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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역
남사면- 봉명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제보자1 (?,남) 맹희장군의 일화--------------------430
(2) 제보자1 (?,남) 이순신 장군의 최후-------------------431
(3) 제보자1 (?,남) 혹부리영감---------------------------432
(4) 제보자1 (?,남) 고려장을 폐지한 유래-----------------435
(5) 제보자1 (?,남) 구렁이에게 잡혀 먹을 뻔한 사람-------441
(6) 제보자1 (?,남) 물레방아간의 도깨비------------------442
(7) 제보자1 (?,남) 여우 구슬을 먹고 지리를 안 박주부----444

8. 봉명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유대웅, 유현진, 이지아 조사(1996. 6. 10)

봉명리는 용인에서 남사면의 소재지인 봉무리까지 왔다가 다시 이곳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도착하였다. 이 마을은 남사면 서쪽의 중앙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이 마을은 교통편을 용인에서 이용하는 것보다 오산에서 들어오는 것이 훨씬 편한 곳이라 한다.
봉명리는 용인군 서촌면과 도촌면 지역의 봉명산 밑에 있는 마을로 그 주변에 구명곡이라는 골짜기가 있어 봉명굴 또는 봉명동이라고 불려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버등이(유평등) 등축골, 도촌면의 수세울(수세동)을 합하여 봉명리라 하여 남사면에 편입시켰다.
이 마을을 이루는 유평동은 원래 버등이라고 하는데, 버등은 버덩에서 비롯된 말이라 한다. 버텅은 높고 평평하며 나무가 없이 풀이 주로 난 땅을 말하는데, 이런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이곳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어 유평이라고 한자로 쓰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세울(수세)은 앞의 개포가 있어 조수에 밀려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동안에 씻겨나가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졌고, 밤골(율동)은 밤나무가 많이 있어서, 그리고 남뜸은 현재도 남씨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도 하고, 남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2) 설화
󰊱 맹희 장군의 일화
제보자1(남)/봉명리T 1앞
[봉명4리]박종수, 강현모, 유대웅, 유현진, 이지아 조사(1996. 6. 10)

조사자들은 봉명 4리에 도착하여 마을의 노인정을 찾아 갔으나 한 분도 안 계셨다. 그래서 길가에 서성이다가 지나는 사람에게 묻자 제보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집으로 찾아가서 찾아온 목적을 말하고 이야기를 부탁하였다. 그러자 제보자는 이곳 주변에 있는 산성이 생긴 유래에 대해 말씀을 하였다.

이웃에 산성이 있는데, 산성이 있는데 그 산성을 누구레 쌓느냐. 맹희 장군이 쌓어. 맹희 장군. [조사자 : 맹희 장군요?] 맹희라는 거 알아? 맹희 장군이 산성을 쌓고.
싼 원인은 중국하구 전쟁을 해기 위해 쌓은 거야, 그 맹희 장군이. 그 옛날에는 이제 그 장군한테 항복을 받아야 전쟁을 하고도 승리가 되지, 항복을 받지 못하면 암만 해야 소용 읎어. 그 백성들 많이 죽여 봤자. 장군을 잡아야지, 장군을 잡지 못하면 아무 전쟁에 효과가 없어. 그래서 맹희 장군이 저 중국하구 싸우다가서, 그 구월산 상봉에 산성을 쌓구 거기가 들어서 있었어. 그래서 이 중국서 몇 해 동안을 잡을려구 허니 그리 올라가는 재간이 없어. 그래서 맹희 장군이 거기서 승리를 하구.
저 제주도를 탐라국이라고 했지. 제주도는 맹희 장군이 점령을 했어. 그 때 제주도 맹희 장군이 아니면 제주 그 나라가 상기까진 딴 나라가 되었을끼야. 딴 나라가 되었으면 우린 큰 골칫덩어리 아니야. 핸디 그 때 당시에, 그걸 맹희 장군이 그걸 그렇게 해, 우리나라가 탐라국을 점령하고서 우리나라 탑, 속국으로 맨들고.
그래 당시에 요 대마도라는 게 있지. 왜. 저 일본. 대마도를 그 때 맹희 장군이 점령해야 꼭 될건데. 그 때 대마도 점령 못한 게 후회를 한다, 이런 얘기를 내가 들었어.


󰊲 이순신 장군의 최후
제보자1(남)/봉명리T 1앞
[봉명4리]박종수, 강현모, 유대웅, 유현진, 이지아 조사(1996. 6. 10)

앞의 이야기에 마치고, 일본에 대한 것이라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구술하여 주었다.

