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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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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李莞)

<묘 : 충신정려문> 선조 12(1579)~인조 5(1627). 조선 무신(武臣), 
자는 열보(悅甫), 본관은 덕수(德水), 충무공(忠武公) 순신(舜臣)의 
조카, 중참판 희신(羲臣)의 아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숙부인 충무공 순신을 따라 군영(軍營)에 있
었는데 1598년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홀연히 탄환을 맞아 절명하
자 이완은 급히 유소를 받들어 뱃머리에 나아가 큰 소리로 기(旗)
를 흔들면서 지휘하여 마침내 적을 크게 무찌르고 대승하였다.
이듬해인 1599년 무과에 급제하여 바로 도총도사(都摠都事)에 제수
되었으며 갑진년(1604)에는 남포현감(藍浦縣監)이 되었다가 광해
군 10년에는 평양중군(平壤中軍)이 되어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
랐고, 인조 1년(1623)에는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에 
이르렀다. 이듬해인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수하의 병
사를 인솔, 호현(狐峴)에서 결진하여 이천(利川)으로 도망친 난군
을 토평하였다. 그는 이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른 후 의주
부윤(義州府尹)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임기가 지났음에도 그대로 
유임하라는 왕명이 있었는데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 
몰래 압록강을 건너온 오랑캐들이 밤에 군진을 포위하고 야습을 감
행하자 이들을 맞아 힘껏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자 병기고에 
불을 지르고 뛰어들어 분사하니 정월 14일이었다.
일찍이 만(灣)에 있을 때 종형(從兄)에게 서신을 보내어 이르기를 
“이미 죽기를 각오하였는데 어찌 족히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겠는
가? 비록 일이 창졸간에 일어났으나 평소에 품은 뜻으로 일을 대처
할 것이오”라고 적었다. 이 사실을 듣고 후에 조정에서는 병조판서
로 추증했으며, 숙종 갑신년(1704)에는 충신으로 정려(旌閭)하고 고
향에 정려문을 세우니 지금의 수지면 고기리에 전한다. 숙종 32년
(1706)년에는 충무공 사당인 아산의 현충사에 제향케 했으며 시호
를 내려 강민(剛愍)이라 하였다.

<참고 : 국조인물고, 한국인명대사전, 묘갈>,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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