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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역
남사면- 진목리
 

  1) 마을개관
  2) 설화
  (1) 최각스님 (54,남) 오세암 전설---------------450
(2) 최각스님 (54,남) 임금을 알아본 파자 점쟁이---453
(3) 기장석 (81,남) 이성계의 아해조정 강도령------455
(4) 기장석 (81,남) 이성계의 개성 정복------------456
(5) 원나성 (56,여) 춘향 아씨 놀이담--------------457
(6) 김영자 (79,여) 고지식한 선비의 일화들--------458
 
  3) 민요
  (1) 김영자 (79,여) 모심기 노래-----------------460

9. 진목리
1) 마을개관
박종수, 강현모, 성기도, 운경애, 최준석, 김상미, 조정빈, 진미영 조사
(1995. 11. 4., 1996. 6. 1.)

진목리는 용인지역의 가장 끝의 안성과 평택에 인접하여 위치해 있다. 용인에서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찾아가기 힘든 마을이였다. 그래서 오후 1시 가까이 되어 도착하게 되었다. 이 마을은 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있다. 진목리 지역도 집이나 기타 시설들이 많이 현대화 되어 있어 전통적인 면을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이 마을은 참나무 재목으로 지은 정자가 있어서 참나무정, 또는 진목정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그런데 진목이란 말은 참나무의 참을 한자 眞자의 뜻을 취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아주 오랜 전에서부터 불려진 마을이라 한다. 이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진위군 일북면 월경리와 마산면 월경리 일부를 합하여 진목리라고 하여 남사면에 편입되었다.
진목 1리는 순지마을이라 불리고 있다. 유래는 옛날에 연못이 있었는데 미나리가 무성한 곳이라 하여 순못이라 불리던 것이, 이 연못이 메워져 마을이 들어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순지마을에는 주민들이 소중하게 다루는 우물 2개와 300년이 된 상나무가 있었다. 이 상나무는 오래 됐다는 이유에서 ‘위하는 나무’라 부르며 아꼈는데, 이번 홍수로 죽었다며 무척 안타까워 하였다. 우물 2곳도 매년 동제를 지내고 있었다.
한편 마을은 모두 잘 지어진 2층 양옥집에 집집마다 승용차도 있어 꽤 부유하게 보였다. 마을 주민들은 비닐하우스로 오이 재배를 하는 관계로 농한기가 없이 매우 바쁘다. 이곳의 주 소득원 벼농사와 고추농사이고, 부업으로는 텃밭에다 여러 채소를 가꾸어 내다 팔았다. 조사자가 처음 조사하는 날에는 ‘간 날이 장날이라’고 마을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서울로 가서, 마을에는 아이들과 몇 분의 노인들만이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20여 가구 남짓하는 마을은 대단히 조용하고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목 2리는 순지마을과 약 1Km 떨어져 있었다. 이 마을은 약 7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데 젖소를 키우고 있고 벼농사도 짓고 있다. 마을이 더 작아서인지 매우 조용하였고, 바로 옆의 있는 경부고속도로의 붐비는 차량만이 토요일 오후의 활기를 느끼게 했다.


2) 설화
󰊱 오세암 전설
최각스님(54, 남)/진목리T 1앞
[진목리 대한불교 원융종 원주]박종수, 강현모, 성기도, 운경애, 최준석 조사(1995. 11. 4.)

