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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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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원(梁瑗)

양지현감 1468년~1473년까지 양지현감을 지냈다. 양지현(陽智顯)
은 세종때까지 광주진(廣州鎭)의 관할구역으로 계속 되었는데 방면
(坊面)이 겨우 6방(六坊:元面)에 불과하여 매우 협소하였다.
140년 현감 양원이 이러한 사실을 조정에 장계(狀啓)하여 방면을 늘
려줄 것을 호소하자 죽주의 고안(高安:지금의 외사면 고안리 지
역), 대곡(大谷:지금의 외사면 박곡리 일대), 목악(木岳:지금의 원삼
면 목신리 일원) 제촌(蹄村: 지금의 외사면 옥산리 일대)등 4부곡
(四部曲)을 활양하여 양지현(陽智縣)으로 편입케 하였고 동시에 충
청도에서 경기도로 이속시켰다.
협소하기 짝이 없는 작은 고을의 일개 현감이 장계 하나를 올려 현
세(縣勢)를 두배로 확장 시켰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당시 양지현감 양 원의 부친은 막강한 실세로 영의정의 지위
에 있던 양성지(梁誠之)였다.
남원군(南原君) 양성지는, 그의 선친은 양지에 장사하고 또 모친은 
강원도 횡성(橫城)에 장사하였는데 부모 살아생전에 녹봉으로 봉양
하지 못한 것을 매양 슬프게 생각하여 오다가 그 후 벼슬과 명망이 
드러나게 되자 조정에 청하여 맏아들 원(瑗)은 양지현감(陽智縣監)
이 되게 하고 둘째 아들 수(琇)는 횡성현감(橫城縣監)이 되게 하여 
부모 묘소가 고을에 있게 하고 제사를 받드니 영화와 효도에 있어
서 유감스러움이 없었다 하겠다는 내용이 열려실기술 정효(旌孝)편
에 기술되어 있다.
이로보아 양성지와 그의 아들 양원은 양지현세를 확장시켜 우리에
게 물려준 공로자들이며 그 공으로 오늘의 용인군 경역이 있게 되었
으나 63년도에 고삼면을 안성군에 이관한 것은 섭섭한 일이다.
양성지는 양지현령으로서는 6년간이란 최장수 재임기간을 기록하
고 있다.

<참고 : 용인군 행정연력과 유래, 연려실기술>, 노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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