇게 생활이 궁핍해두, 영 뭘 가서 줌 눈치봐도 좀 도와줄 것 같더니, 영 도와 주질 않고.
한 번은 이 냥반 뭘 사정을 하러 한 번 갔는데, 안 들어 주더라 이거야. 사정을 안들어 줬어. 그래서 인제 그 후에 친구에 뭐 아버지인가 누가 돌아가셔 가지고 인제 산소를 잡게 되었는데, 그 유명한 지관이니께, 그 인저 모시고 왔어. 그래 이 양반이 그 그냥, ‘나 그렇게 못 살고 고생할 적에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고 볼펜대나 굴렸다’고 해서, ‘너 이놈 좀 두고 보라’, 두고 보라고 해 가주고 산소 자리를 잡아 주었어요.
근데 그 자리가 무슨 자리냐 하면, 종이 없어지는 자리라고. 종이 하나두, 인제 종이 없어지며는 그 생활이 인제 기울어진다는 얘기지. 고런 자리에다 해주어가지고 집안도 뭐 기울어져 가고, 종이 하나 둘씩 뭐 죽거나 어디로 도망 가거나 이렇게 싹 이래 없어져 가지고. 그런 일이라도 있는데, 사실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렇게 유명했다는 양반이여. 그런 일이 있는데, 그래 몇 대조인지도 나는 잘 몰러. 인제 족보 가지고, 족보를 찾아보면 알 수 있는데, 정말 그런 유명한 할아버지가 계셨었어.


󰊳 개심한 외아들 
구자욱(72, 남)/통삼리T 2뒤
[통삼리 원포]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4.)

구대지향이나 복향지향의 등 풍수에 관련된 말씀을 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제보자는 태어나서 우체국장을 정년퇴임 한 후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한 후 마지막으로 설화 하나를 더 해주었다.

두 내우가 외아들 데리고 사는 거. [청중 : 응!] 두 내외가 외아들 데리고 살면서, 맨날 뭐 할께 없으니까, 그냥 아버지는,
“엄마 때려라.”
그러구. 엄, 뭐 엄마는 뭐,
“아버지를 때려라.”
그러구 서로 자꾸 ‘때리라’ 그랬대나. 그런게 그 애들 까부는 거 볼라구, 어려서. [청중 : 그래 좋은 세상이지 뭐.] ‘아부지 때려라.’ ‘엄마 때려라.’ 그런 거여. 그런게 얘가 어려서부터 맨날 때리는 게, 그게 보통 예사 줄 알고, 커서도 계속 때렸다는 거야 이놈이 커서두. 커서 계속 때리구 그냥. 맨날 돈 가주구 장에 가서 술이나 처 먹구 와서 이냥, 맨날 이냥 작대기로 후려 치고 이래서, 그 버릇을 못 가르쳤다는 얘기지.
근데 이놈이 인자 하루는 장엘 갔는데, 동네 인제 친구들과 같이 갔지. 갔었는데 한 놈이 뭘 자꾸 사는데, 그 놈이 뭘 사더라는 얘기야. 그래서,
“너는 뭐 할라구 자꾸 그걸 사니?”
그래니께.
“이거는 우리 어머니 드리고, 이거는 우리 아버지 드리고. 이거는 뭐해 드리구 뭐해 드리구.”
그래 자꾸 산다 이거여.
“아, 너 그까짓 것 왜 사 임마! 집에 다 있는데.”
그러니까.
“너두 이거 사다가 어머니 아버지 해 드리고 그래. 어머니 아버지가 오래 살고 좋은 거다.”
그랬는데. 아 이놈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는 그걸 몰랐거든. 맨날 사랑만 받아서 그냥 잘 입히고 잘 멕이고 그냥, 맨날 그냥 어머니 아버지 서로 때리란께, 그게 그냥 일인 줄 알고 맨날 그짓만 했는데. 아니 뭐 가만히 이렇게 보니께, ‘아 이게 내가 사람 구실을 못 하는구나!’ 그래 이게 친구놈 때문에 이놈이 정신이 번쩍 난 거여. 응. 근데 이놈이 동구 바깥에 오더니. 그냥,
“엉!엉!”
울며 들어 오더래는 거여. 이놈이. 응, 통곡을 하면서. 그래 인제 지 어머니가 쫓아 가서,
“아니 너 이놈의 자식! 장엘 갔다 오더니 왜 싸웠니? 왜  울며 들어오니?”
그랬더니. 아 이 털썩 주저 앉으며 이놈이,
“어머니, 아버지한테 내가 여태 불효하고 잘못했다고 말이여. 아무개가 뭐뭐 엄마 아버지를 준다고 자꾸 사서 보따리 들고 그랬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여태 어머니 아버지 서로 때리는게, 그게 좋은 일인 줄 알고 여적지 평생을 그렇게 지내 왔는데 영 잘못했다고.(일동웃음) 불효 자식 노릇 했다고. 이제 다시는 안 그런다.”
고. 지 어머니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는 그런 얘기를, 내가 한 번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렁께 ‘애들은 귀엽게 키우면 안 된다.’ 그런 얘기지 뭐.


