¾ÆAIμð
비밀번호
로그인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사이트맵
찾아오시는 길
이메일보내기
문화원달력
조직도
홈 >향토문화자료관>향토위인

 

김영희

이미지없음
 김영희(金永喜)

<효자, 정려문> 자는 석녀(錫汝), 호는 연농(硏農), 본관은 경주(慶
州)이다. 순조(純祖) 병술(1826) 10월 4일 노담(魯膽)의 아들로 광
주 야곡(冶谷)에서 출생하였다.
15세 되던 해인 현종 경자(1840)에 용인현 수여면 남동(지금의 용인
읍 남리)으로 이사하였으나 가세가 몹시 곤궁하였고 또 몹시 수척
하였으나 양친의 부양에 갈력하여 입에 맞는 음식이 끊이지 않게 하
였다.
접하는 물질이 비록 충분치는 못했을망정 조금도 탐욕치 않았으며, 
스스로 검약하였고 또 순화로운 지기가 늘 넘쳤으므로 현우(賢愚)
와 귀천(貴賤)의 구별이 없이 환심을 기울였다.
34세 되던 해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성균관 생원(生員)이 되
었으나 그해 모친이 천수를 다하매 방인이 보기에 딱할 만큼 애절 
애통하였다.
3년의 상을 마칠 때까지 생강이 든 음식과 계피가 든 음식 일체를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이는 곧 소식으로만 연명하였음을 말
함이며 하루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3년을 하루같이 풍우한서를 가
리지 않고 10리가 넘는 곳을 찾아가 곡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험준한 산길을 내려오다가 실족하여 고초를 당하고 
탈진하여 있을 때 홀연 한 사람이 나타나 부축하여 집까지 데려다 
주었으나 집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부축해 준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
았으니 이는 분명 귀신이 그 효성에 감복하여 도와준 것이라고 하였
다. 세상이 뛰어난 효자도 많겠으나 어찌 이에 비할 바가 되겠으며 
그 행적을 다 적을 것인가?
방인이 흠경하고 원근의 사표가 되었으며 이 일을 마침내 성상이 전
문하시고 조봉대부(朝奉大夫)의 작위를 내렸다. 병술(1886) 7월 18
일 향년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매 동몽교관에 증직하고 효자 정
문을 내리니 고종 28년 신묘년 8월의 일이었다. 남리에 정문이 전한
다.

<참고 : 삼강행실록, 내고장의 얼>, 이응준
    목록



 
주소 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