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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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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덕징(鄭德徵)

<묘> 효종 8년(1657)~영조 15(1739) 조선시대 무관. 자는 성유(聖
由), 본관은 영일, 포은의 10세손이며 현감 주한(周翰)의 아들. 숙
종 6년(1680)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고, 훈련
원(訓練院) 주부(主簿), 판관(判官), 서생진첨사(西生鎭僉使)등을 
거쳐 숙종 24년(1698) 진안현감(鎭安縣監)이 되었다.
그 후 경종원년(1721)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 우림위장(羽
林衛將)을 거쳐 이듬해 정주목사(定州牧使)에 파직되었으나 경종 3
년(1723) 다시 여주목사(驪州牧使)로 제수되었다. 영조 원년(1725) 
함경도 절도사가 되어 군율과 군비를 정비하고 훈국별장(訓局別
將), 부총관(副摠管) 등을 역임하였으나 이삼(李森)이 주장이 되자 
병을 구실로 사직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영조 4년(1728) 원종공신
(原從功臣)에 책훈되고 다시 부총관을 거쳐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올랐으며, 영조 12년(1736) 80세의 나이로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이
르렀다. 묘는 모현면 능원리에 있다.

<참고:신도비명, 용인군지>, 박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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