으. 대마도 그것은 본래는 우리 땅인데. 우리 땅인데 임진왜란 때 그게 뺏기게 됐어, 임진왜란 때. 그래서 저 이순신 장군이 대마도 섬을 못 뺏뜨리냐 하느라고, 그 때 어떻게 해서 이순신 장군이 그걸 못뺏게 돼느냐 하면, 임진왜란 때, 그 때도 7년 동안 전쟁을 했어.
응 그렇게 했는데, 저 간신배 원균이라는 사람이 간신배로 있었지. 그래서 왜, 인제 7년 동안 싸우는데 보급을 가져와야 돼잖아, 일본서. 가져오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들러업고 들러업고 한게, 보급이 없으니까 인제 전쟁할 수 없어. 7년 동안씩 전쟁을 하니까 우리 나라에서도 나 먹을 농사도 못 짓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먹을게, 도저히 빼뜨려 먹을게 없어, 일본놈들도.
그래서, 할 수 없이 물러나는 기야. 물러갈 쩍에 이순신 장군이 대마도 저천까지, 그래 어떻게 됐느냐 허면, 이 간신이,
“이순신 장군이 지금 일본이 물러갔는데, 요게 인제 왕할려구 역적을 할게다.”
요렇게 간신이 있었어. 그래서 그 이순신 장군을, 이러고 장군이 아니지요. 이순신. 그 이 장군은 장군이라고 할까. 근데 그 역적을 할려고 하니 이순신 장군 저거 그렇게 한다고 그렇게 하니까, 약사발을 내렸어. 약사발. [조사자 : 녜?] 약사발을 내렸어.
“이순신 장군 죽여라!”
죽을 약, 약을 내려 보내니께, 그게 어디까지 왔느냐, 부산까지 그 약사발이 내려왔어. 내려 왔는데, 아이 그렇게 될 줄 알고 이순신 장군을, 아니 가슴을 내놓고 도망질 하는 놈을 가서 잡고 이렇게 하니까, 그 총탄에 맞고 죽었지. 그래서,
“이순신 장군 총탄으로다 죽었다.”
허니까. 그 때는,
“아니, 이순신 충무공이라고 해라.”
해니깨. 저희 삼촌이,
“애, 언젠 약사발을 내리오더니, 충무공이 뭐냐?”
약사발을 둘러 매쳤다는 그런 얘기도 있었지. 근데 우리, 우리 나라 이 앞으로 어드께 해야 잘 돼냐 하면, 요 간신배가 읎어야 돼. 지금도 에 김영삼 대통령에게 간신배 노릇하는 사람은 없나 하는 생각이 들어가. 그래서 내가 얘기를 했구만요. 고만합시다.


󰊳 혹부리 영감
제보자1(남)/봉명리T 1앞
[봉명4리]박종수, 강현모, 유대웅, 유현진, 이지아 조사(1996. 6. 10)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그만 두시려고 하자 조사자가 귀신 이야기를 꺼냈다. 제보자는 호랑이 도깨비 등은 옛날에 많이 보고 들었던 이야기라며 말씀하시지 않았다. 한참만에 구술하여 주었다.

도깨비 얘기.(즐거운 표정) 도깨비 얘기를 하라고. 헌데, 아니 우리에게는 도깨비 나무라는 게 하나 있는데, 여기 어데 있느냐 허면, 여기로 말허면, 이거 전수 얘기 했는데 또 드립니다. 헌데 도깨비가 밤이면, 아 도깨비 망치로.
“또르락 딱딱, 또르락 딱딱.”
