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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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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언(白光彦)

<전사(戰死)> ?~선조 52(1592). 조선 무관. 호는 풍암(楓岩), 본관
은 해미(海美). 선조 22년 북청판관(北靑判官)을 지내고 1592년 모
친상(母親喪)을 당하여 집에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공주에 
달려가 군대를 해산하려는 이광(李洸)의 마음을 돌이켜 그와 함께 
전주(全州)에 가서 군대를 재정비하고 6월 5일 용인현성의 북쪽 문
소산의 적루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적군은 아군의 강성함을 보고 섣불리 싸우려 들지 않고 묘시
(오전 6시)부터 사시(오후 10시)까지 소극적인 방어에만 치중하면
서 응원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고 왜군은 아군의 경계가 소홀해
지고 좌.우 종대의 전열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책문(柵
門)을 열어 젖뜨리고 반격을 가하였다.
이에 놀란 선봉장 이지시와 백광언등 두 장수가 아군을 질타하면서 
분투하였으나 전사하였다. 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충민(忠愍)
이란 시호를 내렸다.

<참고 : 내고장 용인, 임진왜란 편, 한국인물대백과>, 노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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