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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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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두(李鍾斗)

<출생·묘> 1902.10.16~? 본관은 연안, 호는 호산(湖山), 용인군 남
사면 완장리에서 출생 16세 되던 해에 부모 슬하를 떠났다. 25세 때 
관직에 나아갔고 구 한 말에는 기울어져 가는 이왕가(李王家)의 기
술원(技術員)으로서 일제 치하를 겪다가 30세 되던 해인 1931년 관
직을 물러난 후 한성신보(漢城新報) 특파기자(特派記者)로서 5년
간 언론계의 몸담았었다.
그 후 전국 방방곡곡의 명승과 고적을 답사하였고 1936년에는 소만
국경(蘇滿國境)을 여행한 후 망명하여 중국의 각 성(省)과 각 현
(縣) 그리고 내몽고(內蒙古)까지 주유(周遊)하면서 자연과 순진(純
眞)을 벗 삼아 47년을 시인 묵객(墨客)으로서 강호(江湖)를 떠돌았
다. 그 후 일시 만주지방에 거주하면서 서(書), 화(畵)에 심취했던 
때도 이었다. 호산의 성격은 매우 활달하였으며, 박식다재(博識多
才)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詩), 가(歌)에 모두 능통하였다.
평소 강인하고 분방한 성격으로 하여 이재(利財)에 연연치 않았고, 
또 명성이나 일신의 영달을 위해 굴종한 일이 없었던 인물로 평가된
다. 해방 후 귀국하여 다시 언론계에 종사하였고, 일시 교편을 잡기
도 하였으나 이를 그만두고 인왕산 아래에서 호산시가서화연구소
(湖山詩歌書畵硏究所)를 개설하고 후학 양성에 전념했던 일도 있었
다. 저서로는 <아국답사행적기문집(我國踏査行蹟記文集)>등이 있
다.
그의 작품은 대륙견식(대륙견식)의 영향을 받아 활달, 강건한 특색
을 지니고 있다 하겠고 사군자(四君子)로부터 영모화(翎毛畵)에 이
르기까지 대체로 무난하였으나 조선후기 민화풍의 잔영이 풍기고 
있다. 그의 묘는 남사면 완장리에 있다.

<참고 : 호산문집>,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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