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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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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찬(金 瓚)

조선중기(1543~1599)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숙진(叔
珍), 호는 눌암(訥菴)이다. 아버지는 형조참의 언침(彦沈)이다. 
1567년(명종 22)에 진사가 되고, 156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
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1570년에 검열이 되고, 이후 대교・봉교・전적・형조정랑・검상・사
인・이조정랑 등의 관직과 지평・집의・정언・헌납・사간・수찬・교
리・응교 등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특히, 1573년 평안 삼
도사로 나가 군적(軍籍)을 정리하였으매 이듬해에는 평안도 순무어
사로 활약하였다. 1584년 이후 전한・직제학・승지・좌참찬・동지중
추부사・대사헌・대사간・대사성・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의 파천을 반대하였으며, 임금일
행이 개경에 이르자 동인(東人) 이산해(李山海)의 실책을 탄핵하여 
영의정에서 파직시키고,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있던 김공량(金公
諒)을 공격하였다.
그 후 정철(鄭澈) 밑에서 체찰부사(體察副使)를 역임하고, 양호조도
사(兩湖調度使)로 전쟁의 뒷바라지를 하였고, 접반사(接伴使)로서 
명나라와의 외교에도 일조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부터 예조판서・지의금부사・대사헌・이조판서
를 연이어 지냈고, 지돈녕부사를 거쳐 우참찬까지 승진하였다. 그
는 문장가로도 이름이 높았으며, 경제문제에 밝고 외교직 수완이 능
숙한 명신이었다. 임진왜란 뒤 전쟁의 수습과정에서 죽자 선조는 조
회를 정지하여 추모의 뜻을 표했다.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참고문헌 : 國朝犢目, 國朝人物考, 宣祖實錄>, 최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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