¾ÆAIμð
비밀번호
로그인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사이트맵
찾아오시는 길
이메일보내기
문화원달력
조직도
홈 >향토문화자료관>향토위인

 

이석지

이미지없음
 이석지(李釋之)

<묘> 고려 충숙왕~조선 태조 때 사람.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남
곡(南谷), 판도판서(版圖判書) 흡(洽)의 아들. 남곡공파의 시조 그
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에 전해진다. 이에 따르면 그는 일찍
이 가정(稼亭) 이곡(李穀)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목은 이색과 함께 
고려 충혜왕(忠惠王) 4년(1341) 진사가 되었고, 충목왕(忠穆王) 정
해(1347)년에 문과관(文科官)이 되었으며, 경상도 안렴사(慶尙道 
按廉使)를 거쳐 종2품 보문각 대제학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의 묘소
는 내사면 주북리 임원마을 앞산에 전해지는데 그의 묘표는 숭정기
원후 4을유(1825)년에 세웠다. 목은 이색이 지은 기문(記文:南谷記)
에 “용구(龍駒) 동쪽에 남곡이 있는데 나와 같이 과방(科榜)에 오
른 이선생(釋之)이 산다”하였는데 남곡은 지금의 주북리이다.
내용을 보면 “남곡은 산에 나무할 만하고 물에 고기 낚을 만하여 세
상에 요구할 것 없이 자족하다. 산이 명랑하고 물이 푸르러 지경이 
그윽하고 사람이 고요하여 눈을 들면 심경이 유연 해진다”라고 적
고 “어떤 사람이 이색에게 이석지가 왜 초야에 묻혀 사는지 모르겠
다며 혹시 숨어 사는 게 아니냐”고 물었을 때 그는 말하기를 “숨어
사는 자는 몸만 숨기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 이름도 숨기는데 지
금 선생은 남곡에 살면서 밭도 있고 집도 있어 관혼상제에 쓰임이 
족하니 세리(世利)에 무심한지 오래이다. 그러나 숨었다는 것으로 
자처하지 않는다. 해마다 서울에 와서 옛 친구를 만나고 한껏 마시
면서 담소하며, 또한 왕래하는 도중에는 파리한 아이 종과 여윈 말
로써 채찍을 세워 읊조리는데 흰 수염은 눈과 같고 붉은 뺨에는 광
채가 넘치고 있어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시켜 그의 신색을 그리라
면 삼봉연엽도(三峰蓮葉圖)에 양보하지 않으리라고 피력하고 남곡
이 경치가 좋으니 선생이 여기서 즐김이 마땅하다면서 이색은 내 쇠
하고 병든 지 오래여서 매양 시골로 돌아가고자 하여도 실행하지 못
하는데, 집이 있어 바다에 가깝고 밭이 있으나 모두 토박하므로 두 
가지의 완전한 것을 얻어서 나의 몸을 바치는 것이 나의 소망이나 
어찌 될 것인가”라고 자탄하면서 석지를 부러워했다.
또 이석지는 조정에 여러 번 왔으나 지위는 겨우 3품에 이르렀지만 
끼친 사랑은 백성의 마음에 남았고 빛난 명성은 물망에 합당하였다
고 평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등극한 후 절의를 지켜 용인에 낙향하
였고 그의 손자인 종검, 종겸도 일찍 벼슬에서 물러나 효우당(孝友
堂)을 짓고 유유자적 하다가 세상을 마쳤다. 내사면 주북리에는 영
천이씨 남곡공파 시조 사당인 남곡재(南谷齋)가 있다.

<참고 : 동국여지승람, 향토문화와 전통>, 노승식
    목록



 
주소 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