¾ÆAIμð
비밀번호
로그인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사이트맵
찾아오시는 길
이메일보내기
문화원달력
조직도
홈 >향토문화자료관>향토위인

 

박철원

이미지없음
 박철원(朴哲遠)

학생독립운동가. 선생은 1918년 용인에서 출생하였고 일제의 압정
을 피하여 망명하는 부친을 따라 중국 남경으로 갔다.
선생이 25세때인 1943년 남경중앙대학 농학원(農學院) 농학계(農學
系) 3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다.
이 당시 남경 중앙대학에는 선생을 포함하여 한국인 학생 12명이 재
학하고 있었는바 본 대학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던 3학년 송지영
(宋志英)은 독립운동에 관여하면서, 중경(重慶)에 있던 한국임시정
부와 은밀히 연락을 취하여 지하공작을 전개하였다.
그는 그곳 한국인 교포에 대한 항일투쟁의 공작활동은 물론 동대학
에 재학중인 박철언 선생 등과 더불어 조국광복에 대한 토론과 애
국 애족 독립정신을 고양하여 유사시에는 즉각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다는 태세를 정비해 나가고 있었다.
그럴즈음 1943년 6월 용인 출신 김병호(김병호 : 일명 중민) 지사가 
중경 임시정부로부터 밀파되어 남경 유학생들과 접촉하던 중 상해 
일본 영사관 경찰에 의하여 체포됨으로써 송지영도 임시정부의 공
작요원이라는 사실이 탄로되었다.
이로써 남경 중앙대학에 재학중이던 모든 학생들의 숙소를 수색함
으로써 학생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도피하여 독립투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박철언 선생은 학우들과 한족동맹회와 한교전지공작대(韓僑戰地工
作隊)를 창설하고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해온 바, 송지영이 체포됨
으로써 선생의 정체가 들어날 위험에 직면했음으로 항주(杭州)로 
도피하여고 거기서 동창생인 김용(金龍)의 협조를 받아 제2전구(第
三戰區)로 단독 탈출한 후, 충의구국군(忠義救國軍)에 입대하고 한
국 광복군 징모삼분처(徵募三分處) 절서분실장(浙西分室長)으로, 
남경과 상해지구 초모공작(招募工作)을 맡아 활약하였다.

<참고 : 독립운동사(9), 김승하, 한국독립사(하)>, 노승식
    목록



 
주소 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