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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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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길권(李吉卷)

<출생> 신라 효공왕 8년(904)~고려 목종 11년(1008). 고려 문신. 
용인에서 선비 원(援)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본래 타고난 성품이 강
직하고 도량이 넓으며, 재능이 특출하고 학문을 즐겼는데 특히 천문
(天文)과 지리(地理)에 도통하였다.
당대의 유명한 도승(道僧) 도선대사(道詵大師)가 그를 처음 보고 
“이 분은 왕을 도와 큰일을 할 재량(才量)이 많은데 어찌 지방에 묻
혔는가”라고 하였는데 이때부터 서로 친하게 사귀며 학문을 닦았
다.
때는 신라 말엽이라 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하여 국운이 쇠할 무렵으
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누차 이길권을 초빙함으로 이에 응하
여 함께 국란을 수습하게 되었다. 즉 당이 후백제의 견훤(甄萱), 태
봉(泰封)의 궁예(弓裔)를 섬멸하고 동예(東裔), 고부이(古扶伊), 오
환(梧桓)등을 통합하여 고려를 건국하게 되었다.
길권은 고려 건국에 공로가 컸기 때문에 고려 태조가 즉위(卽位)한 
후 이르기를 “옛날 주(周)의 대업을 도운 여상(呂尙)이나, 한(漢)을 
개국할 때 도운 장자방(張子房)의 공보다 용인의 이길권의 공이 더 
컸다”고 하며 고려 건국의 공로로 식읍(食邑) 5백호를 내리고 산성
군(山城君)으로 봉(封)하였다.
그러나 길권은 자신의 영달을 위한 벼슬을 생각지 않고 오직 겸양
의 마음으로 하사(下賜)한 녹을 받지 않고, 말하기를 “신은 땔 나무
를 하고 나물을 뜯으며 산골에서 청백(淸白)히 살지, 후한 녹은 마
음의 짐이 되니 내 어찌 받으리요”하고 사양하였다.
고려 태조는 더욱 그의 덕품(德品)을 추앙(追仰)하여 구성백삼한벽
상공신삼중대광숭록대부태사(驅城伯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崇祿大
夫太師)로 삼고, 능선각(能善閣)을 제(題)하여 공신으로서 최고위
로 정하였다.
또 길권은 고려 태조의 누님인 장공주(張公主)를 맞이하여 고려조
의 부마가 되었다. 그는 벼슬을 뜬 구름과 같이 생각하고 고향인 용
인에 돌아와서 청렴하게 살다가 서기 1108년 하세하니 수 106세였
다.
나라에서는 생전의 공을 기려 안곡공(安穀公)이라 시호(諡號)를 내
렸다. 그 후 후손들이 그를 용인 이씨의 시조로 하고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문헌의 기록으로는 그의 묘소는 기흥읍 영덕리마
을 뒷산이라 하였으나 실전되었으며 영덕리에 시조단이 있다.

<참고 : 향토문화와 전통(용인군), 용인이씨 세보>,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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