제보자는 조사자들이 약수암을 찾았을 때 마당에서 낙엽을 쓸고 있었다. 제보자는 이곳 암자의 주지스님으로 마당쓸기를 도와준 조사자들이 찾아온 목적을 말하고 이야기를 부탁하자, 처음에는 바쁘다고 거절하다가 조사자들을 방안으로 인도하여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전에 저 강원도에 가면 설악산이 있었는데 지금도 오세암이라는 그 암자가 있어요. [조사자1 : 오세암이요?] 오세암. 다섯 오자 해 세자 바위 암자 암자 암자.
그래서 오세암이란 것은 무엇을 뜻허는가 하면 어린 아기를 다섯 살 먹던 해, 다섯 살 먹은 애를 키우다가 거기서 전설이 된 얘긴데, 어느 스님이. 그전에는 뭐냐믄, 없이 저- 살았기 때문에, 배고픈 사람들이 애를 갖다 맡기는 수도 많이 있었고, 또 스스로가 배가 고프면 절간으로 찾아와서 이렇게, 지금 학생들처럼 무엇 좀 부탁하는 수도 있었고, 저, 지금 큰 학생 마당 쓸고 있지만 그렇게 마당도 쓸어주고 밥도 얻어먹고 그랬었다 이거여.
그런데 그 스님 혼자 그 아기를 하나, 참- 길거리서 줏어갖고서 이렇게 바르만테(망테)다 위다 얹어 갖고서 지고 댕기면서 탁발을 해다 믹여서 이렇게 키우는 애긴데, 동자 아긴데.
어느 해 겨울에 이 스님들이 그전에는 전부 탁발을 해서 먹었어요. 에- 그래서 그 아래 동네 내려갈려면 한 10여 리 20여 리 내려가는 그런 길인디, 그런 산중에 있는 암잔데. 그 다섯 살 먹은 아기를 법당에다,
“너 여기서 잠꽌 놀아라. 스님 가서 탁발 해갖고 올 테니까 놀아라.”
해서. ‘그러라’고 해서, 인제 다섯 살 먹은 애를 법당에다 놓고서 인제 자기는 탁발해러 갔다 이기여. 스님은 탁발을 해서 내려 갔는디, 그 해 아마 동지 섣달이었던 모양이여. 겨울이였던 모양이여. 그러니께 눈이 오기 시작했지. 그래서 그 동네로 마을 어구로 내려가서 탁발을 하다가, 눈이 수북히 쌯여서(쌓여서), 눈이 끄치면 올라갈라고 하다가 눈이 수북히 쌯여서 도저히 올라갈 수 읎는 거여. 그래서 눈은 계속 더 오지. 쫌 하루 저녁 자면 괜찮을라나나 하고서 기다리면 더 오지 해서, 길이 다 묻혀 버린 거여 다. 그래서 그 마을 이장님 댁에 찾아가서,
“사실은 이만저만해서 나 그 암자에서 내려 왔는데, 눈이 이렇게 와서 갈 수는 읎구. 그러니께, 나 좀 잠깐 유하게 해 달라.”
고. 이래하니까, 그 동네 부락 사람들이 그 전이는 인정이 참 많았아요. 지금 세상이니까 막 너 죽이고 나 죽고 그냥 그렇게 하지만, 그전이는 인정이 귀했기 때문에, 사람 하나만 봐도 친절하게 대해주고, 이웃 사촌처럼 그렇게 대해 줬는데. 그 동네 어르신네들이 모이를, 모의를 해 갖고 어느 사랑채에다가 불당을 쪼그맣게 이렇게 해 줬어.
“스님, 그럼 눈 녹을 때까지 여기 계시오.”
해서. 불당을 마련, 차려 놓고서, 주야장천 그 다섯살 먹은 애기 생각을 핸 거여, 스님이. 기도를 한 거여. 그래서 기도라고 하면 빌 기자 빌 도자 뭐 기도라고, 뭐, 뭐라고 이렇게 염불하고 이러는게 기도가 아니고, 항상 자기 마음의 중심에 와 닿게 갖고 있는 게 바로 기도거든.
그러니까 염불은 생각 염자 염불이고, 기도는 빌 기자 기도고 그런데. 그 스님은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허고 그 이듬해, 인제 걔 애기는 죽었으려니 허는 거지 뭐. 하루 이틀에, 뭐 그 겨울을 나게 되니까. 눈이 쌓여서 도저히 올라가던 못하구.
그래서 인저 그 이듬해 봄에 삽가래 눈가래를 갖고 동네 사람들이 인제 눈이 얼죽(얼축) 저그 뭐야 해동할 땐게, 눈 안내릴 무렵에 눈을 치우며 올라가서 보니까, 그 방문 앞에 추녀가 있는데, 추녀 밑까지 안으로는 눈이 안 쌓였더라 이거여. 그래서 그 눈을 헤쳐가며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까, 법당서 부처님 앞에서 놀고 있더란 거여, 애기가. [조사자 : 동자가요?] 동자. 동자가.
“너, 어쩐 일이냐?” 
하면서,
“아, 스님이 저- 탁발하러 온다는 동안 저기 있는, 저 법당을 가리키며, 여기 있는 그 부처님이, 엄마가 밥도 주고 물도 주고 해서 먹고 살았다.”
이거여. 그래서 그렇게 있었다고 그러더래. 그래서 그 스님이 딱 전면을 쳐다봐서 관세음보살님의 부처상을 보고서 합장을 하고 있으니깐, 과연 그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녁으로 해서, 여기 다기 그릇 올리는 것 있거든, 요렇게. 다기 그릇에 운감을 해서 그 애기다 운기를 주고, 백미를 요렇게 쪼금(손을 오무려 보이며) 냉겨 놓았는데, 고기에서 운기를 주어서, 운감을 줘서 걔가 안 굶고 이렇게 살아났다 해서, 한 해 겨울을 살아났다 해서 지금은 뭐 삼풍아파트 같은 데 무너져갖고, 삼풍 무너져갖고 며칠간? 한 달간 뭐 며칠 살았다고 그러지만, 걔도 한 삼동을 살았으니까, 한 백 일 정도를 살은 거 아녀?
그래갖고서 글자 그대로 오세암이, 다섯 살 먹은 애가 거기서 그렇게 죽지 않고 살아났더라, 눈 속에 갇혀서 살아났더라 그러한 전설이 있고. 그 뭐 전설이야 뭐 그런, 그러니깐 실질적으로 스님이 느낀 그 뭐냐, 이 수기 방법 같은 거, 이런 거 보댐도 이런 것은 전설의 고향 그 들은 얘기지. 우리가 가서 보지도 않은 것이고 듣지도 않은 것이고. 그러니까 아 관세음 관음신앙 같은 그 책같은 것 보면 오세암이라는 그런게 나와.