󰊴 구대 정승 지지의 산소
이규식(77, 남)/통삼리T 3앞
[통삼리 통골]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11.)

제보자는 직업이 전도 하는 일이다. 때문에 이 마을에 자주 있지 않고 주로 성당에 가거나 병자들과 노인들을 위하여 자원봉사를 하러 다니고 있었다. 첫번 조사 때 마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을과 설화에 대하여 안다고 해서 찾았지만 만나지 못해, 두번째 조사 때 마침 성당에서 철야기도를 하고 막 돌아온 제보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나무도 맥을 못 춘다고. 그래서 약 먹고 죽지, 그러면 그것이 연대 책임이 있어요. 다시 말해서 유전본능, 그래서 우리 동네는 저수지도 있고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런 불행한 일은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여기는 대성이 살아요. 구관하고 대성. 그래서 그런 불행한 일은 없었다고.
[조사자 : 구가에 대한 전설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건 저 여기 저리, 에- 구씨들이 여기서 살았는데, 여기가 인제 구대 구대정승 9대째 가서 정승할 자리가 있다는 거야. 산소짜리가, 골짜구니에. 있는데 인제 9대라고 하니까, 구서방네에라구 풀이도 하거던. 애 이 가출 구자 아냐. 성 구짜라고 그러구. 9서방내, 그래 여기서는 그전에는 정서방도 살았고. 여러 사람들이 살지 않았어. 그러니까 구가들이 정승을 할 수 있다 그런 자리가 있다는 얘긴데.
또 달리 해석을 하면 구대, 구대, 한대 이대 일대가 100년씩 아냐. 그러니까 인제 9대에 가서, 인제 정승을 한다고 볼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서 오래 살다가 보면, 인제 9대 손에 가서 정승 될만한 정승이면, 지금 뭐야 국무총리 뭐 그런 거지. 국무총리며는 일인지하 만인지상 아냐. 뭐. 그런데 저 자리를 말이지. 여기 저 구서방들 조상들이 아르켜 주지 않고 죽었어. 그 자리를 있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뭐냐면, 성경에도 보면 만사는 때가 있다고 그랬어. 무슨 얘기냐? 집에 나가면 볼 일 보는데 따라서 말이야, 한낮에 들어오는 사람, 저녁에 들어오는 사람, 밤에 들어오는 사람 있쟎아. 응. 쓰러진 사람 쓰러졌다고 그대로 땅에 엎드려 있지 않지. 일어나지. 우는 사람 그칠 때 있지.(웃음) 그와 마찬가지로 때가 있는데, 때를 기다리지 않고, 고 자리가 9대 정승 자리라고 해가지고 산소자리를 쓰면 도리어 화를 입어요.
그러니까 그런 걸 알기 때문에, 이 골짜구니에 9대 정승 자리가 있다라는 얘기만 하고 어른들이 돌아간 거야. 그러니까 인제 그 때가 돌아오며는 구서방들 그 자리를 쓸런지. 다른 사람들이 아직 영조, 오래 살아가지고 9대손 그때 가서 그 자리가 그저 그 묘지로다가, 이렇게 선정을 해가지고 써서, 옛날에 정승이 지금은 뭐야, 국무총리에 이런 사람들이거든. 장관급 들이거든. 그래 그런 거 하나 한다 그 얘기야.


󰊵 와우형의 마을
이규식(77, 남)/통삼리T 3앞
[통삼리 통골]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같은 풍수지리와 관련된 이야기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구술하여 주었다.