해. 아! 이놈에 도깨비한테 가서, 그기 가선 혼쌀라고 오고 오고 한다 말이야. 가다가 에 턱날(웃음) 한 번은 혹 달린 사람이, 요 입이 좀 괴롭거든. 한데 이 사람이 그 뭘 불르냐면 그 퉁소. 퉁소를 그걸 잘 불어. 잘 부는데, 그 도깨비를 많은데 가서, 아! 퉁소를 치면서 잘 불어놓으니까 도깨비들이 와서,
“영감!”
사람이지. 사람. 사람. 도깨비도 사람 모양으로 댕겨.
“여보! 그 소리가 그 어디서 그렇게 납니까?”
그러니까.
“하하. 그 내 이 요게, 이 요 혹통에서 아 그렇게 소리가 기미한 소리가 그렇게 나지요.”
이렇게 말을 한다. 도깨비 사람인 줄 알았지. 도깨비로도 안 알았어. 그래서, ‘그기 가면 도깨비한테 홀린다. 홀린다.’ 그런 말만 했지. 해서, 아 ‘요기서 소리가 그렇게 난다.’ 그러니까 도깨비들이 하는 말이,
“자 그래. 그거 좀 팔 수 없느냐?”
허고. 도깨비가 그런께,
“아 그걸, 그 함부로 이렇게 파나. 아, 소리가 얼마나 귀엽고 좋은 소리가 나온다고. 아. 소리 함부로 우는 사람 울잖게도 하고. 아 웃는 사람 울게도 하는, 아 그 귀한 혹, 혹인데. 아! 그건 함부로 팔 수가 있나!”
“아 그래도 그 혹을 으뜩하든지, 내가 돈을 얼마든지 줄테니, 아 그걸 응 팔으십시오.”
하니까.
“그럼 얼마나 주겠느냐?”
해니까,
“그 얼마 얼마 해줄테니.”
달래. 얼마면 될텐데. 파는 걸로 말로 금을 한 짐 지고 가리만삭 금을 달라고 했어. 금. 금 한 짐 지면 척수 되겠지.
“금을 한 짐 질꺼면 ,나 지고가리적만석 내라. 그러면 이거 떼 줄라. 이걸 떼는데, 너희들이 요지 깜쪽같이, 너희들이 재간이 있게 떼어야지 된다. 너희들이 잘못 뗏다간 너희들이 죽는다.”
이렇게 말을 했어. 아 그런께 그 도깨비들이, 귀신들이 그 그런 거 떼는데 아주 도수 기묘있게 떼거든.
“아 그래라.”
고. 금을 그 사람 지고가리만큼씩, 누런 놈의 금을 한 보따리 갖다 놓았단 말이야.
“이거면 되겠느냐?”
“으차 으차.”
해보더니,
“이거면 나 지고 가겠다.”
아 그런데 도깨비들이 그 혹을 띠었네. 혹은 띠다 가지고 가서, 아 이놈의 혹에서 나리, 아 소리 나오나 볼려고 안만 해니까 혹에서 소리가 나온 택이 뭐야. 하니께 야 그게, 한데
“저 아무데 영감은, 아 그 저 도깨비 촌에 가서 아, 혹 떼고 금 한짐 지고 왔데더라.”
아 이 소문을 들었다. 아. 이 혹부리 영감이 하나 있다가서,
“아 그 놈의 자슥 혹 떼고 돈 버는데 나도 가서, 가서 혹 떼, 혹 떼고 금 한줌 줘오겠다.”
고. 또 갔네요. 가서 나니, 그리고 또 그 사람도 노래를 잘 하네요. 하니까 이 도깨비 놈들이 떡 오더니만,
“야. 너 그 소리 어디서 그렇게 나냐?”
하니까.
“나 이 혹에서 난다.”
“야! 혹에서 나. 얘 이놈에 자슥! 거짓말을 해도 요일 저녁에 어떤 놈 와서 거짓말을 하더니 너도 고짓말 해. 너 고 소리 잘 나는 혹, 너, 너 마저 붙이라.”
고. 이틈에 있던 놈을 하나 갖다가 떠 붙여 줬어. 혹은 ‘떼러 갔다 혹은 붙이고 왔다’ 이런 얘기를 한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만 하시요.(웃음)