󰊲 임금을 알아본 파자 점쟁이
최각스님(54, 남)/진목리T 1앞
[진목리 대한불교 원융종 원주]박종수, 강현모, 성기도, 운경애, 최준석 조사(1995. 11. 4.)

앞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들이 자신들의 취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토론을 하였다. 이때 운명이란 말과 관련되어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구술하여 주었다.
 
요 두 자를, 간단하게 시간, 뭐 찬찬히 해도 되는 애긴인가 모르지 난.
어느 한 그 파대에 능통한 사람은, 그전이 뭐 그 이년 전만 해도 스님이 공무원 생활을 했었어. 공무원 생활을 헐 적에만 해도 출근부에 도장을 찍었었어요. 도장을 꼭꼭. 오늘날에 와서 사인, 출근부에다 사인, 자기 하고 싶은 데로 사인을 하지. 이 그거를 필력이라 하구서, 자기의 필심이 그 필체가 거기 있는디, 그 저기에 그 자기 운명이 담긴 필체가 나타나는디.
어느 한 임금님이 그전에, 옛날에 길을 걷다 보니까 어느 육교 밑에서 참, 책을 펴놓고 파자법 허는 이가 있더라 이거여. 그러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저런 데로 시내로 나가면 왜 사주책 같은 거 펴 놓고, 뭐 보라고 사주, 이름 짓고 뭐 보라고 하는 사람들 있지. 그러면서 뭐, 그런 셈이지. 그런 애들처럼 파자법을 하는 도인이 있었더라 이거야. 그래서 임금님이 하니, 그 사람이 어떻게 테스트 겸해서 인저 저 사람이 진짜로 저런 걸 잘 푸나 해서, 딱 짚은 것이 임금님이 문문자를 딱 짚었어. 이 문문자를.
그러니까 아 이건 좌군 우군이잖아.(글씨를 보면서) 그러니까 그냥 기상이라. 요렇게 하면 좌구 요렇게 하면 또 우가 되거든. 그러니께 요게 임금 군자거든. 또 요렇게 아니, 요렇게 쓰거나 요렇게 쓰여지나, 우군이 되거든. 그러니께,
“좌쪽이나 우쪽이나, 좌군 우군허니, 당신은 군왕지상이다. 임금님이다. 관상이 임금님의 사주다. 그 얼굴이 관상이 그렇다.”
임금님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자기가 사복을 입고 암행어사처럼 해고 다니니까, 전두환 대통령 할 때 어디 나갔다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뭐, 그러니까 암행어사식으로 그전이는 임금님도 더러 야, 야경을 돌을 때가 있었어. 그러니께 인자 그 파자법 허는 사람이 ‘당신은 임금입니다.’ 그러니께, 기가 맥힌단 말이여. 그래서 집에 들어와서 자기 비서더러, 왈,
“너도 목욕재배 오늘 싹하고, 목욕 갔다 와서 옷 양복 한 벌 싹 맞춰 입고 잉, 아주 깨끗하게 하구 가서 문문자 이, 이자를 짚어 봐라. 문문자를 짚어 봐라. 내가 짚은 자를 짚어 봐라.”
그래서 그 비서가, 참- 비서가 인제 자기 일을, 잉 비서가 가는게 아니라 비서가 인자 딴 그지를 시킨 거야. 용한가 안 용한가 보기 위해서.
“어느 지역에 가며는 그 파자법 허는 도이사가 있으니까, 그 저기를 가서 딱 짚어 보시오.”