여기가 와우장이야 와우정. 통골 여기가 와우정. 자리가 말이야, 누울 와짜 소 우자 소가 이렇게 누워 있는 형상이야. 그리고 인제 여기 뒤가 그전에 그게 4~3개 요렇게, 7~8단 이렇게 여 느티나무 있는 데가 소가 이렇게 이렇게 누워 있잖아, 이렇게. 있으면 인제 한나절 되면, 소죽 먹으라고 점심 먹으라고 이렇게 소죽통을 갖다 놓은 자리야. 바로 요 느티나무 자리야.
인자 그랬는데, 어떤 돈 있는 사람 말이야, 주택 단지로다가 조성하느랴고, 한 3~4개, 한 서너 길을 파 냈어요. 그러니까는 구녕이 없어진 거지 뭐야. 구녕이 없으니까는 어떻게 해. 소가 허기져 배고파 말이야 어떻게 돼. 사람이나 소나 말이야 배 고프면 지랄떨 거 아니야. 지랄 막 쓴다는 얘기야. 지랄빠며 어떻게 되. 미꾸라지 보안이 생길 수도 있단 얘기지 그게. 그런데 그럴 걸 갖다가 동네 사람들이 나이가 어리고, 또 예전 노인네들은 다 돌아가고 하니까는 그런 걸 말이지 믿지를 않아요. 인제 현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말이야.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이 풍수지리설에 입각해서 믿고. 그래서 이 동네에도 그 환자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그전에는 없었는데. 그래서 지금 그런 것이 걱정이 된다구.


󰊶 도깨비 홀린 사람(1)
양진숙(50, 여)/통삼리T 3앞
[통삼리 통골] 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11.)

슈퍼를 경영하는 제보자를 원포로 가던 중에 만났다. 조사자들은 우연히 슈퍼에 들렸다가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만, 제보자들 중 가장 많은 설화를 알고 있었다. 이야기 해 주는 동안 슈퍼에 손님들이 간간히 있었지만 끝까지 즐겁게 구술해 주었다. 남편은 농사일을 하고 있으며 두 딸만을 두고 있었다.

 

① 도깨비를 만났다는 물감장사

친정에 그 물감장사 하던 아줌마가 여기 오산장엘 나오는데, 이 오산장엘 갔다 오다 말고, 그 등너머에 산이 있는데. 고 산에 혼저 해는 무럭무럭 가는데, 장에 갔다가 물건을 해가지 이렇게 오는데, 산속에서 멍텅구리 쓴 사람이 어슬렁 어슬렁 오더래요.
그래서 이 아주머니가 무서워가지고, 이제 허리끈을 냅대 쫄러 멘고 집이를 올라고, 막 도망을 올라고. 가죽띠를 돈을 떨어 달라고 했는디, 왜 나왔는지 그거는 모르지. 그런데 고기 있는데, 고 산중턱에서 어슬렁 어슬렁 멍텅구리 모자를 쓰고 내려오는데, 그 아주머니가 소변 보는 거마냥 가만히 앉아서 각띠를 졸려 맺대, 허리빠를. 쫄려 매고서 이렇게 일어서니까, 그 멍텅구리 아저씨가 그냥,
“너 요년! 고기 있어라.”
는 바람에. 그 아줌마가 놀래가지구, 그 산등성이를 갠신히 뛰어 넘어오니까, 고개 꼭대기까지 부뜰러 말락해다가 그냔 안 잡혔데. 그래가꾸 넘어와 갖구 그니가 병이 들었는데, 그 니가(사람이) 그 저까지 살고 있어, 그거는.

② 도깨비 행세를 한 도둑

그래고 한 할머니는 그기서 멍텅구리 귀신. 귀신도 아니고 돈 빼앗서 먹는 강도겠지. 그래 고기서 있어 갖구, 한 할머니는 각띠를 쫄라메고서, 그 할머니도 역시 인제 오줌, 소변을 보면 안 쫓아 올까 하고 길, 산길에서 인저 앉어 갖구, 그 할머니도 허리띠, 그 할머니는 더 노인 할머니지, 물감장수 하는 할머니라. 그래서 그 할머니가 고기 산중턱에서 그냥 이리도 못 가구, 저리도 못 가고 하는 사연이라. 그냥 각띠를 꼭 쫄라메고서, 저기 뭐야 일어나니까, 그 할머니더러두,
“요 늙은 년! 고기 있어라.”
그래갖구 쫓아와 갖구 그 할머니는, 오산장에루 다시 급쳐 갔데. 집으로 못 오고. 그 비탈에 올라가자니 힘이 드니께, 붙들릴까 봐. 그래 오던 길로다 막 뛰어가주고, 그 한 고향 젊은 남자들하고 만나갖고 집으로 왔대. 그런 소리를 듣고 그랬었거든, 그 할머니한테. 그 놀래서 병들은 사람은 그저 죽지 않고 살았어.
친정 동네에서. [조사자 : 그 무슨 년요. 그 할머니한테 하던 그 사람은, 그게 도깨비예요? 그게.] 도깨비가 아니고 도둑 놈인지. 그 할머니가 도깨비로 보였는지. 그냥 도깨비가 그냥 강도로 그냥 보였는지, 멍텅구리다. 그전에 도둑놈들, 나쁜 놈들은 멍텅구리 모자를 쓰고 다녔어.