󰊴 고려장을 폐지한 유래
제보자1(남)/봉명리T 1앞
[봉명4리]박종수, 강현모, 유대웅, 유현진, 이지아 조사(1996. 6. 10)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새로운 이야기를 부탁하자, 효자는 하늘이 내는 것이라며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 이야기는 어머니를 버리려고 갔다가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감동이 되어 국법을 어기면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그것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효자가, 효자라는 것은 하늘이 내린 것여. 응 나, 옛날에 고려장이란 것이 있었지? 고려장이 어떻게 해서 그 고려장이 없어졌느냐 하면은, 효자 때문에 없어졌는데. 나, 고 효자 얘기 할테니 그거 방송 한 번 하라고.
아이고, 그전에는 65세만 될 거 같으면은 전부 내다 버려. 아이 이거 자체기 하는 것까지 나와서 파토다. 그거다 빼고서 하라고.
헌데 이 고려장을 하는게 언제 시작했느냐 하면, 우리나라가 삼천리 강산 통일되었을 때 말이야, 이 전라도가 곡식이 암만 많아도 그걸 갖다 먹을 재간이 없어. 나는 황해도 사람인데, 황해도나 평안도나 함경도나는 전라도에 곡식이 이렇게 많으니 갖다 먹으라고 해도 갖다, 가져올 재간이 읎어. 그래서 이북서는 메라고 하는고 하니, 뭐 놓고서 먹지 못하면
“헤에헤 끝에 놔도 곱배기야”
그 먹지 못하는 것이 전라도 곡식이었거든. 전라도 곡식이 암만 많아도 배를 실어오는 재간이 읎어, 그전에는. 지금은 기계, 기계 배지만, 옛날에는 풍선이 아니야. 오다가는 저 몽금포, 개안포 그 알지? 황해도. [조사자 : 네!] 그거는 뜸봉 하고 들어가. 그래서 도무지 갖다 먹을 재간이 읎어. 그래서 전라도 곡식이라고 했어. 그 때 당시에 이북에 흉년이 들었어. 흉년이 들었는데, 아이고 자체기 나올라고 그러네. 흉년이 들었는데, 그때 임금께서 나라에 곡식을 갖다 먹을 수도 읎고,
“야! 그러면 고려장을 해라.”(웃음)
“고려장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65세 넘으면 내다 버려라.”
아 이렇게 되느니, 남한에도 고려장 했는지 안 했는지 몰라요. 이북서는 고려장을 했다고. 그런데 아니 65세는 전부 내다 버려라 했는데, 뭐 임금님이 한번 명을 내리면 거두는 법이 없어서, 지금 민주주의는 임금님 잘못하면,
“그렇게 하면 안 되겠습니다.”
하면 저 해고하는 수도 있지만, 옛날에는 그거이 읎었어. 해서 그때 ‘고려장을 해라.’ 해놔서 그걸 댈구 하는데,
아니 아 한 번은 저의 어머니가, 저의 아버지는 세상 가고 저의 모자 아들 데리고 사는데, 아 65세면 지금은 젊은이라고 안 해. 아 옛날에도 건강한 사람한테는 젊은인 거지 뭐. 헌데 65세 되었으니 할 수 없이 저의 어마이가,
“야! 인제 나 갈대로 가야 않겠느냐? 그 나라 법이 그런게 어떻게 하겠니?”
“그래요. 우리 엄마일 내가 어디 내다 버리겠오.”
“아니, 그러면 아 어떻게 하게. 인제 가자.”
그러니 할 수 없이, 인제 법에 눌려서 이젠 어머니를 내다 버리게 되었네요.
“그럼, 어머니! 그럼 갑시다.”
가는데 그 막 칠 것, 이제 거적배기 같은 거 이불, 호단, 이거 다 한짐 다 떠기고, 다 짊어 놓고선,
“어머니! 나란히 나 지게에 앉으시오.”
그래게 지게에 떡 앉았네요. 딱 앉고서 내리, 그때는 그 먹을기랑 다 해가지고서 지고서 이젠, 이런 때야, 이때. 아 능파 속에 이제 산골으로 들어가네요. 산골로 들어가는데, 아 나무가 우거진 대로 들어가는데, 아 어머니가 나뭇가지를 떡 꺾었네요. 이것을 꺽으니까니,
“어머니! 그 나뭇가지는 왜 꺾습니까?”
“야! 너 올 때 길 잃어버릴까 봐 꺾는다.”
자 이렇게 죽으러 가면서도, 자식의 사랑을 이렇게 합니다. 그렇죠. 하니까.
“내가 이렇게 자식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부모를 내가 어떻게 하노.”
눈물이 앞을 가리워서 잘 보이질 않는데, 이제 그만 들어갔어.
“이즘 여기에, 어머니! 여기서 내려야겠습니다.”
“엉! 내려라.”
내려놓고서 다 막을, 다 이렇게 맨들어 놓고서,
“어머니!”
“왜?”
“여기 있지요. 아무리 나라에서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머니 여기서 꼭 보양할테니 안심하고 있으시오. 비 안 새게 다 만들어 놓고서, 내가 어떻게 하든지 내가 어머니 네 봉양할테니 안심하시오. 안심하고 계십시오.”
그러면서 다 해 놓고서는 제 밤중에 음식을 해 가지고 어느 때든지, 그 잡히면 죽지. 나라 법을 어기니까. 하지만은 밤중에 가서 하는 것이 한 해 이태가 아니야. 아 10년같이 그렇게 나가는데, 한 번은 요만한 종이 조각이 하나 딱 접은 게 있어. 그러니까 ‘이것이 무엇이냐 보겠다’ 이렇게 보니께,
“나라에서 큰 위기가 있을 때 펴 봐라.”
이거야. 그러니까, 나라에서 무슨 위기가 있었느냐? 이것이 문제라. 근데 그때 당시에 동지상사라는 것이 있었지, 옛날에. 동지상사라는 것은 3년에 한 번씩 대국천자한테 가서 조공을 바치고, 거기 가서 물품도 가지고 오고 이렇게 하는데, 어떻게 하든지 대국천자가 우리나라를 먹을라고 꼭 마음을 먹어.
