¾ÆAIμð
비밀번호
로그인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사이트맵
찾아오시는 길
이메일보내기
문화원달력
조직도
홈 >향토문화자료관>향토위인

 

이희동

이미지없음
 이희동(李喜東)

<효자·정문> 본관은 덕수. 자는 필만(必萬)이며 어무장군(御侮將
軍) 이치(李稺)의 아들이며 현종 계묘(1663)년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칭송을 들으며 자랐다. 모친이 위독하
매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간병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밤마다 목
욕재개하고 산천에 기도하여 백일이 되던 날 밤 꿈에 산신령이 나타
나서 묘방을 일러 주었으니 하늘의 보살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
친 간병에 쓸 약초는 여름에나 나는 산야초였기로 엄동 중에는 구
할 방도가 없었다. 희동은 설중에 이산 저산 약초를 찾아 헤매던 중 
마침내 지쳐 혼절하였다가 깨어났을 때 그가 쓰러졌던 자리에 산야
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이를 구하여 모친의 환우를 치유케 되니 
사람들은 천우신조라 말하였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 그의 모친
이 천수를 다하매 희동은 슬퍼함이 극에 달하였다.
부친의 묘에 합장한 후 3년 동안 하루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묘하
에 꿇어 엎드려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3년 탈상 후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양쪽 무릎이 빠져 있었다. 이와 같은 효행이 이웃과 마을에 
전파되어 마침내 상께서 들으시고 명하여 효자 정문을 내렸으며, 참
봉으로 표정하였으나 무릎이 빠져 거동할 수 없었음으로 이를 사양
하였다. 기흥읍 영덕리에 정려문이 있다.

<참고:덕수이씨 세보, 삼강행실록, 내고장의 얼>, 이응준
    목록



 
주소 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