󰊷 도깨비 홀린 사람(2)
양진숙(50, 여)/통삼리T 3앞
[통삼리 통골]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11.)

앞의 이야기에 이어서, 소재가 같은 도깨비란 점에서 생각이 나셨는지 계속하여 구술하여 준 것이다.

한 이거는 실지 우리 친정 아부지가 저기 겪은 이야긴데. 우리 친정 아부지가 그전 때 소를 길러 가주고 소를 팔러 오산장엘 가셨어.
가셔 가주고 소를 팔아갖고 오는데, 그냥 그 중턱 길을 오는데, 밤에 저물어 갖고 모세를 막 끼언더래요. [조사자 : 모새요?] 응. 흙을 막 끼언구. 그래 양 큰 기침을 해구 그냥, 저기를 해구 그래도 그냥 계속 돌막을 던지며 쫓아오구 그래서, 밤새도록 싸우고 오셨는데.
돈이고 뭐고 빈 주머니야. 소값을 찾았는데, 빈 주머니여. 그래서 산중턱에서 그렇게 밤새도록 날이 새두룩 싸우다가, 어떻게 날이 새가주고 집이로 오셨는데, 싸운 자리에다가 그기다 담배고 돈이고 다 있드라. 도깨비를 완전히 홀린거지. 강도 같었씨먼 돈을 뺐어갔지. 그거는 실지 겪는 얘기 들은 거여, 우리 친정 아버지가. 그냥 논에서도 게데기를 치고 그래갖구 그냥 옷도 다 버리구 그리구 오셨더라고. 그거는 실지야. 소 팔아 갖구 오다가. 돈도 다 그냥 길에다 버리고.
그냥 다시 깨우갖고 가서, 날이 새서 가서 새벽녁에 오셨구만. 도깨비하고 밤새도록 싸우서, 그게 지면 죽는데, 거기서 죽는 거래. 그런게 죽지 않고 오셨으니까, 다시 거기를 갔는데, 강도 같으면은 그 돈을 모두 가져갔을텐데, [조사자 : 거기 다 있었어요?] 잉. 그래니까 돈이 거기 있었으니까, 실제 그건 도깨비 홀린 거지. 그거는 실제 들은 얘그여. 우리 친정 아버지가 겪은 얘기고.


󰊸 도깨비 홀린 사람(3)
양진숙(50, 여)/통삼리T 3앞
[통삼리 통골]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11.)

앞의 이야기에 이어서 같은 도깨비에 관해 계속하여 구술하였다.
 
한 사람은 소금을 사러 시장엘 갔는데 날이 저물어갖구 오는데, 한없이 그냥 산비알이 나타나더래. 그 길두 읎구. 그래가주고 그 소금자루를 지고 그게 얼마나 힘들겄어, 그 산비알 길도 없는 데로 험해니.
날은 그래 아무리 봐두 길도 읎고. 그냥 저기 동네 마을도 안 보이구. 그냥 산중이래. 그냥 밤새도록 소금자루를 지고서 싸우다 싸우다 지치고서, 거기서 싸운 데서 자고 일어나 보니께, 소금 자루도 읎구. 아무 것도 없구 산소에서 잤데.
그래가주구서 날 새가주구 보니께, 싸운게 빗자루에 피 묻은, 그 빗자루를 끌어 안구 잠든 겨. 그래니께 그게 귀신인지, 그 할아버지 얼굴에다 뭐 어떻게 잘못 보였는지, 그런 얘기는 들었어.

