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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필

이미지없음
 김세필(金世弼)

<묘> 김세필(金世弼)은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경주로 아버
지는 첨정 훈(薰)이고 어머니는 여산송씨(礪山宋氏)로 학(翯)의 딸
이다.
자는 공석(公碩)이고 호는 십청헌(十淸軒) 또는 지비옹(知非翁)이
라 하였다.
1473년(성종 4년)에 태어나 1495년(연산군 1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이 해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홍
문관의 정자와 박사를 거쳐 수찬이 되고 이어서 사헌부 지평(持平)
에 올랐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거제도로 유배되었다가 
1506년(중종 1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나 홍문관 응교(應
敎)로 기용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그 후 전한(典翰)과 부
제학(副提學), 형조참판을 지내고 광주목사(廣州牧使)와 전라도 관
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대사헌,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냈
다.
1519년(중종 14년)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의 북경에 다녀왔으며 
같은 해 겨울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서 조광조(趙光祖)를 사
사(賜死)한 중종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규탄하다가 유춘역(留春驛)
으로 장배(杖配)되었다.
1522년 풀려난 뒤에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
서 십청헌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뒤에 그의 이러한 공로를 인
정하여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었고 충주에 있는 팔봉서원(八峰書
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며 저서로는 십청헌집(十淸軒集) 4권이 있다. 
현재 용인군 수지면 죽전리에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 國朝人物考, 中宗實錄, 十淸軒集>, 최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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