하지만은 먹질 못하고 있는데, 저 왕이라는 것을 없애면, 우리가 나가서 이 조선이라는 걸 통치하겠다. 이 대국천자가. 지금 우리나라를 못 먹어서 대국서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고 해. 근데 그때 당시에 어떠한 걸 주었냐 하면, 이것을 못하는 날엔, 뭐 하라는 것 못하면, 왕이 죽기 마련이야. ‘왕만 죽으면 나와서 통치하겠다’ 이 마음을 먹은 대국천자야.
한데 이 뭘 갖다 주었냐 하면, 이만한 통방구리, 통방구리를 여기다 박을 꼭 하나 잔뜩 넣고, 요만한 구녁에다 박을 하나 잔뜩들 깨뜨리지 말고 여(넣)으라고 하니, 그 여겠어. 또 못 할건 또 절대로 시키지 않지. 그걸 하나 줬다. 한데 이것을 어떻게 했느냐 하면,
“볏짚을 태워서, 새끼를 꼬아서, 얽거서 내리가지고 요 다음에 동지상사 올 때 가지고 오너라.”
하고. 동지상사 간 사람들에게나 그걸 주어 내보내. 한데 그걸 가지고 와서 대국천자한테 갖다, 그걸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 임금님한테, 근데 그걸 다 사이 얘기를 해면서, 그걸 주면서,
“요 다음에 동지상사 올 적에 ‘요걸 볏짚을 태워서 꼬아서 얽어가지고 오라.’고 했는 데요. 이거 우리나라에서 또 해겠습니까?”
아! 대신들이 와서 그렇게 말하니까.
“아 볏짚을 꼬아서 어떻게 통방구리 그 그걸 얽느냐 말야. 볏짚을 재주껏 재간 읎지?”
또 거기에 박을 하나 깨뜨리지 않고 하나 잔뜩 들게 할 재간이 읎지.
“자, 이거 해라!”
했는데, 한 해 지났다. 또 이태를 지났어. 이제 3년 되면 인제 가야 될 판인데, 아 이거 큰일 났단 말야. 하니까 이거 임금님이 이거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이것을 하는 사람이 천금상에 만호를 봉양하겠다.”
이렇게 선언을 했어. 그렇게 하니 할 사람이 도무지 나서질 않해. 이 일 큰 일 났지. 왕이 자신하니 인제 목 달아나게 됐어.
그 못 해 가는 날에 그렇게 하면, 우리나라가 일본, 중국한테 빼앗기고 말아. 천자 말을 거역하면 빼끼게 되어 있어. 그게 하란 데로 하고 사니께. 지금 미국놈 하라는 대로 하는 거 아니냐?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가 독립해 보고 살아본 예가 읎어. 그저 약한 나라가 돼서. 그때 중국에 매 가지고 그렇게 살았거든. 지금 아이 미국에 큰 나라야, 하 미국이어서 미국서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사는 형편이 아니야.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해. 같지 뭐.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한데 뭐 녹음할 적에 뺄껀 빼시라오. 한데 아니 펴 보니까,
“위기설정에 펴봐라!”
했어. 아하, 여 통방구리에다 박을 넣라면 어떻게 해야, 해야 되느냐 하면, 구뎅이를 5군데를 파라고 했어. 거기다. 파보니까.
“구뎅이를 5군데를 펴고서, 겉은 이렇게 엮고, 속은 이렇게 엮고, 이렇게 해 가지고 다섯 군데를 해 가지고, 거기에다가 다섯 나무를 심으라. 한 나무, 한 텍에 하나씩 심어. 다섯대기 가운데에서 제일 우수한 놈을 나오면은 통방구리 속이다가 고 박이 이렇게 맺히잖아. 그걸 내려서 요리 키워라.”
그렇게 썼어. 그런께 거기다가, 아니 지금 박을 넝쿨꺼치 그 맺힌게 있지. 근데, 그걸 구해다가 갖다 넣은게 차차차차 제일 큰놈을 갖다 넣은게 고걸로 하나 까뜩 찼어. 그래서 하나 풀었지.(웃음)
그 다음에는 그 한 장을 또 들치니까 뭐라고 썼는고 하니. 볏집을 잘 꼬아서 잘 얽어라. 잘 얽고서는 그거다가 소금물을 뿌려서 말리고, 소금물을 뿌려서 말리고, 몇 번을 그렇게 많이 해 놓으면, 소금물이 그가 잔뜩 밸 거 아니야. 잔뜩 배어서, 그땐 소금물이 배어서 그게 착 붙어. 붙으면 그때에는 불을 피워서 살살 그걸 태워라. 태우면은 그때는 아무탄지 꼭 된다. 그렇게 대국천자도 할 걸, 못할 건 안하거든. 해서 그것을 불을 태워서 그렇게 잘 하니까 딴딴하지 뭐. 새끼가 바로 꼬아져져 있지 뭐. 아 소금이라는게 안 타. 땅딴이 맨들어 가지고서는,
그땐 그 임금님한테 그걸 가지고 들어갔네요. 그 그 통방구리를 임금님한테 타 온거니께. 해서 아 임금님한테 가지고 가니까, 대신들이,
“아 그렇게 해 왔느냐?”
하니께.
“야, 녜 해 왔습니다.”
해니께
“그럼, 들어 가자.”
임금님 앞에 들어가서,
“아 어디 사는 누구냐?”
“아무데 사는 아무개요.”
“어떻게 왔느냐?”
“아 나라에서 위기 있을 적에 뭐 하라는 것 해, 그거 제가 해 가지고 왔습니다.”
“어, 거 뭐이냐?”
“통방구리에 저 볏짚 타서 꼬아서 여 얽어 왔습니다.”
“어 그거 드려라.”
야 보더니, 임금님이 입이 귀까지 돌아서 허벌떡해져서, 너무 좋아 죽지 않게 되었은게. 해 가지고서,
“야, 천금상에 만호를 봉해라.”
허니께
“아니요. 천금상에 만호 싫어요. 저 소, 소가 만 마리면 지금 돈으로 확실하지. 천금이면 얼마인지 알아. 천금도 무탕한디, ‘천금상에 만호를 봉해라.” 천만 마리면 돈이 얼마야? 지금 돈도 어마어마한 돈이야. 천 마리면 천금상에, 만호면 만호. 소 만 마리면.
“그것 일 없습니다.”
“그럼, 너 소원이 뭐 있느냐?”
“녜! 제 소원은 어 고려장을 제거해 주시오.”
해서, 그 효자가 나서 고려장을 제거했다 하는 전설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 합시다.