 
󰊹 호랑이와 곶감
양진숙(50, 여)/통삼리T 3앞
[통삼리 통골]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호랑이와 곶감이란 이야기를 부탁하자, 한 번은 들은 이야기라 틀릴 것이라고 주저하였다. 제보자는 전번에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과 대화하였음을 자랑하였다.

그냥 애기가 하두 울어가주고 달랠 길이 없더래. 빌거를 다 줘도 울고울고 그래서, 그냥 그냥 업구서 그렇게 밤새도록 달래도 하도 울어서,
“아이고, 곶감 왔다.”
그러니께. 그 어린 애가 그때서 딱 그치더래. ‘곶감 왔다.’ 그래는데, 그 할머니는 할머니 소리로다 애가 하두 울어서, 달랠 길 읎어서는 그냥 문득 무심코 한 소린데.
그 그날 저녁에 ‘곶감 왔다’ 하는 소리가, 그 할머니는 그냥 무심코 했는데, 그날 저녁에 도둑놈이 와 가지고, 산중인데. 뭐야 호랭이, 호랭이가 두루(들어)와가지고 오양간에 들어가서 엎드려 있는데, 그 도둑놈이 소를 훔치러 왔다가, 깜깜한데 이렇게 가만히 만져 보니께, 반드러러하고 수수하니까 손(소)줄 알고 그 호랭이 등에 올라 탔댄다. 타구서 그 호랑이가 손줄 알고 그 도둑놈이,
“이려, 낄낄!”
헌께. 호랑이가 놀래서 일어날 거 아니냐. 그래가꾸 그 호랭이가, 인제 벌떡 일어나서 밖이루 나와갖구 한없이 갔댄다. 들판을 타고. 그래 한없이 가는데, 저기 밤새도록 그 호랭이가 달려 간거지, 놀래가주고.
그래니께, 이 저기 도둑놈은 손줄 알고, 밤에 가다 보니께, 캄캄해서 가다 보니까 날이 새서 보니깐, 그 등어리를 보니까, 소가 아니고 호랑이래요. 그 호랑인데, 이 호랑이가 인저,
“내 밥이다.”
해구서 지 굴로다가 갖구, 가갖고 도둑놈을, 인저 잡아먹을라꾸 호랑이가 지 굴루다가 새끼들 많은 데루 들어갈라구, 거길루다 막 달려 가갖구, 지 굴 속으로 들어갈라구 인저. 도둑놈은 손줄 알고 ‘잘 됬다.’ 나온건대. 인저 훔쳐다 팔아 먹을라구 그 소등어리인 줄 알고 타고 나온 건데. 그래 인저 이 호랭이는 ‘내 밥이다’ 해구 새끼들 맥일라구 한없이 제 굴속을 쫓어서 가는 거여.
가는데 날이 새니께, 호랭인데 어떻게 핼 길이 없어. 떨어져두 그 호랭이한테 죽을꺼구. 정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굴 속에 들어가면 인저 고기밥이 되는 거여, 호랭이 새끼들한테. 그래가꼬 어떻게 핼 수가 없어서 한없이 가는데, 들판에 그냥 능수버들 나무가 있더래요. 축 늘어진게 땅에서부터 큰 무슨 나무가. 그래서 거기를 그냥, 그 밑구녕을 지나갈 적에 그 도둑놈이, 그 능수버들 가쟁이 척 늘어진 가쟁이를 그냥 탁 잡았데요. 탁 잡으니까 그냥 거기가 데룽데룽, 점프 뛰어갖고 탁 이냥 잡으니까, 대룽대룽 메달리고, 호랭이는 호랭이대루 도망갈 꺼 아냐. 그래가주구 그 호랭이가,
