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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림

이미지없음
 황림(黃琳)

묘<墓> 광국공신(光國功臣). 수지면 고기리 광교산 하단 유좌지원
(酉坐之原).
자(字)는 여온(汝溫), 호는 겸재(謙齎), 시호는 평장(平莊), 본관은 
창원이다.
조선 중종 정축(1517) 출생. 27세 때 진사시(진사시)에 합격한 후 관
직에 나아가 인종 원년 을사(1545)에 춘추관 기사관을 거쳐 돈령부 
주부가 되었다. 그 후 명종 5년(1550) 경술에 병조 정랑에 올랐다가 
명종 8년(1553) 함안군수. 11년(1556)에 보은군수, 무오년(1558)에 
울산도호부사 등을 역임하던 중 명종 갑자91564)에 부친상을 당하
여 3년간 시묘하였다. 선조 4년 신미(1571)에 다시 이조참의에 제수
되었으나 그해 9월에 모친상을 당하여 사직. 3년 상을 마친 후 여주
목사로 있을 때, 임금이 이조(吏曹)에 묻기를 「현재 고을을 다스리
는데 있어 가장 뛰어난 인물이 누구냐」고 하였다. 이조에서는 네 
명을 들어 아뢰이니 특지로 황림을 대사헌에 임명하였다.
선조 11년 무인(1578)에 종계변무 주청사로서 서장관 황윤길과 함
께 명나라에 다녀온 후 이조판서 겸 세자 시강원 좌부빈객이 되었
다. 이즈음 조정에서는 국초에 반적 윤이, 이초가 중국에 들어와 이
씨왕조의 조상이 「고려 배신(陪臣) 이인임(李仁任)의 사자(嗣
子)」라고 무고하여 조정에서는 누차 명나라에 정정을 요구하였으
나 「태조실록을 고칠 수 없다」고 번번이 거절하였다. 이 문제가 
선조 때 인 을축년(1589)에 와서야 매듭 짖게 됨으로서 경인(1590) 
8월 선조는 전후. 주청한 주청사 19명을 <수충공성익모수기광국공
신(輸忠翼謨修紀光國功臣)>으로 책록하였다. 이때 황림은 광국 3등
공신으로 의창군(義昌君)에 피봉되었다. 선조 24년(1591) 기로소에 
들었고, 선조 30년 정유(1597) 10월 24세 81세를 일기로 하세하였
다. 배위(配位) 순흥안씨, 계배 파평윤씨와 합핍되었다. 후에 영의
정에 추증되고 평장공의 시호가 내려졌다. 묘는 조선 초기 묘제양식
인 방형분으로 봉분하단에 지대석이 놓여있고 묘전에는 묘비석, 상
석, 문관석, 망주석 등이 있으며 묘하에는 12·13대 후손들이 세운 신
도비가 있다.

<참고문헌:연려실기술, 국사대사전, 한국고사대전, 신도비명>, 노
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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