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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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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막

<출생> 최승희의 남편. 1910년 4월 18일생으로 원삼면 문촌리 417
번지에 본적을 두고 있다. 본명은 안필승(安弼承)이며 기선(琦善)
의 2남으로 1931년 7월 15일 창선(昌善)의 사후에 양자하여 양모 오
옥경(吳玉卿)에게 입적(入籍)ㅏ였다. 1931년 6월 3일, 일제 때 세계
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무용가 최승희(崔承喜)와 결혼, 1932년 8월 
24일 원삼면 문촌리에서 장녀 승자(勝子)를 낳았다.
최승희는 당시 경성부 서대문정 일정목 22번지에서 최준현(崔濬鉉)
의 둘째 딸로 태어났으며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일본 최고
의 무용가 <이시이바구>의 문하생으로 무용을 배우고 아시아는 물
론, 미국, 유럽, 중남미까지 명성을 떨쳤다. 3백 50여종의 춤을 개발
한 최승희의 춤을 본 사람이면 결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라는 표
현이 그의 경지를 말해준다. 해방 후 안막이 월북했을 때 자신의 사
상과는 관계없이 남편을 따라 갔다가 안막이 숙청당한 후 1967년 딸
과 사위와 함께 중국으로 도망가던 중 체포되어 역시 숙청당한 것으
로 전해지며, 아직 생사는 밝혀지지 않는다.
안막의 경력에 대하여 밝혀진 자료가 없으나 당시에 문화예술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보인다.

<참고 : 제적원부, 1905년 5월 15일자 문화일보>, 노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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