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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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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금만(洪今萬)

항일의병. 용인군(이하 불명), 당년 30세의 청년으로 당초 용인출
신 의병장 정절화(鄭晢和)가 30여명의 의병을 인솔하고 홍금만이 
사는 동리에 들어와 의병물자를 징발하고 이동할 때 이에 투신하여 
죽산, 청주, 충주지방에서 활동하다가 충주방면에서 일본군과 조
우, 격전이 벌어지자 피신하여 돌아왔다.
그 후 융희 2년 2월 9일 의병 박춘식의 일대에 다시 가담하여 용인 
성산리 존위, 마가실 존위 등을 습격하여 의병 활동자금 4백 냥을 
징취하고 광주군 전지리(前枝里), 서낭청의 벼슬아치의 집에 들어
갔다가 대기 중이던 일경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홍금만은 의병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 판사의 질문에 <적당을 
제거하고 의거하여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이라
고 답변하였다. 1908년 6월 11일 경기도재판소 판서서리 수원군수 
서병숙(徐丙肅)으로부터 10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참고:독립운동사 별책(1), 재판기록>, 금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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