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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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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구(韓逑)

<효자,정려문> 호는 학도당(學道堂), 홍무 병진년(1376)에 광주에
서 출생하였다. 그가 5세 되던 해에 부친의 상을 당하여 편모슬하에
서 자랐으나 철이 들자마자 또 모친의 상을 당하여 부친의 묘와 합
장한 후 6년 동안을 상복을 입은 채 시묘살이를 하였다.
또 나물밥에 물마시며 향기로운 음식과 과일을 먹지 아니하고 몸소 
제찬을 만들어 지성으로 봉사하였다. 그리고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할 때에도 이가 보이지 아니하였으며 상기를 마칠 때까지 한 번도 
집에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이 지극한 효성은 일세의 귀감이 되었
고 사림(士林)이 흠경하여 조정에 상소하였으므로 세종 28(1446)년 
나라에서 정려문을 내리고 선균진사로 록선하였다. 또한 그의 행적
이 삼강행실록과 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정묘년(1447)에 하세
하니 수 72세이며 광주군 상촌면에 신도비와 묘소가 있었으나 실전
되었다. 원삼면 독성리 중대 마을에 정려문과 정려각이 함께 전하
고 있다.

<참고:삼강행실록, 내고장의 얼>,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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