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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조

이미지없음
 이찬조(李纘祖)

<출생·사묘> 본관은 전주, 선조 17(1584) 4월 22일 용인에서 출생하
였다. 별자호란이 일어나자 별천선전관(別薦宣傳官)이 되어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였고, 이어 충청도에 내려가서 감사 정세규에게 
근왕토록 하라는 왕의 밀지를 전하였다. 인조 14(1636)년 11월 의병
을 이끌고 지금의 성남시 세곡동에 이르렀을 때 적군에게 포위되었
다.
이찬조는 민진익(閔震益)과 함께 힘을 다하여 싸우면서 수적(數賊)
을 격살하였으나 결국 생포되고 말았다. 청태종 앞에 끌려간 그는 
항복하면 살려 주겠다는 등 온갖 회유와 협박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을 꾸짖어 하루속히 이 땅에서 물러가라고 하였다. 청태종은 그
의 인물됨을 아까와 하면서 모쪼록 항복하여 신하가 되어달라고 타
일렀으나 이찬조는 오히려 장부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꾸짖었다. 그
러자 분을 참지 못한 청태종은 전신을 묶어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
은 다음 기름을 붓고 아직 늦지 않았으니 마음을 고쳐보라고 하였으
나 그는 오히려 “장부 죽을 자리를 얻었은 즉 마땅히 죽을 것이며 
절의를 지킴은 군자의 행할 바라”고 일갈하고 마침내 화형을 당하
여 순절하니 이해 11월 18일의 일이다.
그 후 병자(1696) 10월 가선대부 병조판서에 증직되고 충신 정려문
이 내려지니 고향인 구성면 보정리 정문동에 전해오고 있다. 정려각
에는 권철(權徹)이 지은 행장기 1좌가 있다.

<참고:전주이씨 세보, 행장기>,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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