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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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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적(秋適)

<문헌> 추계(秋溪) 추씨(일명 양지(陽智)추씨) 시조. 생몰년 미상.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호는 노당(露堂), 충렬왕 호 과거에 급제하
여 안동서기(安東書記), 직사관(直史館)을 거쳐 좌사간(左司諫)에 
올랐다.
1298년(충렬왕 24) 환관 황석량(黃石良)이 권세를 이용, 자신의 고
향인 합덕부곡(合德部曲:지금의 충청남도 당진의 합덕읍)을 현(縣)
으로 승격시키려고 할 때 그 서명을 거부하자 황석략의 참소로 순마
소(巡馬所)에 투옥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사랑으로서 북계 용주(龍
州)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충렬왕 말년 안향(安珦)에 의하여 발탁되어 이성(李晟), 최원충(崔
元沖)과 함께 7품 이하의 관리. 혹은 생원들에 대한 유학교육을 담
당하였으며, 민부상서(民部尙書), 예문관 제학에 이르러 치사(致仕)
한 후 양지 추계로 낙향, 은거하면서 추계 추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
때 그는 유생이나 관원에 대한 유학교육을 실시한 교육자적 경험을 
바탕으로 양서인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저술에 힘썼으며, 19편의 
명심보감초(抄)를 완성하였다.
이 책은 고려시대 때 어린이들의 학습을 위하여 중국 고전서에서 선
현들의 금언(金言), 명구(名句)를 편집하여 만든 책으로 목판본과 
석판본 등 10여종이 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래 이 책은 명
나라 범입본(范立本)이 편찬한 것이라고 하나, 범입본의 명심보감
은 고려시대 어린 학생들에게 읽히고 이해시키기에 어려운 점이 많
고 당시대의 정서에 부합되지 않는 점 등이 있어 추적은 주로 한문 
초학자가 천자문을 배운 다음 동몽선습(童蒙先習)과 함께 기초과정
에서의 교양과 수련을 위한 내용으로 저술하였으므로 중국 범입본
과는 내용 구성이 다른 독립적인 것이라는 것이 추계추씨 후손들의 
주장이다.
이 책에서의 “명심”이란 명륜(明倫), 명도(明道)와 같이 마음을 밝
게 한다는 뜻이며, “보감”은 보물과 같은 교본(거울)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으며, 추적 이후에 내용을 증보한 여러 이본이 생겼으
나 고려 말 조선 초 이후 가정과 서당에서 기본 교재로 널리 쓰였음
을 물론이려니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교양서적 중 배놓을 수 없는 필
독서로 손꼽히고 있다.
용인(양지,추계)을 관향으로 한 성씨 중 추계 추씨의 시조인 추적
과 함께 불후의 명저인 명심보감이 저술된 작품의 산실이 우리 고장
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아직까지도 잊고 살아온 것 같다.

<참고:추계추씨 문중 증언, 한국민족대백과, 한국인명대사전>, 금
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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