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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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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립(金元立)

생거. 비. 기흥읍 구갈리.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본관
은 경주이며 계림군 균(稛)의 후손, 선조 23년(1590) 8월초 2일 증참
판(贈參判) 성진의 아들로 출생. 어려서부터 기국이 크고 호매하였
으며 문사(文辭)가 뛰어나 세인으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24세 때인 광해군 5년(1613)에 등과하였고 을묘년(1615)에는 광해
군이 인목대비를 폐위코자 하는 패륜지변에 이르자 홍무적(洪茂績)
등과 함께 이의 부당함을 극간하였으나 혼미한 광해주가 이를 깨닫
지 못하였고 또 이를 항의하는 그을 지어 입궐하여 하였으나 문지기
로 하여금 이를 막고 체포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가두었다.
마침내 인조가 반정함으로 연유하여 다시 직장(直長)으로 천거되었
고, 대과(大科)를 거쳐 능주목사로 나아가 선치하였다.
인조 14년(1636)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 오랑캐가 한성을 침공하
자 인조 임금의 대가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을 때 이를 애통히 여
겨 임금의 교지를 받들어 즉 시 사병을 초모하기 위해 곧바로 전주
로 내려가 그의 형 원중과 함께 동당(同堂)의 제현이 병사를 합하
여 명년(1637) 정축년 과천에 진을 머물면서 많은 무리를 베이고 잡
아 들였다.
때에 주변에서 이를 살피던 독전어사가 그들 삼종제의 일들을 상감
께 전달하여 권면하였다. 인조가 청에 항복하였다는 사실을 성 아래
에서 듣고 혈맹의 형제와 이를 따르던 제병들은 서로 통분함을 금
치 못하였으나 병사를 파하였다.
후에 이공으로 원종공신에 록선 되고, 예조판서 양관 대제학에 증직
되었다. 후에 낙향하여 용인의 갈천에 살았음으로 세인이 갈천선생
이라 칭하였다.

<참고자료 : 갈천문집, 기적비>,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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