“아쿠! 곶감, 곶감 노쳤다.”
그래구 그냥, 자기들 집으로 막 뛰어가주구 새끼들 있나 조사해구 와가지구, 저기 와가지고 다시 그 도둑놈 느티나무 올라간 디를 와가지고 올려 보니까. 뭐 가지나무 붙잡고 있다가,
“거기를 어떻게 올라 갔니?”
그러더래, 호랭이가. 그러니까 그 도둑놈이 머리를 썼대요. 그 호랭이 못 올라오게.
“저 마을 가갖구 기름 한 병을 얻어다가 들어 붓고 미낀미낀하게 여기를 올라 왔다.”
그러니까. 호랑이가 가갖구, 마을에 가서,
“으흥!”
그래니께. 그냥 마을 사람들이 다 도망 갔데.(손님이 와서 제보자는 잠시 후 마당으로 나와서 말을 잇는다) 그래가주구 호랭이가 마을에 가서 ‘어웡!’ 그러니까, 인저 기름 좀 읃으러 내려가서 ‘어엉’ 그래니까, 마을 사람들이 놀래갖고,
“아이쿠! 호랭이.”
다 도망 갔네, 마을 사람들이. 그래 뭐 사람이 있어야지 기름을 읃지. 그냥 마을에 어떤 집이를 들어가서, 찬장에 가서 기름 한 병 갖고 나왔데요, 호랭이가. 그래갖구 그 호랭이가 그 나무에다가 붓고 올라가니께, 이게 미끄러우니까 숫호랭이야. 미끄러우니까 그냥 ‘찍-’ 미끄러져 ‘풍-’ 떨어지고 ‘찍-’ 미끌어져 ‘풍-’ 떨어지고.
“너, 거기 곶감아! 곶감아!”
도둑놈더러. 인저 할머니가 애 달랠 때, ‘곶감 왔다.’ 하니까, 그게 도둑놈 이름이 곶감인 줄 알고 호랭이가.
“이 곶감아! 너 그거, 저기 어떻게 올라 갔니? 똑똑히 일러다오.”
그러니까. 기름 붓고 올라왔데니까. 그러고 인저 못 올러오게 하느냐고. 그래 기름을 부니께 더 미끄러져서 올러갈 수 있어? 그래니까 이놈의 호랭이가 이 마을에 다시 내려 갔다. 또 내려 가서 깔끼(갈퀴)를 하나 빌리러 내려간 거여. 빌리려 내려가서, 깔끼를 하나 빌려가꾸 와갖고, 호랭이가 깔끼로 그 나무를 ‘컥컥’ 미끄러운 거를, ‘컥컥’ 찍었다. 껄쭉 껄쭉 해야 기올라 가기 좋으니까. 그래가주고 ‘컥컥’ 찍구서, 쪼끔 올라 가다가 컥콕 찍고 올라 갔어.
올라 가니까 이 도둑놈이 머리를 쓴 거여. 올무를 해가꾸, 이 늙은 호랭이 올러오는 거를 중간쯤 올러오는 거를, 올무로다가 호랭이 숫놈이니께, 불알을 올무으로다 탁! 얼그체 갖고 탁 잡아 다녔단다.(일동웃음)
그래서 그 끄댕이를 놓쳐 갖고 펑 떨어져서, 호랭이가 나무꾸렁에 똥구녁이 확 찔려갖구 죽었덴다. 그거 끝이랜다.