하고서. 거지를 목욕시켜가지고서, 이발 싹 시켜가지고서 옷 갈아 입혀 그대로 이렇게 보냈어. 그래서 거지가 가서 딱 짚으니까, 대문이잖아 이게. 대문이다 입을 달았잖아. 그러니께 대문이다 입을 달았으니께 구걸허는 사주 아녀, 그지 잉.
“당신은 걸인지상이다 이거여, 얻어먹는 사람이다.”
암만 깨끗하게 입고 갔어두. 그래서 요건 무엇을 뜻하는 기냐. 우선 여기 큰 학생이랑 학생들이 셋이 왔지만, 보는 눈이 다 각각 인거여. 어린애 그 예를 들어서, 기도를 많이 했다든, 정신 집중, 통일, 정신 통일을 한 그런 사람들은 보면 눈이 달바요. 그래서 어디 가서 뭐 점을 헌다, 뭐를 헌다 헐 적에 절대 상대방을 알아서 점을 하는 게 아녀. (자기의 체험담이 이어짐)


󰊳 이성계의 아해조정 강도령
기장석(81, 남)/진목리T 1앞
[진목1리 마을회관]박종수, 강현모, 성기도, 운경애, 최준석 조사(1995. 11. 4.)

조사자들은 약수암에서 조사를 마치고 진목 1리 마을로 내려와서 조사를 시작하였다. 우선 마을회관을 무작정하고 찾아가자, 그곳에 2명의 노인이 있었는데 화투를 띠고 있던 분이 제보자이다. 제보자는 이야기를 부탁하자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며 마을 다른 사람이 호랑이 잡았던 옛날의 이야기를 마치고, 생각이 났는지 계속하여 구술하였다.
 
한 가지, 이 저 이성기(이성계). 그전 옛날 이성기가, 이 아해 조정은 강도령이란 것이 있어요. 응? 이성기가 이  왕건 태조 때려 부술 적에 이성기란 사람이 이, 개성 왕건 태조 있을 적에 대령이요, 그 사람이. 대령인데 중국과 싸움을 해서, 중국 싸움을 허러 가다가 깃발이 날려와서, 인제 이성기가 이 개성 치고서 헌 거가 다들 알잖아. 그게? [조사자 : 처음 듣는 얘기거든요. 해도 돼요.]
그래구서 이성기가 총각 적에, 에- 절에 들어가 아 저- 공부허고 이 돌아댕기다가, 그 돌아다니다가 산중에 들어가서 정성을 드리는 거여, 이성기가. 아- 근대 강, 강도령이라는 그이가 총각인데, 선황성에 지나갔는데, 선황이 참 그 선황이, ‘아이고 나!’ 산신령이 와서 뭐라고 말하는가 하믄,
“아 그 뭣 이성긴가 뭔가 그 자식이 정성을 들이는데, 비린내 나서 음식을 못 먹는다.”
고 그랬걸랑.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강 강도령이란 사람이 거기서 자기를 엥 정성을 드리는 거여.
“당신은 뭐요?”
이렇게 물으니, 아 이성기가 큰 맘을 먹은 거 같은데, 비린내 나는데, 이 칼끈을 개가죽 끈을 해여 차고 있거든. 그거 가지고 했으니까 정성이 부족하다고 그런 얘기를 하니까, ‘아-! 내가 잘못 했구나!’ 하구서. 이성기가 인제 다 다시 하구서는 그 강, 강씨를 인제 총각이여. 죽였어. 나가서 소문 퍼트릴까 봐. 소문 퍼트리면 자기가 큰일 나거든.
그래서 이 그래, ‘아해 조정은 강도령 강도령’이란 것이 거기서 나온 말이여. 이성계가 죽이고서는, 자기가 성공하고서는, 이 ‘아해조정은 강도령’이란 그 별명이 있는 것이여. 그밖에는 나 몰라.


