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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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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립(崔震立)

<문헌>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 자는 사건, 호는 잠와, 신보
의 아들로 선조 1년(1568)년에 출생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계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594년 무과에 올라 부장을 제수 받았으나 병으로 사직하였고 1597
년 정유재란 때 결사대 수백 명을 인솔하고 서생포의 적을 격멸한
데 이어 권율과 함께 도산에서 대승하였다. 1636년 공주 영장이 되
었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 두어 달 만에 남한산성이 포위되자 감사 
정세규가 군사를 거느리고 근왕(勤王)하면서 그가 나이 많은 것을 
보고 황백(黃柏)으로 대신하게 하니 강개하여 말하기를 「내가 늙
어서 장수의 길을 감당할 수는 없지마는 능히 갈 수는 있소」하고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따라가니 좌우에서 감동하였다.
용인의 험천에서 패전하였는데 그는 꼿꼿하게 서서 움직이지 않고 
활을 쏘니 빗나가는 것이 없었다. 화살이 다 되자 따르는 사람들을 
돌아다보며 말하기를 「너희들은 반드시 나를 따를 것이 없다. 나
는 여기서 한 치도 떠나지 않고 죽을 것이니 너희들은 이 자리를 표
시해 두라」하였는데 싸움이 끝난 뒤에 여러 아들이 그곳에서 공의 
시체를 찾았는데 화살이 온몸에 맞아 고슴도치와 같았으나 얼굴은 
살아있는 것 같았다.
1637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1647년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용인향
토사료관 병자호란 기록화의 험천 전투도에 묘사되어 있다.

<참고:인물대사전, 잠와선생실기, 연려실기술>,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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