󰊵 구렁이에게 잡혀 먹을 뻔한 사람
제보자2(남)/봉명리T 1앞
[봉명4리]박종수, 강현모, 유대웅, 유현진, 이지아 조사(1996. 6. 10)

조사자들은 제1 제보자 댁에서 조사를 마치고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마을을 돌아다녔다. 이때 어느 집에 노인분이 앉아 있어서 이야기를 부탁하자 반가워 하며 구술하기 시작하였다.

[청취 불능] 예전에 그 저기 어른들 말씀이, 그 예전에는 초가 지붕이 있어. 초가. 지금 말이지 기와집이 없었구, 우리 대한민국에 조선 팔도 내에 개화집이라는 것은 그 일개 면에서 좀 부잣집이라는 사람은 조선 개화집이 있었구, 그리구는 그 기타는 전부가 초가집이야.
그래 집두 보문은 초가집에, 예전에 지은 집이라 잘 짓지도 못하구, 벽이 그냥 이렇게 쑥, 그냥 벽이 꼽사 주둥이마냥 벽이 나오구. 지벙(지붕)은 그냥 이렇게 두텁게 이구. 그 년년 이니께,
그래 그걸 그때 시절에 구렁이가 많았어. 구랭이 뿐만 아니라 뱀두 많았어. 그래 인제 울타리는 그전에는, 저 이런 흙으로 지은 울타리도 있었지만, 막대기를 저 소나무 같은 것을 갈려다가 이게 막대기로 그냥 이게 울타리를 했어. 울타리라고 하는 거여. 그게 담 치는 것은 흙으로 쳐서 담 치는 거구. 울타리, 그래. 그전에는 뱀이 울타리 같은 데서, 지벙에서 나와 가지고 울타리 같은 데 많았었어. 구렁이 같은 게. 참 나 배암이 뭐 여간 많지 않았어.
그래 그 집이 그 집에서 뭐, 뭐가 잘 안 될라고 이렇게 안 되믄은 배암이 지벙에서 떨어져서 방안으로 가서 있다여. 방안에. 방안에 방안에 가서 이렇게 서리구, 서리구 해서 이렇게 있거든? 그라믄은 그 집이 망해야. 배암이 지벙 위에서 떨어져서 이렇게 한대로 나가야지. 그 뱀이 그 방안의 안방에 가서 이렇게 서리서리하고 있으믄, 그 집안이 수사로 망한다는 겨. 예전에 그 전설에.
그라믄은 예전에 그렇게 뱀이 안방에 이렇게 서리고 있다가나, 여 사람들이 막대기로 그걸 때려가지고 죽여가지고 갖다 버리거든? 버리면은 그거 대신 그게 뭐 전설의 고향이지 뭐. 그것이 뭐 꼭 망한다는 것이 뭐, 보편적으로 그냥 배암이 안방에 들어오면 그 집이 망한다. 그런 뜻으로 그 떡을, 떡을 한 서너 되 해가지고 고사를 드려. 응 그렇게 고사를 드려. 그러믄 인저 ‘망하지를 말아라. 잘 돼 달라’고 고사를 들이구 그렇하는 전설이 있어.


󰊶 물레방아간의 도깨비
제보자2(남)/봉명리T 1앞
[봉명4리]박종수, 강현모, 유대웅, 유현진, 이지아 조사(1996. 6. 10)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도깨비에 관한 얘기를 들려 달라고 하자, 제보자는 옛날에 들었던 이야기를 서서히 풀어 나갔다.