󰊴 이성계의 개성 정복
기장석(81, 남)/진목리T 1앞
[진목1리 마을회관]박종수, 강현모, 성기도, 운경애, 최준석 조사(1995. 11. 4.)

앞의 이야기를 마친 제보자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부탁하자 모른다고 하였다. 계속하여 간청하는 조사자의 요청에 앞의 이야기와 유사하여 생각이 나셨는지 스스로 이어서 구술하여 주었다.

그 이성기가, 이성기가 아- 이놈의 개성을 칠, 나가다가 깃발이 이렇게 돌아오는데, 그걸 칠라니, 인자 돌아서서 이제 재기(자기) 임금을 칠려고 들어오는데, 생전 쳐봤데자 국내에서 군인들이 냅다 치는데, 헐 수가 있어야지. 헐 수가 없걸랑. 그런데 이 산비탈이서 꺼먹소 가지고 밭을 갈면서,
“야! 이놈의 소야!”
그러더니,
“아-, 이성기처럼 그렇게 미련한 놈이 읎다.”
고. 그 말을 헌거여,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소를 뒷구녕에서 때려야지, 소 받는 성(형)국에다 때리니깐, 받는 소가 자꾸 나오니깐 베길 수 있어? 그래 가만히 산 형체를 보니까, 아- 쇠 대가리를 갖다가 쥐고 치고 들어가니깐 받는 소 이 놈이 들어가니깐 점점 더 나오지.
게 뒤 꽁무니를 쳐가지고서, 이 왕건 태조가 기냥 그때에 무릎을 끌고서 이성계한테 닝겨 준 거야. 그건 내가 알어.


󰊵 춘향 아씨 놀이담
원난성(56, 여)/진목리T 2앞
[진목2리 제보자댁]박종수, 강현모, 김상미, 조정빈, 진미영 조사(1996. 6. 1.)

조사자들은 진목 2리에 도착하여 마을 이장님 댁에서 퇴자를 당하고, 회관에서 한 사람에게 김영자할머니를 소개받았다. 조사자가 제보자 댁에 갔을 때에는 고부간에 집안에서 쉬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세시풍속과 놀이, 산신제, 놀이 등에 대해 묻고 구술하는 도중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이것은 원래 주술적 놀이인데 설화적 가치가 있어 수록하였다.

그리고 옛날에는 우리 어렸을 때는 뭐야 춘향 아씨 많이 하구 놀았어. [조사자 : 그게 뭐예요?] 저기 그러니까 정월에 춘향 아씨 내린다구, 막 둥그렇게 앉아서 한 사람을 여기에 놓고 막 빌어. 말하자면 무당도 신 내려서 하는 거 마냥 그걸 한다구.
“뭐 춘향이는 뭐, 나이는, 생일을 사월 초파일, 뭐 저기 나이는 18세, 뭐라구. 막 춘향 아씨, 춘향 아씨 뭐 내려라.”
구. 막 처녀들이 막 빈다구. 한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그래서 조금 신 있는 사람은 금방 내려. [조사자 : 어떻게 내려요?] 내리는 게 무당 내리는 거 마냥 막 춤을 춰. 막 춤을 추구. 막 그래 가지구 우리들이 몰래 숨잖아. 찾아오라구 하면 다 찾아와. 무서워서 여기 막 숨고 저기 숨고 그런다구. 그러면 나중에는 정신이 막 신이 내려서 그냥 못 저기해.
나중에는 어떻게 우리 놀다가 한 번 그러고 나서 안 해. 처녀 때인데 그러고 나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물을 끼얹었어, 옷에다가. 그러니까 정신이 나가지구 끄때 깨더라구. 그러고 나서 그런 짓 안해.
[조사자 : 너무 놀랬겠다.] 우리는 전에는 그전에 놀게 없으니까 그런 거 많이 하구 놀았지.


