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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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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기(李天基)

<묘> 선조 40(1607)~현종 11(1670) 조선 문신. 자는 재원(載元), 호
는 묵암(黙菴), 본관은 연안, 시정(時程)의 아들. 풍의(風儀)가 수려
하고 미목(眉目)이 그림 같았다. 12세에 모든 경서(經書)에 통하였
다. 인조 11년(1633)에 진사에 합격하고 인조 13년(1635) 알성문과
(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봉교, 세자시강
원(世子侍講院), 설서(說書)를 거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사헌
부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고 부안현감(扶安縣監)을 지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호조참의(戶曹參議), 여주목사(驪州牧使), 충
청감사(忠淸監司)를 지내던중 그의 모친이 연로(年老)하므로 사직
을 청하매, 특별히 충주목사(忠州牧使)를 내려 양친(養親)하는데 편
리하게 배려되었고, 다시 인천부사(仁川府使)가 되었다.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살림이 가난하여 몸소 나무라고 낚시질하여 
모친을 섬겼으며, 벼슬에 처(處)하여서는 한가지 물건도 사사로이 
갖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모친이 연로하여 앞을 보지 못하자 몸소 
수저를 들어 올리고, 눕고 서며 앉는 일에 반드시 부축하여 모친을 
받드는 효성이 지극하니 보는 사람이 다 감동하였다. 평생에 재물
을 멀리하였으므로 서울에 집 한 채가 없으며 묘(畝)의 전토도 더하
지 않았다. 거처를 돌아보면 풍우를 가리지 못하니 오직 후손에게 
전한 것으로 청백(淸白) 뿐이었다. 현종 11년(1670) 7월 11일 하세
하니 수 64세였다. 묘는 내사면 산매동에 있다.

<참고:연안이씨 세보, 연이선적고>, 금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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