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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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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묵(李丙黙)

<출생.묘> 고종 13년(1876). 용인군 상동촌면(上東村面) 노곡(老
谷:지금의 이동면 천리)에서 출생. 초명은 규병(圭炳), 자는 성좌(聖
佐), 호는 우재(又齋), 본관은 우봉(牛峯), 고종 31년(1898) 진사시
(進士試)에 합격한 후 광무 6년(1902) 영천군수(榮川郡守)와 오천군
수(鰲川郡守)를 역임한 후 비서감(秘書監)과 승지(承旨)를 거쳐 가
선대부(嘉善大夫)의 관위에 올랐으나 융희 4년의 경술국치(庚戌國
恥) 이후 관직을 버리고 향리인 용인에 낙향하여 조신치가(操身治
家)와 식산(殖産)에 전념하여 만석농(萬石農)에 이르러 영세빈농
을 구휼하기에 힘썼다. 그 후 광복 직후인 1946년 후학 양성을 위한 
육영사업에 뜻을 세우고 태성학원(泰成學院)을 설립, 개교함으로
서 용인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이 되었고 전국 초유(初有)의 사립중
등학원이 되었다. 초기에는 향리의 모든 자제(子弟)에게 무상교육
을 실시케 하고 그 경비는 사재로 충당하였다. 그 덕으로 많은 인재
가 양성되어 사회에 배출되었고 태성학원은 근대 교육의 맹아기(萌
芽期)였던 용인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참고 : 이병묵선생 송덕비>, 박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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