󰊱 노름에 딸 팔아먹은 사람
양진숙(50, 여)/통삼리T 3앞
[통삼리 통골]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1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조사자가 다시 부탁하자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였다. 이 이야기는 99에 돌아가신 할머니한테 들었는데, 그 할머니는 시집와서 신랑하고 잠을 못자게 시어머니가 가운데서 지키고 또 두드려 패서 맨날 코피 터지고 그러면서도, 대문간에서 자구서도 아들 육형제를 두고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라고 한다. 제보자는 이것을 마지막 설화로 풀어 놓는다.

옛날에는 가마 타고 시집을 갔잖아. 근데 옛날에는 어떤 아저씨가 그기 마을에 사는 친정어머니, 우리 옆집에 사는 아줌마가 있는데, 그 집이 작은 집이래. 작은 집인데, 그 아저씨가 하두 놀음을 좋아 해가지고 돈을 다 잃어서 나중에 할께 없으니까, 
“그럼 집에 딸이래두 줄 수 있느냐?”
“내 딸이래두 줄테니 또 해자.”
고. 그 본전을 찾을래구. 그래 본전을 찾을라구. ‘딸이러두 쟆히고 해라.’ 그래갖구 그날 저녁에, 내일 내일은 시집, 딴 데로 혼인을 정한 딸인데. 그거를 메껴 놓고 노름을 해라구. 그래가주고 돈을 다 잃었으니깐 눈이 두집어 지잖어. 그런게 혹시나 인저 그렇게 해갖구 본전이라두 찾으까 해구 또 했단다. 놀음을.
그래가주구 했는데, 그 그니가 딸 저기 쟆혀 놓고 핸거지. 그 돈을 찾을라구. 그런데 외려 훨씬 더 많이, 돈을 많이 잃어 갖구 어떻게 감당을 핼 수 없이 잃었대요. 날이 새두룩 했는데. 그래서 딸을 주기로 했대요. 그 딸은 딴 데로 시집가기로 했는데. 내일이 잔친데 오늘 저녁에.
그래가주구 인저 이 사람이 조으니께, 딸을 노름꾼한테 조야(줘야) 되는 거 아녀. 그랭께 집에 가서 어떡해 노름해서 잃었으니,
“아무개를 누구네 조야 되는데.”
그 말을 어떡해 하나, 아부지가 되가지고. 못 해는 거지. 혼인이나 안 정했으면 몰르까, 혼인을 정해 논 딸인데. 새벽같이 인저 신랑이 가마 미고 올텐데, 데릴러. 그 때는 가마 타고 시집을 갔잖아.
그래서 보니까. 이 사람 속셈에는 집에 가서 그 말을 못 해구. 훤히 날 새니까, 먼동 트니까, 인제 잃어도 잃어도 보통 잃은 게 아니지. 막 말로 부인네도 주게 생겼지. 그래서 인제 훤히 먼동 트니께, 일단은 집으로 가야 될 것 아녀, 잔치날이니께, 아부지가 되서. 그래 갔데요.
가서 인제 그니는 걱정이 되서 이러게 마루, 마당에 나와서 저 마을 끄트머리를 쳐다 보니까, 가마가 따루따루 왔으면 아무나 먼저 온 거를 얼릉 주는데, 가마가 앞뒤로 온댄다, 가마를 미고. 인저 그 속 안에 신랑이 타고 하인들이 미고 오는 거지 뭐여. 옛날에는 하인이 미고 다니잖어.
그래니까 인저 하인이 미고서 앞뒤로다 오니 어떡해 핑계를 대요. 핑계 댈 수가 없지. 노름꾼이 먼저 오든 간에, 혼인 중인 사람이 먼저 오든 간에 해무는(하며는) 좀 떨어져서 오면은 얼릉 색시를 내주고 지가 어디로 가든지 얼른 가잖어. 그러니 앞뒤로 이렇게 오니,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줘. 보니께 혼인 중에 있는 사람이 뒤에 오고, 노름꾼이 앞에 오더랜다.
그래가꾸 요렇게 붙어서 오는데, 이 사람들은 인저 잔치가 각 집인 줄 알지. 그 집에 색시 하나를 둘이 내끼로 가는 거를 꿈에도 생각 못 해고 오는 거지 뭐여. 앞뒤루 오는 게. 그래니께 색시 아부지가 내다 보니께 기가 막해지 뭐여. 쌍가마가 오니까.
그래 그 하인들은 한 마을에 잔치가 두 집인가부다 해구, 신나게 둘이서 걸머지고 오는 거지. 색시를 데릴러. 그래니께 색시 아버지가 내다보니 기가 맥히지. 뭐라구 말을 못 해구. 그래니께 빨리 뛰어 들어 가서, 바를 갖구 가서 뒷동산에 가서 참나무에다 목을 매달아 죽었대드라. 그래가주고 죽었으니까, 혼인 중인 신랑이 이 색시를 데리가구.
본인이 있어야 말한 근거가 있어야 색시를 데려가지, 이 노름꾼이. 그래니까 이 놀음해던 아저씨를 찾는 거여. 색시 아버지를 찾는 거여, 그 동안에. 근께 식구들은 죽은 지도 모르구, 뒤에 가서 목 맨지도 모르고. 그랜께 이 저 혼인 중인 신랑은 버젓이 색시는 가마에 태워서 데리구 가구. 아버지는 목 매달아서 뒤에서 죽구. 이 놀음꾼은 그 사람을 막 찾는 거여. 그거는 실지로 여기서 있었던 일이여. 그 얘기 옛날에 할머니한테 들었어.


󰊱 도깨비의 장난
윤정숙(50, 여)/통삼리T 3뒤
[통삼리 원포]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11.)

조사자들은 슈퍼 아줌마에게 조사를 마치고 작별을 한 후 원포로 향했다. 원포 마을 어귀에는 큰 소나무가 보였고, 통골보다는 가구수나 규모가 작은 부락이었는데, 첫번째 민가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인 제보자를 만나 조사하게 되었다. 제보자는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살던 저기 주인은 서울서 살고 살았어. 살았는데 그 사람이 여기 사는데, 밤이면은 돌을 이렇게 마리(마루)에다 던진 데요, 도깨비가. 그러머는 문고리가 딸그락 딸그락 했데.
그래구 인제 나오면은 소당 뚜껑을 그냥 이렇게 바로 덮어 놓은 논 거를 퍼떡 젖혀서 요렇게 엎어서 놓구. 그래두 빨래 같은 것두 해노서 널어노먼은, 다 걷어다가 저기 개구녕께에다가 내버리구 그렇데.
집안이 안 될라면 그랜데.