[조사자 : 그럼은, 예전에는 뭐 도깨비같은 게 있다고 허던데.]
근데 예전에는 그 뭐 도깨비 같은 것이 딴 것이 아니라, 그 저 그전에, 지금 이 젊은 사람들은 물방아 알아? 물방아? 물레방아 그 돌아가는 것. 그 물씸으로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있는데. 예전에는 그 물레방아가 어떻게 해서 방아를 쪘나 하믄은, 그 물레방아가 돌아가면서두, 이렇게 막대기로 이렇게 해 가지고 여기 으 공일(공이)를 해 박어.
그래서 이게 물레방아가 돌아갈 적에는 이렇게 이게, 이게 이렇게  눌러 주면은 이것이 올라갔다 ‘팡’ 하구 이렇게 방아. 그저 디딜방아라고 있지? 사람이 이렇게 해서 저 디딜방아도 있지만, 원 방앗간은 물레방아가 돌아서 그 디딜방아로 예전에는 뵈(벼), 이 쌀도 뵈를, 쌀 찧는 것도 그렇게 하구 보리 방아두 그렇게 하구, 그렇게 했어. 예전에는. 그리구 밀가루, 밀도 그걸로 빻아서 해 먹구 그랬어.
그런게 그 예전에는 방아라는 것이 그렇게 미미했어. 그 조선 사람이 사는게 그랬었어. 그래 가지구는 거기서 이제 예전에는 이렇게 ‘쾅’ 찌면은, 공이가 팍 찌믄은 이게 흩잖어. 그라믄 비로 이러이러 자꾸 씰어넣거든, 흘러나온 것. 풍 띠면은 이게 팡하면, 또 이게 뵈(벼)가 이렇게 흘리거든? 풍 띠면은 빗자루로 이렇게 씰어 늫잖어? 그래 그 방앗간에서 쓰던 비가, 말은 그게 탈이 붙어가지고 그것이 도깨비같이 보인다는 거여, 그 빗자루가.
그래가지고 예전에는 사람이 허 해서. 지금마냥 사람이 단단허들 못하고 허 했어. 왜 허 했느냐믄 먹는게 시원찮어 가지고, 먹는게 시원찮구 약이 별루 읎구. 그래서 허한 사람이 있어, 허한 사람이. 마음이 허 해가지구. 그래 인제 술같은 거 많이 먹구 그라믄은 헛께 보여. 헛께 보여서 그게 도깨비가 돼. 눈에 헛께 보여가지고. 그래 뭐 밤새도록 싸우고서 그걸 뭐 짭어 눌루구 저 있다가, 날샌데 보면 별 수 없는 빗자루다. 그런 전설이 있는 거야.
그래 예전 사람은 그렇게 된 거지! [조사자 : 그 빗자루에도 그 뭐 있었다 그러데.] 아니. 근데 그게 몽지랑 빗자루가 그게 인제 도깨비 행세를 하는데, 예전에는 사람이 잘 먹들 못하고 그 [청취불능] 그게 아니구. 먹는게 시원찮게 먹구, 사람이 허 하니께 술 잔이나 먹으면은 헛 헛께 보여. 헛 도깨비라는게 그게 헛 도깨비라는 게 그게. 헛 도깨비. 그래서 그 저 방앗간에서 쓰던 빗자루가 도깨비로 보여가지구. 그 뭐 잡아 눌러가지고, 꼭 눌루구서 있다 보믄, 날샌데 보믄 별 수 없는 빗자루가 빗자루라는 겨.(웃음) 게 예전 사람이 그렇게 허했어.
그래 허 한, 못 먹구 살아서. 그래 인제 도깨비라는 것이 있는 건 아닌데, 헛께 보여서 그려, 헛께. 사람도 그래. 그래서 그게 예전서부텀 헛 도깨비, 헛 도깨비 하잖어. 헛 도깨비라고.


󰊷 여우 구슬을 먹고 지리를 안 박주부
제보자3(남)/봉명리T 1뒤
[봉명4리]박종수, 강현모, 유대웅, 유현진, 이지아 조사(1996. 6. 10)

