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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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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천봉(朴千鳳)

1898년 2월 16일 안성에서 출생하였다. 이명(異名)은 순칠(順七). 
1914년 4월 1일 최은식, 홍창섭, 이유석 등이 주동이 되어 전개한 양
성, 원곡면 일대의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는 이날 저녁 동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뒤 이희봉, 손정봉등과 
양성면으로 행진하여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경찰 주재소에 도
착하였다.
이곳에서 1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고 해산
하여 돌아가던 중 원곡면장을 선두에 세우고 횃불을 들고 향진해 오
는 1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합세하여 다시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오후 10시경 주재소에 도착하여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
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파괴 방화하였다.
다시 시위군중과 함께 양성 우편소로 가서 그곳의 기물과 건물을 파
괴, 방화하였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의 집을 파괴하였다.
다음은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괴, 방화하고 시위군
중과 함께 인근의 뒷산으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친뒤 해산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고 체포되었다. 1921년 1월 22일 경
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혐의로 2년 6개
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77년 대통령표창 애국장을 받았다.
그후 용인 이동면 덕성리 247버지로 이전 그의 후손이 살고 있다.

<참고 : 독립운동공훈록 제2권>, 박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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