󰊱 비 오는 날을 알리는 느티나무
구진회(69, 남)/통삼리T 3뒤
[통삼리 원포]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11.)

조사자는 앞의 제보자에게 조사를 마치고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나섰다. 마을 길을 따라서 계속 걷다가 집앞에서 일하고 있던 제보자를 만났다. 젊을 때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라면서 ‘도깨비 본 이야기’와 ‘느티나무 구렁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이 느티나무는 한 오백 년 된 느티나무인데, 날이 궂을라면은, 비가 올라믄은 거기서 큰 구렁이가 나온다는 거지. 구렁이가. 나오먼은 번개 빛이 번득번득 해지면은 비가 온다는 거여. 그래 여기 써 붙여더니 빼서 집어 내버렸어.(느티나무 앞 간판을 두고 한 이야기)


󰊱 도깨비 홀린 사람(4)
구진회(69, 남)/통삼리T 3뒤
[통삼리 원포]박종수, 강현모, 박은주, 채한일, 윤영배 조사(1995. 11. 11.)

이야기를 하기 앞서 도깨비를 만난 경위를 설명하기 위하여 앞부분에 병장 구두를 사 신으러 서울역에 갔다가 놀음을 하였다고 하는 부분을 생략하였다.

① 자신이 만난 도깨비

(병장구두를 사러 서울역에 가서 놀음한 과정은 생략.) 그래 가서 병장 구두 사서 신으러 서울 갔다가 서울역에서 다 내비리고 오는데, 여긴 능굴이라고 있어요, 능굴. 그전, 지금은 차로 댕기지만, 고냥 여기서 이렇게 해서 오산으로 걸어 댕겨다고.
근데 인저 저녁에 오는데, 그 능굴이 하도 무서워서 그리 못 오고서, 저 동축골로 해서 이리 이 삼거리로 해서 이리 오는데, 늘 요기 행정축 있거든, 요 위에. 그전에. 그래 거기가 또 무서워서 못 오겠더라구. 그래 저 원포 동네로 들어갔다가 요리 넘어오는 길이 있어요.
이리 넘어오는데, 기냥 머리빗이 쭈삣 하더라구, 무서워서. 그래 그때 학생모자를 썼다가 이러키 보니께, 왠 하얀 노인네가 키가 구척 같은 양반이 앞에 나와 있어. 그냥 이 머리가 뻗치는 것야, 무서워서. 그래 아는 분이면 인사를 할라고 이러키 보니께 없어졌더라구.
그래 하두 무서워서 집에 와서 그런 얘기를 했었지.

② 친구집에 갔다가 도깨비에 홀린 사람

그러구 요 넘어 우리 친구가, 나하고 동갑네 친구가 있는데. 그 사람이 개를, 워낙 절친했단 말이야. 그래 개를 붙잡아 놓고 ‘개국을 먹으러 오라’고 그러드래, 밤에.
갔다 오는데, 어떻게 이 사람이 술을 권하는지, 술이 참 이만큼 쳈단 말여. 그래 또랑에 와서 씨러졌는데, 그래도 정신은 있어서 집이는 왔시유. 와서 자는데, 저 사람(옆에서 일하고 있는 부인을 가리키며)이 인저 옷을 흙강아지가 묻었으니까, 베끼는데 궤타리 그때만 해도 바지여 바지. 이런 양복이 아니고. 그 궤타리에 송사리가 한 서너 마리 또랑에 씨러졌으니까.(웃음) 그 나왔다 그러더라구.
그래구 여기 이 팔정 사방이 우리 구서방네 선산인데, 거기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었어요. 여기 해방되고 나서 일본놈의 새끼들이 죄 비어 먹었지.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는데, 저기 인저 거기서 그네를 메고 뛰는데.
저 겨를이라고 거기서 왠 뻘건 불이 그냥 환하게 비치여. 그래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냥, 그때만 해도 어려서 무서워가지고. 그 모였던 사람도 다 헤지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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