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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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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형(許炯)

평남 안주 태생으로 1894년 2월 20일 출생. 1963년 12월 1일 기흥읍 
보라리 394번지에서 타계하였다.
평양 대성학교(大成學校)에 재학 중 1910년 3월 대성학교가 폐교되
자 학업을 중단한 그는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본격적인 대일투쟁에 나섰다. 이어 한국태(韓國泰), 함병
승(艦秉昇)등과 함께 조선독립청년단이라는 단체에 가입하여 주로 
학생층을 상대하는 지하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후 원산에서 최자남(崔子男)을 만나 최자남으로 부터 강우규(姜
宇奎)를 소개받아 강우규와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면서 재등실(齋謄
實) 총독을 독살시키려는 강우규의 계획에 자신도 참여시켜 줄 것
을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강우규는 서울 남대문 역에서, 그는 서울 
용산역에서 대기하여 재등총독이 하차하면 폭탄을 투척하기로 하였
다.
그는 그 후 한흥근(韓興根)에게 폭탄 입수를 부탁하였으나 서로 연
락이 맞지를 않아 결국은 폭탄을 입수치 못하고 강우규의 거사 성공
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1919년 9월 2일 재등실 총독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고 다음날 찾아온 강우규를 만나 재거사를 의논하였다. 그러
나 강우규가 9월 17일 서울 사직동 박승화(朴承華)의 집에서 체포됨
에 따라 그도 최자남과 함께 연루되어 체포되고 말았다. 1921년 8
월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후 일주일
도 안 되어 한흥근의 폭탄 은닉 혐의로 평양감옥에 투옥되었다. 예
심 6개월 후 면소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1922년 5월 동아
일보 안주지국 기자로 활동하면서 안주청년회를 조직하여 항일정신
을 고취하는 한편 야학교를 설립하여 부녀자들의 계몽에 힘썼다.
1926년 10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허위로 꾸민 강중건(姜重建:강우
규의 아들)사건에 관계하였다는 혐의로 그는 평북 정주경찰서에 체
포되어 의주감옥에서 6개월간 옥고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27년에는 신간회의 안주지회부 회장겸 정치부장을 맡아 활동하였
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그는 안주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
으로 있다가 1947년 2월 21일 월남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
다.

<참고:독립유공자공훈록 8권>,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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