조사자는 앞의 제보자의 이야기를 마치고 여러 가지를 부탁하였으나 더 이상 채록할 수 없어 새로운 제보자를 찾아 나섰다. 이 제보자는 전라북도 고창군 성승면이 고향인 분으로 긴 이야기 한 마디를 하고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테이프 교환) 핵교가 있는데 열 댓살 먹었는디, 서당을, 인자 벤또를 싸가지고 서당을 당겨. 그라믄 갈재 넘어가야 하거던. 그러믄 선상이 가만히 밖에서 보니께 자꾸 얼굴이 야와, 총각이. 아 그래서,
“주부야, 주부야!”
박주부인께.
“주부야, 주부야, 너 어찌 사람을 그리 모르냐. 마르냐?”
그란게,
“그런 것이 아니라, 갈재 벼나리를 넘어 오믄은 예쁜 처녀가 나 귀를 잡고 이냥, 막 장 키스를 막 한다 이말이여. 입을 막 맞춘다 그말이여. 그 후로 내가 막 몸이 야윈다.”
말이여. 그러면 선생님 말이,
“그러믄 너 좋은 수가 있다. 내일은 옴서로 백봉을 헐라면 백여우가 나타날 것, 그저 백여우가 아니라 처녀가 나타날 것 아니냐. 처녀가 나타나믄 가만히 입 안을 봐라. 입안을 보믄 그것이, 그것 보고 뭔 여의주, 여의주, 백 년이 묵은 여시는 이 안에서 여의주가 논다. 구실이, 구실이 여의주가 놀믄은 날름날름 하믄, 그 놈을 니가 딱 입으로 깨물어라. 깨물어 가지고 놔두었다가 보라.”
이것이여. 여의주를. 그러니까,
“예, 그러믄 그렇게 하겄습니다.”
하고 집이를 갔어. 가가지고 밥 먹고 인자 또 벤또를 싸가지고, 인자 그 밥통을 싸가지고 재에 딱 올라스니께 또 백여우, 거 저, 그 처녀가 나서서니 그냥 틀어잡고 입을 막 맞춘단 말이여. 하여튼 입을 맞추면서 보니께, 안에서 구실이 나올라고, 여의주가 나올라고 보니께 구실이란 말이여. 가만히 입맞춰 주니, 뭐 입으로 딱 뜯는 것이, 구실이 딱 넘어 가버렸네. 넘어가버려서 할 수 없이 먹어 버렸지 인자, 잉? 먹고는, [조사자 : 구슬을 먹어 버렸어요?] 응. 먹어 버렸지. 여우한테서 나온 그 여의주를 먹어버리고는 인자 서당에를 간게, 서당 선생님이,
“너, 오늘 일은 했냐?”
허니께. 백주부가,
“아닌게 아니라, 처녀가 귀를 막 잡고, 입을 맞춰서 가만히 보니까, 속에서 여의주, 여의주가, 구실이 날름날름 하길래 그놈을 들었더니, 속으로 들어가,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소 말이여. 그러니 그것을 어째야 할 것이요.”
그런게,
“그러믄은 별 수가 있냐. 한 번 먹은 것은 별 수가 없으니까, 오늘은 공부를 하고, 집에 가서 자고 나면 아침에 똥이 마려우믄, 그 똥을 막대기로 하작하작 해 봐라 이것이여. 그러믄 구실이 나올 것이다. 구실이 나오믄은 잘 씻쳐가지고, 잘 씻쳐가지고 날 갖다 줘라.”
이것이여 그려. 대체나 집에 가서는 인자 잠을 자고, 아침에 똥이 마렵길래 똥을 누고는 막대기로 하작하작 해본기네, 마침내 지가 먹은 여의주 구실이 나와 있어. 나와 있길래 그 여의주 구실을 물에 씻쳤어. 선상이 갖고 오라니까. 잘 씻쳐가지고 인제 그대로 여의주란 말이여. 구실이. 그래 인자 밥 먹고 그 놈을 잘 싸가지고 인자, 손수건에 다 싸가지고 갖고 갔더니, 그때부턴 여우가 안 나, 안 나온단 말이여. 거시기 처녀가 안 나온단 말이여. 그래 서당에 갔더니 선생님이,
“어찌 됐냐?”
하니께.
“임마루에 똥을 쌌더니, 이 허지거 본게 여의주가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의주를 물에 잘 씻쳐가지고 손수건에 잘 싸가지고 왔습니다.”
그런게,
“어디 보자.”
허더니, 그 양반이 먹었어, 여의주를. 먹고 보니. [조사자 : 왜요?] 그 여의주를 먹었다고 인자. [조사자 : 그니까, 왜 여의주를 먹었어요?] 들어봐. 여의주를 먹었는디, 박주부는 처음에 여의주를 먹고 땅속을 다 알아부렀어. 명당 속을 알아부렀다 그 말이여. 딱 지리 알아부렀다 그 말이여. 지리 알았는디.
이 선상님은 이 박주부가 한 번 먹은 놈. 창세기에, 창세기에 백여 뱅뱅 나온 놈을 똥으로 나가지고, 그 놈을 씻쳐가지고 먹었기 때문에 위교만 알제. 선생님은 위교만 알제 땅 속을 몰라. 박주부만치로. 그래서 박주부란 사람이 우리 외손인디, 나중에 지리 알아가지고, 명당 사라고 막 외야.
“명당 사쇼, 명당 사쇼.”
하고 막 외야. 그래,
“저놈이 우리 외손인디, 미친 놈이라.”
고. 저놈 미친 놈이라고 해 버렸어. 근디 우리, 나 고향이 어디냐믄 전라북도 고창인디, 정씨나, 정씨는, 진주 정씨는 아주 손이 즉어요. 손이 즉어가지고,
“야! 박주부! 박주부! 우리는 손이 즉으니까 계용감을 쓸라네. 계용감이란, 자라(작아)가지고 많이 여는 것이 감이, 잘 많이 여는 것 그것을 쓸란게, 그걸 잡아주쇼!”
그래, 그걸 잡아 줬어. 그래, 정씨는 그걸 잡아 줬단 말이여. 그래 가 쓰고, 강씨는,
“우리는 손이 많은디, 좀 힘이 좀 장사가 낳으면 쓰것소.” 헌게.
“그러믄, 당신네는 장그를 쓰시요.”
그런게 장그를 써 가지고, 큰 장 역사가 나가지고, 가만히 앉아서도 화리(화로) 그전에 화리 있거든, 불담은 화리 있거든. 가만히 앉아서도 화리를 발딱발딱 뛰어 넘고, 그 기와집을 발딱발딱 뛰어넘었다고. 그런 장사가 나브렀어. 그래서 에… 그 우리 전라북도 고창에 성승면이라는 정씨가 아, 거기서 삼대를 재상면 정승완이가 삼대를 민의원을 해 먹었다고, 수가 많은께. 시방도 그 정씨들이 민의원을 하고 있다고, 수가 많으니까. 안 끼는디 읎어, 정치가. 보다도 수가 많아가지고.
그래서 그 박주부가 땅 지리를 잘 알아가지고 명당을 팔고, 명당을 썼다 이말이여. 그래서, 이 여우라는 것은, 여우, 여시라는 것은 여그 말로는 여우고, 전라도 말로는 여시고. 이 여우라는 것은 백 년이 넘으면 둔갑을 혀, 인자. 산이 많이 깎아져서 그 여우가 별로 없지만은, 그 전날에는 여우가 많했어. 아, 내 말은 글로 끝나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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