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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

이미지없음
 김일손(金馹孫)

<은거, 유래> 세조 10(1464)~연산군 4(1498) 조선 초기 학자. 문
신.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지만 자연농원<패밀리랜드>에 연해 있는 
서북쪽의 산등성을 탁영봉(濯纓峰)이라 하였으며 그 중간 양지 바
른쪽을 한림대(翰林臺)라 하였다.
단종 계유년(1454)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세조 갑자년(1456)에 문과
에 급제한 후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사헌부(司憲府) 지평(持
平), 공조정랑을 지낸 바 있는 금산 김구(金龜)가 만년에 탁영(濯
纓) 김일손(金馹孫)과 더불어 이곳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논하고 후
학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탁영 김일손은 김종직 문하에 들어가 정여창(鄭汝昌), 강혼(姜渾)등
과 같이 교우하였으며 홍문관 수찬(修撰) 거쳐 이조정랑 등을 지냈
는데 여러 차례 걸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여 학문과 깊이를 더하
였다. 그리고 주로 언관에 재직하면서 문종의 비인 현덕왕후 소릉
(昭陵)을 복위하라는 과감한 주장을 하였을 뿐 아니라 훈구파의 불
의 부패 및 권귀화(權貴化)를 공격하는 반면 사림파의 중앙정계 진
출을 적극적으로 주선하였다.
그 결과 1498년(연산군 4)에 유자광(柳子光), 이극돈(李克墩)등 훈
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에서 조의제문(弔義帝文)의 사초화(史草
化) 및 소릉복위 등 일견의 사실로 말미암아 능지처참 형을 받았으
며 중종반정 때 복관된 인물이다.
한림대는 바로 한림학사를 지낸 김구가 은거하던 곳이라는 데서 비
롯된 것이고 탁영봉은 김일손의 호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이 두분은 생전의 여가 중에 은인자중 담소하면서 시회를 즐겼던 
예 한림대와 탁영봉은 관광명소로 바뀌어 거의 옛 모습을 알 수 없
게 되었듯이 인걸에서 유래된 지명을 기억하는 사람도 또한 없을 것
이다.

<참고 : 해동삼강실록>, 노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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