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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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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치헌(閔致憲)

<출생> 조선말기(1744~1903)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태현(泰顯)의 아들이다. 음직(陰職)으로 청하현감(淸河縣監) 등을 
역임하다가 1885년(고종 22) 9월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등제한 
뒤 그해 10월 홍문과부수찬이 되었다. 이듬해에 돈녕부도정(敦寧府
都正)이 되었으며, 1887년 9월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사간
원 재임시 여러차례 직간을 올리고 대사간을 사임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888년 4월 이조참의로 발탁되고 그해 8월 성균관 대사성에 올랐으
며, 이듬해에 승정원 우승지에 제수되었으며, 1892년 동지동녕부사
가 되었다. 1894년 고부에서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여 전국적인 농민
전쟁으로 비화될 즈음 지방관인 경주부윤의 외직에 있었다. 그리하
여 동학농민 전쟁의 발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민씨척족들이 유배형
을 받게 될 때 그도 그해 6월 홍원현(洪原縣)에 유배되었다가 그해 
9월 풀려났다. 1896년 증추원 1등의관에 임명되고 칙임관 2등에 서
임되었으며, 1899년 궁내부 특진관이 되었다. 1900년 4월의 의정부 
찬정이 되고 이어 칙임관 1등에 올랐다. 동년 7월 회계원령, 이듬해 
다시 궁내부 특진관과 칙임관 1등에 이르렀다. 시호는 효헌(孝憲)이
다.

<참고문헌 : 高宗實錄, 承政院日記, 國朝榜目>, 최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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