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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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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연(趙涓)

<사당> 공민왕 23(1374)~세종 11(1429) 조선 문신. 자는 여정(汝
靜), 초명은 경(卿), 본관은 한양(漢陽), 감문위대호군(監門衛大護
軍) 양기(良琪)의 증손, 용원부원군(龍源府院君) 인벽(仁壁)의 아
들. 이성계 부친 환조(桓祖)의 외손. 우왕 12년(1386) 진사시에 합
격, 1388년 고공사좌랑(考工司佐郞)이 되고 이듬해 통례문부사(通
禮門副使)를 거쳐 1392년 공조총랑(工曹摠郞)이 되었다. 이해에 이
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천우위대장군에 임명되어 왕을 호위하는 
운검(雲劍)의 직책을 맡아 그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건국 초기에 
인심이 안정되지 않아 왕이 친자를 3번으로 나누어 대내에 입직토
록 하였는데 여기에 참여하여 왕의 처소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
다. 왕의 시종을 잘하여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명되었으며, 1396
년 과의상장군(果毅上將軍)에 제수되었다. 1398년 중추원 우승지
가 되었다가 이듬해 좌승지가 되고 1400년 삼국부동지총제(三軍府
同知摠制)로 승진되었다. 태종이 잠저에 있을 때 애무 두텁게 사랑
하였는데 세자로 책봉되자 도독부를 두고 절제로 삼아 항상 궐내에 
있게 하였다. 이해에 제2차 왕자의 난을 도운 공으로 좌명공신(佐命
功臣)이 되고 1402년 한평군(漢平君)에 봉해졌다. 이때 갑사 3백 명
을 선발하여 내갑사(內甲士)로 일컫고 이를 반으로 나누어 좌·우위
를 각각 영솔하게 하였는데 이를 맡아 궐내의 별침(別寢)을 시위케 
하였다. 1409년 야인이 북장을 침입하게 하자 길주도도안무찰리사
(吉州道都按撫察理使)가 되어 나갔는데 이듬해 올적합·금문내 등
이 경원(慶源)으로 침입하여 절제사 한흥부(韓興富)를 살해하자 군
사들을 거느리고 올량합, 파아손 등 지취자등을 살해하고 아울러 부
족 수백 명을 섬멸하였다. 1413년 공조판서로 전직되고 1416년 판좌
군부사가 되었으며 1420년 의정부 찬성사를 역임하였다. 1422년 태
종이 승하하여 시릉의 복제를 마친 뒤 부원군에 피봉되고 1426년 영
의정이 되었다.
재화를 탐하지 아니하고 국정에 힘써 벼슬에 나아간 지 좌천된 일
이 없었고 4대조에 걸쳐 모든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묘는 파주군 
월능면 덕은리에 있고 그의 사당은 용인군 기흥읍 보라리에 있다.

<참고:한국인명대사전, 용인군지, 경기인물지>, 박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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