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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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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제(金萬濟)

독립지사. 1879년 11월 20일 지금의 용인읍 김량장리 122번지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경주, 호는 우송(友松) 또는 만송(萬松)이며 부친 김상언의 
3남으로 한학을 수학(修學)하였다.
후에 서울 종로구 누하동(樓下洞)에서 금은방을 경영하던 두형 밑
에서 일을 보다가 융희 원년(1907) 6월 <헤이그>밀사 사건 때 처가
의 도움으로 여비를 구하여 동년 10월, 원산을 거쳐 배편으로 해삼
위(블라디보스톡)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한인촌 애국지사들과 교우하였고 다시 생계를 위하여 <하
바로스크>로 이주, 그곳 금광에 종사하다가 돈을 모아 다시 <이콜
리스크>로 이주하여 금은방을 경영, 많은 돈을 벌었다.
당시 연해주 일대에는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의병장을 중심으
로 한인촌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김만재는 의암과 사제(師弟)간의 
의를 맺고 있었다.
한편 그의 딸 김옥진자(金玉振子)는 안중근 선생의 딸인 안현생(安
賢生)과 동창이며 동년배(同年輩)로써 안의사가 여순에서 거사하였
을 때에는 그 유족들의 생계를 돌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융희 4년(1910) 8월 22일 본야(本野) 주 러시아 일본공사
는 한국합병에 관한 일본정부의 훈령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전달
하였고 <모스크바>에서 방송된 이 뉴스가 <블라디보스톡>의 <우
크라이나> 신문사에 들어온 것은 23일 오후 4시로 이 소식은 삽시
간에 우리 동포들에게 전해졌다.
이 비보(비보)를 접한 성명회(聲明會)는 비통에 넘치는 격문 1천매
를 즉각 인쇄하여 동포들에게 배포하고 결사 항쟁할 것을 호소하는 
한편 1910년 8월 29일의 국치일(國恥日)을 당하매 일본의 한국 강점
(소위 한일합방)에 대한 부당성을 열강에 호소하는 성명회선언서
(聲明會宣言書)를 발표하고, 선생은 이 선언서의 연서자(連書者)의 
일원으로 서명(署名)하였다.
성명서의 선언문은 이상설(李相卨)이 초안하였고, 유인석(柳麟錫)
이 수정하여 러시아어・불어・중국어 등으로 번역, 세계열강에 보냈
다.
이 선언문에 서명한 사람은 서명록 1매당 77명식 총 8,624명에 이르
는 방대한 문서였다.

전  문 <電  文>

<일본이 한국을 침범한 것은 세세로 원주일 뿐만이 아니라 조약을 
체결한 누래로 누차 약속을 어기고 그 공법에 어긋나고 정의를 모멸
한 것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
지금 또 합방을 여러 나라에 공포하는 것은 사실인 즉 우리 한인의 
소원하는 바가 아니고 그들이 스스로 외친것이다.
만약 일본이 과연 합방을 강행, 동양대국의 평화의 희망은 장차 영
원히 무너지고 말 것이며,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무궁한 화가 끊어
질 날이 없으리라.
귀 정부에 바라는 바는 이 사정을 잘 살펴서 일본이 한국을 합방한
다는 일본의 선언을 우리의 옛 우호를 생각하고 우리의 세계평화에 
힘쓰는 것을 생각하여 승인을 하지 말아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대한일반인민총대(大韓一般人民總代)
유인석(柳麟錫)

선생은 1017년 12월 재러시아 한민족회 중앙회 재정 책임을 맡았고 
한편으로는 사재를 털어 <니콜리스크>에 사범학교를 설립하여 인
재양성에 힘썼으며 국내에서 기미년 독립선언과 항일 시위가 전개
될 때에는 지지시위를 개회하였고, 라자구(羅子構)에 군사 교육부
를 설치하였을 때에는 군자금을 모집하여 지원하였으며, 청년들이 
훈련할 때에는 많은 사재를 털어 제공하기도 하였다.
1933년 <하얼빈>으로 옮겨 한국독립당에 입당, 활약하였으며 1936
년부터는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때때로 만주 각지의 동포들을 방문
하여 민족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중국인과의 친선 및 우의를 증진하
는데 힘썼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자 이듬해인 1946
년 장남인 김동문의 가족을 따라 귀국하던 중 함경북도 청진에서 별
세하였다.
선생은 해외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던 의암 유인석 선생의 문인으로
서 유일한 용인사람이며 일생을 해외에서 한민족의 지위 향상과 2
세 교육, 독립정신 고취 및 항일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참고 : 독립운동사 5권, 용구문화 16호>, 금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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