󰊶 고지식한 선비의 일화들
김영자(79, 여)/진목리T 2뒤
[진목2리 제보자댁]박종수, 강현모, 김상미, 조정빈, 진미영 조사(1996. 6. 1.)

세시풍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을에 일이 있다며 나가신 할머님을 기다리면서 이곳의 세시풍속과 놀이와, 마을개관 등을 조사하였다. 이때 밖에서 들어온 제보자에게 이야기를 부탁하자 생각이 났는지 구술하여 주었다.

그저 삼거리 다리 밑구녁에, 이 옛날에 어떤 촌 늙은이가 있는데, 인제 누가 서울을 올라 갔는데, 누구 글을 한대 지어, 저기 지어 달라고 그래서 글을 지어 줬데. 그랬더니 돈 옛날에 삼천 냥 주더랴. 그거를 가지고는,
“아이, 여긴 도둑놈이 많으니께 여기다 잘 둔다.”
고. 한강 모래 갱변에다가 파묻고는,
“여기 이선달 돈 삼천 냥을 여기 묻었다.”
고. 인제 팻말을 해서 꽂았어.(짖는 개를 꾸짖음) 그러구서는 이젠 어디 가서는 자구서는 그 이튿날 가니께루, 누가 홀랑 빼가고는 저기 팻말까지 읎어. 빼 빼내버렸드랴.
“아유! 이건 누가 가져 갈까 봐서는 내가 팻말까지 해서 꽃아놓았더니, 세상에 그래 팻말까지 빼 갔느냐.”
구. 그렇게 어리석었어, 노인네가.

그라구 인제 그 노인네가, 또 인제 서울서 인저 하루 저녁 잠을 자는데, 어떤 집이 여관에 들어 가서 잠을 자는데, 그 노인네가 인제,
“아유, 이거 서울이라는 고장은 눈 없이면 코 비어간다는데 이 옷을 벗어서 이 방에다 두면 도둑놈이 가져가기가 무섭다.”
고. 그런께, 이 창문 열면 여기가 배깥 아니여. 그게 벽장인 줄 알고 옷을 벗어서 거기다 확 집어 내던지고서 문을 닫았더니, 아 식전에 일어나서 옷을 입을라고 일어나고 보니께 아 벽장까지,
“아유 세상에! 눈 없으면 코 비어간다더니, 벽장까지 도둑놈이 띠가지고 없다고 말이여!”
그래서 인제 주인을 청해가지고는 주인을 찾어가지고는 그런 얘길 하고선, 옷을 한 벌 인제 청해서 인저 입고선 집이를 와가지고는.

이젠 또 어디 가서 여럿이 자는데 잠을 자는데, 그 사람이, 나 이거 그전에 책에서 본건데 다 잊어 버렸어. 그런데 다리가 가려워서 내 다리 긁는다는게 남의 십종 앓은 다리를 긁었어. 남의 십종은 다리 앓는 병이 있어. 그러니께 십종 앓는 사람이 자다가 그냥 벌떡 일어나서 토막으루다 방바닥을 두드리면서,
“어떤 놈이(웃음) 내 다리를 긁어. 아픈 다리를 긁었느냐?”
구. 야단을 치니께. 가만히 두르너서(누워서)
“어이구! 누가 그래 남의 다리를 긁어. 내 다리두 몰르구.”
그러구 늙으니가 하드리야. 그거 옛날에 내가 책 본거여. 그라곤 그거여. 그라곤 읎어.

3) 민요
󰊱 모심기 노래
김영자(79, 여)/진목리T 1뒤
[진목2리 제보자댁]박종수, 강현모, 김상미, 조정빈, 진미영 조사(1996. 6. 1.)

앞의 이야기를 마치고 조사자가 옛날에 모심기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가 없느냐고 묻자 불러주신 노래이다.

여하 여기두 또 하나~
여하 저기두 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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